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 3제 (上司 3題) 섞일雜 끓일湯 (Others)

지난 여름, 옛 회사 선배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가, 회사 상사 한 분이 네 해 전에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가실 연배가 아니라서 깜짝 놀랐고, 멀리 있다는 핑계로 사람다운 인사를 챙기기는커녕 궂긴 소식조차 챙기지 못하고 산다는 마음이 들어 하염없이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한국에 있었다면 그가 불편하게 되었거나 돌아가셨을 때 당장 달려가봤을 것이다.

주말 근무를 하는 어느 여름날이었다. 점심 식사 때 반주를 하고 왔음에 틀림없는 O부장이 오후 세 시경 내 자리로 왔다.

"바쁘냐? 나랑 잠깐 나가자."

이럴 때, 직원들은 흔히 실제로 바쁘거나, 아니면 바쁘다는 핑계를 댄다. 그러나 나는 실제로 바쁘지 않으면 대개 그를 따라나선다. 그래서 '잠깐 나갈 일'이 있을 때 그는 주로 바쁘지 않은 내 자리로 온다. 부장이 졸병을 데리고 잠깐 나가는 곳은 회사 근처의 식당인데, 물론 점심밥은 먹었으니까 대신 술을 먹는다.

이 날도 내가 할 일은 끝내고 넘겨둔 상태여서 바쁘지 않았다. 나는 그를 따라나섰다. 오늘은 좀 많이 걷는다. 그가 길을 걷다가 불쑥 들어간 곳은 사거리 모퉁이에 있는 작은 수퍼다. 뭘 사려고 거기까지 갔나? 술 사려고다. 맥주 두세 병을 사고 수퍼 앞에 놓인 패러솔 탁자에 앉는다. 나는 잠깐이지만 또 그의 술상대가 되는 것이다.

회사 사람과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 대개 이야기는 다른 사람 씹기로 시작해서 다른 사람 씹기로 끝난다. 그러나 O부장을 모시고 이렇게 여러 차례 다녀봤지만, 그가 회사 사람을 헐뜯는 것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회사 생활하며 억울한 거 많아서 할 말 있는 사람 나오라면 O부장이 뒤에 처지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새파란 후배인 내게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해봐야 무슨 소용이랴 했으리라.

이 날은 뜬금없이 당신의 고등학생 아들 이야기를 시작했다. 머리가 커졌다고 자기에게 대들더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지나가는 말처럼 시작했는데, 당시 상황을 묘사하는 부분에 이르자 다시 화가 치솟는지, 나를 향해 삿대질을 하며

"이 발칙한 놈! 감히 애비에게 대들어? 버르장머리 없는 놈!"

하고 연거푸 소리를 지른 것이다. 한길을 지나던 사람들이 나를 힐끗힐끗 보았다. '웬 싸가지없는 자식이 아버지를 앞에 놓고 대들고 있군. 세상 말세로고' 하는 표정들이다. 보기에 따라서, 나와 그는 부자지간 정도의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좀 난처한 상황이 벌어졌다.

하지만 나는 별로 억울하지는 않았다. 나도 고등학교 때쯤 아버지에게 대든 적이 있다. 아버지는 적이 충격을 받으셨는지 잠깐 묵묵히 계시다가, O부장이 아들에게 한 말과 비슷한 내용으로 된 고함을 버럭 치셨다.

"이놈이 애비에게 대들어? 응? 이 버릇없는 놈!"

나의 아버지도 회사에서 누군가를 마주하고 앉아, 당신의 아들이 대들더라며 한탄하는 말씀을 하셨을지 모른다. 이런 종류의 일, 말하자면 가장으로서의 자존심에 상처를 받은 일을 비슷한 연배의 동료에게 말하기는 좀 마뜩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O부장처럼 나같이 까마득한 후배를 불러놓고 그런 한탄을 하셨을지 모른다.

말하자면 나는 받을 것을 받는 셈이었다. 도심의 따가운 여름 햇살이 천패러솔의 성긴 올을 뚫고 내리는 그 길거리 철제 테이블에서 나는 나의 아버지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O부장은 나의 아버지와 여러 점에서 닮은 것 같기도 했다. 내가 그를 잘 따라나선 것은 그런 이유였던가 싶기도 했다.

선배로부터 그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 뒤늦게 부고를 찾아 보았다. 부고에는 상제(喪制)인 그의 자제의 직장과 직함이 기록되어 있었다. 한때 나처럼 아버지에게 대들었던 그의 두 아들은 모두 잘 자라서 잘 살고 있는 것 같았다.


