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 하였습니다 때時 일事 (Issues)

지난 일요일에 올해 처음으로 눈다운 눈이 내렸습니다. 날이 그리 춥지 않아서 아주 찰진 눈이었죠. 동지를 열흘 남짓 앞둔 세상은 잠깐 밝았다가 금방 어두워졌지만, 하늘은 흐리고 땅은 희어서 밤이라도 은근하게 밝았습니다. 작년 겨울은 비정상으로 따뜻했고 올해 여름도 비정상으로 더웠으니 이번 겨울도 그 가름으로 갈 게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몰라요.

저 먼저 투표했습니다. 눈 오기 하루 전인 토요일에 몇 시간 차 타고 가서 하고 왔습니다. 투표장 주변을 잠깐 돌아보니 저보다 훨씬 먼 곳에서 온 차도 여럿 있었습니다. 절로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끝내고 나올 때, 상장처럼 생긴 '투표 확인증'을 주었습니다. 투표 했다고 상을 다 주네.




이번 대통령 선거 재외 국민 투표는 지난 총선 때의 그것보다 훨씬 편했습니다. 우선 등록하기가 훨씬 쉬워졌습니다. 이메일로 등록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투표일도 아닌데 오로지 접수를 위해 공관을 찾아 갈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이 쉬운 것을 왜 안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쉬운 것은 등록 기간의 후반부에 이메일 접수가 가능해져서, 그런 사실을 모르는 사람도 꽤 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제가 투표한 시카고의 경우, 공관(총영사관)이 있는 복잡한 도심을 피해 외곽 널찍한 곳에 투표소를 마련한 것도 큰 개선이었습니다. 간단한 행정적 결정 같지만, 이게 국민에게는 얼마나 큰 차이로 다가오는지는, 국민 해 보면 누구나 다 압니다.

또 투표에 필요한 여러 사항이 수시로 이메일로 날아왔습니다. '공약 없는 박근혜의 정보 자료'도 이렇게 받았습니다. 투표가 시작된 뒤 전세계 재외 투표 현황이 일일 보고 형식으로 전달되기도 했습니다.

이번 대선의 재외 투표는 총유권자의 10% 가량이 등록하고 그 중 71.2%가 투표했다고 합니다. 저는 외국 시민권자 같은 해외 장기 체류자에게 한국의 지방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 같이 지역 대표자를 뽑는 선거의 투표권을 주는 것에 여전히 의문을 가집니다만, 이왕 하려면 제대로 했으면 합니다. 하려고만 하면 방법은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이메일에 첨부된 문재인과 이정희의 '정보 자료'에는 모두 재외 투표 방식을 개선하겠다는 공약이 들어 있었습니다. 개선 필요성은 이 글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왜 한국(본국)의 투표는 단 하루, 단 몇 시간으로 제한되어 있는가 하는 의문도 갖게 됩니다. 5년, 혹은 4년 동안의 나라 운명을 결정하는 일을 단 하루, 고작 열 두어 시간 안에 다 마쳐야 한다는 것은 불합리하지 않은가. 한 학기에 두 번 보는 중간고사, 기말 고사도 일주일 동안 하지 않습니까. 왜 선거는 사나흘 천천히 해 가며 모든 국민에게 기회를 줄 수 없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재외 투표에서처럼 말입니다. 이번 대선의 재외 투표 기간은 6일이었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미국에 계시는 친구분과 오랜 친분을 유지하셨습니다. 30여 년 동안 서로 얼굴은 보지 못하면서도 계속 편지를 주고받으셨습니다. 언젠가 한국에 오신 적이 있는데, 아버지와 만나기로 약속을 하시고 약속 장소에서 바로 옆에 앉은 채 한 시간을 기다린 사람들입니다. 편지는 한 달에 두세 차례씩 하였지만 세월을 따라 바뀐 얼굴은 서로 몰라 봤기 때문이었죠.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 남기신 물품을 정리하다가, 친구분이 보내신 편지를 잠깐 보게 되었습니다. 2007년 대선 직전의 편지에는 '이명박을 꼭 찍어야 한다'라고 신신당부하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어른들의 보수성은 바다 건너서 수십 년을 사는 동안에도 바뀌지 않고 오히려 강화되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다른 이에게 누구를 찍으라고 말하는 것은 자기부터 상당한 신념을 가져야 가능한 일 아니겠습니까.

물론 사람에 따라 다 다를 테니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요. 그래서 이번 재외 투표 결과가 궁금합니다. 지난 총선 때의 재외 투표에는 야당 지지표가 많았다고 하는데, 대선은 어떨지. 미국의 경우 교포 사회는 전통적으로 보수적이라고 볼 수 있지만, 젊은 일시 체류자들이 열정적으로 투표했다고 하니 총선 때 같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1주일 뒤에 뚜껑이 열리면 알게 될 일일 테지요. 물론 그에 앞서, 한국에 계시는 분들의 투표라는 가장 중요한 절차가 남아 있지만 말입니다.

 

덧글

  • 2012/12/14 02:09 # 답글

    아,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 deulpul 2012/12/14 22:16 #

    할 일 하고 치하를 들으니 좀 겸연쩍습니다.
  • 댕글댕글파파 2012/12/14 11:46 # 삭제 답글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제 우리도 5일 남았네요^^
  • deulpul 2012/12/14 22:17 #

    아무리 지지고볶아도 운명의 시간은 칼처럼 엄정히 다가오는군요...
  • 2012/12/14 20:1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12/14 22:41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2/12/15 00:50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2/12/15 19:06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2/12/15 19:17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2/12/15 22:01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2/12/15 22:40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2/12/17 19:33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2/12/18 00:16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2/12/19 01:28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2/12/19 16:33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system3rd 2012/12/16 15:25 # 삭제 답글

    시카고 사시는군요! 제가 있을땐 눈엄청왓었는데 올해는 날씨가 좋은가보군요. 여권땜에 영사관 한번 가봤는데 정말 찾기 힘들었어요.ㅠㅜ
  • deulpul 2012/12/17 19:36 #

    아, 사는 것은 아니고요... 이 영사관이 담당하는 13개 주... 중 하나입니다. 올 겨울 이쪽은 어째 한국보다 포근하네요. 물론 더 두고 봐야 하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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