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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부처 영문명 중구난방 그만”

새 정부가 출범하고 부서를 재조정하면서 부서 이름을 영문으로 표기하는 문제를 정리할 모양이다. 이 기사를 보면 몇 가지 놀라운 점을 발견하게 된다.

정부조직 개편에 따라 부처의 주요 기능이 바뀌거나 새 부처 수장의 생각에 따라 영문명이 바뀐다. 부처 영문명은 그동안 각 부처의 편의대로 정해 왔다.

정부 부서의 영문 이름은 비록 영문이라도 각종 문서에 쓰이는 공식 이름인데, 이 이름을 결정하는 행정 규칙 같은 것도 없고 그저 '어르신' 생각에 따른단다. 이론적으로 말하자면, 같은 부서라도 장관이 바뀔 때마다 그의 취향에 따라 영문 표기가 바뀔 수도 있다는 거다. 아무 것도 아닌 일 같지만, 조직과 기능보다 윗사람 개인의 뜻이 우선하는 한국 공공 조직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신설된 미래창조과학부는 ‘Ministry of Science and Future Strategy’나 ‘Ministry of Future Creation and Science’ 등이 거론됐지만 최종안을 정하지 못했다. 미국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가 ‘과학(Science)’과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한 부처명을 직접 정하도록 하는 게 낫다고 본 것이다.

이건 골치아프게 생겼다. 생각하자면, 명(名)은 실(實)에 따라 나온다. 이름 짓기가 곤란하다는 것은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이 정확하고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부서를 만든 포부는 거대하고 추상적이더라도, 실제 활동과 그런 활동을 집약해야 할 이름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한국 이름에 들어 있는 '미래 창조'부터 실패작이지만, 영문명에 'Future Creation' 같은 말이 들어간다면 외국인들은 개념을 알 수 없는 이 콩글리쉬를 보면서 공상과학 영화에 나오는 대중 통제 부서 같은 것을 떠올릴 것이다. 조지 오웰의 <1984>에 나오는 '진리부(The Ministry of Truth)'를 생각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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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중순, 인수위로부터 새 정부의 조직 개편 소식이 나올 때 다음과 같은 기사가 있었다.

통일부→남북관계부, 여성가족부→양성평등가족부 거론

조직이 바뀌는 참에 부처 이름도 바꾸자는 논란이 벌어진다는 기사다. 그 중 이런 부분이 있다.

여성가족부도 거론된다. ‘여성’을 ‘양성평등’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여성가족부의 영문명은 ‘Ministry of Gender Equality and Family’이다. 그러나 박 당선인이 대선 과정에서 줄곧 첫 여성대통령이라는 점을 내세웠기 때문에 ‘여성’이라는 단어를 유지할 것이라는 견해도 많다.

나는 여성가족부의 영문 이름이 'Ministry of Women and Family'가 아니며, 'women' 대신 'gender equality'를 쓴다는 사실을 지난 번에 K팝에 대해 보도한 <뉴요커> 기사를 번역하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이 기사 중에는 "한국의 정부 기관인 Ministry of Gender Equality and Family는 아이들이 클러빙을 언급하는 K팝 노래나 비디오를 듣거나 보지 않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도 하다(Indeed, the Ministry of Gender Equality and Family, a state agency, endeavors to keep minors from hearing or seeing K-pop songs and videos that make reference to clubbing)"라는 부분이 나온다. 이 state agency가 뭔가 싶어 찾아보니 여성가족부였다.



왜 여성가족부는 영문 이름에 한국 부처명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지 않은가? 그 이유는 모른다. 분명한 것은 '여성'이 'gender equality'와 같은 말이 아니라는 점이다. 여성만을 챙기는 것으로 성 평등 추구가 완결된다고 강변하는 개인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남성, 여성, 성적 소수자 등을 모두 구성원으로 하고 있는 국가의 정부 부서가 이런 아이디어를 반영하는 이름을 달고 있으면 안 된다. 젠더 이퀄리티를 추구하려면 여성뿐 아니라 남성이 차별받는 것도 돌아봐야 하고 성적 소수자들이 차별받는 일도 챙겨야 한다.

한국 여성가족부가 이런 일을 얼마나 하는지는 둘째치고, 나름 이유가 있어서 부서 이름에서 이런 포괄적인 성 평등 개념을 담지 않고 여성만을 내세운 이름을 지었으면, 영문명도 정직하게 이를 반영해야 한다. 한국어에서는 여성이라고 하고 영문에서는 성 평등이라고 하는 것은 일종의 기만이다.

외부에 성 평등을 추구하는 부서로 보이고 싶다면 한국 이름을 바꾸든가. 좀더 폭넓고 보편적인 가치를 담은 이름을 달기를 왜 거부하는지 알 수 없다.

왜 그런지 알 수 있는 단서가 아주 없지는 않다. 한국 여성가족부는 애초부터 성 평등이 아니라 여성, 아동, 청소년을 챙기는 것이 설립 목적이라고 못박고 있다. 그 말이 그 말 아니냐고 할지 모르지만, 당연히 그 말이 그 말이 아니다. 따라서 부서 이름에서 '여성'을 고집하는 것은, 여성뿐 아니라 모든 성의 차별을 경계하고 챙겨야 하는 업무가 주어지는 것을 회피하려는 것이라는 오해를 사더라도 별로 할 말이 없게 되어 있다.

