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규는 오만하더라도 기사는 제대로 중매媒 몸體 (Media)

"말한 것 외에 쓰지 말라"는 박근혜 대변인
박선규 "내가 오만? 처음 듣는 비난"

앞 기사는 인용을 제대로 해달라는 박근혜 대변인 박선규의 말을 전하는 <한겨레> 기사다. 이 기사는 박선규의 발언을 보도하며 "오만한 행동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뒷 기사는 이에 대한 박선규의 반응이다.

나는 박선규가 오만한지 어떤지 알지 못한다. 알고 싶지도 않다. 그는 대통령 당선자의 대변인이 해야 하는 역할에만 충실하면 된다. 기자 개인이 박선규 개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내가 읽는 지면에서 보고 싶은 내용이 아니다.

<한겨레>의 기사는 세 가지 점에서 납득하기 어렵다. 첫째, "오만한 행동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라는 매우 주관적인 판단을 사실 진술의 표현 방식으로 떡하니 박아 놨다. 그 앞에 거론한 일은 사실들이다. 거기까지만 말하면 독자들이 알아서 듣는다. 기자 개인의 주관적인 견해인 '오만한 행동'이란 말을 갖다 붙임으로써 갑자기 신파 저널리즘으로 추락했다.

둘째, 이 기사의 부제는 '박선규 대변인, 기자들 질문에 '모르쇠' 일관 '입길''이라고 되어 있다. 이에 해당하는 본문은

박 대변인은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기자실에서 브리핑을 하면서 “오전에 특별히 할 말이 없다”고 했다. ‘언제쯤 추가 인수위원 명단을 발표하느냐’는 기자들의 쏟아지는 질문에는 “우리는 (발표)한다고 한 적 없다. 오늘 한다, 안 한다는 내용까지도 결정된 게 없다”고 했다.

라는 부분이다. 이걸 '모르쇠'로 일관한다고 했다.

대변인은 정책 결정자가 아니다. 글자 그대로, 어떤 결정이 내려지면 이를 언론을 포함한 공공에게 전하는 직위다. 내려진 결정이 없으면 대변인이 할 말이 없다. 아무리 "기자들의 쏟아지는 질문"이 있더라도 마찬가지다. 할 말이 없어서 안 한 것을 놓고 모르쇠로 일관한단다.

물론 발표할 결정이 없더라도 분위기를 흘려준다거나 하면 지면을 메워야 하는 기자들에게는 반가운 일이겠지만, 그건 대변인이 공식적으로 해야 하는 업무가 아니라는 것은 기자들도 잘 안다. 일이 일이니만치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욕할 일이 아닌데 욕을 한다.

셋째, 문제의 '말한 것 이외에 쓰지 말라'고 했다는 부분. 박선규가 했다는 말을 읽어보면, 따옴표를 달고 쓰는 직접 인용에서 자신이 하지 않은 말을 쓰는 기사들을 경계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이와 관련한 박선규의 말과 <한겨레>의 해석은 다음과 같다. (<한겨레>가 박선규의 말이라고 따옴표로 인용한 것은 실제 발언이라고 간주한다.)

1. "박선규 대변인(자기 자신)의 말이 (기사에) 쿼트 달고 나오는데 제가 안 한 얘기가 나온다. 대변인이나 관계자 말을 인용할 때 해석하지 말고 그 사람이 한 얘기를 그대로 써달라."

2. "(기자들이 대변인에게) ‘아까 했던 그 얘기 맞죠?’ 라고 말하면 겁나서 (기자들에게) 말 못 한다. (기자들이) 연역적으로 추론해 (기사를 쓰면) 누구도 얘기하지 못한다."

3. "공식적으로 나가는 워딩은 가감이나 해석하지 말고 그대로 인용해 달라."

4. 박 대변인의 언급은 자신이 브리핑에서 한 말을 확대해석하지 말아달라는 당부지만...

5. 한 새누리당 출입기자는 “워딩에 해석을 달지 않으면 대변인 발표문만이나 받아 쓰라는 얘기냐. 해석을 달면 조치를 취하겠다니, 지금이 유신이나 5공 시절이냐”고 비판했다. 또다른 출입기자도 “다른 사람도 아니고 기자 출신이 정치 기사에 해석을 달지 말라니 정말 모르고 하는 소리냐”고 되물었다.

