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진정으로 배워야 할 것 때時 일事 (Issues)



<국민일보>에서 장기 기획을 세우고 관련 기사를 연속으로 싣고 있다. 기획의 제목은 '독일을 넘어 미래 한국으로'다. 한국 사회가 겪는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독일을 모델로 삼자는 취지다.

기획의 큰 방향은 작년 12월10일, 기획 시리즈를 시작하며 낸 '왜 독일인가'에 라는 기사에 잘 나와 있다.


분단과 통일, 흔들리지 않는 경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사회 안전망이 확실한 복지 체계, 패자부활이 가능한 사회, 보수와 진보 간 정책 보완, 무엇보다 각계 지도층에 배인 기독교적 소명의식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이 시기 한국사회가 갖고 있는 여러 문제점들을 독일은 다른 어느 국가보다 잘 극복해 나가고 있습니다. 특히 새 정부 출범을 앞둔 우리에게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갑자기 유럽 전체가 독일어로 말하기 시작했다.”(기독민주당 헤르만 그뤄헤 원내대표, 2011년 11월) 유로존과 세계 경제위기 속에서도 우뚝 선 독일의 위상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지난해에는 사상 최대 수출 실적, 경상수지 흑자 세계 1위를 기록했습니다. 독일의 여러 정책과 시스템은 이미 우리의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에서 벤치마킹 대상입니다.


이 기사는 이어서, 한국이 독일로부터 배워야 하는 이유로 △강한 경제 △성공적인 통일 △프로테스탄티즘과 소명의식 △촘촘한 사회 안전망 △실용적인 교육 제도 △노사 상생 문화 △외교 지평 확대 등을 들었다. 모두 좋은 얘기다. 이런 점에서 한국보다 훨씬 앞서 나가 있는 독일의 사례를 참고하여 배울 수 있다면 좋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이 있다.

한국이 본받고 싶어하는 오늘날 독일의 여러 제도와 정책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툭 떨어진 것도 아니고 라인강이 쫙 갈라지며 불쑥 솟아난 기적의 결과도 아니다. 오랫동안 독일 사회 구성원들의 가치관을 형성시킨 배경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모습을 가진 사회가 현실화할 수 있었다. 오늘의 독일 사회, 그 사회를 규정하고 있는 제도와 정책을 잉태시킨 모태를 상징적으로 묘사하자면 예컨대 이렇게 될 것이다:




이것은 2006년 여름에 베를린 중심, 훔볼트 대학 앞 광장에 서 있었던 조형물이다. 책 17권이 세로로 쌓여 있고, 그 책에는 독일의 대표적인 문학가나 사상가 이름이 적혀 있다. 위에서부터 귄터 그라스, 한나 아렌트, 하인리히 하이네, 마르틴 루터, 이마누엘 칸트, 안나 제거스, 게오르그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그림 형제, 카를 마르크스, 하인리히 뵐, 프리드리히 쉴러,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 헤르만 헤세, 테오도어 폰타네, 토마스하힌리히 만, 베르톨트 브레히트, 요한 볼프강 폰 괴테 등이다. 그야말로 독일이 세상에 내 놓을 수 있는 자존심이라고 할 만한 기라성 같은 사람들이다.

높이 12.2미터인 이 책탑은 그 해(2006년)에 베를린에서 '아이디어의 거리(Walk of Ideas)'라는 이름 아래 건립된 여섯 조형물 중 하나다. 이 조형물이 직접적으로 기리는 대상은 또 한 명의 독일 자존심인 요하네스 구텐베르크다. 그가 금속 활판 인쇄술을 고안함으로써 사상과 지혜가 책이라는 매체에 담겨 확산되기 시작한 점을 기념하여 만든 조형물인 셈이었다.

아이디어가 만든 땅, 독일

나는 구텐베르크는 물론이고, 이 책더미의 높이보다 수백 배는 더 높게 올려 마땅하리라 생각되는 저 이름들의 명성에서 독일의 저력을 발견하게 된다. 오늘의 독일이 오늘의 독일인 것은, 이러한 두터운 인문학적 역량이 국가 사회의 든든한 자궁벽이 되어 왔기 때문이고, 그런 소중한 인문 자산을 역사 속에 방치하여 먼지 뒤덮어쓰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끊임없이 현재에 되살려 왔기 때문이다. 사유하는 백성들에게 고전은 언제나 현재의 문건이다.

