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再再 섞일雜 끓일湯 (Others)

(지난 2월에 쓴 글이 ' 한국인터넷선교네트워크'라는 개인인지 집단인지에 의해 '명예훼손'으로 권리 침해 신고가 되었다고 한다. 위임자는 김홍도란다. 잊고 있었는데, 덕분에 다시&다시 볼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제민 신부 “우리가 믿는 부활없다”

나는 종교도 없고 종교적 지식도 없기 때문에, 신학의 견지에서 볼 때 이제민 신부가 하는 말이 옳은지는 모르겠다. 다만 상당히 파격적이라는 생각은 든다. 맥락을 고려해서 들어야 할 말이 아닐까 싶다.

본문 중에는 이런 부분이 있다:


이를 두고 이제민 신부는 “죽음으로 내 인생은 모두 끝난다. 다시 살아나는 삶은 없다”고 단언하며, 부활이란 죽은 자의 문제가 아니라 산자의 문제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어 “죽은 자들이 가게 된다는 저승(천국이라 부르든 극락이라 부르든)을 나는 믿지 않는다” 며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사후(死後)’는 ‘인생 다음’이 아니라 ‘인생 중’에 일어나는 사건이라고 믿는다.


이 부분을 읽자니 박상륭이 쓴 <神을 죽인 자의 행로는 쓸쓸했도다>의 한 대목이 생각난다. 좀 길지만 인용해 보자.


"다시 '몸'과 '심정'에 관해서 말이오만, 우리는, 아무리 둔감한 자라도, 고통에 관해서, 지옥에 관해서는, 치를 떨며, 도척이까지도 하루나 이틀 정도는, 강도질에 나서는 대신, 잠이나 처자도록, 극한까지 잘 상상할 수 있음에도, 무간지옥, 칼산지옥, 썩는 지옥, 볶는 지옥, 삶는 지옥, 얼리는 지옥, 아으 그럼에도 ... (중략) 반해서, 천국이나 극락정토에 관한 한은, 아무리 비상한 상상력을 가진 이라 해도, '천국'이나 '극락정토'라는 그 이름이 이끄는, 약간의 수사적 달콤함을 제외하면, 조금도 잘 상상하지를 못하는데, 어쩌쓴 연고료? 그곳에는 사철 꽃이 피고 (이 자식아, 그러면 폐사 마당에 흩어지는 낙엽이나, 무덤 위에 내리는 눈, 또는 비, 무주공산 우는 잔나비 울음의 정취는 어디서 구하란 말이냐?) 새가 울어싸며 (허허이, 호가好歌도 창창불락唱唱不樂이거니, 이누무 새야, 우여- 우여라 딱딱, 이누무 새야 영 너머 날라가삐맀으면 되얐제, 울기는 왜 그리 웬수시리 울어예어, 송창 가뜩이나 달 밝아 못 이룬 잠에 수심끄장 보탠디야?) 천의무봉 고운 옷 입은 시악씨들이 (히히히, 弓[활]鷄[닭]脫[벗고]衣[옷]였으면 더 안 좋겠는가?) 마셔도 마셔도 숙취가 없는 좋은 술을 권해싸며 도는데, 상에는, 세상에는 없는 진귀한 향신료로 잘 요리된 각종 육미가 넘친다(면, 야 사람아, 거기도 도살장이 있을 뿐만 아니라, 와달이 쓰는 놈으로 질펀하다는 얘기겠는데, 숙취를 앓는 놈이야말로 차라리, 찬물에 잠근 좆도 같거늘)는 식으로, 대개 그런 투로, 가난이 원수였던 사람들의, 평소 포원진 것 풀어주는, 비싼 화류계쯤으로밖에 달리는 더 그려내지를 못하는데... (후략)"


쉽게 말하면, 지옥은 그 고통이 생생하게 짐작되므로 흉악범조차 두려워하는 곳이라고 한다면, 천국은 어떤 모습인지 잘 상상이 되지 않으며 기껏해야 퍼먹고 퍼마시고 주무르고 노는 일이 마음껏 보장된 정도로, 그것도 모순이 가득 찬 모습으로밖에는 그려지지 않는다는 거다. 실제로 과거 그림들을 일별해 보면, 지옥을 그린 그림은 차고 넘치는 데 비해 복된 천국의 모습을 그린 그림은 의외로 별로 찾을 수 없다는 느낌이 든다(마지막 심판을 거쳐 천국으로 인도되기까지의 장면은 많다). 심심한 천국의 모습은 극적인 요소가 떨어지는 탓이었을까.

