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엄마에게 세상은 전쟁터 섞일雜 끓일湯 (Others)

한국에서 워킹맘으로 살기 2: 우리는 왜 일을 하는가

이 글을 보자니 내가 겪은 두 가지 일이 떠오른다.

술을 마시고 회사 선배 집에서 잤다. 술을 마시다 늦어지면 꼭 '집에 가서 한 잔 더 하자'는 고마운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못 이기는 체 하고 따라가 주는 사람이 또 고맙다. 이런 정겨운 사정 때문에, 선배들 집에서 자고 바로 출근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이 날도 그런 날 중 하나였을 것이다. 일어나 보니 선배 부인은 벌써 출근하고 없다. 어린 아들은 혼자 텔레비전 아침 방송을 보며 놀고 있었다. 대충 씻고 선배와 함께 출근길을 서둘렀다. 회사로 떠나기 전에 아이를 집 앞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어야 한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남기고 돌아서는데, 아이가 대성통곡을 한다. "아빠아~ 아빠아~ 가지마아~ 앙앙~" 문을 나서는 아빠 뒤에서 아빠를 부르며 서럽게 운다. 옆에 다른 아이들이 있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처럼 뜨거운 이별이 또 있으랴. 보고 있노라니, 내 애도 아닌데 코끝이 시큰했다. 하지만 아빠는 담담하다. 잠깐 멋적게 웃고 나서, 얼른 가자고 나를 재촉했다.

"저런 애를 어떻게 두고 갑니까?"
"처음에는 딱하고 안됐는데, 자꾸 하다보니 이젠 그냥 그러려니 하게 돼."
"그래도 저렇게 우는데."
"눈에 안 보이면 금방 그친다니까 얼른 가자구."

이 날 어린이집에서 벌어진 대성통곡의 대상은 아빠였지만, 날짜에 따라 엄마도 이 뜨거운 이별에 자주 등장하는 주인공이었을 것이다.


--- ** --- ** ---


다들 외근을 다니는 탓에 자리가 비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빈 자리에 전화가 오면 가까운 데 있는 사람이 당겨받는다. 회사 내 옆자리는 여자 선배였다.

퇴근 때가 가까워 오는 시간쯤이면 이 선배 자리로 전화가 온다. 선배의 초등학교 저학년 딸이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우리 엄마 있어요?"

나는 짐짓,

"우리 엄마가 누군데?"
"OOO 차장님이요."
"엄마 아직 안 들어오셨는데. 들어오시면 전화하라고 할께."

이런 전화가 비슷한 시간에 자주 왔다. 자주 당겨받다 보니 아이하고도 친해져서, 종종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곤 했다.

하루는 이 녀석이 이런 말을 한다.

"아저씨. 아저씨, 우리 엄마 좋아하죠?"
"헉... 너 그게 무슨 말이야?"
"안 그럼 왜 맨날 우리 엄마 자리에 있어요?"
"......"

선배가 사무실 구조를 아이에게 설명해 준 적은 없었던 모양이다.

나도 자리를 비운 시간이라면 또다른 사람이 아이의 전화를 당겨받았을 것이다. 회사 상사 하나가 언젠가 선배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야, 니는 애 전화 좀 걸지 말라 해라. 어찌 그렇게 맨날 전화를 하냐."

이 상사는 사무실에 전화벨이 울리는데도 아무도 안 받으면 성질을 버럭 내면서, 수십 미터 거리의 책상에서 울리는 전화까지 당겨받는 사람이다. 그런 연유로, 이 선배의 아이가 거는 전화도 곧잘 받았던 모양이다. 웃는 표정으로 보아 분명 악의 없이 농반 진반으로 한 말이지만, 듣는 당사자에게는 송곳처럼 아픈 말이었을 것이다.

그 이후로 나는 그 아이의 전화를 당겨 받을 때 가끔 그런 말을 했다.

"엄마 금방 가실 거야. 알지? 자꾸 전화하면 엄마가 일하시는 데 힘들잖아."
"그래도 심심한데요."

나는 별로 할 말이 없었다.

어느 날 이 옆자리 선배가 말했다.

"오늘 우리 애 아파트 열쇠를 목걸이로 만들어 걸어줬어."
"그래요? 그거 너무 무겁지 않을까요?"
"그렇긴 한데, 자꾸 흘리고 다녀서."

아닌 게 아니라 그 즈음에, 군인들의 인식표처럼 아파트 열쇠를 목에 건 아이들이 새로운 세태로 곧잘 이야기되었다.


--- ** --- ** ---


최근 미국 국방부는 전투 임무에 여군을 투입하지 않는 관행을 바꾸겠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미군은 직접 전투에 참여해야 하는 병과, 즉 보병, 포병, 기갑 부문에서 여군을 배제하는 정책을 유지해 왔었다.

여성 차별을 철폐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조처로 환영받는 가운데, 한편에서는 여성의 신체 조건이 야전 상황에 적합한가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다른 한편에서는 여성 미군들이 진작부터 실질적으로 전투 임무에 참여해 왔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 사이에 나오는 또 한 가지 걱정은, 여성이 전투에 나섰다가 사망하거나 부상당하면 가정과 자녀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NPR의 뉴스에서는, 남자 군인은 가정과 아이에 신경쓰지 않고 군무를 수행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면서, 여군의 경우는 여전히 그런 부담을 떠안고 있어서 군대 안에서 제 역할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말하는 여군의 인터뷰가 나왔다.

여성이 활동하는 영역이 더 넓어지면 가정 일을 제대로 돌보지 못할까 하는 우려를 가질 수도 있고, 가정 일에 대한 부담이 더 문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가질 수도 있다. 비슷한 말 같지만, 시각의 방향이 전혀 다르다. 전자는 여성이 일을 하든 안 하든 육아와 가사를 책임져야 하는 것을 당연하게 보는 시각이고, 후자는 사회 생활을 하는 여성을 당연하게 보고 그런 개인에게 육아나 가사가 부담이 된다는 시각으로 본다.

굳이 전차를 몰고 적진을 돌파하는 역할을 새로 떠맡지 않아도, 일하는 여성들한테 세상 살기는 진작부터 전투요 전쟁인 것 같다. 개인이나 가족뿐 아니라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는 영역이 아닌가 싶다.

 

덧글

  • 복학생이과외할때 2013/02/02 14:12 # 답글

    잘 읽고 갑니다.
  • deulpul 2013/02/03 17:52 #

    감사합니다.
  • 2013/02/04 09:52 # 삭제 답글


    재외동포로서(일명 중국 조선족이라고 불리우는^^)몇년 전부터 들풀님의 글을 애독하고있는 팬입니다. 덧글 남기기는 처음인것 같네요.

    3살짜리 애를 키우고있는 아빠로서 첫 이야기는 가슴이 짠합니다. 그 아빠분은 참 쿨하시네요^^

    마지막 문단에서... 일하는 여성들한테 진작부터 전투요 전장이란 말... 참으로 공감됩니다.
    항상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 deulpul 2013/02/04 17:59 #

    그 쿨한 아빠는 아마 술이 덜 깨서... 는 농담이고요, 오래 전 일이지만 멋적게 웃는 표정에서 많은 걸 읽을 수 있었습니다. 현실을 부정할 수 없으니 그렇게 등 돌리고 가면서 곧 괜찮아지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겠지요. 아빠들도 그런데, 자기가 직접 낳은 아이이고 더구나 아이키우기와 관련한 사회적 압력까지 의식해야 하는 엄마들은 더 마음이 불편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댓글 남겨 주셔서, 또 친절한 말씀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댓글 입력 영역



Adsense

Adsense2

구글 애널리틱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