--- ** --- ** ---


이제 눈이 다 사라졌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응달에는 설흔이 남아 있었다. 희게 살다가 거무칙칙하게 죽은 겨울의 잔영들을 쓸어버린 것은 눈의 사촌, 비였다. 비가 오면 비로소 봄이 된다.

4월 들어 이미 비가 몇 차례 왔지만, 오늘 온 비는 창을 닫고서도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좍좍 오는 비였다. 눈을, 겨울의 끝을 쓸어버릴 수 있는 힘을 가진 비였다.

봄에 빗소리를 들으면 늘 한시(漢詩) 두 수가 생각난다. 하나는 두보고 또 하나는 정지상이다. 두 시는 어릴 때부터 좋아했지만, 정지상의 '송인(送人)'에는 철 들고 난 뒤의 작은 에피소드 하나가 덧붙어 있다.

이 이야기도 회사 상사와 관련된 이야기다. 이것은 어느 봄날에, 도심 공원의 버드나무에 물이 오르기 시작하던 때쯤의 일이다. 그 때가 아니더라도 그렇게 기억되어 있다.

X차장과 둘이서 점심을 먹게 됐다. 이 상사는 내가 회사에서 가장 많이 배운 몇 분 중 하나다. 세상 물정 모르는 신출내기가 그럭저럭 제 밥벌이는 할 수 있게 된 것의 상당한 부분은 X차장 덕분이다. ROTC 반지를 늘 끼고 있는 무관 출신이면서도 남산골 선비의 기상을 간직하고 있었으며, 꼼꼼함에 있어서는 한국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아도 괜찮을 것 같은 상사였다. 연배 차이가 많이 났으니 성향이 잘 맞는가는 중요하지 않았고, 그보다는 좋은 스승이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사제가 서로 성향이 잘 맞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늦은 점심이었다. 널찍한 옛 고등학교 터를 끼고 돌아 찾아간 식당은 점심 손님들이 다 빠지고, 아주머니들은 한숨을 돌리고 있었다. 뭘 먹었던가. 밥은 기억나지 않지만, 말반찬은 생생히 기억난다.

대화의 한 자락에서 갑자기 정지상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국어책인지 참고서인지에서 보고 배웠던 '송인'이 참 좋았다고 말했는데, X차장이 반가워하며 그걸 읊어보란다.

雨歇長堤草色多 (우헐장제초색다)
送君南浦動悲歌 (송군남포동비가)
大同江水何時盡 (대동강수하시진)
別淚年年添綠波 (별루년년첨록파)


그가 좋아하고 동시에 내가 아는 시 이야기가 나와서 참 다행이었다. 저 대동강 물, 해마다 이별의 눈물을 더하니 그 언제 마르리오 하는 시가 어찌 안 외어질 수 있겠는가.

우헐-장제-초색-다하니
송군-남포-동-비가라
대동강-수-하시-진고
별루-년년-첨-록파라

윗세대는 대개 아랫세대의 교양을 낮추어 잡게 마련이고, 특히 고전과 관련한 영역은 더욱 그렇다. 살아온 시간의 부피를 반영한 이런 낮잡이는 대개 사실이기도 해서, 그들의 신념을 때로 강화시켜 준다.

X차장은 한시 따위는 들어나 본 적이 있을까 싶은 젊은 놈이 앉아서 글발을 잇대는 것을 보고 매우 신통해 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아주머니를 불러 막걸리를 시키는 것이다.

"야, 일은 천천히 하고 술이나 마시자."

이렇게 해서, 난데없이 정지상이 주선한 낮술이 시작되었다. 고전과 한학의 고담준론이 안주였고, 물론 나는 그가 빚고 부쳐놓는 안주를 집어먹기만 했다. 봄날 오후, 비가 오지는 않았지만 막걸리통하시진고 시시각각첨주문이라, 분위기는 아주 좋았다.

문제는 그가 '일을 천천히' 하면 생산 라인이 올스톱된다는 것이었다.

막걸리 항아리가 세 개 비워지는 동안 회사에서는 난리가 났다. 마음이 느긋한 직원들은 앉아서 놀았고, 마음이 급한 직원들은 X차장을 찾으며 성질을 냈다. 그런 일 벌어질 것을 뻔히 알고 있는 나도, 처음에는 막걸리를 마시는 속도를 내는 쪽으로 문제를 최소화하려고 했으나, 나중에는 차장이 먹자는데 졸병이 뭔 죄냐 싶은 심정이 되었다.

