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검열 섞일雜 끓일湯 (Others)

마릴린 벅은 미국의 마르크스주의 활동가이자 여성/흑인 운동가이며 시인이다. UC 버클리와 텍사스 오스틴 대학에서 공부하였다. 지하 조직에서 활동하다 1980년을 전후로 하여 벌어진 탈옥, 은행강도, 미국 의회 폭탄 공격 등에 연루된 혐의로 체포되어 80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평생을 감옥에 갇혀 있었으며, 그 안에서 많은 시와 글을 쓰고 상을 받았다. 석방 운동이 꾸준히 벌어졌으나 석방되지 못했다. 투옥된 지 25년 만인 2010년, 62세 때 암이 심해져서 가석방되었다. 감옥을 나온 뒤 20일 만에 사망하였다.



나는 편지를 쓰고나서 다시 읽는다. 주먹을 꼭 쥔다. 쓴 대로 보내야 할 것인가를 판단하기 어렵다. 이렇게 써도 될까. 편지는 그날 부치지 않는다. 다음날 아침 나는 편지를 다시 쓰기로 한다. 내 생각을 좀더 모호한 언어로 바꾼다. 이 편지를 읽는 사람은 모호함과 추상성 때문에 짜증을 내지는 않을까.

내가 흩어지다가 이윽고 추상성이 되어가는 것 같다. 나는 내 자신을 검열한다. 마치 화가가 화폭에 추상적인 색깔과 모양을 그리며 자신의 의도를 감추듯이. 그림을 통해 어떤 말을 하려고 하는지는 오로지 화가 자신만이 확신할 수 있다. 그림을 보는 이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어쩔 것인가.

자기 검열은 지금 나의 삶을 억압하지만, 내 삶의 일부로서 꼭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자기 검열은 지난 6년 동안 내 정신을 침범하여 왔고 나의 표현을 제한하고 위축시켰다. 그러나 또한 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의도된 반응이기도 하다. 나의 자기 검열은 우리의 정치적 정체성을, 결국 우리 자신을 파괴하기 위해 어디에나 존재하는 강고한 압력으로부터 나를 지키려는 반응이다.


위에 인용한 글은 시와 에세이를 담은 소책자 <자기 검열에 대하여(On Self-Censorship)>의 일부이다. 감옥에 갇혀 있는 상황을 묘사한 것이지만, 감옥에서와는 다른 방식으로 표현의 규제가 강요되는 사회에서 사는 사람에게도 그녀의 추상성과 모호함이 그리 낯설지 않을 것이다.

자기 검열을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보는 시각이 인상적이다. 억압에 순응해 침묵하기보다 차라리 자기 검열을 택하는 사람의 절실한 목소리가 들린다. 이렇게 해서라도 말은 들려야 하고 글은 읽혀야 하는 것이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은 다짐으로 끝난다.


나는 자기 검열을 통해 그들의 검열을 극복하는 방식을 찾는다. 그럼으로써 그들의 탄압을 피하고 억압으로 가득 찬 미로를 헤쳐나간다. 무엇을 말하지 않을 것인가를 선택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그러한 결정을 내리는 일은 쉽지 않지만, 불의 앞에서 침묵을 지키기보다는 훨씬 쉽다. 비록 높은 벽 안에 갖혀 사회와 격리되어 있지만, 내가 내 목소리를 잃지 않고 보존하는 한, 또 우리가 집단적인 저항의 목소리를 잃지 않는 한, 언젠가는 분명하고도 확고하게 말할 수 있는 날이 오리라고 믿는다.


※ 이미지: The Rag 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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