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옮겨 쓰는 필경(筆耕) 언론들 중매媒 몸體 (Media)

오비와 하이트진로의 맥주 세계품평회 은, 동상 수상을 축하합니다! /1437

호주에서 열린 국제 맥주품평회에서 한국 맥주들이 은상, 동상을 받는 좋은 성적을 거뒀다고 자랑하고 있는데, 강우님이 찾아본 결과 실상은 품평회에 나온 전세계 맥주 1,480종 중에서 절반에 가까운 658종이 저런 상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번 AIBA 2013에는 35개국 230여 이상의 업체가 참여, 1480종의 맥주가 출품되었고 이 중 금상 57종, 은상 190종, 동상 411종 - 총 658개의 메달이 수여되었습니다."

즉 참여 제품의 절반은 메달을 받았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두 제품을 출품하면 하나는 상을 받는 격이고 참가도 230여개 업체였던 만큼 업체 평균 출품 갯수를 6.5개 정도로 가정한다면 업체당 3~4개의 메달은 수상했을 여건이 되었다는 것이죠.

그거 참 후한 상이네요. 학교에서도 이렇게 주면 애들 이력서에 쓸 거 늘어날텐데.


이런 결과를 갖고 해당 업체가 뿌린 보도자료에 근거한 듯한 기사들은 대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오비맥주의 `카스 후레쉬'와 `OB 골든라거'가 세계 3대 맥주품평회에서 은상을 받았다.

오비맥주(대표 장인수)는 카스와 OB 골든라거가 `2013 호주 국제 맥주품평회'에서 은상을 수상했다고 29일 밝혔다. 카스 후레쉬는 아메리칸 라거스타일 맥주 부문에서 은상을 받았다. 특히 올해는 금상 수상작이 나오지 않아 사실상 1위를 차지한 셈이다.

OB 골든라거는 유럽 라거 독일 스타일 맥주 부문에서 은상을 수상했다. `카스 라이트'와 `카프리'는 저탄수화물 라거 부문과 인터내셔널 라거 부문에서 각각 동상을 받았다.

2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호주 국제 맥주품평회는 미국의 맥주월드컵, 글로벌 맥주 품평회 IBA, 유럽 맥주대회와 함께 세계 주요 맥주대회로 불린다.


기사만 보면 한국 맥주가 국제적으로 매우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오해하게 되어 있다. 올림픽에서 보듯 금상, 은상, 동상은 보통 아주 제한적인 수의 경쟁 참여자에게만 주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상은 위 블로그 글에서 추산했듯, 출품 업체당 3~4개의 메달을 받은 품평회다.

상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 상의 내역이 상의 성격을 규정한다. 한마디로 과대 포장 마케팅 사례라 할 만하다.

업체는 자기네 상품을 뻥튀기를 해서라도 잘 보이게 만들고 싶을 수 있으니까 그렇다 치자. 문제는 이런 자료를 그대로 긁어서 내보내는 매체들이다.

- 오비맥주 카스 골든라거 호주국제맥주품평회 은상 수상 (디지털타임스)
- 오비 카스·OB골든라거, 2013호주국제맥주품평회 은상 수상 (매일경제)
- ‘카스’·‘OB 골든라거’ 세계 3대 맥주품평회서 수상 (매일신문)
- OB맥주 '2003 호주 국제맥주대회' 휩쓸어 (머니투데이)
- 오비맥주 '카스 후레쉬'-'OB 골든라거' 세계 3대 맥주품평회에서 은상 수상 (세계일보)
- 오비맥주 카스·OB골든라거, 호주 맥주 품평회 은상 수상 (아시아경제)
- 오비맥주 ‘카스’ ㆍ‘OB골든라거’, 2013호주국제맥주품평회 은상 (SBS)
- 카스후레쉬·OB골든라거 세계품평회서 은상 수상 (연합뉴스 via 한국일보)
- [브리핑] 오비맥주, 호주맥주품평회서 은상 (중앙일보)
- 오비맥주 ‘카스’, ‘OB골든라거’ 호주국제맥주품평회 은상 수상 (파이낸셜 뉴스)
- 한국서는 맛 없다는데…오비 ‘카스·OB골든라거’…호주맥주품평회서 은상 (헤럴드경제)

그래도 이름이 알려진 매체에 나온 기사들만 뽑아봤다. 이상의 기사들은 모두 천편일률적으로 똑같다. 보도자료 탓일 것이다. 지나가는 말로라도 이 품평회가 시상한 내역의 진면목을 언급한 기사는 하나도 없다. 심지어 <헤럴드경제>는 "한국서는 맛 없다는데"라고 하여 시상 결과를 그러한 주장의 반증으로 삼으려고 했고, <머니투데이>는 "국제맥주대회 휩쓸어"라고 표현했다. 이것은 내막을 잘 모르고 쓴 제목이라고 해도 왜곡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한국 맥주가 맛이 없다는 주장은 끊임없이 나온 바 있다. 나름대로 화제가 되는 이슈다. 음식 맛이야 사람 입맛에 따라 다르게 평가할 수 있겠지만, 그런 맛을 이렇게 객관화하려는 시도가 있다면 제대로 된 근거를 갖고 그러는 것인지 점검해야 한다. 매체가 안 하면 누가 하겠는가.

