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혁당 배상금과 국정원 때時 일事 (Issues)

국정원 “인혁당 재건위 피해배상금 251억 돌려 달라”

인혁당 사건이 조작으로 입증되고 관련자에 대해 무죄 판결이 내려진 뒤 그 피해자와 가족에게 국가가 지급한 배상금의 일부를 되돌려달라는 소송이 7월3일 정부에 의해 제기되었다는 기사다. 소송을 낸 주체는 국가정보원이다.

국정원이 썩고 곪아 터진 모습을 연이어 드러내고 있는 상황이라, 뉴스를 보는 사람들은 또 열이 받는다.

그러나 화를 내더라도 내용은 제대로 알고 내야 할 일이다. 이 기사를 보고 분노하는 많은 사람은 소송 내용을 제대로 보지 않고 '인혁당' '국정원' '배상금 반환 소송' 같은 단어들만 보고 판단을 하는 듯하다. 물론 소송 소식에 쾌재를 부르는 인간들도 아무 생각이 없기는 매일반이다.

긴 글 안 읽거나 못 읽는 사람들을 위해 결론부터 말하면, 이 배상금 반환 소송은 △대법원의 판결에 따른 것이며 △배상금(위자료)의 원금이 아니라 이자를 돌려달라는 것이며 △그 이유는 이자 계산 방식이 다르게 나왔기 때문이며 △소송의 실질적 주체는 국정원이 아니라 검찰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덮어놓고 비난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이러한 반환 소송에 반대하고 분노한다면 그 화살은 국정원이 아니라 대법원에게 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2013년 7월이 아니라 2011년 1월에 그랬어야 했다는 것이다. "인혁당 사건에 대해 근본적으로 왜곡된 인식을 갖고 있는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더니 국정원을 동원하여 배상금마저 빼앗으려 한다"는 식의 인식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이게 분노할 일이거나 국정원을 비난해야 할 또 하나의 사실이 되는 것인지 (아니면 거꾸로 만세 부르며 기뻐할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 사실 관계를 조금 자세히 들여다 보자.

1. 2002년 9월에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인혁당 사건이 조작된 것이라고 발표했다.

2. 2005년 12월에 국정원 과거사진실위원회 역시 인혁당 사건이 조작이라고 발표했다.

3. 2006년 11월에 이 사건으로 사형당한 피해자 8명의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하여 340억원의 손해배상금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4. 2007년 1월에 열린 재심에서 서울중앙지방법원은 관련자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이 항소를 하지 않아 무죄가 확정됐다.

5. 2007년 8월에 서울중앙지방법원은 피해자 유족들이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3)에 대해 모두 245억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6. 2007년 9월에 법무부는 서울중앙지법의 배상 판결에 대해 항소하지 않겠다는 서울고검의 항소포기 의견을 승인했다.

7. 이 시기를 전후로 하여, 사형 당한 피해자 이외에 옥살이를 한 피해자들도 각기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여 배상금 지급 판결을 받는다. 정신적 손해배상에 더하여 재산상 손해배상까지 추가로 지급하라는 판결들이 나왔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다. 유가족이나 피해자는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배상 판결을 내렸으며, 정부는 배상금을 일부 지급했다. 문제는 손해배상으로 받게 된 위자료가 아니라 그 지급이 지체된 데서 나온 지연 이자다. 이 부분에 대한 재판은 다음과 같다.

8. 1심 판결 (2009년 6~7월): 희생자 유가족(67명)과 피해자(10명)에게 위자료와 사건 발생(유죄 판결) 시점인 1974~5년부터 계산한 이자를 더해 지급하도록 판결.
- 유가족: 위자료 235억원 + 이자 402억원 = 637억원
- 피해자: 위자료 44억원 + 이자 78억원 = 122억원, 도합 759억원

말하자면 아주 오래 전의 사건이기 때문에 위자료 원금에다 그 두 배에 가까운 이자가 덧붙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검찰은 항소한 것으로 보이며, 2심도 1심과 같은 판결을 내렸다. 검찰은 다시 대법원에 상고한 것으로 보인다.

9. 재판 진행 중에 관련자들은 손해배상금을 미리 달라는 가집행을 신청했고, 이에 따라 법무부는 2009년 8~10월에 전체 배상금의 65%인 490억원을 먼저 지급했다.

10. 그러나 2011년 1월에 대법원은 이자 기산 시점을 다르게 평가하여, “통상 위자료 배상채무의 지연이자는 불법행위 시점부터 발생하지만 불법행위 이후 장시간이 흘러 통화가치 변동으로 과잉배상의 문제가 생길 경우 사실심(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 변론종결 시점부터 발생한다”고 판결했다. (위 기사에서 재인용)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수십 년 간의 기간에 대한 이자는 발생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피해자와 가족들이 받을 수 있는 배상금은 위자료 원금(279억원) 뿐이다.

