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저널리스트 헌터 톰슨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던 2005년 2월에 나는 그런 소식을 알리는 짤막한 글을 썼다. 여기서 톰슨의 트레이드 마크나 다름없는 '곤조 저널리즘(Gonzo journalism)'을 설명하면서, 일본어 '곤조'를 언급함으로써, 마치 톰슨의 곤조 저널리즘이 이 일본말과 관계가 있는 것처럼 서술했다. 딱 부러지게 곤조 저널리즘이 일본말 곤조에서 나왔다고 하지는 않았지만, 얼마든지 그렇게 오해할 수 있는 형식을 취했던 것.
이에 대해 아거님께서 댓글을 달아, 곤조 저널리즘의 곤조가 일본어에서 왔다는 아무런 근거를 찾을 수 없다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다. 이에 대해 나는 추가글을 써서 1) 딱히 그 말이 일본어에서 나왔다고 한 것은 아니며, 2) 톰슨의 곤조가 어디서 나왔는지는 불분명하다는 등의 변명을 붙였다. 모두 8년 전의 일이다.
며칠 전에 도서관 서가를 지나다 책 한 권이 눈에 띄었다. '번쩍' 띄었다고 해야 좋을 것이다. 두툼한 책 등에 큼지막한 글씨로 GONZO라고 써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헌터 톰슨의 전기다. 전기라고는 했지만, 형식이 좀 독특하다. 작가가 톰슨의 일생을 조사하고 재구성해서 서술한 게 아니라, 톰슨을 알던 수많은 사람이 그를 회상하거나 그가 벌인 에피소드를 말하고, 이를 엮어서 주제별로 묶은 책이다. 그래서 '구술 전기(oral biography)'라는 말을 붙였다. 책에 등장하여 톰슨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무려 112명이나 된다. 많은 사람과 교류하고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 이가 아니면 이런 형식의 전기가 나오기는 힘들겠다 싶은 느낌이 들었다. 책을 엮은 사람은 톰슨이 오랫동안 필자로 글을 썼던 <롤링 스톤>의 발행인 얀 웨너와, 역시 <롤링 스톤>에서 오랫동안 톰슨과 일했던 코리 시모어다.
이 책이 발행된 것은 2007년이다. 내가 곤조 저널리즘에 대해 썼던 것보다 두 해 뒤고, 톰슨 사망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책이다. 시점이야 어쨌든, 제목부터 <곤조>라고 되어 있으니, 그동안 그 연원을 뚜렷이 찾을 수 없어 답답했던 '곤조'라는 말에 대해서도 자세한 설명이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톰슨의 책 <라스베이거스에서의 공포와 혐오>를 영화로 만들었을 때 톰슨 역을 담당했던 조니 뎁조차, 이 책에 쓴 서문에서 "(톰슨은 비록 가고 없지만) 나를 포함해 수많은 골수 곤조 찬미자들은 그가 남긴 말, 책, 통찰, 유머, 진실 등을 물려 받았다"라고 하지 않는가.
역시 기대대로, <곤조>에는 톰슨이 쓴 곤조라는 말의 연원에 대한, 아마도 가장 정확하고 정통적인 것으로 볼 수 있을 설명이 들어 있었다. 오랫동안 톰슨의 친구였으며, 그가 죽은 뒤 편지 등 방대한 문서 자료를 정리한 당사자이고 톰슨 기념관의 문서 자료 큐레이터 역할도 하고 있는 라이스 대학 역사학과 교수(책을 낼 당시는 툴레인 대학) 덕 브링클리의 말이기 때문에 그렇게 보아도 좋지 않을까 싶다. 그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정리하면, 헌터 톰슨의 '곤조 저널리즘'은 톰슨이 1960년대에 나온 재즈 음반 '곤조'를 미치도록 좋아한 데서 나왔으며, 그 어원은 재즈 용어라는 것이 되겠다. 내가 예전에 끄적거린 것들은 아마도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영문학 교수들이나 대마초나 피우는 팬들이 유포시킨 잘못된 정보'에 속할 것이다. 그래서 바로잡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글은 '바로잡습니다'라기보다 정보 업데이트의 성격이 되겠지만, 분명히 오해할 수 있는 식으로 썼을 뿐만 아니라, 나 개인적으로도 당시 こんじょう와 곤조 저널리즘이 모종의 관계가 있으리라는 일말의 추정을 완전히 버리지 못하였기 때문에, 지금 이 정보 업데이트를 오보를 바로잡는 행위로 삼아도 괜찮을 것 같다.