짜라투스트라에게 위와 같은 말을 하는 '늙은이'는, 그래도 비록 천국이 지옥보다 모호하더라도 살아 있는 것들은 거기에 마음을 두고 긍정적으로 사는 게 옳지 않을까 하는 뜻을 내비친다.


" ... (전략) 저렇든 이렇든, 어쨌든, 지옥보다는 천국이 밝은 곳이라고, 막연하게라도 믿고 있는다면, 유정이가 머물러야 되는 자리는, 아예 딱 정해져버려 있는 것, - 비록 말해, 그런 고ㅓㅅ은 없다고 한다 해도, 있다고 믿어, 거기다 마음을 쏟는 것은, 삶의 태도를 긍정적이게 하는 것이지, 허위의 삶을 살고 있다고 규탄되어질 것은 아닐게요. .... (후략)"


'늙은이'는 다분히 기독교적인 시각을 갖고 짜라투스트라의 주장에 도전하는 존재인데, 그러한 입장이 드러난다. 그는 지옥은 '몸이나 살의 국면'과 관련된 것이어서 저절로 체험되는 것이지만, 천국은 심정과 관계된 형이상학적 영역이어서 잘 상상되지 않는다고 본다.


(태국 민속화 '천국과 지옥'. 지옥의 고통은 구체적이지만 천국의 행복은 모호하다.)


여하튼 그러고 보니, 우리가 흔히 아는 천국이란 그 외형적인 측면에서 그림이 좀 모호하긴 하다. 근심 걱정이 없다든가 언제나 행복하다든가 하는, 마음의 상태를 표현하는 서술을 벗어나면, 실제로 어떤 모습일지 잘 그려지지 않는다. 그래서 저 늙은이는 '평소 포원진 것 풀어주는 비싼 화류계쯤으로 그려진다'라고 본다.

아닌 게 아니라, 서구에서 이해하는 이슬람의 사후 천국, 이를테면 자살 테러 공격원에게 약속되는 천국이란 게 '여자 50명'에게 둘러싸여 무한 서비스를 받는 정도로 그려지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싶다.


(중세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그림 '지상열락의 정원'. 천국은 아니지만,
세속인이 염원하는 '弓鷄脫衣'식 지복의 양상을 보여준다.)


(다니엘 그란이 1730년에 오스트리아 국립도서관 천정에 그린 벽화 '평화와 천국의 상징'.
피둥피둥 살찐 사람들이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러고 보면, 천국이란 결국 이상향이고 이상이란 대체로 현실에 대한 부정에서 나오는 것으므로, 우리가 그리고 상상하는 천국이란 모두 현세의 불안과 고통과 가난의 대립항으로서 성립되어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무언가가 적극적으로 존재해야 하는 곳이 아니라, 다만 현세의 부정적인 것들이 걷히고 사라진 것만으로도 성립하고 완성될 수 있는 곳이 천국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현생에 사는 어떤 인간들에게는 이러한 대립항으로서의 천국도 아니고 오로지 믿음의 쌀과 이데올로기의 밥만 주구장창 먹어야 갈 수 있는 곳으로 여겨지기도 하는 모양이다.

그 유명한 김홍도 목사는 노무현과 김대중이 세상을 떠난 이후인 2010년 4월에 뉴욕의 부흥 집회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이번 여행에 수천 불이나 들이고, 헌금도 5000불이나 하면서 여기 온 것은 지옥 가는 사람 구원하는 길이니까, 내가 가서 설교해야겠다고 한 거다. … 최근에 지옥 간 대통령 두 명이나 있지 않나. (그 대통령들) 불쌍해하는 사람들 있을까봐 걱정이야."

아니, 노무현은 그렇다치고 김대중은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데 왜 지옥에 가 있냐고. 이런저런 사람 다 빼고 천국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란 게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부르짖던 인간들, 이명박을 찍지 않으면 천국 갈 수 없다고 말하던 종류의 인간들이라면, 그런 천국은 정말 가고 싶지 않다. 내게는 그런 천국은 지옥이나 마찬가지다.

김홍도가 말한 천국은 이렇단다.




