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 기자 교육, 원칙이 중요한 시대 중매媒 몸體 (Media)

<경향신문>이 언론계 진출 희망자를 대상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인 '경향 저널리즘 스쿨'을 진행중이다. 지금 막 시작된 이번 5~6월 강의가 아마 첫 출발인 것 같다.

언론사에서 언론 실무 교육을 수행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현장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경험의 집적 자체가 훌륭한 교육 재료이기 때문이다. 미래의 언론인들이 감당해야 할 일과 넘어야 할 산은 현재의 언론인들이 가장 잘 안다. 대학에서 충분한 실무 교육이 이루어지지 못할 때, 다른 기회로 이를 보충할 수 있다면 언론에 뜻을 품은 희망자에게나 언론사에게나 바람직한 일이 될 것이다.

이렇게 좋은 취지를 가진 프로그램으로 생각하고 내용을 보면 아쉬운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첫째, 주제에 비해 시간이 너무 짧다. 이 프로그램은 두 시간짜리 강의 10회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강의 주제는 두 시간으로 다루기에는 버거운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렇다고 대학 강의처럼 한 학기 내내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중요하고도 폭넓은 주제를 짧은 시간에 커버하기 위해서는 강의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테고, 무엇보다 강의 자료가 충실하게 준비되어야 할 것이다. 수강생들도 두 시간 동안 해당 주제와 관련한 모든 것을 배워올 생각보다는, 다른 데서는 찾기 어려운 기회를 통해 앞으로 고민해야 할 화두를 떠안아 오는 것에서 더 큰 가치를 찾아야 하리라 싶다.

둘째, 언론계 지망생들이 정작 배워야 하는 중요한 내용들이 많이 빠졌다.

모두 10회 강의로 되어 있는 이 프로그램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전체적으로 실무 교육(1, 2, 3, 6, 7, 9, 10)과 전반적인 배경 교육(1, 2, 4, 5, 8)으로 구성되어 있다. 무엇이 빠졌는가. 이 시대에 제대로 된 언론인으로 살아남기 위해 꼭 필요한 1) 언론 윤리 2) 취재 보도 관련법 3) 온라인 취재 보도 등이 들어있지 않다. 한편 정치, 경제 기사 방법론과 포토 저널리즘이 들어가 있으므로 사회, 문화, 스포츠 기사론 같은 각론이 더해지면 좀더 충실한 커리큘럼을 만들 수 있으리라 싶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지만, 이름부터 거창하게 '저널리즘 스쿨'이라고 달았으니 이런 그림 정도는 가져야 하리라 믿는다.

'언론 윤리'는 언론계 종사자들이 금과옥조처럼 여기고 살아야 하는 직업적 태도와 구체적인 사례들이 될 테고, '언론 관련법'은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법적으로 할 수 있는 것과 하지 못하는 일들을 명확히 구분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며, '온라인 저널리즘'은 여전히 종이 신문의 사생아 같은 대접을 받는 온라인판 매체에서부터 온라인을 통한 취재 및 보도 방식에 이르기까지 이 시대에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이야기를 무궁무진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해당 내용들이 각각의 강의에서 부분적으로 다루어질 수도 있지만, 그렇게 처리하기에는 너무나 중요한 내용이며, 다른 어떤 것에 앞서 언론계 지망자들에게 먼저 알려주어야 할 주제다.


--- ** --- ** ---


언론이 위기라고 한다. 정확히 말하면 언론사들의 위기다. 그 위기의 원인을 여럿 찾을 수 있지만, 매체들이 독자들로부터 신뢰를 잃고 있다는 점이 그 중요한 하나라는 것은 분명하다. 언론계 종사자들에게는 듣기 거북한 말이겠지만 '기레기(기자+쓰레기, 혹은 기사+쓰레기)'라는 말까지 나오는 세상이다.

언론이 신뢰를 잃어버리는 것은 무엇보다 언론이 언론으로서의 원칙을 망각하거나 저버리기 때문이다. 온라인에 등장하는 수많은 매체와 기사들을 보면, 대체 언론이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할 수 있는 집단인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언론인이 숱하게 많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사실을 전달하기보다 자신의 편견을 독자에게 이식하기 바쁜 젊은 기자들을 보면서, 적어도 한국 언론의 문제는 한국 기자들의 문제에 다름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원칙과 원론, 이것은 언제 어디서나 중요한 것이지만, 특히 한국의 지금 언론 상황에서는 가장 시급하게 회복되어야 할 사항이다. 무슨 이론적인 논란 같은 것도 아니다. 없는 것을 새로 만들어내자는 것도 아니다. 1백여 년 동안 많은 실험을 거치며 정착된 직업 저널리즘의 사명을 되돌아보는 것이다.


