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다와 영희 갈硏 궁구할究 (Study)

옛말에 이르기를, 이해가 안 되는 글을 만나면 1백 번 읽으라고 했다. 그러면 뜻이 자연스레 드러난다고 했다.

[책] 합리적이라 믿는 인간의 비합리성

앞에 쓴 <포린 폴리시> 리스트에도 등장한 대니얼 카네만의 책 <생각에 관한 생각>을 소개한 기사다. 이 기사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부분은 아무리 읽어도 이해가 안 된다. 책의 내용을 옮겨와 설명하는 부분이다.


여기서는 영희에 성격에 대한 간단한 묘사를 주고, 아래 두 선택지를 둔 다음, "영희에 대해서 더 잘 설명하고 있는 보기는 무엇일까" 하고 묻는다. 그런데 성격에 대한 묘사와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사항들이 담긴 두 선택지 중에서 사람들은 B를 더 선택하는 경향이 있고, 하지만 B의 수가 더 적을 것으므로 이런 선택은 비합리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게 왜 비합리적인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A보다는 B가 더 많은 정보를 담고 있고, 따라서 '더 잘 설명하는 보기'로 B를 고르는 것은 완전히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책에 제시된 문제를 잘못 정리해 옮겼기 때문이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책의 취지를 정반대로 뒤집어 제시했다.

카네만의 책에서 이 문제는 다음과 같은 형식으로 서술되어 있다(영희(린다)의 성격을 길게 설명한 부분은 생략한다).


이것을 기사에 나온 문제 식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이 될 것이다.

* 영희는 매우 독립심이 강하고, 자신의 주장을 잘 펼치는 여성이다. 다음 두 가지 보기 중에서 영희에 대한 설명으로 가능성이 더 높은 것은 무엇일까?

A. 은행 직원
B. 페미니스트 활동을 열심히 하는 은행 직원

그렇다. 여기서 핵심은 가능성(probability)이다. 카네만이 이야기하는 것은, 사람들은 종종 대표성(representativeness)에 치중하면서 합리적 가능성을 위배하게 된다는 것이다. 앞에 영희의 성격을 제시한 것은 떡밥이다. 이런 떡밥을 이미 맛본 붕어, 아니 사람들은 '가능성'을 묻는 질문을 '대표성'으로 해석하여, 어느 게 더 가능성이 높은가를 따지지 않고 어떤 진술이 영희를 더 잘 묘사하는가, 혹은 더 그럴 듯한가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능성으로 물었음에도, 실제로 가능성이 더 낮은 B를 선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기사의 질문에 나온 '영희에 대해 더 잘 설명하는'은 대표성을 물어보는 질문에 가깝다. 따라서 대표성을 묻는 질문에 대표성이 많이 담긴 항목을 답으로 제시한 것은 완전히 합리적이다. 결국 위 기사는 카네만의 실험을 반대로 하여 제시한 셈이다.

'가능성이 더 높은 것은?'이라고 물었을 때 B를 고르는 것이 비합리적인 이유는, 말이 더 붙을수록 점점 더 특수해지고 따라서 더 가능성이 적어지기 때문이다. 즉 B 집합은 A 집합에 속하는 A⊃B 관계이기 때문에, A를 선택해야 맞을 가능성이 더 커진다. 그래서 카네만은 이 장(章)의 제목을 'Linda: Less Is More(린다 실험: 더 적은 것이 더 많은 것이다)'라고 붙였다.

한국어 번역본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는 확인하지 않았다.

※ 이미지: 해당 기사(본문에 링크), 책 이미지.

 

덧글

  • 김승훈 2013/01/22 09:07 # 삭제 답글

    처음엔 B가 맞지 않나? 의아하다가 인용된 설명에 납득해버려서 아 A인가 보다 했다가...
    들풀님의 글을 마저 읽고 나서야 아 그래 뭔가 잘못 됐었구나...
    우리말이 서툴던가 원문에 쓰인 저자의 의도를 읽는데 서툴던가 둘중에 하나인
    번역자들의 글을 너무 많이 접하다보니...
    스스로 납득할 수 없는 설명에도 너무 쉽게 납득해버리는 습관이 생긴것 같네요.
  • deulpul 2013/01/22 14:25 #

    그런 점에서, 비합리적인 설명을 재구성하여 합리적인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한국 독자들의 뛰어난 독해술을 카네만이 한번 연구해 봤으면 싶네요...
  • mooyoung 2013/01/24 13:51 # 답글

    가능성, 대표성.. 들풀님 설명에 따르면 나름 명쾌하지만 가능성,대표성 이 두 단어가 어떤 것들과 어울려 쓰여지던가..라는 생각, 가능성이 높다는 것과 대표성을 가진다는 말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게 합니다. 아! 린다에 대한 설명을 생략하셨으니, 이 질문에 대한 혹은 이 글에 대해 진전이 어렵습니다. 하지만 들풀님의 말씀대로 '가능성'이 핵심이라면 - 저는 설명과 상관없이 가능성이라는 단어를 물어본 듯도 싶지만- 설명이 무엇이든 관계없을 것 같기도 하고...
    ㅎ 번역된 책을 제가 읽었다면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한참일 듯 싶네요. 그래서 원문을 또 찾아보던가, 읽다가 던져버리던가.
  • deulpul 2013/01/24 18:57 #

    지금 이 부분 위에 쓰인 글발 중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mooyoung님 말씀이네요, 하하. 책에서 린다에 대한 설명(묘사)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린다는 31세의 여성으로, 독신이며 매우 똑똑하고 할 말이 있으면 하는 성격이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고, 학생 때 차별 문제와 사회 정의에 큰 관심을 가졌다. 또 반핵 시위에도 참여하였다."

    이런 설명을 주고난 뒤, 본문에 있는 것과 같이 '무엇이 더 가능성이 높은가'라는 질문을 제시하고 응답자가 무엇을 고르는지 봤다는 거죠. 그랬더니 사람들은 이 설명에 혹해서, 수학적으로 가능성이 더 높은 '은행 직원' 대신 '여성운동을 활발히 하는 은행 직원'을 골랐다는 겁니다. 그래서 '가능성'을 묻는데 '대표성'을 근거로 선택하는 비합리적 결정을 내렸다는 거고요.

    여기서 '대표성'이라는 대책없는 한국말 때문에 이상의 내용이 쉽게 이해되는 데 방해가 됩니다만, 대표성은 다른 말로 하면 '그럴 것 같음' 정도로 보시면 됩니다. 혹은 선입관 같은 말과도 연관이 되고요. 여기서는 1) 성격 묘사의 내용과 2) '여성운동을 활발히 하는'이라는 선택지 내용, 이 둘에 들어 있는 일관성에 주목하는 바람에, 결국 더 그럴 것 같은 진술을 선택함으로써 가능성이 작은 대답을 골랐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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