미얀마를 미얀마로 부른 오바마 섞일雜 끓일湯 (Others)

이름은 누구의 것인가? 이름이 붙은 사람이나 사물의 것이다. 이름은 누가 쓰는가? 이름의 주인공이 아니라, 그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쓴다. 이 같은 괴리, 즉 주인과 쓰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점 때문에 이름은 곧잘 혼동과 갈등의 대상이 된다.

재선에 성공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선거 뒤 첫 방문지로 동남아시아를 선택했다. 많은 정치 평론가가 중동부터 찾아 나서라고 조언했으나, 오바마는 아시아로 눈을 돌렸다. 구태의연한 갈등의 새로운 챕터를 열고 있는 중동 사태도 급박하지만, 동남아 지역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가늠해 보는 일도 미국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일 것이다. 오바마는 18일부터 사흘에 걸쳐 태국, 미얀마, 캄보디아를 돌고 있다.

특히 미얀마 방문이 눈길을 끈다. 이 나라는 국가 지도자보다 반대파 지도자(아웅산 수치 여사)가 더 유명할 정도로 폐쇄된 전체주의 국가였으나, 2010년에 민간 정부가 들어선 이래 조금씩 개혁 개방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미국 대통령이 이 나라를 찾아가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며, 따라서 오바마의 미얀마 방문을 보도하는 미국 언론은 '역사적인' '획기적인' 같은 수식어를 쓰며 보도한다.

그래도 미얀마 정부는 군사 독재 체제와 맥을 잇고 있고 여전히 전체주의, 권위주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어서, 오바마는 자신의 방문이 이 체제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해석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인다. 18일에 태국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오바마는, 자신의 미얀마 방문이 이 나라의 현 정부를 승인하는 게 아니라 민주 사회로 탈바꿈하고 있는 노력을 높이 산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럴 때 가장 편하게 쓰이는 외교적 화법은 모호한 '국민'을 파는 것이다. 오바마는 인권과 정치적 자유를 존중하는 나라로 변모하며 개방의 문을 여는 미얀마의 '국민에게' 축하를 보낸다고 했다.

양곤에 등장한 오바마 환영 벽화. 그래피티 예술가들이 그렸다고 한다.


오바마의 미얀마 방문에는 그 성격을 규정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 하나 더 있다. 이 나라를 어떻게 불러야 할 것인가. 이 나라 정부가 주장하는 대로 미얀마? 아니면 전통적으로 불러온 대로 버마? AP<월 스트릿 저널>을 비롯한 미국 언론은 오바마 방문을 계기로 하여 이 나라의 이름에 얽힌 정치적 갈등을 간략히 짚어보고 있다.

현재 미얀마의 정식 국명은 미얀마연방공화국(Republic of the Union of Myanmar)이다. 예전에 미얀마는 버마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 나도 어릴 때 그렇게 배웠다. 그런데 이렇게 알려진 것은 이 나라 사람들이 선택한 게 아니다. 여러 종족으로 이루어진 이 나라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종족이 바마르(Bamar)였는데, 여기서 버마라는 이름이 나왔다. 한편 이 종족을 좀더 격식을 갖추어 포괄적으로 부르는 말이 미얀마였다고 한다. 이렇게 두 가지 이름이 함께 쓰였는데, 외국에 버마로 알려지게 된 것은 이 나라를 식민지로 다스린 영국 덕분이었다. 19세기에 이 나라를 침략한 영국은 20세기 중엽까지 영국령 인도의 일부로 삼아 식민지 지배를 유지했는데, 그 때 이 나라를 버마로 부르고 소개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1948년에 독립하면서 새로 선 나라도 버마연방(Union of Burma)이었다.

