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손님의 급행열차와 자기 정당화 섞일雜 끓일湯 (Others)

전혀 관련 없는 이야기 두 개.

최근에 한 전시관을 찾아 갔다. 표를 사려는 사람들이 만든 줄이 길게 늘어져 있어서, 이걸 어째야 하나 하다가 그냥 합류해 섰다. 다행히 줄이 줄어드는 속도는 빨랐다. 30여 분이 지나고 나니 나의 차례가 거의 다 되었다. 그런데 내 앞으로 세 번째 쯤에서부터 진행 속도가 뚝 떨어졌다. 아니, 아예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재수없게도, 바로 내 앞에서 이 매표소 창구들의 전산 시스템이 다운되어 버린 것이다. 그래, 나는 계산대가 여럿인 수퍼에서 줄을 설 때도 대개 재수가 없다.

전에는 그런 일이 한 번도 없었는지(그럴 리가), 매표소 직원들은 그저 손을 놓고 기다리는 것말고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우리 같은 소인배하고는 차원이 다른 대인배들인 미쿡 전시관 직원들은 바로 코앞에서 속 터져라 하며 기다리는 사람들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농담을 하고 낄낄대가며 시간을 죽였다.

줄을 늘어섰던 곳 중 앞쪽 일부. 이 사진은 문 닫을 때쯤 찍은 것이라서
입장을 위해 기다리는 사람이 없다. 왼쪽에 보이는 창구들이 문제의 매표소.


가만히 서서 다시 30분 이상이 지나갔다. 내 바로 뒤에 있던 백인 노부부가 화를 벌컥 내며 줄을 빠져 나갔다. 앞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니까 뒤에서는 계속 사람들이 붙어서 줄은 점점 더 길어졌다.

그 때쯤, 직원들이 모여 수근거리더니, 한 직원이 소리치기 시작했다: "현금으로 표 사시려는 분은 앞으로 오세요. 카드 말고 현금이요!" 시스템이 멈추는 바람에 표 발급과 신용카드 결제가 안 되니, 현금 손님을 먼저 받고 손으로 작성한 표를 주어 들여보내기로 한 것이다.

신용카드 있으면 현금 쓸 일이 거의 없는 이곳에서는 언제든 척척 꺼낼 수 있을 정도로 현금을 갖고 다니는 사람이 많지 않다. 처음에는 나서는 사람들이 없었는데, 직원들이 연거푸 고함을 치자 너댓 가족이 두툼한 지갑을 꺼내 들고 줄을 이탈하여 창구로 갔다. 그 중에는 나와 비슷하게 와서 한 시간 가량 기다린 사람도 있지만, 줄에 합류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뒷쪽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은 마침 현금을 가지고 있었다는 우연한(혹은 부유한) 이유 때문에 급행열차를 타고 순식간에 표를 사서 전시관 내부로 사라졌다. 신용카드를 쓰는 사람보다 10원 한 장 더 내는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순서는 무의미해졌고, 현금을 지니지 않은 거의 모든 입장객은 여전히 하릴없이 서서 기다려야 했다.

이것이 공정한 것인가? 기회 균등이라는 측면에서의 정의와 최대 효용의 추구라는 공리를 놓고 저울질해 보았는데 쉽게 결론을 내릴 수가 없었다. 선착순이라는 약속(즉 사회 시스템)이 순간적으로 붕괴되고 (우연한) 자원의 소유 여부가 보상 가능성을 결정하게 된 상황은 바르지 않아 보였다. 롤스는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한편 어차피 아무도 입장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순서를 어기더라도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들어가게 하는 것이 전체 효용의 양의 측면에서 보아 합리적인 것도 같았다. 벤담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매표 전산망이 복구되기를 바라며 줄을 서서 기다리는 내내 생각해 보았는데, 답이 나오지 않았다.

감정적으로는 성질 뻗치는 일임에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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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한 분이 댓글에서 소개해주신 덕분에 훑어보게 되었던 사회심리학자 캐럴 태브리스와 엘리엇 애런슨의 책 <실수는 벌어졌다(하지만 내가 한 건 아니지): 왜 우리는 바보 같은 믿음, 잘못된 결정, 가혹한 행동을 정당화하는가(Mistakes Were Made (But Not by Me): Why We Justify Foolish Beliefs, Bad Decisions, and Hurtful Acts)>에는 아래와 같은 대목이 나온다. (한국 번역본의 제목은 <거짓말의 진화 : 자기정당화의 심리학>이라고 되어 있다.)


