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한다, 팩트 체크 중매媒 몸體 (Media)

어떤 사람이 믿을 만하다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하나는 그 사람 자체를 믿을 수 있다, 이를테면 돈을 떼어먹고 도망갈 인간은 아니라는 뜻이다. 다른 하나는 그 사람이 하는 말은 믿을 수 있다는 뜻일 게다.

온라인에서는 전자의 의미를 가진 신뢰가 성립하기가 쉽지 않다. 온라인에서만 활동하는 인간들은 그 사람됨을 알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다. 온라인과 실제 모습이 거리가 있거나 정반대인 경우도 드물지 않다.

그래서, 온라인에서 유통되는 신뢰 자본은 대개 인간 자체를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그 인간이 내어 놓는 메시지를 대상으로 하는 모습을 가질 수밖에 없다. 어떤 의미에서 이것은 온라인 소통의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하다. 학력, 신분, 직위, 성별, 나이 등, 의견 소통에서 차별의 계기로 작용할 수 있는 조건들을 모두 생략한 채, 계급장 떼고 맞붙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내놓은 메시지를 신뢰할 수 있다는 말은, 그 메시지가 전달하려고 하는 사실이 그 사람의 주관적인 의견에 의해 왜곡되지 않음을 의미할 것이다. 이 경우, 우리는 나와 견해는 달라도 메시지는 믿을 만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보기 싫고 얄미운 넘이지만 말은 들어볼 만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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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인 누구도 개인적인 의견과 취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의견과 취향은 개인이 가진 개성을 구성하는 주요한 축들이다. 이를테면 내일 있을 대통령 선거에서 어떤 후보를 지지하는지는 개인의 의견과 판단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그에 따라 개인은 어떤 후보의 지지자나 무당파 등의 카테고리에 속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개인이 어떤 정견을 갖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런 개인이 다른 사람에게 내어놓는 메시지가 이런 정견에 큰 영향을 받으면 좀 문제가 된다. 특히 사실을 전달하는 메시지의 경우에 그렇다. 의도적으로, 혹은 부주의로 거짓을 진실로 유통시키기도 하고, 작은 일을 과장하여 전달하기도 한다. 이것이 올바르지는 않다 해도 보편적이라는 말은 할 수 있다. 심리학의 많은 연구는 사람이 세상의 현상을 인식하고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데에 개인이 이미 가진 가치관이나 경험이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다양하게 입증해 왔다.

사실을 전달하는 메시지에 끼어 있는 의견의 거품을 어떻게 찾아내고 걷어낼 수 있을 것인가. 얼른 생각하기로는 두 가지 방법이 떠오른다. 하나는 다양한 의견을 가진 다수가 행하는 집단적인 크로스 체킹이요, 다른 하나는 끊임없이 사실을 톺아보는 꼼꼼함이다. 전자는 조사 대상이 많으면 많을수록 정규분포가 그려지는 것과 비슷한 수학적 믿음과 연관되어 있고, 후자는 사실에 살고 사실에 죽는 저널리즘의 정신과 맥이 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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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우뉴스>에서 수행한 18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 토론 팩트 체크는 그런 두 가지 방법이 잘 연결되어 구현된 작업이라 할 만하다. <슬로우뉴스>는 후보자들이 벌인 세 차례의 토론을 대상으로 하여, 각 후보자의 발언 하나하나를 따져보고 의심이 가는 부분을 찾아 보았으며, 그 결과로 나온 사실과의 부합성을 목록으로 만들어 밝혔다. 정치인들이 내어놓는 메시지의 사실 여부를 검증할 필요성은 점점 높아지고 있고, 이번 선거에서도 여러 언론 매체가 사안별로 후보자 발언을 따져보고 있지만, 후보자 토론 전체를 검증 텍스트로 하여 집중 체크한 것은 한국 선거 사상 처음 있는 일이 아닌가 싶다.

