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 사고가 난 미국 샌프란시스코 지역의 한 방송사가 뉴스에서 한국인 조종사 네 명의 가짜 이름을 그대로 보도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조종사들의 이름이 가짜였을 뿐만 아니라, 아시아인의 이름을 조롱하고 이번 사고를 희화화하는 의미가 담겼다는 점에서 더 큰 문제가 되고 있다.
폭스TV 계열사인 KTVU는 12일 낮 뉴스에서 "지금 막 사고 비행기의 조종사 이름이 입수되었다"라며 네 사람의 이름을 화면에 올리고 앵커 토리 캠벨이 이름을 하나씩 읽었다. 다음과 같았다.
조금만 살펴보면 이게 진짜 이름이 아니라 조롱을 위해 만든 것임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이 이름들은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Something Wrong (뭔가 잘못됐어), We too low (우리 너무 낮잖아), Holy fuck (이런 세상에!), Bang Dong Ow (쿵 쾅 아야!) 를 틀어서 만든 이름이다. 단순히 비슷하게 만든 게 아니라, 이번 사고가 날 때 조종석 안에서 벌어졌을 법한 일을 차례대로 꾸민 것이다.
방송사는 그런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 듯, 여성 앵커가 근엄하게 이름을 하나씩 읽어 내려간다. Fuk을 퍽(훡)이 아니라 푹(훅)으로 발음한 것만 빼면, 원래 악의적으로 의도했던 단어의 발음에 거의 근접한 방식으로 발음한다. 이렇게 읽으면서도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았다면, 최대한 좋게 이해해 준다고 해도 속보 경쟁에 잠식되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번 사고의 조사를 책임지고 있는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에서부터 비롯됐다. 방송사의 한 기자가 NTSB 공보실에 전화를 걸어 조종사들의 이름을 문의했는데, 이 전화를 받은 사람은 인턴 직원이었다고 한다. 이 직원이 어떤 경로로 가짜 이름 정보를 얻어서 기자에게 전해주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해당 직원이 인턴이었다는 사실은 보도가 나가고 문제가 된 뒤에 밝혀졌다.
NTSB는 당일 저녁에 즉시 성명을 내고 '부정확하고 모욕적인 이름들을 조종사의 이름이라고 확인해 준 것'에 대해 사과했다.
물론 방송사의 책임도 있다. 첫째, 이 이름들을 취재한 기자는 자신이 입수한 정보의 정확성에 대해 필요한 의심을 하지 않았다. 더 나아가 취재원(NTSB 인턴 직원)의 이름도 확보해 두지 않았다. 말하자면 입수 정보의 내용과 출처를 둘러싼 신뢰성을 검증하지 않은 것이다. 이 부분은 공보 담당자를 흔히 '관계자'로 뭉뚱그려 모호하게 표현하는 한국 언론과 달리, 공보 담당자라 하더라도 정보 출처가 될 경우 그 이름을 정확하게 밝히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미국 언론의 관행에서 볼 때 큰 실수가 아닐 수 없다.
둘째, 방송사는 이런 중대 사고의 경우 NTSB가 관련자 이름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거나 간과했다. 이것은 저널리스트의 자질이나 소양과 관련한 문제이다.
셋째, 방송사는 한국계, 더 나아가 아시아계 사람들의 이름에 대해 필요한 지식이 없었거나 충분히 검토하지 않았다. 언론이 아시아계 이름의 특성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한 요구일 수 있다. 그러나 이곳이 어디인가. 샌프란시스코 지역이다. 미국 센서스국의 2012년 자료에 따르면 샌프란시스코 카운티 거주자 중 아시아인은 3분의 1이 넘는다. 이들을 포함하는 시청자를 대상으로 취재하고 보도하는 언론사라면 이름을 포함한 대략적인 인구 특성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식 이름에 조금만 익숙한 사람이라면 저 이름들이 가짜라는 것을 금방 눈치채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일단 한국 성의 40%가 넘는 金李朴崔鄭이 하나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에서부터 의심을 했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미국처럼 다문화 성격을 지닌 사회의 언론 종사자라면 그런 환경에 익숙해야 한다는 점과 관련한 문제이다.