X차장은 내가 보기에, 속으로는 호방한 풍류객의 취향을 가졌다 하더라도 현실에서는 건실하고 치밀한 생활인 같은 모습이어서, 이 날의 일탈은 내게도 조금 의외였다. 그 뒤로 그런 일을 다시 본 기억이 없다. 봄날 송인의 임팩트는 그렇게 컸다.

아마 송인은 핑계였는지도 모른다. 사실 그는, 중년 남자가 드잡이해야 할 잡다한 문제로 마음을 썩이던 터라, 무엇이든 탈출구가 필요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정지상이 아니라 조용필이나 나훈아라도 좋았는지 모른다. 하지만, 마치 천자문 읽는 흉내를 내는 경이, 건이를 기특하게 여기는 이양하처럼, 정지상 읽는 흉내를 내는 나를 보고 "너 그걸 어떻게 외우고 있냐?" 하고 눈을 크게 뜨던 그 모습은 진지해 보였다.

나는 내 세대 입시 교육의 위대함에 대해 잠깐 말씀드릴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어쨌든 그제나 지금이나 여전히 좋은 시, 송인.


--- ** --- ** ---


나는 이 회사에 들어갈 때, 면접에서 떨어질 뻔했다. 맞은 편 테이블에 좍 도열하여 앉아서, 범인 심문하듯 질문을 던지던 회사 임원 중 한 명이 갑자기 이런 질문을 했다.

"세계 시장이 통합되면서 국가 사이에 무역 마찰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며, 각국의 통상 담당 관리의 역할도 막중해지고 있다. 한국과 미국의 무역 마찰과 관련해, 한국의 외교통상부장관이 상대해야 하는 미국 담당 관리는 상무부장관인가 USTR 대표인가?"

개인사, 포부, 희망, 회사에 대한 기여 따위를 물어야 할 자리에서 갑자기 시험 문제가 나왔다. 조금 당황했지만 어쨌든 답을 말하기 위해 입을 떼려는 찰라, 질문자는 이렇게 덧붙였다.

"...... 를 영어로 해 보세요."

머리 속이 하얗게 변했다. 아니, 처음부터 영어로 해 보라고 하든지, 웬 반전이란 말입니까.

대학 때 학교 공부와는 담쌓고 홈스쿨링이나 다름없는 생활을 했고 졸업 뒤에야 뒤늦게 붙잡고 늘어진 영어 실력으로는, 필기 시험은 어떻게 커버를 한다 해도, 이런 대답이 갑자기 매끄럽게 술술 나올 리가 없었다.

대답을 하면서 나 자신도 뭔가 잘못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오, 직독직해(사실은 직청직해)가 되네. 하지만 틀렸음을 알아채는 직독직해라니. 여하튼 내친김이다. 맞든 틀리든 뭔가를 입에서 발설하고 답변을 마쳤는데, 질문자는 이렇게 말했다.

"질문이 길어서 잘 못 알아 들은 것 같은데, 다시 한번 말해 주갔습니다. 세계 시장이..."

아주 천천히, 또박또박 말해 주었다. 질문을 말하는 데 시간이 걸린 만큼, 나는 머리 속에서 다시 생각할 시간을 벌었다. 덕분에 두 번째는 그럭저럭 말이 통하게 옮긴 것 같았다. 질문자는 "알았습니다" 했고, 나는 그와 동시에 이 장면을 날카로운 눈으로 지켜보고 있던(실제로는 졸고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내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대여섯 명의 면접관들 눈치를 살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범인 심문하듯 앉아 있던 이 임원들은 정말로 경찰처럼 굿캅, 배드캅이 있었다. 자기들이 역할을 나누어 짠 것은 아니겠지만, 사람 성격이 다양하다 보니 그렇게 되는 모양이었다. 어떤 사람은 공격적인 태도로 질문하였고 답을 들으면서도 뭔가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어서 지레 주눅이 들게 만들었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인자하고 자애로운 표정으로 질문을 하여, 입사 시험에 합격할지도 모른다는 허황된 희망을 갖게 만들었다.

나에게 영어 문제를 낸 분, 나중에 알고 보니 △국장은 후자에 속할 것이다. 겉으로 인자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차돌같이 더 엄격한 경우가 적지 않지만, 왠지 이 분은 속도 겉이나 같을 것 같았다. 면접 채점표를 본 적은 없으니까 그렇게 믿기로 했다.

