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 모든 것에서 안식을 찾으려 하였으나, 책 한 권 있는 모퉁이에서만 안식을 찾을 수 있었노라. (In omnibus requiem quaesivi, et nusquam inveni nisi in angulo cum libro.)
중세 말기 수도사였던 토마스 아 켐피스가 했다는 저 말은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 쓰이면서 우리에게 널리 알려졌다. 에코는 서문에서 이 소설을 입수하고 번역한 경위를 진짜인 것처럼 능청스럽게 서술한 뒤, 맨 마지막에 이 문장을 더해 두었다.
이것은 일상의 걱정거리에 관한 것이 아니라 책에 관한 이야기여서, 이 이야기를 읽자면 그리스도의 위대한 모방자였던 토마스 아 켐피스의 다음과 같은 말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세상 모든 것으로부터 안식을 찾으려 하였으나, 책 한 권 있는 모퉁이에서만 안식을 찾을 수 있었노라."
'세상 모든 것에서 안식을 찾으려 한다'는 구절은 구약성서 외전 '집회서' 24:7에 나오는 표현이기도 한데, 켐피스가 자주 인용한 말이라고 한다.
집회서 제24장은 지혜에 대한 이야기다. 여기서는 세상의 모든 것에서 안식을 찾기 위해 돌아다니는 주체는 사람이 아니라 지혜다. 지혜는 창조주의 입으로부터 태어나, 안식을 찾기 위해 하늘과 땅을 다 돌아다니다가, 다시 창조주의 명을 받아 야곱의 땅에서 거처를 찾게 된다.
1. 지혜는 스스로 자신을 찬미하고, 군중들 속에서 자기의 영광을 드러낸다. 2. 지혜는 지극히 높으신 분을 모신 모임에서 입을 열고, 전능하신 분 앞에서 자기의 영광을 드러낸다. 3. "나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입으로부터 나왔으며 안개와 같이 온 땅을 뒤덮었다. 4. 나는 높은 하늘에서 살았고 내가 앉는 자리는 구름기둥이다. 5. 나 홀로 높은 하늘을 두루 다녔고 심연의 밑바닥을 거닐었다. 6. 바다의 파도와 온 땅과 모든 민족과 나라를 나는 지배하였다. 7. 나는 이 모든 것들 틈에서 안식처를 구했으며 어떤 곳에 정착할까 하고 찾아다녔다." (<구약성서>에서)
이렇게 지혜가 스스로 깃들 곳을 찾아 유동한다는 맥락은, 에코의 서문에서 보듯 일상의 걱정거리와 삶의 고단함에 시달리는 불우한 개인이 고요한 안식을 찾으러 헤매는 이미지와는 좀 다르다. 이런 이미지가 켐피스에서부터 비롯된 것인지, 에코에서 전환된 것인지, 혹은 집회서와 이 구절의 내용이 원래부터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인지 나로서는 모르겠다.
전적(典籍)에 기록된 기원은 어떻든, 켐피스가 말한 이 구절은 검소하고 근면한, 마치 수도사나 학승(學僧) 같은 학인(學人)이 삶에서 구할 수 있는 궁극적인 안식의 양상을 잘 보여주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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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빽빽히 둘러쌓인 조용한 공간에 몸을 내릴 때는 늘 이 구절 생각이 난다. 누구는 답답하다고 하고 누구는 무섭다고도 하지만, 나는 더할 나위 없이 편하다. 숨가쁘게 움직여 온 몸을 부리는 데에서 오는 육체적인 편안함도 있으나, 에코의 말에서처럼 일상의 걱정거리로부터 잠시 거리를 두고 책의 벽으로 이루어진 감옥 속에서 문자들 속으로 빨려들어갈 수 있어서 오는 편안함이 더 크다.
하나를 꼭 더 붙이자면 이렇게 될 것이다:
세상 모든 것에서 안식을 찾으려 하였으나, 책 한 권과 인터넷이 있는 모퉁이에서만 안식을 찾을 수 있었노라. (In omnibus requiem quaesivi, et nusquam inveni nisi in angulo cum libro et interrete.)
※ 이미지: 이곳.
덧글
mooyoung 2013/02/11 18:58 # 삭제 답글
deulpul 2013/02/12 08:5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