넷째, 결국 이러한 문제는 속보 경쟁에서 나온다. 급하게 정보를 얻으려다 보니 신뢰성을 확인하는 절차를 건너뛰었고, 이를 급하게 방송하려다 보니 다시 내부에서 사실을 검증하는 절차를 건너뛰었다. 이런 보도 관행에서 오보가 나오지 않으면 이상하다고 할 것이다.
작은 방송 사고지만, 대세가 되어가는지도 모르는 언론(인)의 열화 현상과 속보 경쟁의 부작용을 또다시 보여주는 사례가 아닌가 싶다.
[덧붙임] (7월14일 03:00)
방송사 KTVU가 오보 방송 직후 홈페이지에 올린 사과문은 어떤 실수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를 스스로 밝히고 있다. 첫째, 조종사 이름 스펠을 받아 적어 보도하기까지 한 번도 실제로 발음해 보지 않았다는 점(다시 말해 발음을 해 보았다면 금방 알 수 있었으리라는 점), 둘째, 정보 제공자인 NTSB 직원의 이름과 직위를 확인하지 않고 서둘러 내용을 보도했다는 점 등이다. KTVU는 NTSB 쪽에서 문제가 시작되었고 사과 성명도 냈지만, 보도와 관련한 실수는 전적으로 자기네 책임이라고 인정하고 사과했다.
KTVU는 오보 방송이 나간 뒤, 방송과 홈페이지, SNS 등 가능한 모든 채널을 통해 오보 사실을 공개하고 사과했다.
폭스TV 계열사인 KTVU는 12일 낮 뉴스에서 "지금 막 사고 비행기의 조종사 이름이 입수되었다"라며 네 사람의 이름을 화면에 올리고 앵커 토리 캠벨이 이름을 하나씩 읽었다. 다음과 같았다.
- 기장(Captain) Sum Ting Wong
- Wi Tu Lo
- Ho Lee Fuk
- Bang Ding Ow
조금만 살펴보면 이게 진짜 이름이 아니라 조롱을 위해 만든 것임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이 이름들은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Something Wrong (뭔가 잘못됐어), We too low (우리 너무 낮잖아), Holy fuck (이런 세상에!), Bang Dong Ow (쿵 쾅 아야!) 를 틀어서 만든 이름이다. 단순히 비슷하게 만든 게 아니라, 이번 사고가 날 때 조종석 안에서 벌어졌을 법한 일을 차례대로 꾸민 것이다.
방송사는 그런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 듯, 여성 앵커가 근엄하게 이름을 하나씩 읽어 내려간다. Fuk을 퍽(훡)이 아니라 푹(훅)으로 발음한 것만 빼면, 원래 악의적으로 의도했던 단어의 발음에 거의 근접한 방식으로 발음한다. 이렇게 읽으면서도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았다면, 최대한 좋게 이해해 준다고 해도 속보 경쟁에 잠식되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번 사고의 조사를 책임지고 있는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에서부터 비롯됐다. 방송사의 한 기자가 NTSB 공보실에 전화를 걸어 조종사들의 이름을 문의했는데, 이 전화를 받은 사람은 인턴 직원이었다고 한다. 이 직원이 어떤 경로로 가짜 이름 정보를 얻어서 기자에게 전해주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해당 직원이 인턴이었다는 사실은 보도가 나가고 문제가 된 뒤에 밝혀졌다.
NTSB는 당일 저녁에 즉시 성명을 내고 '부정확하고 모욕적인 이름들을 조종사의 이름이라고 확인해 준 것'에 대해 사과했다.
"인턴 직원이 자기 업무 범위를 넘어서서 해당 비행기의 승무원 이름들을 확인해 주는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우리(NTSB)는 교통 안전 사고가 났을 경우 승무원이나 사고 관련자들의 이름을 언론에 제공하거나 확인해 주지 않습니다. 사고 조사와 관련한 사실 관계 정보만을 제공하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오늘 벌어진 일에 깊은 유감을 표합니다. 이런 중대한 실수가 다시 벌어지지 않도록 필요한 조처를 취할 것입니다."
