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대학 교재를 내는 3대 출판사" 섞일雜 끓일湯 (Others)

"노원구 주민에 '안철수 처 입니다' 했더니…"

3월31일에 실린 안철수의 부인 김미경 인터뷰 기사다. 멀쩡한 기사에 낚시 제목을 달아놓은 신문사의 추태는 또 넘어가자. 기사에는 이런 부분이 나온다.


- 대선 당일 남편과 미국으로 떠나 82일간 지냈다. 그곳 생활은 어땠나.

“12월 말까지는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미국에 간 것 같다. 미국 유학 중인 딸이랑 같이 지내면서 마음을 치유하는 게 필요했다. 성탄절 때는 딸이 해온 자원봉사에 참여해 당근 깎고 배식하고 지냈다. 남편과 함께 마음을 추스르고, 운동과 산책도 했다. 미국에서 대학교재를 내는 3대 출판사 중 한 곳에서 500~1000쪽 책을 내기로 하고 연말을 목표로 집필 중이다.”


김미경 자신의 책이라는 뜻일 것이다. 김미경은 서울대 의대 교수(의학과)니까 아마 의료 관련 서적일 것이다. 미국에서 내니까 아마 영어로 된 책일 것이다.

한국 교수가 미국에서 영어로 된 의학책을 내는 것은 좋은 일이다. 존경 받아 마땅한 성취다. 그런데 그 앞에 달린 '미국에서 대학교재를 내는 3대 출판사'라는 말 때문에 존경하고 싶은 생각이 좀 옅어졌다. 이 말은 뒤의 '500~1000쪽'이라는 엄청난 변동 구간을 가진 쪽수와 더불어, 뭔가 규모와 랭킹을 붙여야 존중해 주고 존중 받는다고 생각하는 바람직하지 못한 한국적 마인드를 반영한 것 같아서 보기가 상쾌하지 않다.

'3대 출판사'라는 말도 그렇다. 이러한 식의 수식어는 대개 그 정의가 확정적이지 않거나 모호할 가능성이 높다. 언제 시점을 기준으로 하여 어떤 척도를 적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김미경은 의학자이고 과학자이니까 이런 언급을 할 때 분명한 근거를 갖고 있었으리라고 생각한다.

'미국에서 대학 교재를 내는 3대 출판사'로 추정할 수 있는 회사들은 어디가 될까.

미국 출판업계에서 대학 교재(college textbook)는 'higher education' 부문으로 분류되어, 초중고 교재를 펴내는 'k-12'와 구분된다. 이 대학 교재를 펴내는 출판사들을 어떤 기준(권수, 판매액, 수익 등)에 따라 줄을 세우기는 쉽지 않다. 출판사들이 병합을 통해 이합집산하면서 규모가 수시로 변하기 때문이다. 좀 오래 된 자료이긴 하지만, <국제 출판 백과(International Book Publishing: An Encyclopedia)>라는 책의 '미국의 교재 출판(Textbook publishing in the United States)' 항목에는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이 표에 따르면 사이먼, 맥그로우-힐, 톰슨이 '3대 출판사'다. 3-4위 차이가 2-3위 차이보다 작으니, '3대'가 큰 의미가 있는지 알기 어렵다.

<와이어드>의 2012년 기사에 나온 아래 표에 따르면, 미국(에서 활동하는) 출판사 중에서 대학 교재를 출판하는 메이저는 리드-엘저비어(2위), 맥그로우-힐(7위), 와일리(13위) 정도가 될 것 같다. 빨간 줄을 친 것이 미국에서 출판 활동을 하는 회사들인데, 10위로 되어 있는 스콜라스틱은 초중고용 교재 전문인데다 곧 리드-엘저비어에 병합될 예정이다. 28위로 내려간 사이먼까지 포함하면 4대 교재 출판사가 될 것이다.



김미경의 책은 아마 이런 출판사에서 나오기로 하고 진행되는 것일 테니, 저 말은 사실성의 문제라기보다 취향과 성향의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규모나 랭킹에 상관없이 미국에서 대학 교재를 펴내는 주요 출판사들은 다음과 같다:

Addison-Wesley, Bedford-Freeman-Worth(Macmillan), Henry Holt, Houghton Mifflin Harcourt, Jones & Bartlett, McGraw-Hill, Pearson, Prentice Hall, Thompson, Wiley, W.W. Norton.

여담이지만, 서울대 의대 홈페이지의 교수 소개란을 잠깐 훑어봤더니, 김미경을 포함한 교수 거의 대부분의 소개가 영어로 되어 있다. 한글과 영어를 선택하여 나오는 영어 페이지에서가 아니라, 한글 페이지에 영어 소개를 해 놨다. 내가 잘못 들어왔나 싶어서 몇 번을 확인해 봤다. 한국에서 (대부분) 한국인을 가르치는 한국인 교수가 일하는 한국 대학의 한국어 홈페이지에 약력을 영어로 적어놨다니, 이건 또 뭔 등X스러운 짓인가 싶어 어안이 벙벙하다. (김미경이 아니라, 저렇게 영어로 약력을 쓰라고 한 작자를 욕하는 것이다.) 한국인의 영어병, 참 지긋지긋하다.