13에서 박선규가 한 말의 뜻은, 직접 한 말을 가져옴을 의미하는 따옴표 인용에서 자신이 하지 않은 말을 해석해서 집어넣는 기사들이 있다는 것이다. 2에서 한 말은 기자들이 취재원(대변인)의 말을 기자 자신의 말로 바꾸어서 표현(해석)한 뒤 이를 기사에 인용문으로 쓴다는 뜻이다.

이것은 모두 크게 잘못된 태도다. 직접 인용은 글자 그대로 직접 한 말만을 써야 한다. 이게 무슨 고차 방정식인가. 너무나 명백한 원칙이다. 사실을 전하는 저널리즘에서든 개인끼리 쓰는 각서에서든 꼭 지켜야 하는 원칙이다.

예전에 쓴 글에서, 서구 언론에서는 직접 인용 때 문법적으로 틀린 부분을 고쳐야 하는가를 놓고 논란이 있다고 했다. 그 정도로 엄밀한 기초 원칙이다.

그런데 <한겨레>는 이런 말을 놓고, 대변인 발언에 덧붙이는 해석을 하지 말라는 것으로 오해, 혹은 왜곡하여 기사를 만들었다. '인용 제대로 하라'는 말을 '해석 붙이지 말라'는 것으로 비튼 것이다. 그게 45다.

정치 기사에서 발언과 해석 빼면 뭐가 남는가. 정치인의 발언만을 보도하는 기사가 세상 천지에 이디 있는가. 수령님, 서기장 발언 보도하는 전제 국가 국영 언론도 해설을 붙인다. 발언은 정치인의 영역이고, 해석은 저널리즘의 영역이다. 그걸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그걸 자신의 발언처럼 꾸미지 말라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날 박선규는 다시 이렇게 말했다(두 번째 기사).

6. "어제도 분명히 말했지만 기사를 쓰지 말라는 게 아니라 대변인의 쿼트는 대변인의 얘기를 그대로 쿼트로 해달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제가 드릴 말씀이 없다. 여러분이 겁이 나서 만나보지 못한다"

이 기사를 쓴 <한겨레> 기자가 박선규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면 바보고, 알면서도 그렇게 썼다면 나쁘다. 기사가 말미에 잠깐 언급한 것처럼, 평소 박선규를 어떤 기자들이 불쾌하게 생각해온 점이 반영된 결과일 수도 있다. 그건 개인 블로그에 쓰시길.

싫고 미워 욕하고 싶어도 욕할 일인가를 좀 따져 가면서 했으면 좋겠다. 안 그러면 제대로 욕먹을 일 해서 욕하는 것조차 투정으로 보이게 만드는 민폐를 끼친다.

 

덧글

  • 피그말리온 2012/12/31 19:27 # 답글

    그래서인지 요즘은 기사가 비판적일수록 질은 낮아진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긁적)
  • deulpul 2013/01/01 14:06 #

    사실에서, 더 나아가 공정한 사실에서 출발하지 않는 비판이 많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권력 비판은 언론의 중요한 기능이지만, 무조건 까기만 한다고 그런 기능이 충족되는 것은 아니겠지요.
  • 에스티마 2013/01/01 02:50 # 삭제 답글

    저도 사실 저 기사를 읽으면서 비슷한 생각을 했었는데 들풀님이 정확히 지적해주셨네요. ㅎㅎ
  • deulpul 2013/01/01 14:30 #

    비슷한 점을 느끼셨군요. 아마도 기사에 드러내지 않은 정황과 배경이 있겠지만, 여하튼 기사만 보아서는 오만의 주체가 과연 누구인지 알쏭달쏭하게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 d 2013/01/02 04:18 # 삭제 답글

    2012년 한해동안도 좋은글 너무나도 감사해요 들풀님 글을 읽으면서 많이 느끼고 배워요 2013년도 새해복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
  • deulpul 2013/01/02 09:01 #

    고맙습니다. 새해가 d님께도 행복하고 풍성한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 아저씨 2013/01/02 10:39 # 삭제 답글

    "제대로 욕먹을 일 해서 욕하는 것조차 투정으로 보이게 만드는 민폐" ^_^
    새해 복 많이받으세요.
  • deulpul 2013/01/03 12:42 #

    아저씨님도 행복한 새해 맞이하시길 빕니다.
  • 2013/01/02 17:3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1/03 12:44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댓글 입력 영역



Adsense

Adsense2

구글 애널리틱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