1989년에 버마의 군사 정부는 영국 식민지 시대에 붙은 영어식 지명들을 고유한 말로 바꾸는 작업을 수행하면서, 나라 이름도 미얀마로 고쳤다. 정식 이름은 버마연방에서 미얀마연방이 되었다(2008년에는 '미얀마연방공화국'으로 다시 고침). 그러나 미얀마의 반체제 세력 일부는 새 이름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름이 나빠서가 아니라, 정당성을 갖지 못한 군사 독재 정부가 정한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서구중심적 사고와 위선의 반영일 수도

미얀마가 나라 이름을 바꾼 뒤 국제 사회도 이 나라의 이름을 둘러싸고 혼란을 겪었다. 영어권을 중심으로 한 서구 국가 일부는 새 이름 미얀마를 인정하지 않고 자신들이 지금까지 써 온 버마를 고집했으며, 지금도 그렇다. 많은 서구 언론도 꼭 버마라고 쓴다. 이 역시 새 이름이 민주적 방식으로 국민의 합의를 얻어 결정된 게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러한 태도는 위선적일 뿐 아니라 서구중심적인 사고방식을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국명을 바꾼 미얀마 체제가 군사 독재 정부임은 분명하지만, 이에 대한 비판을 나라 이름에까지 연결시키는 것은 오버라고 생각한다. 독재 체재든 민주 체제든, 이름은 그 나라가 정하는 것이다. 다른 나라가 이래라저래라 할 일이 아니다. 독재가 나라 이름을 바꾸면, 새로운 이름으로 불러 주며 씹고 비판하면 된다. 영어권 국가나 언론이 버마라는 전통적인 이름을 고집하며 독재에 대한 반대를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그 뒷면에는 피식민 국가가 겪은 식민지 시대의 아픈 흔적을 이해하지 못하는 가해 국가들의 오만이 감추어져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이 제3세계의 나라 이름에 어떤 어두운 그림자를 남겼는지는 아프리카 서부 해안 국가의 예를 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를테면 지금 코트디부아르로 불리는 나라는 과거에는 아이보리 코스트였다. (나도 그렇게 배웠다.) 두 이름 모두 상아 해안이라는 뜻이며, 앞은 프랑스어, 뒤는 영어다.

15~16세기에 포르투갈과 프랑스의 상인층을 중심으로 한 제국주의자들은 그들의 사업 편의에 따라 아프리카 서부 해안 지역에 여러 이름을 붙였다. 곡물 해안, 황금 해안, 노예 해안, 상아 해안, 섬유 해안 따위가 그들이었다. 물론 이런 물품을 수탈해 가기 좋은 곳이라는 뜻이었다. 현재의 코트디부아르는 과거의 상아 해안과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이 나라를 식민지화한 프랑스는 계속 '상아 해안'이라는 이름을 이 나라의 이름으로 사용했다.

1960년에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뒤에도 같은 이름을 계속 썼는데, 문제는 '상아 해안'이라는 뜻만 보존될 뿐, 각 나라들이 모두 제 나라 말로 이 나라 이름을 부른다는 점이었다. 말하자면 식민지 시대의 유산 때문에, 고유명사를 다들 보통명사로 부른 셈이다. 이를테면 영어권 국가들은 아이보리 코스트로, 불어권은 코트디부아르로, 한국이 포함된다면 '상아해안국' 정도로 불렀다는 말이다. 이에 따라 1986년에 코트디부아르 정부는 나라 이름을 코트디부아르공화국(République de Côte d'Ivoire)으로 하기로 선언하고, 프랑스어 이외의 말로 번역된 이름은 국명으로 인정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 나라를 아이보리 코스트로 부르는 무감각한 서구(영어권) 언론도 여전히 존재한다.

코트디부아르가 나라 이름을 바꿀 때의 정부 역시 부패한 일당 체제 권력이었으나, 미얀마의 경우처럼 새로 정한 국명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식의 움직임이 서구에서 일었던 적은 없다. 서구 사회의 이중성을 보여주는 경우라 하겠다. 이 나라뿐 아니라 아프리카 신생 독재 체제가 정한 국명들 역시 인정하지 않아야 일관성이 있는 주장이라 할 것이다.