회사에 들어간 뒤, 함께 입사한 동료와 함께 상견례를 겸하여 회사 윗분들과 돌아가면서 점심 식사를 했다. △국장을 뵈었을 때, 내가 면접장에서 느낀 인상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은 회사를 떠난 날까지, 그리고 지금까지 그대로이다.

졸병인 나와는 직접 대면할 일이 거의 없는 직급이어서 그랬겠지만, 나는 나대로 왠지 어렵고 엄하게 느껴져서 가까이서 뵙고 배울 기회가 많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막내로서 어리광도 좀 부리고 철 안 든 척 개기기도 하여, 직장 상사일 뿐만 아니라 못난 후배들을 책임져야 하는 선배라는 점도 깨닫게 해 드렸어야 했다 싶어서 후회가 든다. 어쨌든 들러붙고 엉기는(치받는다는 뜻이 아니다) 후배한테 정이 한 소끔 더 가는 것이다.

O부장은 아쉽게 돌아가셨고, X차장이나 △국장은 모두 건강하게 살아 계셔서, 예전에 미처 못한 악동 후배 역할을 언젠가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으면 싶다.

 

덧글

  • 2013/04/15 23:3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4/22 18:48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3/04/16 09:06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13/04/22 18:59 #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바쁘실 텐데 어떻게 이렇게 다양한 활동을 하시는지 놀랍습니다. (쓰고나서 보니 공개 답변이라 내용을 삭제 및 수정하였습니다.) 새로 시작하신 사이트가 활발한 활동을 통해 한국의 지적 문화에 좋은 자극을 주기를 기대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길 빕니다.
  • 김승훈 2013/04/16 11:16 # 삭제 답글

    처음의 에피소드는 제가 블로그 글을 전부 다 본 것은 아니라 잘 모르겠지만
    뒤의 두 에피소드는 한번씩 언급하셨던 것들이네요.
    안타까운 일로 시작했지만 마무리는 멋지게 하셨습니다.
    그런 기회가 꼭 올 거라고 믿습니다.
  • deulpul 2013/04/22 19:06 #

    이제 저도 제가 뭘 썼는지 기억을 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게다가 이글루스 검색까지 먹통이라 떼어버렸... 인상적인 일이라서 이미 몇 번 언급한 것 같긴 합니다. 바라는 바, 희망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 김승훈 2018/10/19 23:50 # 삭제

    어... 최근 들풀님과 주고 받았던 얘기를 소재 삼아서
    마지막으로 일기를 쓴지 만으로 2년은 더 된 것 같은 이 시점에
    오랜만에 그런 걸 한번 써볼까 하는 심정으로 제 일기장을 열었다가
    제가 처음으로 들풀넷을 접하게 된 시점이 궁금해져서 자료조사(?)
    를 하다보니 구글신에게 사이트:deulpul.net 김승훈 2014 2013 이런식으로...
    사이트내 검색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유용하게 사용해 보았습니다.
    이 게시물이 제가 최초로 덧글을 작성한 게시물은 아니지만 제 덧글에 대한 답글로
    이글루스내 검색이 먹통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계셔서 이곳에 글을 남겨봅니다.
  • deulpul 2018/10/21 10:11 #

    아, 이곳에서 과거의 기억을 불러주시는 소환사로서 정말 고마운 일을 해주고 계십니다, 하하. 5년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정녕 이제는 몇 년 전 글을 보면 저도 낯설게 느끼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덕분에 예전 추억을 다시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조만간 위에 쓴 분들께 연락을 한번 드려봐야겠네요.
  • 2013/04/16 19:0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4/22 19:08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3/04/20 05:00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13/04/22 19:21 #

    아니 비공개글에 웬 존대입니까! 하하... 하지만 그렇다면 저도...

    저도 지금 지나놓고 보니 이렇게 좋은 추억인 것처럼 생각되지만, 당시에는 어제 저러구 오늘은 또 투덜투덜 하면서 지냈을 겁니다. 당사자야 어쨌든 앞서 산 선배이니, 제가 잘 했으면 많은 걸 배울 수 있었을 텐데, 승질 때문에 그런 기회를 많이 놓친 것 같아 저도 종종 후회가 됩니다. 선생님도 한국에 계셨더라면 많은 후배들이 따르고 존경하는 선배가 되실 것이라는 생각에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물론 지금도 온오프에서 많은 분들과 교류를 하시지만, 역시 선후배는 허리를 다리로 깍지끼고 붕가붕가 춤을 추는 식으로 부대껴야 제격인 것 같습니다. 기억나시죠? 하하하...
  • 2013/04/24 00:0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4/24 07:07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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