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도 1위로 뽑힌 '정권의 시녀' 중매媒 몸體 (Media)

(전문가들) “신문중 ‘한겨레’ 가장 신뢰” (9월13일)

제목 앞에 '(전문가들)'을 붙인 이유는, 이 말을 빼면 독자를 잘못 이끌 수 있으며, <한겨레> 메인 홈페이지에는 그 말이 붙어 제대로 된 제목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기사는 다음의 내용이다.

<시사저널>은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라는 제목으로 관료·교수·언론인·법조인 등 10개 분야 전문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복수 응답)에서, ‘가장 신뢰하는 언론매체’는 <한국방송>(38.7%), 한겨레(27.6%), <경향신문>(18.8%), <문화방송>(14.7%), <조선일보>(13.1%) 순서로 꼽혔다고 13일 밝혔다.

<한겨레>가 불과 열흘 전인 9월3일 방송의 날에 내보낸 사설 [사설] 차마 축하할 수 없는 ‘방송의 날’ 50주년에는 다음과 같은 부분이 있다.

최근 이른바 ‘공영방송’이라고 자부하는 <한국방송>과 <문화방송>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태는 이들 방송이 단순히 국민을 위한 방송이길 포기한 데 그치지 않고 얼마나 뼛속까지 권력과 정권의 시녀로 전락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한국방송은 지난달 31일 방영 예정이던 <추적 60분>의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의 전말’ 방송을 내보내지 않았다. 담당 국장이 내세운 이유가 ‘통합진보당 내란음모 사건 수사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방송 시기가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별개의 사건을 연계하는 창의성이 놀라울 뿐이다.

말하자면, <한겨레>가 볼 때 '뼛속까지 권력과 정권의 시녀로 전락한' 방송이 이른바 전문가들 사이에서 가장 신뢰를 받는 언론으로 꼽혔고, 바로 그 전문가들은 <한겨레>를 2등으로 꼽았다는 것이다.

<한겨레>의 인식틀을 빌어 볼 때, 이 매체가 이룬 성취가 자랑스러운 일인지 수치스러운 일이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한겨레>식으로 표현하자면 '차마 축하할 수 없는 '신뢰도' 2위' 같은 말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시사저널>의 조사 결과와 <한겨레>의 매체 인식을 연결하여 해석하는 일은 쉽지 않은 과제가 된다. 양자를 모두 옳은 것으로 가정하고 본다면 다음과 같은 해석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조사의 한계. 정확한 설문 내용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예컨대 '귀하가 신뢰하는 언론을 지적해 주십시오(복수 응답)' 같은 형식으로 제시되었을 때 '신뢰한다'는 말의 의미를 사람마다 다르게 생각할 가능성이 있다. 정확한 사실 보도 여부를 매체 신뢰의 근거로 생각한 응답자도 있을 수 있고, 정확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정견과 비슷한 색깔을 가진 언론을 '신뢰한다'고 여길 수도 있다. 말하자면 <한겨레>의 인식처럼 '권력과 정권의 시녀로 전락'하여 중요한 이슈를 다루지조차 않는 KBS라도, 비슷한 정치색을 가진 예컨대 친여 성향의 전문가들은 '신뢰한다'라고 대답할 수 있다는 것. 이러한 한계는 설문 내용과 조사 방법을 수정/보완함으로써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다.

둘째, 조사 대상이 된 전문가들 역시 이데올로기적 지형에 따라 나뉘어 있다는 가정을 해 볼 수 있다. <한겨레>의 인식틀을 차용하여 보면 거의 양극단에 존재한다고 할 수 있는 두 매체가 나란히 1, 2위를 차지했다. 이 사실로부터, 전문가들 역시 사실 보도와 같은 언론 본연의 역할에 대한 판단보다는 자신의 성향과의 일치 여부에 따라 신뢰하는 언론을 설정한다는 추정을 할 수 있다. 강한 이데올로기적 편향을 갖거나 정권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한국 언론의 부정적인 특성을 고려하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이 그림은 미국 정치학자 키(V. O. Key)가 쓴 여론 관련 고전인 <여론과 미국 민주주의(Public Opinion and American Democracy)>에 나오는 것이다. 갈등 구조에서 나타나는 여론의 양상을 모델화하여 예로 든 것인데, 의견이 양쪽 끝으로 몰려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양 극단의 주장(혹은 매체)이 최다 득표로 1, 2위를 하는 일이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다.

셋째, 이러한 해석을 고려하면, 조사 대상 '전문가'를 어떻게 선정하느냐에 따라 아주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예컨대 사회 단체나 재야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를 많이 포함시키면 진보적이거나 정부 비판적인 매체의 순위가 오를 수 있고, 공직자나 기업 싱크탱크 쪽의 전문가를 많이 포함시키면 반대의 결과가 나올 수 있다. 말하자면 '전문가들'을 상대로 한 이 조사는 무작위 추출이 아니기 때문에 일반화할 수 없고, 따라서 전국민은 물론이고 전문가 전체의 의견도 대표하지 않는다. 이런 측면이 있으므로 조사를 한 <시사저널>은 설문 응답자 명단을 함께 실어서 독자의 판단을 도와야 하리라 생각한다.

넷째, 이러한 결과와 해석은 결국 우리 사회가 얼마나 이데올로기적으로 쪼개져 있나를 보여주는 한 창이라는 생각이 든다. 언론도 그렇고 일반 국민도 그렇고 전문가도 그렇다. 사회에서 분기와 갈등은 늘 있는 일이지만, 이것이 공통의 기반을 허물고 상식의 가치를 훼손할 때는 정상이라고 하기 어렵다.

그래서 '뼛속까지 권력과 정권의 시녀로 전락한' 방송이 신뢰도 1위로 뽑히고, 그렇게 비판한 신문이 신뢰도 2위로 뽑히는 우스꽝스러운 결과 같은 것이 나오고 있지 않나 싶다.

※ 이미지: 해당 책에서.

 

덧글

  • 민노씨 2013/09/24 06:25 # 삭제 답글

    정치권도 그렇지만, 미디어에서도 '적대적 공생'의 역학이 점점 더 견고하게 구조화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지상파의 압도적인 영향력과 포털이 지배하는 인터넷/모바일 뉴스 유통구조를 고려하면 한겨레나 경향의 영향력은 점점 더 미미해지고 있고, 이 점은 그 적대적 공생의 역학 구도가 갖는 한계를 고려하더라도 아쉬운 점이지만요.
  • deulpul 2013/09/25 14:31 #

    약간 다른 말씀입니다만, 닭/계란의 문제인 측면이기도 하지만 미디어의 당파적 지형은 독자의 그것을 반영하는 측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매체들은 공정한 보도보다 당파적 보도를 하는 편이 더 장사가 잘 된다는 인식을 갖고 있지 않나 싶어요. 국민의 수준이 정부의 수준을 결정하듯, 수용자 상황이 매체의 상황을 결정한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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