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역사 연세대 학보 ‘연세춘추’ 고사 위기
연세대의 대학 신문인 <연세춘추>가 '구독료' 납부 체계가 바뀜에 따라 재정 위기를 맞게 될 우려가 있으며, 자칫하면 신문 발행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보도다. 우울한 소식인데, 학보에 얽힌 옛날 생각부터 먼저 떠오른다. 대학 학보가 종이 신문으로 발행되는 덕분에 수행할 수 있었던 부수적 기능들이 여럿 있는데, 그 중 하나다.
내가 학생일 때 학보는 중요한 소통 수단이었다. 신문 지면을 통해서가 아니라, 신문을 주고 받는 행위 자체가 소통이었다. 그때 학생들은 학보가 새로 나오면 스스로 띠지를 만들어 우표를 붙이고 다른 대학이나 대학 아닌 곳에 있는 친구들에게 부쳤다. 신문 내용을 보라고 한 뜻도 있지만, 그보다는 그러는 행위 자체에 더 큰 의미를 두었고, 간혹 띠지 안에 자잘한 사연을 적어 보내기도 하였다.

내가 받아서 보관하고 있는 학보 띠지 중의 일부다. 위에 펼쳐진 띠지는 다른 대학의 1년 선배가 나에게 보낸 것이다. 그 밑에는 성격이 털털한 고등학교 친구녀석이 노트를 북북 뜯어서 학보를 말아 보낸 것도 있고, 반대로 아주 꼼꼼한 성격을 지닌 다른 대학의 친구가 모눈종이 노트에 정성껏 써서 보내준 것도 있다.
학보를 주고받는 행위 자체에 큰 의미가 있다고 했지만, 나는 이런 다른 대학 학보들에서 의미 있는 기사나 논의를 발견할 때가 적지 않았다. 그래서 친구나 선후배들이 생각날 때마다 보내 주는 학보가 성에 차지 않아, 아예 구독을 문의하기도 했다. 한 대학 학보사에 정기구독을 문의했더니 다음과 같은 정보를 엽서로 알려주었다.

이렇게 학보를 주고받으며 지속하거나 새로 시작했던 관계들은 세상에 눈 뜨기 시작하던 스무 살 무렵 내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들이었다.
<연세춘추>에 대한 위 기사에는 재정 위기 상황을 눈앞에 둔 신문사가 학교에 지원을 요청했다는 부분이 있다.
기사로만 보면 연세대는 자신을 대표하는 대학 언론 매체의 유지와 활성화에 큰 관심이 없는 듯하다. 이것은 대학 언론, 특히 대학 신문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데서 나온 결과가 아닌가 싶다.
대학 신문은 대학 공동체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그게 뭘까. 샌프란시스코 주립대학 저널리즘 교수인 레이첼 카니겔이 쓴 <대학 신문의 생존 전략(The Student Newspaper Survival Guide)>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대학 신문은 이처럼 대학 공동체에서 기록, 토론, 감시 역할을 수행할 뿐만 아니라 언론 전체로 보아서도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는 공간이다. 이렇게 중요한 매체를 제대로 돌보지 않아 고사될 위기에까지 처하게 한다는 것은 대학 당국의 큰 잘못이다. 더구나 <연세춘추>는 80년이나 된 전통을 가진 매체라고 한다. 없는 전통도 만들어야 할 판에, 이미 있는 훌륭한 전통이 없어지거나 말거나 괘념치 않는 자세는 대학 자신을 위해서도 큰 실수라고 하겠다.
기사에 따르면 <연세춘추>의 문제는, 구독료를 등록금과 함께 받던 제도를 버리고 원하는 학생만 따로 납부하도록 바꾼 데서 비롯되었다. 이것은 교육부가 등록금과 잡부금을 따로 고지하고 납부하도록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렇게 되면 실질적으로 무료로 배포되는 대학 신문에 구독료를 낼 학생들이 얼마나 될지 걱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대학 당국은 온라인만으로라도 발행하라고 했다고 한다. 당장 눈에 띄고 손에 잡히는 종이 신문이 아니라, 수많은 '충격' '경악' '이럴수가'가 범람하는 온라인에서 이들과 경쟁하며 발행되는 대학 신문은 그 존재감과 영향력, 공동체에 대한 기여 모두에서 크게 위축될 것이 뻔하다.
