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디자이너 조너선 아이브 인터뷰 섞일雜 끓일湯 (Others)

애플 제품의 디자인을 담당해왔고 애플 정신의 구현자로 꼽히며, 많은 사람이 앞으로 애플의 지도자로 전망하는 조너선 아이브 애플 디자인 담당 수석 부사장 인터뷰 기사다. 9월19일 <USA 투데이> 인터넷판에 실렸다.

인터뷰는 또다른 수석 부사장인 크레익 페데리기와 함께 앉은 자리에서 진행되었는데, 아이브에 좀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잡스 이후의 애플 분위기도 엿볼 수 있고, 디자인 철학, 기업 운영과 관련된 자세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기회를 준다. 역시 인터뷰에 드물게 등장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전문 옮겨본다. 기사 중 중간 제목은 원래의 것이고 간간히 나오는 링크는 내가 달았다.

(왼쪽은 엔지니어 페데리기 부사장, 오른쪽은 디자이너 아이브 부사장)


조니 아이브: 애플의 마술 장막 뒤에 숨은 사내

by Marco della Cava

(쿠퍼티노, 캘리포니아) 애플 아이팟을 디자인한 조니 아이브(46)는 질문에 대해 생각하느라 이마에 잔뜩 주름을 지었다. "좋은 질문이에요." 만일 애플이 그의 재능을 더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그는 무슨 일을 할 것인가. 한참의 침묵 끝에 그는 사려깊고도 긴 답을 속삭이듯 내놨다. 핵심은 간단했다. 그는 아무 데도 가지 않는다는 것.

"이 의자를 보세요. 우리는 이것을 의자로 이해하는데, 그건 그 형태와 기능이 일치하기 때문이지요. 그게 지난 수백 년 동안 이 세상이 물건을 제조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아이브는 부드러운 영국 발음으로 말했다. "그러나 비교적 최근에 믿기 어려운 변화가 일어났죠. 어떤 물건이 그 모양만으로는 용도가 무엇인지 알기 어려운 형태로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건 새로운 기회이지만, 여러 가지 문제도 안고 있죠. 이런 제품들은 놀라운 기능과 정교함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아이폰 5s를 손으로 빙빙 돌리며 미소지었다. "이런 현상은 매우 새롭고 또 매력적입니다. 우리는 이제 이런 일을 막 시작한 것 같습니다."

만일 애플사에 디자인 마법사가 존재한다면, 그건 바로 아이브일 것이다. 그는 1992년에 애플에 들어간 이래 세부에 집착하는 꼼꼼한 접근 방식을 통해, 세상의 문화를 뒤바꾼 애플의 제품들, 즉 막대사탕 같은 색깔의 아이맥(1998), 아이팟(2001), 아이폰(2007), 아이팻(2010) 같은 것들을 정력적으로 만들어 냈다. 그는 디자인 상을 셀 수도 없이 많이 받았으며, 모방 제품들이라는 형태의 찬사를 누렸고,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로부터 작위를 받기까지 했다.

최근 아이브와 그의 하드웨어 디자인팀은 애플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담당 수석 부사장인 크레익 페데리기와 긴밀하게 협조하며 iOS 7 운영체제와 아이폰 5c, 5s를 만들어냈다. 업계 관계자와 소비자들은 스티브 잡스가 시작한 이 회사가 지금도 여전히 남과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을 이 새 제품들이 분명히 입증하였다고 평가한다.

서글서글하고 멋진 헤어스타일을 갖춘 페데리기(44)가 게임쇼 사회자나 미디어 발표자 등으로 무대 위에 잘 등장하는 데 비해, 프라이버시를 중히 여기는 아이브는 공들여 만든 비디오에나 잠깐 얼굴을 비칠 뿐이다. 그러나 애플이 삼성이나 다른 안드로이드 군단과 같은 경쟁자를 물리치는 방법을 모색함에 따라, 그동안 커튼 뒤에 은둔해 있던 이 디지털 마법사는 조금씩 무대 앞으로 나서고 있다.

이번 인터뷰는 아이브로서는 매우 드문 것이다. 애플의 검소한 회의실에서 페데리기와 함께 만났다. 벽에는 맥북 흑백 사진 하나가 달랑 붙어 있었고, 책상 위에는 새로운 아이폰 제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한 시간의 인터뷰 동안 두 사람은 팀웍, 각자의 철학, 애플의 변함없는 방향에 대한 헌신 등에 대해 말했다.