이렇게 대법원 판결이 나왔는데, 정부는 관련자들에게 490억원을 미리 준 상태다. 대법원 판결 금액보다 211억원이 더 간 것이다. 이번 소송은 이렇게 법원이 최종 판결한 금액보다 더 지급한 부분을 다시 돌려받기 위해 낸 소송이다.

이러한 과정을 대략이라도 살펴보면, 이번 소송 때문에 누군가를 실컷 욕하고 싶다면 그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은 검찰이나 국정원이 아니라 대법원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몇 가지 더 생각하여 본다.

1. 이 사례와 같이 특수한 경우 위자료의 이자 계산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논란은 벌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법원의 판결이 최종 결론인 셈이지만, 이러한 결론이 합리적인 과정을 거쳐 나온 것인지는 사회적 고찰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무작정 비난이나 환호보다 이러한 토론이 더 값지고 도움이 되는 것임은 물론이다. 위자료의 내용을 고려하면 대법원의 생각에 납득이 가는 점이 있으나, 기사에 나온 내용으로만 보면 그 판단에 모호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2. 기사에 따르면 법무부(검찰)는 대법원 판결에 따라, 과다 지급된 금액을 되돌려달라고 관련자들에게 요청했으나 관련자들은 이를 거절했다고 한다. 이것이 옳은 태도인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배상금을 지급받는 것도 법원 판결에 따른 것이고, 그 일부를 반환하는 것도 법원 판결에 따른 것이다. 법원의 결정은 내가 원하는 것만을 선택하여 따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경우는 다만 선지급이 되었기 때문에, 이를 돌려주는가의 여부가 문제가 되고 있을 뿐이다. 일단 그렇게 판결이 난 이상, 시민적 의무는 수행하면서 싸우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판결의 내용에 대해서는 싸우더라도 그 절차적 규정성은 피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3. 이 소송에 국정원이 등장한 것은 이 사건의 애초 주체가 중앙정보부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위 기사에 따르면 이 배상금 일부 반환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것은 국가고 구체적으로는 법무부(검찰)이다. 배상금을 지급한 것이 법무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조직 계통이 다른 국정원이 등장한 것은 '국가 대상 소송의 지휘권을 갖고 있는 검찰(서울고검)의 지휘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4. 이 사건은 이자를 포함시키든 않든 수백억원대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해야 하는 일이 되었다. 그 돈은 물론 국민이 피땀 흘려 낸 세금이 주축이 된 국고에서 나간다. 국민은 왜 이렇게, 자신이 잘못하지도 않은 일에 대하여 엄청난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가? 한 줌도 안 되는 권력자들이 사리사욕을 위해 사건을 조작하고 사법 살인이라 일컬어지는 일까지 저질렀는데도, 왜 가해자는 아무도 피해를 보는 사람이 없는가? 그들이 자기 배를 불리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벌인 일의 뒷감당을 왜 국민이 해야 하는가? 피해자의 자식들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배상을 받아야 할 만큼 손해를 보고 있는데, 이러한 사건을 벌여 이득을 본 가해자의 자식들은 왜 아무런 손해를 보지 않고, 국민이 그 뒤치다꺼리를 해주고 있어야 하는가.

5. 피해자의 목숨, 그리고 그 가족이 겪어 온 고통은 어떤 금전적인 보상으로도 대신할 수 없을 것이다. 배상금 논란이 이와 같은 치욕스런 일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도록 우리 사회가 함께 다짐하는 또 한 번의 계기가 되는 게 가장 소망스럽겠다고 하겠다. 그러나 여전히 부조리한 현실과 그 부조리함 속에서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되어 사는 사람들을 보면, 계기만 주어지면 당장 제2, 제3, 제4의 인혁당 사건이 줄줄이 벌어질 것만 같다.

다만 세상을 껍데기만 보지 말고 속내까지 들여다보면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많아졌으면 하는 것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그나마의 희망이 아닐까 싶다. 표피에 머무르는 가벼운 인식으로 대지를 흔들어 깨우는 일을 벌일 수는 없다.

 

덧글

  • 措大 2013/07/13 00:42 # 답글

    4번에 대해서는 국가공무원의 고의, 중과실로 인한 불법행위에 관해서 국가가 적극 구상권을 행사하게 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국가가 그런 것을 귀찮아 하니, 강제적으로라도 구상권 청구를 하도록 법과 조직을 정비해야 할 거 같습니다.
  • deulpul 2013/07/13 18:37 #

    동의합니다.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는 부분을 잘 살펴가며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현재 지자체 중에는 이러한 구상권 행사를 강제 조항으로 둔 곳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한편 위 인혁당 사건은 사실 구상권을 생각하기에 앞서, 이러한 불법 행위가 정권 차원에서 이루어졌으므로 정권이 유지되는 한 불법 행위로 인정되지 않고 아무도 처벌을 받지 않고 넘어간다는 점에서 더 근본적인 문제가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던 시대란 얼마나 야수 같은 폭정의 시기였나를 잘 짐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산울 2013/10/26 17:11 # 삭제 답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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