나는 애초에 대학 신문에 학교 공동체 구성원을 대상으로 하여 '구독료'를 설정한다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들에게는 실질적으로 무료인 신문에 왜 구독료가 붙는가. 뿐만 아니라 학생이 만드는 대학 신문은 위에서 말한 중요한 기능들을 수행하고 그 중에는 대학 본연의 목적인 교육의 기능도 포함되어 있다. 이것은 꼭 필요한 대학 기능 중 하나로 간주하고 대학 당국이 예산을 투입하여 적극 지원해야 할 성격의 활동이다.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손대지 않는 것, 이것이 대학 언론에 대한 대학 당국의 올바른 접근이다.
대학 신문사도 할 일이 있다. 광고 등 대외 영업 활동을 강화하여 독립적인 재원의 비중을 일정하게 유지하도록 하는 일이다. 신문사(언론사)의 꽃은 편집국이고 핵심은 기자들이지만, 편집국과 기자들로만 굴러가는 신문사는 없다. 조직이 유지되기 위해 관리하고 영업하는 사람도 똑같이 중요하고, 오히려 더 중요할 수도 있다. 미국의 대학 신문들을 보면, 기자 등 제작진뿐 아니라 광고 영업 같은 비즈니스를 담당하는 직원도 모두 학생이고, 이 업무에 들어와 활동하려는 학생들도 많다. 사실 대학에서 세상을 배우려면, 대학 신문의 기자가 되는 것보다 광고 영업을 하는 편이 훨씬 빠르고 더 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최근 몇 년 동안 한국 대학에서는 학보나 교지 같은 대학 언론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더 나아가 발목까지 잡는 일들이 드물지 않게 벌어져 왔다. 언론이 없는 사회는 당장은 편할지 몰라도 결국 썩고 망한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대학 언론 환경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시장 상황에 던져놓고 알아서 살아남으라고 하는 것은 망하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뿐만 아니라 세상을 시장 논리로만 살 수도 없고 그렇게 사는 것이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것은 우리가 현실에서 무수하게 경험하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제대로 가르치는 것이겠는가.
연세대의 대학 신문인 <연세춘추>가 '구독료' 납부 체계가 바뀜에 따라 재정 위기를 맞게 될 우려가 있으며, 자칫하면 신문 발행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보도다. 우울한 소식인데, 학보에 얽힌 옛날 생각부터 먼저 떠오른다. 대학 학보가 종이 신문으로 발행되는 덕분에 수행할 수 있었던 부수적 기능들이 여럿 있는데, 그 중 하나다.
내가 학생일 때 학보는 중요한 소통 수단이었다. 신문 지면을 통해서가 아니라, 신문을 주고 받는 행위 자체가 소통이었다. 그때 학생들은 학보가 새로 나오면 스스로 띠지를 만들어 우표를 붙이고 다른 대학이나 대학 아닌 곳에 있는 친구들에게 부쳤다. 신문 내용을 보라고 한 뜻도 있지만, 그보다는 그러는 행위 자체에 더 큰 의미를 두었고, 간혹 띠지 안에 자잘한 사연을 적어 보내기도 하였다.

내가 받아서 보관하고 있는 학보 띠지 중의 일부다. 위에 펼쳐진 띠지는 다른 대학의 1년 선배가 나에게 보낸 것이다. 그 밑에는 성격이 털털한 고등학교 친구녀석이 노트를 북북 뜯어서 학보를 말아 보낸 것도 있고, 반대로 아주 꼼꼼한 성격을 지닌 다른 대학의 친구가 모눈종이 노트에 정성껏 써서 보내준 것도 있다.
학보를 주고받는 행위 자체에 큰 의미가 있다고 했지만, 나는 이런 다른 대학 학보들에서 의미 있는 기사나 논의를 발견할 때가 적지 않았다. 그래서 친구나 선후배들이 생각날 때마다 보내 주는 학보가 성에 차지 않아, 아예 구독을 문의하기도 했다. 한 대학 학보사에 정기구독을 문의했더니 다음과 같은 정보를 엽서로 알려주었다.

이렇게 학보를 주고받으며 지속하거나 새로 시작했던 관계들은 세상에 눈 뜨기 시작하던 스무 살 무렵 내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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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춘추>에 대한 위 기사에는 재정 위기 상황을 눈앞에 둔 신문사가 학교에 지원을 요청했다는 부분이 있다.