물론 방송사의 책임도 있다. 첫째, 이 이름들을 취재한 기자는 자신이 입수한 정보의 정확성에 대해 필요한 의심을 하지 않았다. 더 나아가 취재원(NTSB 인턴 직원)의 이름도 확보해 두지 않았다. 말하자면 입수 정보의 내용과 출처를 둘러싼 신뢰성을 검증하지 않은 것이다. 이 부분은 공보 담당자를 흔히 '관계자'로 뭉뚱그려 모호하게 표현하는 한국 언론과 달리, 공보 담당자라 하더라도 정보 출처가 될 경우 그 이름을 정확하게 밝히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미국 언론의 관행에서 볼 때 큰 실수가 아닐 수 없다.
둘째, 방송사는 이런 중대 사고의 경우 NTSB가 관련자 이름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거나 간과했다. 이것은 저널리스트의 자질이나 소양과 관련한 문제이다.
셋째, 방송사는 한국계, 더 나아가 아시아계 사람들의 이름에 대해 필요한 지식이 없었거나 충분히 검토하지 않았다. 언론이 아시아계 이름의 특성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한 요구일 수 있다. 그러나 이곳이 어디인가. 샌프란시스코 지역이다. 미국 센서스국의 2012년 자료에 따르면 샌프란시스코 카운티 거주자 중 아시아인은 3분의 1이 넘는다. 이들을 포함하는 시청자를 대상으로 취재하고 보도하는 언론사라면 이름을 포함한 대략적인 인구 특성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식 이름에 조금만 익숙한 사람이라면 저 이름들이 가짜라는 것을 금방 눈치채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일단 한국 성의 40%가 넘는 金李朴崔鄭이 하나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에서부터 의심을 했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미국처럼 다문화 성격을 지닌 사회의 언론 종사자라면 그런 환경에 익숙해야 한다는 점과 관련한 문제이다.
넷째, 결국 이러한 문제는 속보 경쟁에서 나온다. 급하게 정보를 얻으려다 보니 신뢰성을 확인하는 절차를 건너뛰었고, 이를 급하게 방송하려다 보니 다시 내부에서 사실을 검증하는 절차를 건너뛰었다. 이런 보도 관행에서 오보가 나오지 않으면 이상하다고 할 것이다.
작은 방송 사고지만, 대세가 되어가는지도 모르는 언론(인)의 열화 현상과 속보 경쟁의 부작용을 또다시 보여주는 사례가 아닌가 싶다.
[덧붙임] (7월14일 03:00)
방송사 KTVU가 오보 방송 직후 홈페이지에 올린 사과문은 어떤 실수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를 스스로 밝히고 있다. 첫째, 조종사 이름 스펠을 받아 적어 보도하기까지 한 번도 실제로 발음해 보지 않았다는 점(다시 말해 발음을 해 보았다면 금방 알 수 있었으리라는 점), 둘째, 정보 제공자인 NTSB 직원의 이름과 직위를 확인하지 않고 서둘러 내용을 보도했다는 점 등이다. KTVU는 NTSB 쪽에서 문제가 시작되었고 사과 성명도 냈지만, 보도와 관련한 실수는 전적으로 자기네 책임이라고 인정하고 사과했다.
KTVU는 오보 방송이 나간 뒤, 방송과 홈페이지, SNS 등 가능한 모든 채널을 통해 오보 사실을 공개하고 사과했다.
덧글
만슈타인 2013/07/13 18:41 # 답글
deulpul 2013/07/13 19:03 #
만슈타인 2013/07/13 19:05 #
deulpul 2013/07/15 15:10 #
gina 2013/07/15 10:43 # 답글
deulpul 2013/07/15 15:15 #
Ellery 2013/07/16 23:17 # 삭제 답글
NTSB fires intern who "confirmed" names of Asiana pilots
http://www.washingtonpost.com/blogs/style-blog/wp/2013/07/15/ntsb-cans-intern-who-confirmed-names-of-asiana-pilots/?Post+generic=%3Ftid%3Dsm_twitter_washingtonpost
deulpul 2013/07/18 1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