미얀마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쓴 오바마

현재 미얀마를 옛 이름 버마로 부르기를 고집하는 나라는 미국, 캐나다, 뉴질랜드, 그리고 미얀마의 식민국이었던 영국 등이다. 미국 CIA의 세계 국가 정보에도 버마로 되어 있다. 영문 위키피디아도 미얀마를 치면 버마라는 표제어로 연결된다. (코트디부아르도 아이보리 코스트라는 표제어로 연결된다). 영국 방송사 BBC도 버마를 쓰며, 인권 단체인 국제인권감시단(Human Rights Watch)도 그렇다.

그러나 유엔은 이 나라의 공식 이름인 미얀마를 사용한다. 위 나라를 제외한 많은 나라가 국명 미얀마를 인정하고 그렇게 불러 준다. 웹 주소에 쓰이는 국가 식별 코드 역시 .mm 이다. 엠네스티 인터내셔널도 미얀마라는 이름을 쓰고, 언론사로는 <뉴욕 타임스>가 초기인 1989년부터, AP가 1998년부터, <파이낸셜 타임스>는 올해 1월부터 미얀마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한글 위키에 따르면 한국도 1991년 외래어 심의 공동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미얀마로 부르기로 했다고 한다. 한글 위키는 "2007년 미얀마 반정부 시위의 여파로 대한민국의 언론사인 경향신문은 공개적으로 미얀마 표현을 영구히 쓰지 않을 것과 그 대체표현은 '버마'임을 선언하였고"라고 하였으나, 그 이후의 <경향신문> 기사 검색을 해 보면 미얀마라는 말이 흔하게 나온다.

미국은 공식적으로 이 나라를 버마라고 부르지만, 당사자 앞에서는 말조심을 한다. 작년 12월에 미얀마를 방문했던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미얀마를 가리킬 필요가 있을 때 '이 나라(this country)'라는 말을 사용했다고 한다. 이것은 미얀마 정부가 자기네 나라 이름에 국가 자존심을 걸기 때문이다. 2011년에 미얀마 외무장관은 "당신들은 이게 사소한 문제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미얀마'라는 국명 사용은 우리 나라의 국가 정체성이 걸린 문제다. 다른 나라를 올바른 이름으로 불러주는 것은 그 나라를 평등한 태도로 존중하겠다는 의사를 보이는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오늘(19일)에 미얀마 대통령 테인 세인과 회담을 마치고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미얀마'라는 이름을 썼다.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위에서 링크한 AP나 <월 스트릿 저널>을 비롯해 많은 언론이 미얀마를 미얀마로 부르는 것은 아직 이르다고 예상했으나, 이런 예측을 깨버린 셈이다. 위선적인 평론가들은 또 이러쿵저러쿵 말을 지어낼 것이다. 미얀마가 이들의 불평까지 모두 보듬어 앞으로 명실상부한 미얀마가 될 수 있는가는 얼마나 진실되게 민주 사회로 탈바꿈해 나가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민주화된 미얀마를 계속 버마로 부르는 일은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동해가 일본해로 불리는 것을 참지 못하는 한국 사람들은 나라 이름에 자존심을 거는 미얀마 정부의 정서를 좀 이해해 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 이미지: AP via <WSJ>

 

덧글

  • 피그말리온 2012/11/19 17:43 # 답글

    군사 독재 정권이 정한 것이었어도 말 자체는 옳은 말일 수 있다는 교훈일라나요...
  • deulpul 2012/11/19 18:25 #

    넵, 식민주의를 겪은 나라들에 드리우는 민족주의적 그림자를 고려하면 그런 생각도 할 수 있겠습니다. 예송논쟁 할 상황도 아니겠고요... 거기에 더해, 한쪽에서는 독재 체제를 지원하고 쿠데타까지 밀어주면서, 비슷한 이유로 다른 나라의 이름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나라들이 갖는 이중성이랄까 하는 점에 생각이 미치게 됩니다.
  • 바람처럼 2012/11/19 18:21 # 삭제 답글