그럼 40~50년대 미국 남부의 재즈 세계에서 '곤조'라는 말이 어떻게 발생하고 유행하게 되었을까. 이건 아무도 모르는 것 같다. 어쨌든 톰슨은 이 곤조란 말을 어찌나 좋아했던지, 처칠의 몇 권짜리 회고록을 염두에 두고 자신의 글을 모아 펴낸 네 권의 책에도 <곤조 페이퍼즈(Gonzo Papers)>라는 이름을 붙였다. 곤조 저널리즘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위에 링크한 옛날 글로도 충분하리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하고 끝내려니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다. 대체 '곤조'라는 음악은 어떻길래 톰슨이 그렇게 좋아했던 것인가? 예전 같으면 그냥 궁금한 채 넘어갔겠지만, 톰슨에게 모텔방의 카셋 플레이어가 있었다면 우리에게는 유튜브가 있지 않은가. 다음과 같은 음악인데, 생각보다 얌전하면서도 몽환적인 게, 역시... (이 동영상은 음반 스틸 사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음반에는 'GONZO'라는 말이 선명하게 찍혀 있다.)
이에 대해 아거님께서 댓글을 달아, 곤조 저널리즘의 곤조가 일본어에서 왔다는 아무런 근거를 찾을 수 없다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다. 이에 대해 나는 추가글을 써서 1) 딱히 그 말이 일본어에서 나왔다고 한 것은 아니며, 2) 톰슨의 곤조가 어디서 나왔는지는 불분명하다는 등의 변명을 붙였다. 모두 8년 전의 일이다.
며칠 전에 도서관 서가를 지나다 책 한 권이 눈에 띄었다. '번쩍' 띄었다고 해야 좋을 것이다. 두툼한 책 등에 큼지막한 글씨로 GONZO라고 써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헌터 톰슨의 전기다. 전기라고는 했지만, 형식이 좀 독특하다. 작가가 톰슨의 일생을 조사하고 재구성해서 서술한 게 아니라, 톰슨을 알던 수많은 사람이 그를 회상하거나 그가 벌인 에피소드를 말하고, 이를 엮어서 주제별로 묶은 책이다. 그래서 '구술 전기(oral biography)'라는 말을 붙였다. 책에 등장하여 톰슨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무려 112명이나 된다. 많은 사람과 교류하고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 이가 아니면 이런 형식의 전기가 나오기는 힘들겠다 싶은 느낌이 들었다. 책을 엮은 사람은 톰슨이 오랫동안 필자로 글을 썼던 <롤링 스톤>의 발행인 얀 웨너와, 역시 <롤링 스톤>에서 오랫동안 톰슨과 일했던 코리 시모어다.
이 책이 발행된 것은 2007년이다. 내가 곤조 저널리즘에 대해 썼던 것보다 두 해 뒤고, 톰슨 사망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책이다. 시점이야 어쨌든, 제목부터 <곤조>라고 되어 있으니, 그동안 그 연원을 뚜렷이 찾을 수 없어 답답했던 '곤조'라는 말에 대해서도 자세한 설명이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톰슨의 책 <라스베이거스에서의 공포와 혐오>를 영화로 만들었을 때 톰슨 역을 담당했던 조니 뎁조차, 이 책에 쓴 서문에서 "(톰슨은 비록 가고 없지만) 나를 포함해 수많은 골수 곤조 찬미자들은 그가 남긴 말, 책, 통찰, 유머, 진실 등을 물려 받았다"라고 하지 않는가.