(편집국장) 정(세윤)씨는 “학교에 예산 지원을 요청했지만 ‘돈이 없으면 온라인으로만 발행하라’는 등 회의적인 반응만 돌아왔다”며 “그렇다고 매주 종이 신문을 발행해왔던 학보사의 정체성을 포기할 수도 없어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기사로만 보면 연세대는 자신을 대표하는 대학 언론 매체의 유지와 활성화에 큰 관심이 없는 듯하다. 이것은 대학 언론, 특히 대학 신문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데서 나온 결과가 아닌가 싶다.
대학 신문은 대학 공동체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그게 뭘까. 샌프란시스코 주립대학 저널리즘 교수인 레이첼 카니겔이 쓴 <대학 신문의 생존 전략(The Student Newspaper Survival Guide)>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기사를 복사한 뒤 스테이플로 묶어서 두어 주에 한 번씩 발행하는 형태든, 아니면 기성 신문들처럼 멋지게 제작된 본격 일간지 형태든 상관없이, 대학 신문은 다음과 같은 여러 기능을 수행한다.
1) 대학 신문은 대학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기록한다. 대학 신문이 기록하는 것은 과학 연구 조사에서부터 항의 시위, 농구 결승전, 광란의 기숙사 파티에 이르기까지 대학 공동체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다.
2) 대학 신문은 학생, 교수진, 교직원 등이 공통의 관심 이슈를 놓고 토론을 벌일 수 있는 공동체 포럼이다.
3) 대학 신문은 대학을 감시하는 감시견으로서, 예컨대 학교 식당이 위생 관련법을 지키지 않아 처벌을 받거나 건장한 운동 선수가 장애자용 표지를 달고 운전하며 돌아다닐 경우 짖는다.
4) 대학 신문은 차세대 저널리스트를 길러내기 위한 훈련 공간을 제공한다.
1) 대학 신문은 대학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기록한다. 대학 신문이 기록하는 것은 과학 연구 조사에서부터 항의 시위, 농구 결승전, 광란의 기숙사 파티에 이르기까지 대학 공동체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다.
2) 대학 신문은 학생, 교수진, 교직원 등이 공통의 관심 이슈를 놓고 토론을 벌일 수 있는 공동체 포럼이다.
3) 대학 신문은 대학을 감시하는 감시견으로서, 예컨대 학교 식당이 위생 관련법을 지키지 않아 처벌을 받거나 건장한 운동 선수가 장애자용 표지를 달고 운전하며 돌아다닐 경우 짖는다.
4) 대학 신문은 차세대 저널리스트를 길러내기 위한 훈련 공간을 제공한다.
대학 신문은 이처럼 대학 공동체에서 기록, 토론, 감시 역할을 수행할 뿐만 아니라 언론 전체로 보아서도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는 공간이다. 이렇게 중요한 매체를 제대로 돌보지 않아 고사될 위기에까지 처하게 한다는 것은 대학 당국의 큰 잘못이다. 더구나 <연세춘추>는 80년이나 된 전통을 가진 매체라고 한다. 없는 전통도 만들어야 할 판에, 이미 있는 훌륭한 전통이 없어지거나 말거나 괘념치 않는 자세는 대학 자신을 위해서도 큰 실수라고 하겠다.
기사에 따르면 <연세춘추>의 문제는, 구독료를 등록금과 함께 받던 제도를 버리고 원하는 학생만 따로 납부하도록 바꾼 데서 비롯되었다. 이것은 교육부가 등록금과 잡부금을 따로 고지하고 납부하도록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렇게 되면 실질적으로 무료로 배포되는 대학 신문에 구독료를 낼 학생들이 얼마나 될지 걱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대학 당국은 온라인만으로라도 발행하라고 했다고 한다. 당장 눈에 띄고 손에 잡히는 종이 신문이 아니라, 수많은 '충격' '경악' '이럴수가'가 범람하는 온라인에서 이들과 경쟁하며 발행되는 대학 신문은 그 존재감과 영향력, 공동체에 대한 기여 모두에서 크게 위축될 것이 뻔하다.
나는 애초에 대학 신문에 학교 공동체 구성원을 대상으로 하여 '구독료'를 설정한다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들에게는 실질적으로 무료인 신문에 왜 구독료가 붙는가. 뿐만 아니라 학생이 만드는 대학 신문은 위에서 말한 중요한 기능들을 수행하고 그 중에는 대학 본연의 목적인 교육의 기능도 포함되어 있다. 이것은 꼭 필요한 대학 기능 중 하나로 간주하고 대학 당국이 예산을 투입하여 적극 지원해야 할 성격의 활동이다.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손대지 않는 것, 이것이 대학 언론에 대한 대학 당국의 올바른 접근이다.