천국에 있는 것: 새 예루살렘, 영원한 기쁨, 예수님, 아름다운 집. 아니 이건 뭐 박상륭의 늙은이가 말하는 화류계 정도도 못 되잖아. 이유도 없이 영원한 기쁨이라니, 약을 하지 않고서야 그럴 수가 있나. 이런 모습으로 등장하는 천국이란, 뻑적지근한 건물을 갖춘 교회에서 열리는, 기쁨과 감격이 용솟음치는 열광적인 부흥회장 같은 꼴이 아닐까 싶다.

한편 김홍도는 지옥에 대해서는 이렇게 쓴다:




그러니까, 내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천국이 있다는 증거이며, 내가(혹은 사람들이) 전도를 하고 선교를 하는 것이 지옥이 있다는 증거다? 그런데 믿고 전도를 하는 것은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 아닌가? 순환논리치고도 지독한 저런 언술이 먹히는 게 이해되지 않는 것은 내가 해당 교회 신도가 아니어서일 것이다.

물론 천국과 지옥에 대해 썰을 풀기 시작하면 책 한 권도 공간이 좁을 테고, 지면의 제한 때문에 간략하게 쓴 것이겠지만, 그래서 오히려 주장과 논리의 압축본이라는 생각이 든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볼 수 없는 것에 대한 서술인 바에야, 책 한 권 분량의 썰도 결국은 크게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한다.

천국을 어떻게 그리든, 천국이 있음을 믿든 말든, 일단은 나와 이웃이 살고 있는 지금 이 세상을 좀더 살기 편한 곳으로 만들려 노력하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맥락은 조금 다르지만 이제민의 다음과 같은 말은 잘 새겨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죽은 다음에 올 육신의 부활을 기대하며 살아가는 것은 사는 동안에 무덤을 파는 일일 뿐이다. 이제민 신부는 마지막으로 “설혹 고통을 주는 십자가가 나에게 온다 해도, 사랑하며 살 수 있는 것, 이렇게 제 몸으로 부활한 몸을 느낄 수 있는” 부활의 삶을 미루지 말고 당장 여기서부터 살기 시작하자고 권한다.

천국이나 극락이 있다면 진심으로 바라고 싶다.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과 같이, 혹은 하늘에서만 이루어지지 말고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헌금을 하고 높은 탑을 쌓고 죽어라 믿어야 갈 수 있는 편협한 천국 말고, 모든 사람이 서로 배려하고 사랑하고 모든 사람이 먹고사는 데 큰 걱정 없이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천국 말이다. 물론 '여자 50명', 혹은 '남자 50명'이 서비스하는 천국까지 땅에서 이루어진다면야 더욱 좋겠지만.

※ 박상륭의 책을 나에게 부쳐주었던 친구에게 감사한다.

※ 태국 민속화: brentdamon.com,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그림: FPIF, 다니엘 그란의 벽화: 위키, 김홍도 목사의 글: 금란교회 홈페이지에 있는 '천국과 지옥은 실재하는가? 특별 기고문'.



이전 글의 공개 댓글:

mesafalcon 2012/09/04 08:19 # 삭제 답글
종교의 모순이죠. 다양한 사상과 종교를 허용하여야 좋은 사회라지만 각 종교는 절대 타 종교를 포용할수가 없는 아이러니함.

deulpul 2012/09/08 07:24 # 수정 삭제
그래도 비교적 열린 자세를 갖는 종교(인)들이 적잖이 나오고 있는 것은 종교를 위해서나 사회를 위해서나 다행스러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아저씨 2012/10/05 11:45 # 삭제 답글
익히 알고 있기는 하였지만, 김홍도목사와 그 추종자들의 편협함과 집착에 진저리가 나는군요.