이 조형물 옆에 서 있는 안내판의 제목은 '아이디어의 땅, 독일(Germany, Land of Ideas)'이다. 함께 붙은 이미지는 검은색, 빨간색, 노란색의 다양한 색과 모양을 한 꽃이 늘어서 있는 그림이다. 온갖 아이디어가 앞다투어 태어나고 무럭무럭 자라고 서로 견주고 경쟁하고, 이런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하여 나라와 인간을 최선의 상태로 이끄는 구체적인 정책과 제도가 운용되는 성숙한 사회. 규제 없고 에누리 없는 아이디어 시장의 보장이 독일의 저력이고, 이런 저력 덕분에 오늘의 독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독일을 넘어 미래 한국'으로 가려는 나의 조국은 어떠한가. 한국이 비슷한 책 조형물을 만든다면, 그 책들의 등에 누구의 이름을 써 넣을 수 있을 것인가. 얼른 떠오르지 않는다. '아이디어의 땅, 한국'이라는 제목에 어울리도록 써 넣을 수 있는 사람이 대체 누가 있단 말인가.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다. 무엇보다, 저 독일 조형물이 기리고 있는 구텐베르크보다 앞서서 이 세상에서 가장 먼저 금속 활자를 만들어 낸 사람은 한국인이 아니었던가. 오늘의 한국을 만들어 낸 사상의 선구자들이라고 여겨 그 이름 귀하게 적어넣을 사람이 없는 것은, 과거와 오늘이 단절되었고 그 결과 오늘의 한국은 형편없이 초라한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한국을 만들어 낸 사상가라는 소리를 듣는다면 오히려 창피할 것이다.

OECD 회원국이고 경제 대국인 한국을 초라하다고 표현하는 것은 어불성설 아닌가? 오, 돈은 많다는 말씀이라면, 이렇게 고쳐서 말해 드리겠다: 오늘의 한국이 형편없는 졸부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텐베르크보다도 먼저 금속 활자를 만들 정도로 명민한 민족이 언제부터인가 그저 남을 밟고 기어오르며 돈을 한 푼이라도 더 쥐기 위해 안달복달하며, 밟힌 놈은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짓밟는 게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렇게 번 돈으로 겉이나 처바르는 족속으로 바뀌었다.

돈벌이 앞에서 모든 아이디어가 소멸되는 한국

독일의 선진적인 사회를 묘사한 위 기획 기사 중에는 '장애인 거주지 부자동네에 세워 ‘통합의 극치’… 님비현상 없어'라는 기사가 있다. 한국이 선진국으로부터 배워야 하는 게 이런 것이라면 너무나 비극적이지 않은가. 제대로 된 사회라면 이런 것은 엄마 품에서 젖을 먹으며 배워야 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섞여 사는 일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회적 합의와 가치관은 어떻게 체득되었겠는가. 거꾸로, 장애인 시설이 예정되면 아파트값 떨어진다고 시위를 하고, 심지어 장애인 이웃을 찾아가 이사가라고 종용하는 일을 당연한 듯 하는 사회의 가치관은 어떻게 체득되었겠는가.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을 읽고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고 한하운의 <보리피리>를 읽은 사람들이 이런 일을 할 수 있겠는가. 하다못해 공자 맹자는 둘째치고 옛날 코흘리개들이 읽던 <명심보감>만 종종 읽었더라도 그런 일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는 쉽게 알았을 것이다.

한 시대를 열어젖힌 선구자 정약용의 대표적 저서로서 한민족 공직자의 영원한 필독서가 되어 마땅한 <목민심서>를 한국판 책 조형물에 넣을까. 그 책이 들어가 있다면, 횡령과 수뢰를 포함한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제 잇속을 채우는 일을 당연하게 여기며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버젓이 낯짝을 들고 앉아 있는 공직자들 심기를 거스르지 않겠는가. 그들 뿐이겠는가. 쥐꼬리만한 권력만 있어도 이를 전용해 자신과 식솔의 배를 불리는 데 전력을 다 하는 것이 시대의 상식이 된 세상에서는 모든 사람이 불편해하지 않겠는가. 돈벌이에도, 처세에도, '힐링'에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이런 책은 빨리빨리 잊혀져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한국적 아이디어'와 단절되어 있다. 아이디어의 전승은 현재의 부조리를 불편하게 한다. 돈벌이 앞에서 모든 전통적인 아이디어가 소멸되는 땅, 이게 한국의 오늘 모습이다.

