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틀맨 윤창중 때時 일事 (Issues)

윤창중 성추행 사건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싸이의 '젠틀맨'을 떠올리게 된다.

알랑가 몰라 왜 화끈해야 하는 건지
알랑가 몰라 왜 말끔해야 하는 건지
알랑가 몰라 아리까리 하면 까리해

있잖아 말이야 이 사람으로 말씀드리자면 말이야
용기 패기 똘끼 멋쟁이 말이야
너가 듣고픈말 하고픈게 난데 말이야
Damn! Girl! You so freakin sexy!

알랑가 몰라 빨리 빨리와서 난리네
알랑가 몰라 난리 난리났어 빨리해

있잖아 말이야 너의 머리 허리 다리 종아리 말이야
Good! feeling feeling? Good! 부드럽게 말이야
아주 그냥 헉 소리 나게 악 소리 나게 말이야
Damn! Girl! I’m a party mafia!


('젠틀맨' 가사 일부)

말끔하고 화끈하고 아리까리한 남자, 용기 패기 똘끼로 뭉친 멋쟁이 남자, 호텔방에 난리났으니 빨리 오라고 전화질을 하는 남자, 남의 엉덩이를 그냥 헉 소리 나게 악 소리 나게 주무른 남자. 보도에 따르면 윤창중은 '젠틀맨'의 정확한 현실 구현체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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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틀맨'은 풍자라고 한다. 말이 젠틀맨이지 하는 짓은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영상까지 함께 보아야 납득이 된다. 본질적으로 '젠틀맨'은 노래라기보다 영상과 음악과 텍스트가 함께 존재해야 이해되는 문화 상품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렇게 해야 메시지랄까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대개 풍자물은 그것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며, 대신 의미의 층을 여럿으로 하여 이루어져 있다. 겉으로 보이는 외피와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담은 진피가 서로 다른 것이다. 고도의 풍자일수록 이 층이 복잡하고, 그러면서도 층들을 관통하는 의미의 일관성이 명확할 때 좋은 풍자가 된다.

'젠틀맨'에서는 겉으로 드러나는 선정적인 몸짓과 성적인 주제로 이루어진 영상이 겉의 층이라면, 여기에 '나는 존나 젠틀맨'이라는 가사가 덧입혀지면서 떠오르는 허위의식이나 부조리는 속의 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풍자물의 의미 전달에는 언제나 위험 요소가 있다. 풍자물에 노출되는 수용자의 일부는 이 복수의 의미층을 이해하지 않고 외피에만 주목한다. 진정한 의미가 담긴 진피를 향해 의미층을 꿰뚫어 들어가지 않고 껍데기에 머물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위험은 이미 이 곳에서 몇 가지 사례를 빌어 쓴 바 있다.

'젠틀맨'의 경우, 이것이 풍자물로 인식되기 위해서는 영상뿐 아니라 가사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했는데, 가사의 전달력이 약해지는 수용자층, 이를테면 한국어를 모르는 외국인에게는 이 문화 상품의 메시지가 풍자라는 점을 인식할 가능성이 작아지게 된다. 무엇보다, 이들에게는 '젠틀맨'이 풍자인지 아닌지가 중요하지 않다. 이들에게는 그냥 리듬과 댄스로 소구된다.

'강남 스타일'도 풍자적 성격을 가졌다는 평이 있었다. 그러나 이 노래가 전세계적 인기를 끈 요인 중에서 그런 풍자가 차지한 비중은 미미할 것이다. '강남 스타일'을 좋아한 외국인 중에서, 이 노래가 한국 강남의 일부 계층에 대한 풍자라서 좋아한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 사람들은 심지어 가사를 몰라도 이 노래를 좋아한다. 음악과, 무엇보다 춤 때문이다. 이들에게 '강남 스타일'이 의미하는 바는 강남 계층에 대한 풍자가 아니라 그냥 말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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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점에서 나는 '젠틀맨'을 처음 볼 때부터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희준이 '젠틀맨'을 포르노 한류라고 규정한 것은, 상징적인 표현으로 쓴 것이겠지만 좀 지나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쁜 취향(bad taste)인 것은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나로서는 풍자적 메시지까지는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런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도구로 아랫도리 줄기차게 흔들기를 비롯한 성적 소구 방식을 선택한 것은 오로지 상업성이 추동한 탓이라고 본다. 상업성이든 나쁜 취향이든 성적 소구든, 만들고 즐기는 것을 누가 뭐랄 수 없다. 문제는 일단 뜨기만 하면 전국민이 집체적으로 몰두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하는 한민족의 문화 상품 소비 방식 때문이다. 말하자면 문화 상품 자체보다 소비의 측면이 더 걱정되었다는 것이다.

'강남 스타일'은 크게 유행해서 세계적으로 성공했다. 덕분에 말춤은 애 어른 할 것 없이 기회만 있으면 추는 세계적인 춤이 됐고, 한국인은 말춤의 종주국이 됐다. 정치인처럼 근엄한 사람들도 술자리 애프터도 아니고 공식적인 자리에서까지 말춤을 춰댔다.