역시 기대대로, <곤조>에는 톰슨이 쓴 곤조라는 말의 연원에 대한, 아마도 가장 정확하고 정통적인 것으로 볼 수 있을 설명이 들어 있었다. 오랫동안 톰슨의 친구였으며, 그가 죽은 뒤 편지 등 방대한 문서 자료를 정리한 당사자이고 톰슨 기념관의 문서 자료 큐레이터 역할도 하고 있는 라이스 대학 역사학과 교수(책을 낼 당시는 툴레인 대학) 덕 브링클리의 말이기 때문에 그렇게 보아도 좋지 않을까 싶다. 그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곤조'라는 말의 어원에 대해,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영문학 교수들이나 대마초나 피우는 팬들이 유포시킨 잘못된 정보가 인터넷에 널려 있다. 그 말이 어떻게 나왔는지는 다음과 같다. 뉴올리언스의 전설적인 R&B 피아니스트 제임스 부커는 1960년에 <곤조>라는 제목의 연주곡 음반을 내놓은 적이 있다. '곤조'라는 말은 미국 남부 속어로서, 수십 년 동안 프렌치 쿼터(뉴올리언스의 구 시가지 지역)의 재즈계에서 널리 쓰여 왔다. 그 대략적인 뜻은 '어수선하고 분방하게 연주하라'는 것이다. 음반 <곤조>를 녹음한 실제 스튜디오는 휴스턴에 있었다.
헌터가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 그는 한 마디로 뻑 갔다. 특히 거친 플룻 파트가 연주될 때 그랬다. 부커의 '곤조'는 1960년부터 헌터가 가장 좋아하는 곡이 되었으며, 허비 맨이 또다른 플룻 명곡 'Battle Hymn of the Republic' 연주를 내놓은 1969년이 되어서야 그의 애청곡이 바뀌었다.
닉슨이 1968년에 대통령 선거에 나왔을 때, 헌터는 <패전트>지를 위해 닉슨을 취재하게 된다. 이 취재 과정에서 헌터는 <보스턴 글로브 매거진>의 칼럼니스트 빌 카도소와 함께 뉴햄프셔의 한 모텔에서 지낸 적이 있다. 헌터는 부커의 연주가 담긴 카셋을 가져와서 '곤조'를 죽어라 틀어댔다. 카도소는 미칠 지경이 되었으며, 그날 밤에 농담 삼아 헌터를 '곤조 사나이(the Gonzo man)'이라고 부르며 놀렸다.
나중에 헌터가 켄터키 더비 관련 기사를 카도소에게 보냈을 때, 카도소는 "헌터, 이건 정말 완벽한 곤조 저널리즘이군!"이라는 반응을 적어서 헌터에게 보냈다. 카도소는 이 말이 보스턴 지역 술집에서는 '끝까지 버티는 술꾼'을 의미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는데, 나중에 헌터는 카도소의 이런 주장을 전혀 믿지 않는다고 내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는 이게 '카도소식 뻥'의 하나일 뿐이라고 말했다. (125~126)
헌터가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 그는 한 마디로 뻑 갔다. 특히 거친 플룻 파트가 연주될 때 그랬다. 부커의 '곤조'는 1960년부터 헌터가 가장 좋아하는 곡이 되었으며, 허비 맨이 또다른 플룻 명곡 'Battle Hymn of the Republic' 연주를 내놓은 1969년이 되어서야 그의 애청곡이 바뀌었다.
닉슨이 1968년에 대통령 선거에 나왔을 때, 헌터는 <패전트>지를 위해 닉슨을 취재하게 된다. 이 취재 과정에서 헌터는 <보스턴 글로브 매거진>의 칼럼니스트 빌 카도소와 함께 뉴햄프셔의 한 모텔에서 지낸 적이 있다. 헌터는 부커의 연주가 담긴 카셋을 가져와서 '곤조'를 죽어라 틀어댔다. 카도소는 미칠 지경이 되었으며, 그날 밤에 농담 삼아 헌터를 '곤조 사나이(the Gonzo man)'이라고 부르며 놀렸다.
나중에 헌터가 켄터키 더비 관련 기사를 카도소에게 보냈을 때, 카도소는 "헌터, 이건 정말 완벽한 곤조 저널리즘이군!"이라는 반응을 적어서 헌터에게 보냈다. 카도소는 이 말이 보스턴 지역 술집에서는 '끝까지 버티는 술꾼'을 의미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는데, 나중에 헌터는 카도소의 이런 주장을 전혀 믿지 않는다고 내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는 이게 '카도소식 뻥'의 하나일 뿐이라고 말했다. (125~126)
정리하면, 헌터 톰슨의 '곤조 저널리즘'은 톰슨이 1960년대에 나온 재즈 음반 '곤조'를 미치도록 좋아한 데서 나왔으며, 그 어원은 재즈 용어라는 것이 되겠다. 내가 예전에 끄적거린 것들은 아마도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영문학 교수들이나 대마초나 피우는 팬들이 유포시킨 잘못된 정보'에 속할 것이다. 그래서 바로잡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글은 '바로잡습니다'라기보다 정보 업데이트의 성격이 되겠지만, 분명히 오해할 수 있는 식으로 썼을 뿐만 아니라, 나 개인적으로도 당시 こんじょう와 곤조 저널리즘이 모종의 관계가 있으리라는 일말의 추정을 완전히 버리지 못하였기 때문에, 지금 이 정보 업데이트를 오보를 바로잡는 행위로 삼아도 괜찮을 것 같다.