한국의 아이디어는 시간적으로만 단절된 것이 아니다. 한국에서는 허용되는 아이디어와 허용되지 않는 아이디어가 있다. 이런 꼴로는 죽었다 깨도 '아이디어의 땅, 한국' 같은 영광스런 명찰은 달 수 없으며, 그런 환경에서 배태된 독일의 성숙한 제도와 정책을 따라갈 수도 없다. 그저 비슷한 짝퉁으로 흉내만 낼 수 있을 뿐이다. 당장만 해도 홍준표는 의료보험 제도를 좌파 정책이라고 비난하고 있지 않은가. 어떤 정책이 나쁘면 나쁜 이유를 들어야 하는데, 좌파 정책이라고 찍기만 하면 저절로 나쁜 정책이 되는 게 한국 땅의 기형적이고도 불우한 사상적 스펙트럼이다.

배우려면 근본부터 배워라

독일은 공산 동독을 아우르며 승리한 자본주의 국가지만, 자본주의를 가장 신랄하고 근본적으로 비판한 마르크스도 저 거대한 책더미 속에 어엿하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독일이 현대 자본주의의 많은 잘못을 수정하는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면, 그것은 마르크스에서 비롯되는 사상의 흐름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 어떤가. 제 나라에서도 아무런 거리낌없이 찍고 팔리고 읽히는 마르크스는 한국에서 오랫동안 금서가 되어 왔다. 한 시대를 열어젖힌 또 한 명의 선구자 리영희의 책도 마찬가지였다. 독일 군대에서 하힌리히 만이나 카를 마르크스의 책이 금지되었다고 생각해 보라.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이겠는가. 독일에서 사회 제도가 성숙하는 동안 한국에서는 기형적인 제도가 고착하고, 이제야 허겁지겁 독일로부터 배워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보기에, 이렇게 한국과 독일은 껍데기뿐 아니라 심연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한국이 독일에서 배워야 할 첫 번째 미덕은 청소년 직업 교육 시스템이나 의료 서비스 구조가 아니라, 시간적이고 공간적인 모두의 의미에서 다양한 아이디어를 용인하고 사회의 지력을 향상시키는 안목과 열린 자세이다. 지력이라고 하면 김대중 식 신지식인, 박근혜 식 창조 경제 따위부터 생각날지 모른다. 이런 얄팍한 돈벌이 지식을 말하는 게 아니라, 사회의 굵은 줏대가 되는 인문학적 지력, 생각하는 힘을 말하는 것이다.

현상에서 극적인 차이가 나기 때문에 서둘러 배우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문제는 훨씬 깊은 데 있다. 이 깊은 문제를 해결하거나 치유하지 않고서는 독일 배우기는 한때의 유행에 지나지 않거나, 혹은 시도하였으나 실패한 또 하나의 사례로 남을 것이다. 배우려면 근본부터 제대로 배워야 한다.




물론 이것은 제도 몇 개를 모방하여 들여오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일 것이다. 우리가 어느 결에 습득한 부정적 정체성의 근간을 건드려야 하기 때문이다. 바로 <국민일보>의 이 기획 시리즈가 좋은 사례를 보여준다. 앞선 나라로부터 배우겠다는 기획이면서도 '그 나라를 넘어'라는 무모한 제목을 달았다. 이렇게 일상화된 지긋지긋한 경쟁 마인드를 갖고서는 될 일이 아니다. 게다가 시리즈를 시작하는 기사에 걸린 대문 사진부터 '돈'이다(위 사진). 책더미 사진과 좋은 비교가 된다. 이래가지고서는 백날 쫓아가도 우리 가랑이만 찢어진다.

덧붙여, 독일 배우기가 잘 된다 해도, 우리가 독일을 배우자고 매달리는 동안 독일은 또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점도 안타깝지 않을 수 없다.


※ 첫째, 넷째 이미지: <국민일보> 홈페이지(본문에 링크), 책탑 이미지: 위키(본문에 링크), 슬로건 이미지: 독일 캠페인 웹사이트.

 

덧글

  • 아인하르트 2013/04/17 22:56 # 답글

    - 모 교회 돈으로 세워진 국민일보에서 프로테스탄티즘이란 말을 쓰는 것을 보니까, 종교개혁 무렵의 로마가톨릭과 비슷한 모양새로 향해 나아가는 모 교회가 떠오릅니다.