2012년 9월에 박근혜는 부산에서 대통령선대위 출범에 참여했다가 말춤을 추었다. 정식으로 춘 건 아니고, 개념 없는 여대생 당원들이 지들이나 할 것이지 갑자기 박근혜를 불러내서 부추기는 바람에, 박근혜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면서 잠깐 몸짓을 보여줬다. 그 바로 전에는 이정희가 임시당대회에서 말춤을 췄다. 아주 본격적으로 했다. '강남 스타일'을 개사한 '진보 스타일'에 맞춰 제대로 추었고, 옆에서는 김재연도 신나게 말을 탔다.

대선 토론회에서 앙숙 같은 면모를 보여 준 박근혜와 이정희가 "오오 섹시 레이디, 갈 때까지 가볼까~"에 몸을 흔든다. 가히 말춤으로 한민족 대동단결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지경이라, 나는 '젠틀맨'이 '강남 스타일'처럼 뜨게 되면 한국 사람들은 또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허리를 흔드는 춤을 추어대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TV에서는 시청자를 웃기려고 시도때도 없이 그런 짓을 하고, 시청자는 그게 응당 쫓아야 하는 트렌드인 줄 알고 또 그 짓을 하고. 저 혼자 하는 것도 아니고, 싫다는 사람 끌어내서 함께 하자고 하겠지. 박근혜가, 이정희가, 그리고 모두가 너나없이 아랫도리를 요리조리 놀리는 춤을 추어대는 추태는 정말 역겨워서 보지 못할 것 같다. 다행히 아직까지 그런 판은 벌어지지 않은 것 같다. (잠깐 춤 이야기를 하자면, 이걸 시건방춤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내가 보기에 더 적합한 말은 요분질춤이 아닐까 한다. 요분질이라는 말은 사전에서 찾아보시기 바란다.)

이런 걱정이 과민한 것이라면 좋겠는데, 아니나 다를까 어느 지방경찰청에서 '젠틀맨을 패러디'하여 홍보물을 제작했다고 자랑질을 하는 것 보고, 역시 어디 가지 않는구나 싶었다. 뜨기만 하면, 이기기만 하면 내용을 따져 볼 겨를 없이 무조건 추종하고 보는 마인드. 홍보물 제작과 홍보 방식을 보면 공군의 '레밀리터리블'과 판에 박은 듯 흡사하다. 전남지방경찰청 홍보 담당자들은 엄청난 인기를 끈 공군 경우를 떠올리며 화제의 중심에 들기를 기대하였겠지만, 그들이 입증한 것은 치안을 담당해야 할 공공 기관이 홍보물에 적당한 취향을 알아볼 안목조차 갖지 못한 채 유행만 허겁지겁 쫓는 부박한 인사들로 이루어졌다는 점뿐이다. 청장을 비롯한 직원들이 나서서 여성을 끼고 아랫도리를 흔드는 홍보물을 만들어야 할 일인가. "I'm mother father gentle pol"이란다... 기가 차서. 제발 낄 데 좀 껴라. (놀랍게도 며칠 뒤 경기경찰청에서도 유사한 홍보물이 올라왔다. 아주 놀고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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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중의 성추행 추문은 이미 여러 외신에 보도되어 나라 얼굴에 먹칠을 하고 있다. 그 중 하나인 <워싱턴 포스트>에 실린 기사의 댓글에는 이런 것이 있다:

Korean rapper Psy's latest hit video,"Gentleman" (NOT!), may be setting a bad example for Korean men. You should see the hijinks stuff he does in that video, like pulling the top off a lady in her bathing suit. ... (한국 래퍼 싸이의 최근 인기 비디오 '젠틀맨'(물론 신사가 아니다!)은 한국인 남자의 나쁜 사례를 정형화하는 것 같다. 영상 속에서 남자가 신이 나서 좌충우돌 저지르는 것들을 보라. 한 여성의 수영복 윗도리를 풀어내린다든지. ...)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젠틀맨' 유튜브 동영상에 달린 댓글이 아니라 윤창중 기사에 달린 댓글이다. 성폭행 혐의자 윤창중의 이미지와 싸이의 '젠틀맨'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겹쳐 생각하는 셈이다. 그리고 이런 댓글들:

Obviously this is the habit of a man accustomed to being entertained at room salons, a norm in good old Asian countries. (룸살롱에서 즐기던 데 익숙해져 있는 남자의 습관으로, 잘 나가는 전통적인 아시아 국가들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What an idiot? I guess they don't have the concept of lawsuits in Korea yet. (멍청한 인간 아닌가? 한국에는 아직 고발이라는 개념이 없는 모양이다.)

이것은 윤창중에 대해서뿐만이 아니라, '젠틀맨'에 등장하는 주인공에 대해서도 꼭같이 할 수 있는 말이다.

풍자물이 액면으로만 읽힐 수 있는 본질적 위험, 실제로 많은 외국인에게 '강남 스타일'이나 '젠틀맨'은 풍자물이 아니라 그냥 액면 그대로 보고 즐기는 엔터테인먼트라는 점, '젠틀맨'에 일관되어 있는 나쁜 취향, 그리고 윤창중. 어떤 외국인에게 윤창중과 '젠틀맨'은 나쁜 한국 남자를 뜻하는 두 가지 다른 표상으로 인식될 것이다. 나는 이 두 표상이 한국인 남자 일반에 대한 이미지로 받아들여지지 않기를 오로지 바랄 뿐이다.