deulpul 2012/10/05 23:32 # 수정 삭제
그런데, 이렇게 하면 모두들 입닥치고 조용히 있으리라는 기대를 한다는 게 정말 유치합니다. 저만 해도 에어장 사건 등을 알게 된 계기는 이런 싸잡아 신고로 벌어진 논란 때문이었거든요. 역효과가 생길 수 있다는 상식적인 가능성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okcom 2012/02/24 19:05 # 삭제 답글
기독교식 천국을 상상하는 것은 사회주의적 새사회를 상상하는 것만큼이나 다른 듯 비슷하게 어려운 일로 보입니다. 주변 신자에게 듣기로는 고난과 고통이 없으나 현생의 삶과 다르지 않은 것으로 천국을 이해하던데 그렇다면 생산과 청소 등의 노역 및 잡일, 특히 받들어 모시는 일은 천국에서 대체 누가 한단 말인지...성령이 대신 하나요?;; (물론 천국이란 게 신자들이 기독교를 좀 더 쉽고 빠르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교회가 뭉뚱그려 만든 최종이자 최고의 교리겠지만요.)
이런 고민은 별 우스운 게 아니라 마르크스가 말한 '노동자들의 연합'을 구체적으로 구상해보는 데에도 기본된 훈련이고 실마리가 되는 것 같아요. 실천 역사가 150년도 넘은 협동조합운동에서도 이런 고민은 이상을 구현하는 문제와 운영을 효율적으로 만드는 문제 사이에 놓인 난제이기도 했구요. 결국 천국이 사람들로 채워져 있는 한 이 천상의 사회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것은 너무도 정치적인 일이기에 차라리 각자가 자신의 인생을 통해 이뤄내야 한다는 말씀이 이해가 되긴 합니다. 반면 사회주의적 새사회는 개인의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네요.
워낙에 항상 좋은 글을 써주시니 손님 주제에 왜이리 길게 남겨 놓고 다니나 모르겠습니다;;

deulpul 2012/02/26 05:03 # 수정 삭제
천국을 이상적인 정치 체제에 견주어 말씀해 주신 것은 날카로운 통찰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차이가 있다면, 사회주의적 새사회는 그 알쏭달쏭한 모습을 전면적으로 성취하지 않더라도 부분적으로 얼마든지 이끌어 와서 구현할 수 있고 실제로도 그렇게 하는 데 비해, 천국이란 도무지 그런 일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니, 천국의 경우도 그 전면적인 성취는 죽어야 가능하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상상하고 종교에서 제시하는 모습에 기반하여, 현세에서 부분적인 측면을 이끌어 오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이웃과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위해 노력한다든가... 병이 들어 죽게 생겼어도 당장 병원비가 없어 버려져 고통 받는 사람에게는 간소한 침대가 놓인 병실이 천국이나 마찬가지일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천국에서는 이게 저절로 이루어지지만 현세에서는 의식적인 노력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이 현세의 한계일 테지요. 어쨌든 결국 죽어 천국 가기만을 기다리지 말고 현세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한 말씀이 아닌가 싶습니다.

 

덧글

  • 아인하르트 2013/01/04 10:10 # 답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전형이네요.
    (아, 그래서 불륜을 저지르고도 태연하게 목사를 하고 있는가 보네.)
  • deulpul 2013/01/04 12:06 #

    그렇죠! ... 라고 해놓고 보니, 정확하게 어떤 부분을 지적하신 것인지가 알쏭달쏭합니다만... 여하튼 그렇죠!
  • 아인하르트 2013/01/04 12:13 #

    자기는 고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모욕했으면서
    (지옥 떨어진다는 말은 기독교 계열을 제외해도 욕이 되니)
    자신을 비판하는 글을 명예훼손으로 신고하는 거 보고 한 말입니다.

    그렇게 약소 블로거들을 잡아내면서 언론사는 손이 안 잡히니까 손도 못 대는 쫌팽이들. (무안단물 생각하면 그것도 아닌가...)
  • deulpul 2013/01/04 13:04 #

    그런 뜻이셨군요. 뿐만 아니라, 김대중, 노무현이 지옥에 떨어진 것은 사실이 아니지만, 김홍도가 어떤 말을 하고 에어장이 어떤 짓을 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 게다가 저기 어디 명예훼손거리가 있습니까. 천국이 있고 지옥이 있다면 그렇다고 주장을 하든지. 니들 말만 옮겨 놨는데 그게 명예훼손이라니, 아무래도 이치들은 자기가 한 말이 자신에게 명예훼손이 되는 기묘한 혓바닥을 가진 인간들인 모양입니다.
  • 밤비뫄뫄 2013/01/04 11:19 # 답글

    저 인터넷 선교인지 뭔지 하는단체 정말 진상중의 진상들이에요.
    제 주위 블로거들도 저 인간들이 툭하면 고발하고 블라인드 처리한게 벌써 몇번째인지...
    게다가 한두번에 그치는게 아니고 몇년을 집요하게 쫒아다니면서 포스팅마다 블라인드를 거는데
    타진요 버금가는 싸이코집단에 다름없더군요.
    유명한 아트 블로거 김홍기씨도 크리스찬이신데 개독들 비판하다가 저 진상들이 블라인드 시킨거 여러개구요.
    저런 사람들 모이는곳이 개신교에서 말하는 천국이라면 거기가 바로 지옥이겠죠.
  • deulpul 2013/01/04 12:50 #