아울러 위 기사에서 "박 당선인이 대선 과정에서 줄곧 첫 여성대통령이라는 점을 내세웠기 때문에 ‘여성’이라는 단어를 유지할 것이라는 견해도 많다"라고 한 부분은 참 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견해(추정)를 갖는 게 딱하다는 게 아니라, 그런 견해가 나오는 상황이 딱하다는 거다. 대통령이 생물적으로 여자라는 점과 양성 평등을 추구해야 할 정부 부서의 공식 이름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아무런 관계가 없어야 한다. 여성 대통령이 등장하여 여성 권리를 강화하는 정책을 추진할 수는 있겠지만, 대통령이 여성이라고 하여 국가 부처의 이름을 대통령의 생물적 조건에 맞게 바꾸거나 유지해야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수령님스러운 코믹한 아이디어가 아닐 수 없다. 이 역시 윗분의 뜻, 심지어 윗분의 성별이 구조와 기능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되는 한국 공조직의 전근대적 특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새로 출발한 정부에서 여성가족부는 여전히 여성가족부다. '여성'을 '양성평등'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의견들은 그저 거론되는 데 그쳤으며, 박근혜가 대선 과정에서 줄곧 첫 여성대통령이라는 점을 내세웠기 때문인지, '여성'이라는 단어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 이미지: 여성가족부 홈페이지.

 

덧글

  • 차누 2013/03/02 15:18 # 삭제 답글

    한자로 여성부는 같을 여(如)자를 쓴다고 알고 있습니다. 물론 대부분이 女성부라고 생각하지요. 실제로 하는 일은… 솔직히 뭘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 deulpul 2013/03/02 16:48 #

    주장의 근거를 본인이 아시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실로 확인되는 데 두시면 더욱 좋겠습니다. 여성가족부의 '여성'이 같을 여(如)를 쓴다는 것은 '인터넷 괴담'의 하나로 알려져 있고, 여성가족부에 직접 확인해 보시면 "'여성 여(女)자'를 쓴다"라고 알려줄 겁니다.
  • 차누 2013/03/02 16:50 # 삭제

    말씀 듣고 찾아보니 실제로 계집 녀자 여성부가 공식명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저 영문 표기는 정말 기가 막히는군요. 어쩌면 저 영문 표기를 보고 누군가가 재번역하는 과정에서 같을 여자 여성부라고 알려졌는지도 모르겠군요.
  • deulpul 2013/03/02 17:05 #

    예, 그렇거나 아니면 뜻을 모호하게 만들고 싶은 제3자의 강변이거나... 하겠지요. 여담입니다만, 여성가족부의 홈페이지에는 저 영문이 읽기 어려울 정도로 작게 표시되어 있습니다. 다른 부처들을 모두 찾아보았는데, 홈페이지 로고에 영어 이름을 병기하는 곳 중에서 이렇게 읽기 어려울 정도로 작게 쓴 부처는 지식경제부와 더불어 둘뿐이었습니다.
  • 아인하르트 2013/03/03 02:07 # 답글

    필요에 따라 신설하는 것도 아니고,
    정권에 따라 부처명, 장기적 정책(교육정책) 등이 바뀌는 것은 우려할만한 일인 것 같네요.
  • deulpul 2013/03/03 05:33 #

    사실 이름을 짓는 것보다 그게 더 중요한 문제겠지요. 새 정부가 과거 정부와는 다른 정책 방향을 갖고 부서를 조정하는 일은 필요하겠지만,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부서를 이합집산시키는 일은 정책의 연속성과 정부 조직의 안정성을 위해 되도록 피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타츠야 2013/03/06 16:04 # 삭제 답글

    규칙과 룰에 따르지 않는 것은 정부기관명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네요.
    한국의 고질적인 병폐같습니다. 규칙이나 룰이 없어서 문제라면 만들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데 그런 논의는 하지 않고 의중에 따라 이리로 갔다가 저리로 갔다가. 정부부처의 공식 명칭이 정권 교체 때마다 바뀌는 것이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 deulpul 2013/03/08 09:23 #

    생각해 보면, 글로벌 시대니 국격이니 하면서 지방 소도읍까지 모두 세계를 무대로 정책을 세워야 하는 것처럼 인식되는 분위기에서, 정부 부처의 영문 이름이 고정되지 않고 편의에 따라 정해져 왔다는 것은 놀랍기만 합니다.
  • 2013/03/06 17:59 # 삭제 답글

    이름도 이름이지만 정부 조직이라는 게 대통령 바뀔 때마다 그렇게 휙휙 바뀌어야 하는 것인지 자체가 의문입니다. 해양수산부 같은 작은 조직을 제외하고 나머지 조직은 상식적인 수준에서 정하고 계속 유지하는 것이 업무연속성을 위해서도 좋을 텐데 5년마다 무슨 짓인지..
  • deulpul 2013/03/08 09:29 #

    그러게 말입니다. 정권이 바뀌면 아예 판을 흔들어 새로 짜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정부는 5년이고 국가 정책의 영향은 장기적이라는 점을 돌아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정책의 안정성은 물론이고 부서 재조직에 따르는 엄청난 비용을 생각해도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오죽하면 그 김대중도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군요.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2/18/2013021802356.html 더구나 정권 교체가 아닌 같은 당의 재집권 상황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진다는 것은 정말 납득하기 어려우며, 역시 조직과 기능 위에 (윗)사람이 존재하는 전근대 행정의 측면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 김승훈 2013/03/10 23:14 # 삭제 답글

    부처 한글명과 영문명의 차이가 딱히 모순된다고 볼것 까지는 없는것 같은데도,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이 떠올랐다면;
    제가 피해의식에 사로잡힌것 같기도 하고, 사고의 비약이 좀 심한것 같기도 하고 그렇네요;
  • deulpul 2013/03/11 09:46 #

    하하, 표현 방식으로만 보면, 말씀하신 <1984>가 반어법이라면 저 사례는 제유법 정도가 되겠지요. 어느 경우나 문학 작품에서는 얼마든지 환영받는다고 할 수 있겠으나, 명확하고 뚜렷해야 할 공공 영역에 쓰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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