 

덧글

  • Silverwood 2013/04/03 21:09 # 답글

    제가 대학 재학 시절에 봤던 교재의 출판사도 있네요ㅎ 신기하다..1학년때 해부생리수업을 듣는데 교수가 영어로 수업을 하면서 자꾸 마더라고 해서 왜 수업중에 엄마를 찾을까..했는데 1학기가 끝나고 나서야 mother가 아닌 model이었구나를 알게됐던 소소한 일이 생각나네요.ㅎ 아..나도 빨리 GRE시험을 잘봐서 미국이나 좀 가봤으면 좋겠어요!ㅋ
  • deulpul 2013/04/05 14:48 #

    한국 대학의 영어 수업이 갖는 폐혜를 잘 보여주는 사례로군요, 하하. 발음 제대로 안 하는 교수나 제대로 알아듣지 않는 학생 잘못 없습니다. 대학 당국, 교육 당국이 제정신이 아닌 것이지...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00318190028) GRE 준비 하시는가요? 지루한 공부 잘 이겨내고 좋은 성과를 거두시기 바랍니다.
  • 타츠야 2013/04/04 14:49 # 삭제 답글

    이번 건은 약간 판단 유보하고 싶네요.
    실제 말하지 않은 내용을 짜집기해서 인터뷰로 내는 경우를 얼마 전에 겪었거든요.
    기자를 위해 다른 기사와 차별화되는 사실들을 더 알려줬는데 그것들도 모두 걷어내고 취사선택해서 냈더라구요. 지적하신 것도 실제 김미경씨가 말하지 않았는데 기자가 찾아보고 넣었을 수 있거든요.
    그래서 언론 인터뷰에는 녹취록이나 실제 인터뷰 영상/음성이 같이 제공되면 좋겠습니다.
    팩트 체크를 위해서요.
  • deulpul 2013/04/05 14:50 #

    맞습니다. 한국 언론은 남이 한 말을 옮기면서 너무나 자주 가공을 합니다. 이런 현상을 이해해 보려고 하다보니, 한국어란 게 원래 직접 인용에 부적당한 언어인가, 혹은 우리가 쓰는 입말이란 게 애초에 매체에 인용되기 글러먹게 생겼나 싶은 생각까지 들 정도입니다. 물론 둘 다 아니죠.

    인터뷰가 실제로 말한 것과 내용이나 톤이 달라 문제가 되는 경우는 덧붙인 경우와 뺀 경우와 뒤죽박죽 섞어놓은 경우가 있겠는데, 물론 가장 큰 문제는 말하지도 않은 것을 덧붙인 경우라고 하겠습니다. 변명의 여지 없는 잘못이죠. 그런 일이 설마 벌어지랴 싶지만, 인터뷰 당한 사람들의 뒷이야기에서 자주 증명되곤 합니다. 말씀하신 경우처럼요.

    위의 김미경 발언이 그런 사례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문맥이 좀 다른데 이를 이어붙이는 바람에 벌어진 일일 가능성은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일단 인터뷰 내용을 근거로 하여 말씀드렸고, 인터뷰 기사가 실제 발언과 다르다면 이것은 또 하나의, 더 중요한 이슈가 되겠지요.
  • 새알밭 2013/04/04 23:25 # 삭제 답글

    제가 황당하게 생각했던 것은 그와 반대되는 현상 때문이었습니다. 네이버의 뉴스스탠드에 '코리아헤럴드'를 택했더니 신문 모양으로 뜨는 화면이 다 한글 기사더군요. 잠시 '코리아헤럴드가 영자지에서 한글 신문으로 전환했나?' 의아했더랬습니다. 때와 장소와 상황에 맞지 않는 저같은 행태가, 서울대 교수 프로필에도 나타나고 있다니 씁쓸합니다.
  • deulpul 2013/04/05 16:43 #

    확인해보니 정말 그렇네요. 해당 신문의 웹페이지도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http://www.koreaherald.com/index_kr.php) 대문은 한글 기사로 띄우고, 개개의 기사를 들어가면 영한 대역으로 배치하는 방침인 모양입니다. 영문 기사로 깔아놨을 때 독자(특히 네이버 독자)가 얼마나 클릭을 해서 들어오랴 하는 문제 의식의 결과인 것 같습니다만, 말씀처럼 신문의 정체성을 흐려버리는 결과가 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서울대 의대 홈페이지는 영문 사이트가 따로 있음에도 한글 사이트에서 저런 짓을 벌이고 있습니다. 한편 한글 사이트에 이렇게 도포 입고 넥타이 맨 것 같은 영문 약력을 달아놓았으면서도, 정작 영문 사이트의 교수 소개는 태반이 공란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보면, 나름의 무슨 방침이 있어서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무개념 웹페이지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 어울리게 2013/04/13 16:26 # 삭제 답글

    마지막 한 줄, 저랑 생각이 참 똑같으시네요ㅋㅋㅋㅋㅋㅋ

    저의 주요 관심사이자 놀림거리 주제도 영어병입니다 ㅋㅋㅋ

    전공이 영문과인지라 주변에 수도없이 많은 영어병 환자를 보며 살긴 하지만요...ㅜㅜ
  • deulpul 2013/04/14 16:10 #

    영어 교육에 대한 고민과 열정을 갖고 계시는 것 같아서 부럽습니다. 저는 영어병의 핵심이 필요에 상관없이 무조건 배우고 익히고 써놔야 한다고 생각하는 증상이라고 믿습니다. 증상을 가진 사람들 탓이 아니라,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든 사람들과 제도 탓입니다. 대표적인 영어병 환자이자 바이러스를 퍼뜨린 사람으로는 이명박이 있죠. 해야 하는 사람들, 필요한 사람들은 깊이 있게 파고들어야 한다는 점은 순수든 실용이든 다른 모든 학문이나 영역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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