<슬로우뉴스>의 검증은 비교적 다양한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공동으로 작업한 결과다. 그 다양성의 정도에 한계가 있을 수 있지만, 어쨌든 한두 명이 주관적으로 작업한 것도 아니고, 회사에 늘어선 층층시하 게이트 키핑을 통과하며 나온 작업도 아니다. 또 되도록 주관을 배제하고 사실을 근거로 하여 후보자들의 발언을 따져 보려 했다. '팩트 체크'에서 그것 빼면 뭐가 남겠는가.

물론 <슬로우뉴스>의 작업이 완벽한 객관성을 구현했다고 보지는 않는다. 역사에 대한 평가든 개인에 대한 평가든, 모든 평가 작업에는 그 대상을 고르는 때부터 일정한 판단이 작용한다고 믿는 나는, 객관성은 그 달성을 치하해야 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 그를 향한 치열한 실사구시 정신을 치하해야 하는 종류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팩트 체크 작업은 큰 의미가 있다.

선거 후보자의 발언을 검증하는 일은 이미 진작에 있었어야 했다. 미국 같은 경우, 주요 언론은 후보자 토론이 끝나자마자 앞다투어 텍스트를 깔아 놓고 사실 여부를 따져 본다. 토론뿐만 아니라 정당의 발표문, 후보자의 유세문 따위에 등장하는 의심스러운 말들도 모두 검증 대상이 된다. 이런 검증 결과는 블로그와 SNS를 통해 확산되며 후보자의 대중적 평가에 기여하게 된다. 거짓말 하면 바로 찍히는 것이다. (물론 거짓말했다는 사실이 선호도를 넘어설 만큼의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한국 언론은 이런 일을 하지 않는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대개 사실보다 의견을 전달하는 데 더 치중하는 한국 언론의 특성 때문이 아닌가 싶다. 빽빽한 토론 텍스트를 놓고 시시콜콜 사실을 따지기에는 상대 후보(이런 말이 가능하다니!)를 흠집내는 기사거리를 찾아 쓰는 일이 너무 바쁜 것이다.

따라서 <슬로우뉴스>의 팩트 체크는 비록 완벽하지 않더라도 중요한 일을 수행했다고 생각한다. 이 작업의 가장 큰 가치는, 이제 정치인들의 발언은 네편 내편에 따라 무조건 믿고 순응하기보다 철저히 따져 봐야 한다는 상식을 모범적으로 보인 것이라 하겠다. 또 기존 언론이 받아적어 놓은 토론 텍스트에 많은 누락과 오기가 있음을 고려하면, <슬로우뉴스>의 텍스트에 담긴 기록의 가치도 빠뜨릴 수 없다.

온라인으로 소통하는 <슬로우뉴스> 사람들이 돈을 떼어먹고 도망갈 인간들인지 아닌지는 누구도 알 수 없을 것이다. 그건 나도 모른다. 하지만 그 메시지는 믿을 만한 것이라고 보고 싶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매체는 금융대부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덧글

  • 스치는바람 2012/12/19 07:12 # 삭제 답글

    슬로우뉴스의 팩트체크, 아주 잘 봤습니다. 토론 발언 하나하나의 사실여부를 포털에서 검색해서 찾아보는 수고를 덜어줘서 아주 만족스러웠습니다. 여담이지만 이걸 어머님께 보여드리니 대체 한국의 언론은 뭘 하고 있는 거냐며 육십평생 큰소리 한번 안내시던 분이 노성을 터뜨리셨습니다. 언론의 각성을 희망합니다.
  • deulpul 2012/12/19 13:48 #

    어머님 짱이십니다! 그동안 보여준 언론의 모습에 만족하지 않으셨던 모양입니다. 저 역시 앞으로 기존 매체의 선거 보도 태도가 좀 달라졌으면 싶습니다. 눈 밝고 비판적인 독자들이 늘어나면 상황이 조금씩 나아지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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