--- ** --- ** ---


<오마이뉴스>에서도 '오연호의 기자 만들기'라는 이름으로 시민 기자에 대한 실무 교육이 진행중이다. 역시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 어떤 형식이든 언론에 뜻을 둔 사람들이 실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면 좋은 일일 것이다.

이 프로그램이 어떤 내용으로 이루어지는지는 알 수 없으므로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한 후기에는 다음과 같이 나왔다.

기사 쓰기의 ABC(3간40분), 기사쓰기(5시간30분), 전문가 강연(오마이뉴스 장윤선 기자, 오마이뉴스 최지용 기자,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이봉수 박사), 인터뷰가 있는 토크(시사인 고재열 기자, 미디어다음 김태형 팀장) 등 오기만 44기 교과는 다양하게 편성됐다.

여기서도 보도 종사자들이 마음에 담아두어야 할 원론적인 이야기는 다루지 않는 것 같다. 직업 저널리스트 희망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므로 이해할 만한 부분이 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방향성은 좀 생각해 봐야 할 측면이다.

<오마이뉴스>에서 나온 책 <나는 시민기자다>의 캐치 프레이즈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12명의 세상을 바꾸는 글쓰기'라고 되어 있다. 책을 홍보하기 위한 문구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이것은 언론과 관련하여 중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시민 기자든 직업 기자든, 기자가 세상을 바꾸는 것은 결과일 뿐이다. 기자들은 세상을 바꾸려 해서는 안 된다. 세상을 바꾸려는 기자들은 주로 정치인이 되거나, 아니면 정치인이나 다름없는 기자가 된다. 이들은 사실보다는 아이디어와 이데올로기를 기사의 기초로 삼는다. 세상을 바꾸고 싶은 사람들은 언론인이 아니라 사회활동가나 정치인이 되는 편이 좋다. 아니면 본인과 취재원, 독자, 세상이 모두 피곤하고 불행해진다.

<경향신문>의 '경향 저널리즘 스쿨' 프로그램 소개에는 이런 부분이 있다.

뉴스는 쏟아지고 있지만 진실을 담은 뉴스를 독자에게 전달하는 언론매체는 갈수록 적어지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참 언론의 존재 의미는 더욱 커졌습니다.

참 언론인이 만드는 참 언론은 언론의 기본 원칙과 기능부터 충실하게 충족하는 언론이다. 차세대 기자를 양성하는 교육은 언론이 무엇을 하는 집단인가부터 교육시켜야 한다. 기자에게는 저널리스트로서의 소명이 글쓰기 재능보다 훨씬 중요하다. 그리고 내가 여기서 말하는 저널리스트의 소명이란 "사회와 나라를 위해 일한다"는 인식 따위를 말하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 이미지: <경향신문> 알림.

 

덧글

  • 민노씨 2013/05/09 15:27 # 삭제 답글

    1. "시민 기자든 직업 기자든, 기자가 세상을 바꾸는 것은 결과일 뿐이다. 기자들은 세상을 바꾸려 해서는 안 된다. 세상을 바꾸려는 기자들은 주로 정치인이 되거나, 아니면 정치인이나 다름없는 기자가 된다. 이들은 사실보다는 아이디어와 이데올로기를 기사의 기초로 삼는다. 세상을 바꾸고 싶은 사람들은 언론인이 아니라 사회활동가나 정치인이 되는 편이 좋다. 아니면 본인과 취재원, 독자, 세상이 모두 피곤하고 불행해진다."

    2. "기자에게는 저널리스트로서의 소명이 글쓰기 재능보다 훨씬 중요하다. 그리고 내가 여기서 말하는 저널리스트의 소명이란 "사회와 나라를 위해 일한다"는 인식 따위를 말하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1.까지는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읽었습니다만, 2.에 와서는 좀 갸우뚱해집니다. 현대 정론지 모델이 지향하는 '불편부당'을 강조하신 취지로 읽었습니다만(맞는지요?), 저는 오히려 그 정론지 모델, 불편부당에 대한 불가능한 추구가 저널리즘을 망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보곤 합니다.

    마치 중세의 문인들이 자신의 호구를 책임져주는 귀족(후원자, 파트롱)이라는 존재의 이익을 반영하는 글쓰기를 했듯, 현대의 언론사들도 겉으로는 불편부당과 사실에 대한 불가침을 이야기하지만, 실은 적대적 공생의 이데올리기적 상업구조 속에서 또는 노골적으로 자본권력과 정치권력과 공생구조를 형성하면서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있는 것으로 관찰됩니다.

