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의 추억 중매媒 몸體 (Media)

내가 어렸을 때, 일요일마다 수행해야 하는 심부름이 있었다. 일찌감치 일어나 세수를 하고 나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한국일보> 배급소를 다녀오는 일이다.

우리집은 신문을 구독하지 않았고, 아버지는 회사에서 신문을 보고 가끔 집으로 가져 오셨다. 신문은 일요일까지 발행되고 월요일이 휴간이었다. 일요일에는 출근을 하지 않으니까, 신문은 빈 사무실로 배달된다. 이렇게 아버지가 일하는 회사로 배달되는 신문 뭉치 가운데에서 한 부를 가져오는 것이 내 심부름이었다.

늦게 가면 신문이 떠나버리고 없으니까 제 시간에 가야 한다. 배급소 앞에는 깃대가 하나 있고, 그 끝에는 사각형 테두리 안에 녹색 삼각형을 넣은 <한국일보> 마크가 그려진 깃발이 달려 있었다. 창호지가 발린 뻑뻑한 쪽유리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서면, 마분지로 포장되고 비닐끈이 십자로 묶인 신문 뭉치가 쌓여 있었다. 배급소 형들이 뽑아 준 신문에서는 잉크 냄새가 짙게 풍겨 나왔는데, 왜 그런지 그 냄새가 늘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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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어느 날, 미술 시간이 되자 선생님은 학교 뒷산으로 나가자고 했다. 아이들은 스케치북과 크레용을 챙겨 학교 뒷문을 지나 동산으로 올라갔다. 무덤이 서너 기 흩어져 있는 동산은 아직 새 풀이 나지 않아, 지난 가을의 누런 잔디가 그대로 덮여 있었다. 아이들은 여기저기 앉거나 누워서 그림을 그렸다.

두어 달이 지난 뒤, 운동장에서 열린 조회에서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불렀다. <소년한국일보> 주최 미술대회에서 상을 받았다는 것이다. 교장 선생님이 넘겨 주는 상장은 그 전까지, 그리고 지금 이때까지 내가 받은 상장 중에 가장 컸다. 그 큼지막한 상장의 배경에는 역시 녹색 삼각형 두개가 대각선으로 마주보고 있는 <한국일보> 마크가 인쇄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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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때 보던 책들을 가끔씩 들춰 보면, 중간중간에 신문에서 오려서 넣어둔 쪽지를 발견할 때가 있다. 기사보다는 주로 인상 깊게 본 칼럼들이다. 지금은 이 책들과 그 속에 들은 신문 스크랩들이 모두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 그래도 그 중 하나는 지금도 또렷이 기억이 난다. 권력자들의 호화 분묘를 비판하는 칼럼이었는데, 서두가 대충 이랬다:

사람은 살면서 많은 죄를 짓는다. 젊어서는 사랑 때문에 죄를 짓고, 늙어서는 욕심 때문에 죄를 짓는다. 심지어는 죽고 나서도 죄를 짓는다.

사랑 때문에 죄를 짓고 살던 때라서 그랬는지, 이 칼럼을 아프게 오려서 넣어 두었던 기억이 난다. 칼럼은 <한국일보>의 논설위원이 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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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는 흔히 기자 사관학교라고 불리어 왔다. 사람을 듬뿍 뽑아 빡세게 교육시킨다. 이렇게 훈련된 기자들이 다른 매체로 나가 활동하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기자를 뽑을 때 지원 자격에 대학 졸업장을 요구하지 않은 것도 <한국일보>가 처음인 것으로 기억한다. '대졸 수준의 학력 소지자' 정도의 요건을 내세웠던 것 같다. <한국일보> 출신으로 가장 유명한 기자 중 한 명인 소설가 김훈은 대학 졸업장이 없다. <한국일보> 입사 자격에 '대졸자'가 명시되어 있었더라면, 소설가 김훈은 몰라도 절세의 문학 기자 김훈은 아마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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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신문에서 그동안 사주가 편집국을 폐쇄하고 기자들을 내쫓은 상태에서 어거지로 신문을 만들어 내는 기막힌 일이 벌어져 왔다. 결국 회사 자산은 동결되고 사주는 비리 혐의로 구속되었다. 사태가 마무리될 전기가 마련된 셈인데, 회사가 흔들리는 큰 난리를 겪은 터라 혼란을 정비하고 새출발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많은 사람이 바라는 대로 빨리 정상화되기를 기원한다.

아래는 <슬로우뉴스>에 쓴 되바라진 글, '시대착오적인 '신문의 자유'' 중 일부.

촘스키는 <여론 조작(Manufacturing Consent)>에서, 미디어는 가진 자들이나 특권 계층의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아젠다를 주입하고 방어하려는 ‘사회적 목적’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까탈스럽고 고집불통이며 구석구석 참견 안 하는 데가 없는 자유로운 언론은 얼핏 보면 진실을 밝히고 민주적 과정을 촉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미디어의 뒷돈을 대는 가진 자들의 이익을 관철하려는 선전 기구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 더 가깝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으로 위의 칼럼을 보면 아주 잘 이해가 된다. 필자가 말하는 것은 ‘신문이란 결국 발행인(개인)의 의견과 주장을 담는 것’이란 말이고, 그런 신문사에서 기자들이 아무리 노력해봤자 발행인의 손바닥을 벗어날 수 없거나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몇 대에 걸쳐 신문사와 관련 기업들을 소유해온 사주나 발행인들이 우리 사회에서 약자나 못 가진 자들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들은 ‘밤의 대통령’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다. 결국 위 칼럼의 주장은 촘스키의 인식을 거칠게나마 그대로 투영하여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같은 내용을 말하면서도 그 방향에 차이가 좀 있다. 촘스키는 이것이 잘못된 일이라고 비판하는 데 비해, 이 칼럼의 필자는 이것을 당당히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촘스키 식으로 말하자면, 자기네 신문이 가진 자와 특권층의 이익을 관철하는 선전 도구이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고 있는 셈이다.

 

덧글

  • 민노씨 2013/08/07 15:23 # 삭제 답글

    들풀 님께서 미술에도 재능이 계셨는지는 몰랐네요.
    틈틈히 하시는 비디오 작업도 그래서인가 싶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저는 한겨레 기획기사들과 칼럼들을 많이 스크랩했었는데 말이죠. ㅎㅎ
  • deulpul 2013/08/07 17:31 #

    예에? 전혀 아닙니다. 저건 코흘리개 때 일일 뿐만 아니라, 어째서 저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지금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학교 '3대 악질'로 꼽혔던 미술 선생에게 그림 못 그린다고 얻어터지며 자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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