    맞아요. 저도 가끔 방문자 분들이 왜 '버마'라고 부르지 않고, '미얀마'라고 하냐고 항의성(?) 댓글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말씀대로 아무리 군부세력에 의해 새롭게 지어진 나라명이라 하더라도 정식 명칭으로 변경되었고, 굳이 '버마'라고 불러야만 민주주의에 도움이 되거나 하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게다가 미얀마라는 이름 자체만 놓고 본다면 버마인을 제외한 다른 민족을 함께 어우르는 말이라... 의미 자체는 좋다고 생각합니다.
  • deulpul 2012/11/19 19:40 #

    역시 관건은 국민이 이를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하는가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군부 체제에 반대해 온 사람들은 미얀마라는 이름을 아주 싫어하는 듯하고, 한편 정부는 버마라는 이름이 국가 정체성을 해친다고 보고 여전히 크게 경계하기도 합니다. 게다가 135개 이상의 종족이 모여 형성된 국가에서 다수족인 버마족의 세력과 다른 소수 종족들 간의 역관계도 나라 이름에 대한 태도에 영향을 미칠 듯하고요. 어쨌든 민주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다시 국민이 나라 이름을 정할 수 있는 기회가 올 수 있겠지만, 그 때까지 외국들은 일단 공식 이름을 존중해 줘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 쌀랑하 2012/11/23 00:12 # 삭제 답글

    국명 얘기를 쓰셨기에 좀 다른 경우이긴 하지만 평소 맘에 안들던 한국인들의 개인 이름 영문표기에 대해 토론해 보고싶습니다.
    요즘은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양식 이름 하나씩 다 만들어 쓰더군요. 또한 본인의 한글 본명도 영어로 표기할때는 성과 이름을 서양식으로 순서를 바꾸어서 사용하구요. 전 이게 아주 잘못된 습관이라고 생각되거든요. 한국 이름은 성과이름이 같이 붙어서 하나가 되는 고유명사인데 사람들은 서양식으로 이름을 먼저쓰고 성이뒤로가는게 마치 국제 표준이라도 되는식으로 생각을 하는거 같아요. 별거 아닌거 같지만 정말 캠페인이라도 벌이고 싶습니다. 서양언론에서도 한국인의 이름을 표기할때는 성을 먼저 쓰는데 말이에요..
  • deulpul 2012/11/28 18:13 #

    저는 미처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그와 같은 문제 의식을 가지신 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저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많은 서양 매체도 한국인의 이름을 원래 순서로 쓴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유명인은 물론이고(Lee Myung-bak, Ban Ki-moon), 보통 사람도 그렇게 표기하는 경우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예컨대 http://www.washingtonpost.com/business/as-smartphones-proliferate-south-korea-moves-to-stem-digital-addiction-from-age-3/2012/11/28/ec41a61c-3933-11e2-9258-ac7c78d5c680_story.html). 이런 마당에, 말씀대로 우리가 먼저 성명을 뒤집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아시아권의 이름 사용법에 대해 이해가 없는 평범한 외국인과 소통할 때에는 1) 그 때마다 성이 앞에 온다고 알려주든지 2) 그냥 성명을 뒤집든지 해야 혼란을 덜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런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원형을 유지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말씀 듣고 나서, 저도 기회 있을 때마다 의연하게 성-명의 순서로 이름을 밝혀, 글로벌 문화에 무지한 외국인들을 educate시켜야 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실 외국인이 한국 이름을 쉽게 부르기에는 보통 1음절인 성이 훨씬 낫습니다. 그런 장점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김씨네 집에 초대를 받아 갔을 때는 곤란하겠습니다만...)
  • 자뻑하는 늑대개 2013/08/21 00:08 # 답글

    진행 속도가 느립니다. 변화는 오랜 세월에 걸쳐 발생합니다. 그것은 시간이 걸립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좋은 사람이지만 많은 장애물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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