    - 한국에서는 인문학하면 굶는 학문이라는 인식이 아주 깊게 박혀있는 것 같습니다. (뭐 제가 이공계 쪽 공부하기는 하지만, 이공계가 위기라면 이미 한국의 인문학은 말라 비틀어지기 일보 직전...-_-;;;)
  • deulpul 2013/04/22 19:31 #

    여의도에서 구교와 신교가 정떼기하려나 봅니다... 라는 것은 턱없는 농담이고요. 위기의 이공계와 고사 직전의 인문학이면, 한국 대학에는 대체 무엇이 성하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대학 만의 문제가 아니겠습니다만...
  • A2 2013/04/18 10:36 # 삭제 답글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deulpul 2013/04/22 19:31 #

    고맙습니다.
  • blue303 2013/04/18 10:46 # 답글

    "분단과 통일, 흔들리지 않는 경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사회 안전망이 확실한 복지 체계, 패자부활이 가능한 사회, 보수와 진보 간 정책 보완, 무엇보다 각계 지도층에 배인 기독교적 소명의식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읽다보니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분단과 통일, 흔들리지 않는 경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사회 안전망이 확실한 복지 체계'까지는 상당히 공감하고, '패자부활이 가능한 사회, 보수와 진보 간 정책 보완'은 잘 모르겠기 때문에 그런가 싶었는데, '무엇보다 각계 지도층에 배인 기독교적 소명의식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허허...이건 아니죠...

    독일을 비롯한 서유럽에서 요즘에 기독교적 소명의식이라는 것을 찾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기독교 신자의 수가 급감하고 교회가 거의 없어지고 있어요. 현재 선진국 중에서 기독교가 의미가 있는 국가는 미국 정도밖에 없을 겁니다. (스페인, 이탈리아는 의미가 있으려나요, 그러나 여기는 카톨릭인 것이 함정...)

    노블레스 오블리주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현재 독일의 지도층에 기독교적 소명의식이 배어있다니 좀 어이가 없네요. 마르크스를 배출하고 니체를 낳은 독일에서...

    이런 표현은 현실의 분석이라기 보다는 글쓴 사람, 혹은 신문사의 바램이라고 봐야겠죠. (사실 도저히 이해가 안되다가 위의 아인하르트님의 댓글을 보고 신문사가 국민일보임을 상기하고 무릎을 쳤네요)
  • Misty 2013/04/19 01:11 # 삭제

    동감입니다. 기독교가 여전히 정치와 문화를 좌지우지하는 서구 선진국은 미국밖에 없죠..
  • 클로디 2013/04/20 20:58 # 삭제

    맞는말씀입니다~기독교 소명의식이란건 요즘 찾아보기 힘든것같던데...좀 억지로 붙인말처럼 보이네요. 그러고보니 국민일보가 그쪽 ~^^신문이군요
  • deulpul 2013/04/22 19:35 #

    옳은 지적입니다. 해당 신문은 종합 일간지로 발행되지만, 여의도순복음교회에 의해 설립되었고 지금도 실질적으로 관계를 갖고 있으므로 기독교적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성격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차별금지법에 대해 이 신문이 보도하는 기사들을 찾아보면 그런 성격이 쉽게 드러납니다. (http://www.kukinews.com/news/result.asp?q=%uCC28%uBCC4%uAE08%uC9C0%uBC95)

    독일의 종교 분포는 위키에 나온 2011년 통계에 따르면 가장 큰 비중은 무종교(32%)이고 가톨릭(30%), 개신교(29%), 이슬람(5%), 기타(4%)로 되어 있습니다. (http://en.wikipedia.org/wiki/Religion_in_Germany) 서구 국가들이 대개 그렇듯 사회 문화 전반에 기독교적 영향이 스며 있는 것은 사실이겠지만, 종교적 배경을 중요한 요인인 것처럼 설명하는 것은 말씀대로 설득력이 크지 않다고 봅니다. 비슷한 종교 분포를 갖고 있지만 '벤치 마킹' 대상으로는 삼지 않을 동유럽 국가들이나, 국민 90% 이상이 가톨릭을 중심으로 한 기독교임에도 위기가 그치지 않는 이탈리아 등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지요.
  • lump3n 2013/04/18 12:21 # 삭제 답글

    우아.. 이번 글은 정말 주옥같네요. 명문입니다.
  • deulpul 2013/04/22 19:36 #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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