대학 신문사도 할 일이 있다. 광고 등 대외 영업 활동을 강화하여 독립적인 재원의 비중을 일정하게 유지하도록 하는 일이다. 신문사(언론사)의 꽃은 편집국이고 핵심은 기자들이지만, 편집국과 기자들로만 굴러가는 신문사는 없다. 조직이 유지되기 위해 관리하고 영업하는 사람도 똑같이 중요하고, 오히려 더 중요할 수도 있다. 미국의 대학 신문들을 보면, 기자 등 제작진뿐 아니라 광고 영업 같은 비즈니스를 담당하는 직원도 모두 학생이고, 이 업무에 들어와 활동하려는 학생들도 많다. 사실 대학에서 세상을 배우려면, 대학 신문의 기자가 되는 것보다 광고 영업을 하는 편이 훨씬 빠르고 더 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최근 몇 년 동안 한국 대학에서는 학보나 교지 같은 대학 언론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더 나아가 발목까지 잡는 일들이 드물지 않게 벌어져 왔다. 언론이 없는 사회는 당장은 편할지 몰라도 결국 썩고 망한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대학 언론 환경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시장 상황에 던져놓고 알아서 살아남으라고 하는 것은 망하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뿐만 아니라 세상을 시장 논리로만 살 수도 없고 그렇게 사는 것이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것은 우리가 현실에서 무수하게 경험하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제대로 가르치는 것이겠는가.
덧글
긁적 2013/02/14 23:45 # 답글
그 동안 풀밭에서 짱개 시켜먹을 때 깔개의 용도 이외에는 안쓰긴 했지만 (....) 최근에 정말 시간을 때워야만 하는-_- 상황에 처한 적이 있어서 한 번 읽어 보고야 그 유용성을 알게 됬지요...;;;
한 학기밖에 안 남긴 했지만 돈은 내야겠네요 ㅠ.ㅠ....
PS : 당연히 학교측에서는 연세춘추의 폐간을 반길겁니다. 학교를 마음대로 운영하는 일에 자주 반대를 해왔으니 -_-;;; 등록금을 올린다던가, 50년된 건물을 부순다던가 하는 것들 말이죠 -_-ㅗ
deulpul 2013/02/15 14:18 #
춘추 2013/02/14 23:47 # 삭제 답글
요즘 학생들도 그러는지 잘 모르겠군요. 가장 오래된 학교라고 항상 자랑하던 연대가
학교역사의 일부인 연세춘추을 고사시키려는게 이해가 안가네요. 쩝...
deulpul 2013/02/15 14:20 #
mooyoung 2013/02/15 03:11 # 삭제 답글
들풀님도 대단하심. 외국에서 공부하시는 분으로 알아왔는데, 헉 저런 개인자료들까지 다 가지고 계신건가요??? 알뜰하신 들풀님이 부럽지만(부러우면 지는거다~~~) 태워버린 옛 것들이 새삼 그리워지기도 하네요.(누구 덕분에...^^) 감사, 긍정의 마음을 갖게 해주셔서 ㅎ
deulpul 2013/02/15 14:25 #
2071 2013/02/15 07:58 # 삭제 답글
연세춘추는 학보 중 외부 광고 유치 실적이 가장 좋은 케이스입니다
deulpul 2013/02/15 14:28 #
연대생 2013/03/01 21:36 # 삭제 답글
학내 주요 이슈들에 대해 다뤄주기는 커녕 질떨어지는 기사들을 양산했으니까요.
차라리 약간의 꼰대기질을 내세운 연세통 (몇장 안되는 찌라시입니다) 이 낫다는 이야기까지 나왔을 정도입니다. 실제로 2009년 연세통 창간 이후 연세통은 연세춘추의 위상을 위협할 정도로 성장했지요.
deulpul 2013/03/02 12:47 #
연대생 2013/03/02 13:40 # 삭제 답글
deulpul 2013/03/02 14:11 #
young026 2013/03/16 17:21 # 답글
deulpul 2013/03/18 06:16 #
young026 2013/03/18 19:33 #
deulpul 2013/03/18 20:30 #
순수한 얼음의신 2013/03/19 11:38 # 답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