 

덧글

  • mooyoung 2013/05/11 12:57 # 답글

    저는 언어문화를 영화 '친구' 이전과 이후로 나눠 생각합니다. 지금은 그나마 아이들사이에서 아주 조금 나아진 듯 하지만 (아닌가...) 그렇듯 bad가 humor의 분위기로 위장하는 것, 폭력을 장난으로 또는 권리로 생각하게 하는 것..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문화의 속성,,, 풍자문화를 누릴 수 있는 환경이라면 좀 달라질까요..
  • deulpul 2013/05/11 16:06 #

    <친구>를 다시 생각해 보았는데, 오래 되어서 그런지 언어 분수령으로서의 의미는 잘 생각나지 않네요. 기회가 되면 좀 밝혀 주십시오. 폭력 같은 것이 경험 속에서 학습되는 점은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대중문화 속의 간접 체험은 어떠냐... 아 이건 너무 머리가 아픕니다.
  • mooyoung 2013/05/11 18:41 #

    deulpul님 못합니다. 언젠가 갑자기 욕이 범람하는 이유가.. 궁금해서 해보려는 생각이 없진 않았지만,,, 글쎄요. 능력이 안됩니다. deulpul님이 계속 약올리면 할지도..ㅎㅎ
  • deulpul 2013/05/14 13:37 #

    아, 그런 의미가 있었던가요. 그러고보니 언젠가부터 한국 영화에 욕이 자연스럽게 등장하게 된 것 같기도 합니다. 이건 영화의 소재가 한때 갱으로 집중되던 현상과도 관련이 있을 텐데, 리얼리티가 강해졌다고 할까요. 제 경우 이쪽으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대한민국 모든 학교에 족구를 보급한 권상우... 말씀하신 것은 꼭 한번 정리해 보십시오.
  • 민노씨 2013/05/11 15:13 # 삭제 답글

    고개를 연신 끄덕이면서 읽었네요.
    탁월한 문화비평이자 시론입니다.
    역시 deulpul 님! : )
  • deulpul 2013/05/11 16:10 #

    사실은 인근 학교에서 열린 각국 고유 문화를 소개하는 행사에서 한국 아이들이 하려고 했던 '강남 스타일'이 취소된 것을 보고, 심지어 '젠틀맨'을 하려고 했으면 어쨌을까 하며 생각하여 끄적여 놨던 것인데, 묵혀놨다가 대변인님 덕분에 재활용하는군요...
  • Jane 2013/05/19 07:45 # 삭제 답글

    해외에 사는 입장에서 보면 싸이의 인기가 자체가 솔직히 별로 달갑지는 않아요..

    뚱뚱하고 못생긴 전형적인 Asian 남성이 우스운 춤을 추는 컨셉이
    꼭 Asian stereotype 그 차체 인거 같아서 말이죠..

    예전에 한국인이라고 하면 태권도 할줄알아? 해봐.. 라고 시키더니
    요즘은 한국인이라고 하면 갱남 스타일 춤 춰봐.. 라고 합니다. --

    한국 노래중 아름다운 노래도 많은데
    동양버전의 LMFAO.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노래가
    한국이라는 나라를 대변한다는게..

    다시 한번 내가 참 작은나라 소수민족에서 왔구나.. 라고 느끼게 한달까요 ?
    중국? 하면 만리장성부터 역사얘기.. 일본? 하면 애니메이션 문화 컨텐츠 등등
    외국인들도 많이 아는데.. 한국? 그러면 겨우 강남스타일 얘기 뿐입니다 ;;

    아이러니 하면서도.. 내가 참 초라해진다고 할까요 ?.. 그냥 그런느낌이에요..
  • deulpul 2013/05/19 12:31 #

    아무리 문화비평가들이 비판을 하고 부정을 해도, 싸이에게는 국가적 아우라가 어쩔 수 없이 끼어 있는 것 같습니다.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 모두 포함해서 그렇겠지요. 오로지 세계적으로 성공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됩니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널리 알려지는가'라는 질문과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떻게(어떤 이미지로) 알려지는가'라는 질문은 분명히 다른 것인데, 우리는 여전히 후자보다는 전자에 더 신경을 쓰고 오로지 그것만으로 열광하며 사는 것 같습니다.

    왜소한 한국의 이미지는 도서관이나 서점의 세계 역사 관련 책들에서 중국과 일본 사이에 있어야 할 한국사가 한 단락도 들어있지 않음을 발견할 때 뼈저리게 느끼곤 하죠. 하는 수 있나요. 누가 '갱남 스타일' 춤 춰봐 하면 '이런 것도 있거든?' 하면서 부채춤이나 탈춤의 한 자락을 살며시 선보인다든가, 말씀하신 아름다운 노래를 대신 들려준다든가... 하는 교과서적인 이야기밖에 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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