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타시보다 엄정한 국정원 때時 일事 (Issues)

‘원세훈 前 국정원장 험담’ 국정원 직원 해임 무효

이런 일도 있었던 모양이다. 국정원 직원이 식사 자리에서 이명박과 원세훈을 비꼬는 말을 했다고 해임되었으며, 이 조처가 부당하다고 낸 소송에서 승소했다는 기사다.


김씨는 지난 2010년 11월 동료들과의 점심식사 자리에서 대통령과 원세훈 당시 원장을 비꼬는 막말을 했다는 이유로 2011년 9월 해임됐다. 당시 김씨는 술에 취해 “이명박은 별거 아닌데 서울시장하다 대통령이 됐다”거나 “원세훈 원장은 이명박이 서울시장할 때 똘마니하다가 여기 와서 뭘 알겠느냐”는 등의 말을 했다.


이 부분을 읽자니 영화 <타인의 삶>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동독 비밀경찰 슈타시의 구내식당에서 국가 원수인 공산당 서기장 호네커를 비꼬는 농담이 오가는 장면이다. 관리감독직인 주인공 비즐러와 동료이자 직속 상관인 그루비츠가 식사를 하고 있는데, 한 직원이 자기 동료에게 농담을 시작한다.




슈타시 직원이 한 농담:

호네커가 아침에 사무실로 들어와서 해를 보고 말했다. "좋은 아침이다, 해야." 해가 대답하기를 "좋은 아침입니다, 서기장 각하." 점심때가 되자 다시 말하기를 "좋은 날이다, 해야." 해는 "좋은 날입니다, 서기장 각하"라고 말했다. 하루 일과가 끝난 뒤 호네커는 다시 창으로 가서 말했다. "좋은 저녁이다, 해야." 그런데 해는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한번 말했다. "좋은 저녁이다 해야. 뭐가 잘못된 거냐?" 그러자 해가 대답하기를 "엿이나 처드시오. 난 지금 서쪽(서독)에 있단 말이오."

그루비츠가 한 농담:

호네커와 전화기의 차이는? 없다. 둘 다, 끊어버리고 다시 건다. (매달아 버리고 다시 뽑는 다는 뜻도 담긴 독일어 말장난).

마지막 장면에서 비즐러는 농담을 하는 직속 상관 그루비츠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본다. 이 유튜브 영상 바로 앞에서 그루비츠는 비즐러에게 장관의 비리를 덮으라는 지시를 하는데, 비즐러는 이렇게 항변한다. "그런 일 하자고 여기 들어왔습니까? 우리가 한 선서 다 잊었습니까? '당의 방패와 창이 된다'고 한 거?" 공산당 1당 국가에서 당의 방패와 창이 된다는 것은 곧 국가의 방패와 창이 된다는 뜻이고, 그래서 당 간부들 개인이나 챙겨주는 공작 활동을 기막혀 한 것이다.

국정원의 원훈은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이다. '대통령이나 원장을 향한 무명의 헌신'이 아니라는 점이 눈에 띈다.

국정원 직원이 낸 소송에서 해임 처분 무효 판결을 내린 재판부는 '국가원수나 조직 수장에 대한 부적절한 언행이 명예를 실추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직원 오찬 자리에서의 다소 과격한 언사가 해임에 이를 정도의 비위라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영화긴 하지만 슈타시도 웃고 넘어가는 일을 갖고 직원을 해임할 정도로 엄정하고 추상 같은 국정원이니, 원세훈의 국기 문란 불법 행위에도 추상 같은 태도를 견지할 것으로 믿는다. 국정원 홈페이지는 원훈에 들어있는 '진리'라는 말을 이렇게 풀어 놓았다.

"정치적 중립을 확고히 지켜나가면서 오직 정의와 진리의 편에서 판단함으로써 어떤 이해관계에도 치우치지 않은 객관적이고 진실된 정보만을 제공하겠습니다."

말하자면 원세훈은 반국정원 사범이기도 한 것이다.

한편 이 직원 해임 사건에서 내게 더 놀라운 일은 그가 이명박과 원세훈 험담을 했다는 것보다 "점심 식사 자리에서"(기사) 혹은 "오찬 자리에서"(판결문) 직원이 "술에 취해" 저런 말을 했다는 것이다. 점심 식사중에 술에 취하다... 좋구나.

여담이지만, 이 사건은 이명박을 비난하는 트윗을 반복하여 올린 육군 대위 사건과는 성격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또 당연한 말이지만 노무현 재임 시절에 국정원 직원이 같은 일을 벌였더라도 그를 해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2004년에 한 경찰관이 정당 게시판에 '노 정권은 김정일 2중대'라는 글을 게시했다가 해임된 것도, 발언의 내용과 발설 경로의 중대함이 국정원 직원 경우와 크게 다르긴 하지만 역시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노무현을 비난한 경찰관도 술을 마셨다. 해당 사건 판결문에 따르면 "이씨가 신분을 망각한채 음주상태로 근무하던 중 불특정 다수가 접속하는 여당 홈페이지에서 대통령을 과격한 표현으로 비방"했다고 한다. 한국에서 표현의 자유의 지평을 넓히는 1등 공신은 술인 것 같다.

 

덧글

  • Merkyzedek 2013/05/07 17:58 # 답글

    국정원 인력이면 그래도 고급인력일텐데... 무슨 맥너겟 먹듯이 인사조치를 해버리는 군요,
  • deulpul 2013/05/08 10:26 #

    해임에 이르는 조처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좀 어이없긴 합니다. 게다가, 그 식사 자리에 인사권자가 있었던 게 아니라면, 동료 누군가가 '이 사람이 원장님 씹었음'하고 보고했다는 이야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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