돈도 안 받는 블로거가 할 수 있는 일을 월급 받으며 취재하는 기자가 왜 못하는가. 그거 하라고 월급 받고 기자 직함 달고 있는 것 아닌가. 업체 보도자료만 베껴 기사를 쓰는 것은 기자가 아니라 필경사가 하는 일이다. 보도자료가 있으면 그것을 바탕으로 하여 전후 사실 맥락을 따져 보고 그렇게 파악한 진실을 독자에게 알리는 일을 하는 것이 이른바 기자겠지요.

 

덧글

  • 夢影 2013/05/30 11:31 # 답글

    다른 기사들도 대부분 보도자료 재편집한 수준이라 참 돈 쉽게 번다 싶더라고요. 그나마 머리 쓰는 건 자극적인 제목 뽑기일지도.
  • deulpul 2013/05/30 20:04 #

    홍보용으로 나온 자료를 활용하여 보도할 필요가 있는 경우도 있긴 합니다만, 조금이라도 쟁점이 있는 경우는 분명히 확인을 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보도자료란 본질적으로 한 쪽의 입장/주장이고, 저널리즘이 한 쪽의 주장만 쓰는 것은 일단 실패하고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 검투사 2013/05/30 14:12 # 답글

    책 쪽도 심합니다. 그래도 실어주는 것만으로도 출판사도, 담당편집자도 굽쉰굽쉴할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이죠.
    드라마 같은 경우... <마의> 관련한 기사들을 검색할 때마다... 정말 "언론고시 봤어야 하는 건데" 하는 생각만 들더라는... -ㅅ-
  • deulpul 2013/05/30 20:07 #

    들어가시면 달라집니다... 는 농담이고요, 열심히 노력하는 기자들도 많죠. 지금의 매체 환경 탓도 분명 있고요. 출판 기사들은 그래도 담당자가 한 번은 읽어보고 쓴다고 믿습니다만, 그래도 보도자료 참고 많이 하죠. 보도자료대로 실어주면 출판사 쪽에서는 오호쾌재라이겠고요...
  • 검투사 2013/05/30 20:31 #

    보도자료 대로, 그것도 많이 실리면 좋기는 한데... 문득 "이건 뭐지" 하는 회의감도 들고...
    아무튼 여산과 북피알 등을 통해 하루에도 수백 권씩 쏟아져 들어온다니까 이해하자 싶다가도...
  • 夢影 2013/05/31 10:55 #

    으, 저도 검투사님의 말씀에 한표. 편집자 입장에서는 내 귀한 아이를 거들떠도 안 보고 인스턴트 식품 찍어내듯 보도자료 그대로 내버리면 허탈감이... 그게 단신부분만 그러면 괜찮은데 문화1면에 실리는 정식 서평도 출판사 보도자료에 그대로 의존해버리니까 좀 그래요. 쟁점적인 사항이 있으면 스스로 다른 근거자료를 조사를 해볼 만도 한데 그런 거 없이 편집부에 전화해서 (책 관련 정보가 아니라 사실 관계의 정보) 자료를 내놓으라고 요구를 하면 내가 당신 기사 써주는 사람이오? 하고 묻고 싶은 마음이 울컥. 물론 요구라도 해주면 그나마 낫지만.. ㅡ,ㅜ
  • 검투사 2013/05/31 11:01 #

    夢影 /

    그들은 갑, 우리는 을...

    진격의 출판부 기자...
  • 민노씨 2013/06/05 02:01 # 삭제 답글

    정말 한심지경이네요...ㅡㅡ;;
    발아점 역할을 한 강우 님 글에 있는 "찾아보았습니다"는 표현이 마음 속에서 공명되더랍니다...
  • deulpul 2013/06/06 17:21 #

    세심하게 잘 보셨군요. 점점 더 자주 느끼는 것인데, 의심이 나서 찾아보면 거의 100% 걸립니다. 이게 대체 무언가를 신뢰할 수 있는 세상인가 싶어요. 개가 도둑을 보고도 짖지를 않으니 사람이 짖을 수밖에 없는 세상입니다.
  • 민노씨 2013/06/08 06:19 # 삭제 답글

    "개가 도둑을 보고도 짖지를 않으니 사람이 짖을 수밖에 없는 세상입니다."라는 표현은 참으로 씁쓸하면서도... :( 한편으로 너무 절묘한 표현입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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