그럼 40~50년대 미국 남부의 재즈 세계에서 '곤조'라는 말이 어떻게 발생하고 유행하게 되었을까. 이건 아무도 모르는 것 같다. 어쨌든 톰슨은 이 곤조란 말을 어찌나 좋아했던지, 처칠의 몇 권짜리 회고록을 염두에 두고 자신의 글을 모아 펴낸 네 권의 책에도 <곤조 페이퍼즈(Gonzo Papers)>라는 이름을 붙였다. 곤조 저널리즘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위에 링크한 옛날 글로도 충분하리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하고 끝내려니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다. 대체 '곤조'라는 음악은 어떻길래 톰슨이 그렇게 좋아했던 것인가? 예전 같으면 그냥 궁금한 채 넘어갔겠지만, 톰슨에게 모텔방의 카셋 플레이어가 있었다면 우리에게는 유튜브가 있지 않은가. 다음과 같은 음악인데, 생각보다 얌전하면서도 몽환적인 게, 역시... (이 동영상은 음반 스틸 사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음반에는 'GONZO'라는 말이 선명하게 찍혀 있다.)
덧글
피그말리온 2013/01/28 17:03 # 답글
deulpul 2013/01/28 17:13 #
未完 2013/01/28 18:39 # 답글
deulpul 2013/01/29 04:51 #
민노씨 2013/01/30 01:19 # 삭제 답글
아거 님과 deulpul 님의 '곤조' 논쟁(?)에 관해선 오래 전에 인상적으로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물론 deulpul님께서 처음 글을 쓰셨던 8년 전은 아니고, 비교적 최근인 오래 전입니다) 그 논쟁에 종지부를 찍을만한 새로운 사실의 발견이 있었군요. ^ ^
저는 아거 님의 글을 통해서 곤조 저널리즘이라는 말을 처음 접했고, 그 풍문만으로 블로기즘과 곤조 저널리즘이 서로 일맥상통하고 있다는 직관적인(이라고 쓰고 무책임한) 잡문을 블로그에 쓴 적도 있는데요. 곤조 저널리즘이 '곤조'라는 재즈 음반에서 유래했다니 좀 더 드라마틱한 것 같습니다.
deulpul 2013/01/30 10:26 #
민노씨 2013/02/01 01:26 # 삭제 답글
정말 삶이 하나 혹은 두 개 더 허락한다면 말씀하신 "그들 중 하나가 되면서 만들어내는 기록"들로 삶의 여정을 채워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나저나 제가 댓글을 남겼을 때 유튜브 곡이 있었던가요? (기억이 가물가물...;; )
이제야 듣는데, 의외로 수줍은 사춘기 소녀처럼 얌전한 느낌의 곡이네요?
말씀처럼 약간(아주 약간) 몽환적인 느낌이 없진 않지만요. ㅎㅎ
deulpul 2013/02/02 04:10 #
아거 2013/02/14 14:02 # 삭제 답글
deulpul 2013/02/14 23:35 #
happyalo 2013/02/15 07:48 # 삭제 답글
믿는 분의 리트윗 보고 들어왔는데 또다른 믿는 분의 글이네요
트위터도 오랜만이었는데 아침 행운을 쥔 느낌입니다 ^^
deulpul 2013/02/15 14:46 #
Veryberry 2013/04/09 15:54 # 삭제 답글
bizarre , eccentric , freakish , freaky , flaky , flakey , off-the-wall , outlandish , outre 등과 비슷한 뜻으로 쓰입니다.
영한사전에는
[형용사] 1. 정신이 나간, 미쳐 버린. 2. 독단과 편견으로 가득 찬.
[명사] 1.독단과 편견에 찬 보도. 2.어리석은 사람.
으로 설명 돼 있습니다.
deulpul 2013/04/09 16: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