서로 구속하지 않는 친밀함

애플은 비밀스러움, 그리고 철저히 계산된 방식에 따른 움직임으로 악명 높다. 그러나 이 두 40대 회사 지도자 사이에는 부정할 수 없는 진정한 친밀함이 존재하고 있다. (페데리기는 1994년에 잡스의 NeXT 벤처에 입사한 뒤, 애플이 NeXT를 매입했을 때 애플로 옮겼으며, 1999년에 회사를 떠났다가 10년 뒤 다시 돌아왔다.)

두 사람은 똑같이 작은 회색 소파에 앉아서, 다른 사람이 말할 때면 그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아이브가 복잡한 이야기를 할 때 페데리기는 고객를 끄덕였으며, 페데리기가 활기차게 말할 때면 아이브는 "그렇지" 하고 중얼거렸다. 둘 다 캐주얼한 옷차림이었다. 아이브는 파란색 폴로 셔츠에 흰색 배기 팬츠를 입었고, 페데리기는 빳빳하고 주름 없는 짙은 색 드레스 셔츠에 청바지 차림이었다. 두 사람 모두 손을 힘있게 잡으며 악수를 했고, 절에 가까울 정도로 고개를 숙였다.

두 사람은 여러 모로 보아 동료임이 틀림없지만, 매력과 진지함의 측면에서 좀더 두드러져 보이는 것은 아이브다. 그가 처음 꺼낸 말은, 애플 자신의 원칙을 뒤바꾸는 모바일 운영체제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게 쉽지 않음을 알고 있었지만, 분명히 성공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그런 숙제에 도전했다는 것이었다.

아이브는 "(iSO 7 작업을 위해) 작년 11월에 회의를 가졌을 때, 우리는 사람들이 유리판에 손을 대는 데 이미 익숙하고 물리적인 버튼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그런 점의 편리함을 잘 이해한다는 데 인식을 함께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글자 그대로 물리적 세계를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 때문에 크나큰 자유가 주어졌죠. 우리는 무언가가 좀 덜 특정되는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 내려고 했습니다. 그런 방향에서 디자인이 나왔습니다."

아이브는 iSO 7에 실린 좀더 간단해지고 거의 2차원화된 느낌의 인터페이스를 말하는 중이었다. 특히 앱 버튼들이 그렇다. 잡스 시대에 형성된 이른바 스큐모프적인 템플릿(skeuomorphic template), 즉 게임 센터 앱의 테이블이 녹색의 실제 당구대 같은 느낌을 주는 것처럼 실제 재질과 물체를 모방하는 방식은 뒤로 물리고, 그보다 덜 현실적인 느낌을 내세웠다. 지금 게임 센터는 알록달록한 원색 물방울의 집합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페데리기는 iOS 7의 새로운 모양새가 기술적 발달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고 말했다. "이것은 레티나 디스플레이(Retina Display) 유저 인터페이스 이후로 등장한 최초의 방식이며, 그래픽 처리 유닛의 성능이 크게 향상된 덕분에 가능하게 된 놀라운 그래픽 모습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7년 전(아이폰이 처음 나왔을 때)과는 다른 도구들을 적용할 수 있게 된 거죠. 전에는 디스플레이의 한계를 감추기 위해 그림자 효과를 쓰곤 했습니다만, 지금처럼 정밀한 디스플레이가 가능해지면 아무 것도 숨길 게 없어지는 것이죠. 그래서 명징한 이미지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아이브가 뛰어든다. "그렇죠. 우리는 구현 방식보다 내용을 더 존중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자기 아이폰을 들고 Notifications Center 를 보였다. 마치 성에 낀 목욕탕 유리창에 정보들이 붙어 있는 것 같았다. 안쪽이 흐릿하게나마 여전히 보이는 창 말이다.

아이브는 말했다. "이걸 보세요. 반투명의 매력은 '내가 대체 어디에 온 것이지?'하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에요. 내 세계가 거기 그대로 존재함을 보여주니까요."

페데리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장막으로 막혀버린 게 아니죠. 이건 철학이 다른 겁니다."

철학이 담긴 제조업

정보기술 회사들 중에서 자기네가 철학을 가졌다고 말하는 데는 별로 없다. 그보다는 온갖 숫자가 적힌 스펙이 나열된 종이쪽을 통해 소비자에게 강한 인상을 주는 편을 택한다. 시장을 지배하기 위해 '더 클수록 더 좋아'의 방식을 동원하면서 말이다. 그보다 더욱 효과적인 것은 저렴한 가격이다.