    진상 중의 진상인데다, 법(도 아닙니다만)의 헛점을 이용해 정당한 사회적 토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국사범이죠. 단체도 아니고, 광신적 편집증을 가졌다는 의심을 사는 개인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남의 위임을 받았다고 내세우며 각종 글에 조처를 요구하지만, 위임받은 사실이 없다는 기사도 있고요(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7670). 김홍기님 사례는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군요. 저는 한국에서 왜 이러한 공익 침해 사범의 전횡을 그대로 두고 보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 스치는바람 2013/01/05 13:52 # 삭제 답글

    허허, 명예훼손이라니 놀랍군요. 미국의 경우 훼손될 명예가 없는 경우 명예훼손이 성립하지 않을 수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만(libel-proof plaintiff), 만약 민사로 소 제기를 당하실 경우 대한민국 판례이론의 발전을 위해 항변으로 한번 제출해 보심이 어떨까요? (형사의 공소제기까지 이루어질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의 일반적인 검사들이 그렇게까지 미쳤다면 이 나라는 막장일테니까요.)

    참고로 한국에서는 사실을 적시해도 명예를 훼손시켰을 경우 민형사상 명예훼손이 성립할 수 있습니다(민법 제750조, 형법 제307조 제1항)
    만, deulpul님의 글을 아무리 악의적으로 보아도 저게 명예훼손이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도리어 김홍도 목사의 글들이 사회적 공익을 훼손하는 것으로 보아 형사처벌을 때려줘야 적합하다고 보는데요.

    ps. 저도 오랜만에 다시 보게 된 글입니다. 다시 보게 된 연유는 반갑지 않지만, 글 자체는 대단히 반갑네요.
  • deulpul 2013/01/07 13:29 #

    아니, 그래도 '훼손될 명예가 없는 인간'으로 보신 것은 너무하지 않습니까! 이 부분은 http://deulpul.net/1965136 에서 한번 훑어봤습니다. 위 본문의 내용은 사실일 뿐만 아니라 자신이 강연과 소식지를 통해 열심히 프로모팅하는 내용이므로, 뭐로 해서 걸려고 해도 자신의 명예만 훼손될 뿐이라는... 저는 김홍도보다 스토커가 더 나쁘다고 생각하며, 소 제기를 당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제소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습니다. 그럴 상황이면 당장 그랬을 겁니다.

    이 글이 再再再...로 계속 나갈 모양인데, 저야 긁어 올리기만 하면 되고 인터넷 세상에 지면 제한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보시는 분들(특히 구독자들)께는 옛글이 계속 새글로 올라올 테니 좀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여하튼 묵은 이야기 다시 꺼내 새로 욕처먹는데는 니들이 갑이다...
  • 스치는바람 2013/01/09 14:14 # 삭제

    제가 '훼손될 명예가 없는 인간' 관련 글을 처음 접한 곳이 deulpul님 사이트였군요;; 물론 형법 수강할 때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만, 법학을 접하기 전에도 인상적이어서 뇌리에 깊게 박혀 있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김홍도 목사에게 훼손될 명예가 없다는 것은 농담입니다. 당연히 미국과 같은 경우에도 저런 법리는 상당히 예외적으로 적용되는 것인만큼 엄격하게 적용되겠지요.

    그리고 예전 글이 다시 올라오는 것, 저는 죄송하다고 하실 이유가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deulpul님의 블로그는, 비유하자면 좋은 고서(古書)들이 꽂혀 있는 책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렇게 다시 올라오면 마치 책장 중에서 한 권 빼서 함께 보는 듯한 느낌이 들거든요. 이렇게 말씀을 드리는 게 스토킹을 당하신 충격에 대해 작은 위로라도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 deulpul 2013/01/11 10:03 #

    아, 농담으로 하신 말씀을 심각하게 생각했군요!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에는 그와 비슷한 판례가 있었는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반복 포스팅'에 대해 이해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 아저씨 2013/01/18 14:55 # 삭제 답글

    제 댓글까지 다시 잘 읽었습니다. :)
  • deulpul 2013/01/18 16:30 #

    바빠서 글도 잘 못 쓰고 있는데, 과거 글 한 100여 개 신고해 줬으면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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