    물론 이것은 정상적이지 않은 모습입니다. 저널리즘이 아주 아주 왜곡된 불행한 시공간의 모습이기는 합니다만, 현재의 조건(역사적으로 도달한 시공간적 한계)를 인정하는 전제에서 저널리즘이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탐구는 변화하고, 변화해야 마땅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종종 하는 비유인데, 몽테스키외는 법관의 소명을 "법관은 입만 가진 무생물이고, 법전에 있는 규정을 사안에 그대로 대입만 하는 기계가 되어야 한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데요. 이것이 마치 사실에 관한 기자/저널리스트의 관계인 것 같기도 합니다. (물론 이 취지는 저도 십분 공감합니다)

    즉, 사실에 대한 불가침은 아주 매력적인 명제입니다만, 저널리즘의 편집(선택)행위와 글쓰기의 문법이 아무리 정치하게 발달했다고 하더라도, 세상의 모든 글쓰기는 당파적인 속성과 지향으로서의 철학을 반영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싶습니다. 무엇보다 '기자'라는 실존의 존재에게 내재된 세상의 관여가 '무생물' '기계'로서의 상태를 유지하기 어렵게 할 것 같고, 그것이 오로지 저널리즘의 취고 덕목이 되어야 하는지는 의문입니다.

    글이 길어졌는데요. 간단히 다시 함축하면, 쓰는 이의 관점에서 글쓰기는, 그것이 일기이든, 소설이든, 기사이든 상관없이 선택과 해석의 과정을 빗겨갈 수 없다는 점에서 '당파성'을 내재하고, 읽는 이의 관점에서는 역시나 독서 행위라는 것은 또 다른 해석 행위이므로 '불가침으로서의 사실'은 사실은 환상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듭니다. 그럴 때 가장 필요한 것은 '특정한 시공간에 도달한 최고의 공동선'을 추구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에게 그런 것은 '평등'이라거나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 '돈과 지위와 권력에 의해 사람이 평가되어선 안된다' 거나 하는 소위 '인본주의'인 것 같습니다. 이것은 "국가와 사회를 위해서"라는 그 범주에 포함되는 것이라고 보는데, 그렇다면 이는 잘못된 태도라 보시는지요?
  • deulpul 2013/05/10 12:31 #

    언론의 객관성을 말씀하신 것이라면, 제가 늘 말씀드리는 대로 언론의 객관성은 (말씀하신 개인이나 구조의 문제 때문에)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목표라 하더라도, 그래서 내팽개쳐질 것이 아니라 그 미완성(未完性)을 전제하고도 여전히 끊임없이 추구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직업 저널리즘은 그러한 대의에 그중 가깝게 다가온 사회 제도라고 생각하고요. 당파적인 입장을 갖고 까더라도 사실을 갖고 까야 한다는 식이랄까요.

    마지막에 쓴 "나라와 사회를 위해 일한다"라는 말은, 허위 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주진우가 검찰에 불려가면서 청사 앞에서 기자들에게 한 말입니다(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XrooRxMohKY#!). 보시면 왜 그렇게 썼나 이해하실 겁니다. 기자가 뭐 하는지는 알면서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모르고, 그저 사회와 나라를 위한 일이라고 비분강개합니다만, '사회와 나라를 위한 일'을 다르게 정의하는 사람, 이를테면 변가 같은 경우는 정반대의 방향에서 똑같은 이야기 할 수 있지요. 이런 당파성에서 오는 개념 혼란과 언론 본연의 임무 방기가 한국 언론의 지형과 독자 제현을 함께 개판으로 만든 중요한 요인이고, 그러한 악영향을 줄일 수 있는 것은 역시 사실에 살고 사실에 죽는 직업 저널리즘(기자 직업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 민노씨 2013/05/10 15:25 # 삭제 답글

    "당파적인 입장을 갖고 까더라도 사실을 갖고 까야 한다"는 말씀에 아주 공감하고, 동의합니다.

    모든 문장과 문단들은 다양한 숨겨진 맥락에 따라 편차가 생기기 마련인데, 제가 너무 제 편의에 따라 해석한 듯 합니다. 주 씨와 변 씨 말씀을 하시니 말씀하신 취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추. 이 댓글도 그렇고, 다른 글에 남긴 댓글도 그렇고.... 바쁜 마음으로 생각나는대로 타자하다보니 오타 만발이네요...;;; 이 점 널리 양해 구합니다.
  • deulpul 2013/05/10 17:09 #

    아닙니다. 제가 서둘러 읽어서 쓰신 뜻을 잘 이해했나 의구심이 났으며, 아울러 본문에 쓴 것도 맥락을 밝히지 않아서 오해의 여지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위 댓글에 쓰신 말씀은 매우 중요한 실마리이면서도 저 역시 해결책을 딱 부러지게 갖고 있지 못하는 문제이며, 매체에 직간접으로 관련이 있는 모든 사람이 붙잡고 살아야 하는 화두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쪽에서도 인터넷을 통한 대안 매체와 블로그의 등장을 계기로 하여 저널리즘에서 객관성의 문제, 또 의도적으로 가치중립성을 배제하는 매체 행위에 대한 고찰들이 나오고 있는데, 시간 될 때 조금씩 살펴보겠습니다.
댓글 입력 영역



Adsense

Adsense2

구글 애널리틱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