철학과 윤리학을 가르치는 한 교수가 여행중에 호텔에 묵었다. 웃옷에 넣어두었던 펜이 모르는 사이에 빠져나와, 실크 침대보에 잉크 얼룩을 만들고 말았다. 호텔 매니저에게 전화를 하려 했으나, 당장은 피곤했고 그 손상에 대해 변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날 저녁에 친구들을 만났을 때, 교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물어보았다.

"그중 한 친구는 나보고 윤리적 광신을 그만두라고 했죠. 그는 '호텔측은 그런 손상들을 이미 예상하고 있거든. 호텔비에는 그런 손상을 복구하는 비용이 포함되어 있단 말이지'라고 주장했습니다. 나는 매니저에게 실수를 알릴 필요가 없다는 주장에 아주 쉽게 설득되었습니다. 나는 생각하기를, 만일 내가 가족이 운영하는 작은 민박집에 들었다가 이렇게 침대에 잉크를 쏟았다면 나는 즉시 그런 실수를 알리겠지만, 지금 이 호텔은 거대한 체인에 속한 곳이고 어쩌고 저쩌고... 하며 스스로를 기만하는 사유 과정을 지속했습니다. 결국 나는 체크아웃 할 때, 침대에 잉크 얼룩을 만들었다는 쪽지 하나만을 프런트 데스크에 남겼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이 모든 정당화가 사실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호텔 객실료에는 부주의한 투숙객들이 만든 고장을 수리하는 비용이 포함되어 있다! (납세를 위한 소득 신고를 할 때 약간의 소득을 누락하더라도) 어차피 정부는 돈을 낭비하지 않는가! 내가 업무 시간에 개인적인 이메일을 주고받는 데 약간의 시간을 쓰더라도 회사는 별로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언젠가는) 내 업무를 다 할 테니 말이다.

이런 주장이 사실인가 아닌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이러한 선을 넘을 때, 우리는 잘못임을 명백히 아는 행동을 하면서도 이를 정당화하여, 자신이 여전히 정직한 사람이며 범죄자나 도둑이 아니라고 여기는 것이다. 문제의 행동이 호텔 침대보에 잉크 얼룩을 남기는 사소한 것이든 아니면 공금 횡령과 같은 중대한 것이든 상관없이, 자기 정당화의 메커니즘은 똑같다.


이 책이 생각난 것은, 얼마 전의 글에서 다른 한 분이 원세훈의 삽질을 놓고 자기 합리화의 문제를 말씀해 주셨기 때문이다. 나는 정치 현실적인 측면으로 답변을 드렸지만, 사실은 말씀대로 자기 합리화, 혹은 자기 정당화 문제로 보아도 아주 좋은 사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그런 짓을 하면서도 '국정원장'에게 주는 월급을 꼬박꼬박 받아갈 수 있는 것은 자신이 하는 짓이 국가 안보(?)를 위해 필요하다는 자기 합리화가 있었기 때문이라고밖에는 할 수 없다. 바보 같은 믿음, 잘못된 결정, 가혹한 행동을 그렇게 정당화하지 않으면 어떻게 그런 일을 수행할 수 있었겠는가.

물론 이것은 원세훈 이슈에 한정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좀더 보편적이고 넓은 윤리적 문제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점을 놓고 보자면, 저자들의 말처럼 선을 넘는다는 것이 중요하지 그 선의 내용의 심각함은 큰 문제가 아닐 것이다. 우리 안에도, 내 안에도 원세훈이 있나 싶어서 섬찟해진다.

 

덧글

  • 타츠야 2013/04/01 11:43 # 삭제 답글

    따지고 보면 윤리라는게 상대적인 것이라 지금 당장의 고민이 의미가 없을 수도 있고, 보편적이고 넓은 윤리라는게 존재하는가? 라는 의문도 생길 것 같습니다. 노예 제도 시대에 많은 윤리학자들이 노예 소유를 당연시 했던 것처럼 말이죠. 제가 지금 선택하고 실행에 옮기는 행동이 옳다고 믿지만 가끔 이 믿음에 의문이 생기네요.
  • deulpul 2013/04/02 15:37 #

    시대의 규정을 받는 것도 있고, 공통된 것도 있을 수 있겠죠. 인간 사회 문화의 한 가름이라서 그 내용이 변하는 것은 당연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밑바닥이 더 중요한 것 같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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