애플은 최근 5c의 값을 99달러(보조금 포함)로 책정하여 발표했는데, 이것은 그동안 나온 전망에 비해 비싼 수준이었다. 이 때문에 많은 업계 전문가는 애플이 중국과 같은 새로운 시장에서 성장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했다. 이미 미국 스마트폰 시장의 40%를 차지한 애플은 중국과 같은 새로운 곳으로 시장을 넓혀야 하는데, 저가 제품을 내지 않고 이런 일이 가능하겠냐는 것이다. 9월10일에 새 iOS와 아이폰이 발표된 뒤 애플의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아이브와 페데리기는 모두 사업의 측면에 대해 말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발언은 애플이 앞으로도 양보다는 질을 추구해 나갈 것임을 짐작케 하기에 충분했다.

페데리기는 말했다. "카메라 분야를 보세요. 업체들은 메가픽셀 수를 올리는 데 여념이 없었지만, 센서가 작기 때문에 사진이 엉망인 경우가 드물지 않았죠. 우리 가족은 픽셀 수가 얼마인지보다 사진이 잘 나오는가에 더 큰 관심을 둡니다. 우리가 아이폰을 만드는 과정에서 내린 모든 결정은 이러한 생각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사용자가 어떤 경험을 할 것이냐. 스펙을 적은 표에 어떤 숫자를 써넣느냐가 아니고 말입니다."

아이브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막 내려놓은 에스프레소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는 "바로 그겁니다" 하고 힘차게 말했다. "제품 특성을 놓고 숫자로 따지며 말하기는 쉽습니다. 값이 얼마고, 스크린 크기가 얼마고... 쉽죠. 하지만 좀더 어려운 방식이 있어요. 그건 더 나은 제품을 만드는 것, 그 가치를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제품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 점이 엄청나게 중요하며, 우리가 하는 일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당신이 전혀 볼 일이 없는 제품 내부를 어떻게 디자인하느냐에 고심합니다. 그렇게 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애플의 공동 창업자인 잡스는 소비자가 전혀 보지 않는 곳의 디테일에 집착하곤 했다. 그건 그의 양아버지였던 기술자 폴 잡스로부터 물려받은 것이었다. 1996년에 잡스는 디자인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디자인이라는 것은) 재미있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디자인이란 어떻게 보이는가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면, 디자인이란 다름아닌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의미함을 알 수 있습니다." 1년 뒤에 잡스와 아이브가 막대사탕 색깔의 반투명 아이맥을 공개할 때, 잡스는 그에 실리는 새로운 운영체제인 OS X에도 그와 같은 재미와 장난스러움이 반영되도록 하기를 잊지 않았다.

어떤 점에서 봐도 아이브 역시 사소한 부분을 놓고 진땀을 흘리는 천성적인 집착을 가졌다. 직원들을 쥐잡듯 하기로 악명 높은 잡스가 아이브를 '영적인 파트너'로 부르며, 창업자를 제외한 그 어떤 직원보다 더 많은 권한을 준 것은 아마도 바로 그 점 때문인지도 모른다. 잡스가 암으로 세상을 떠난 직후에 월터 아이작슨이 펴낸 전기 <스티브 잡스>에 따르면 그렇다.

런던 교외 출신인 아이브는 축구 스타 데이빗 베컴과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다. 그는 노썸브리아 대학의 학위를 포기하고 런던의 디자인 회사 탠저린(Tangerine)에 입사하려고 했다. 1989년부터 1997년까지 애플의 제품 디자인 디렉터였던 로버트 브러너가 아이브를 만난 것은 그 즈음이었다. 브러너는 애플의 몇몇 프로젝트와 관련해 탠저린사와 접촉하고 있었다. 브러너는 말한다. "조니(아이브)는 나에게 아주 급진적인 디자인을 한 가정용 무선 전화기를 보여 주었습니다. 기능과 구성품들을 내게 설명해 주었는데, 매우 특이했습니다. 그를 여기(애플)로 데려오는 게 정말 당연한 일인 것처럼 생각되었죠."

아이브는 애플에 와서 일하라는 브러너의 제안을 처음에는 거절했다. 그러나 북캘리포니아에 있는 애플 본사를 둘러본 뒤 마음이 달라졌다. 이후 그는 아내, 두 아들과 함께 사는 이 지역을 고향이라고 부른다.

(애플을 나온 뒤) 샌프란시스코 지역에서 디자인 회사인 앰뮤니션(Ammunition)을 설립한 브러너는 "조니는 본질적으로 공예가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또한 놀라울 정도의 지식인이기도 하고 또 놀라울 정도로 좋은 사람이기도 합니다. 유명세를 타게 된 뒤에도 이 두 덕목을 동시에 유지하기는 쉽지 않죠. 그는 애플에서 매우 존경받는데, 따라서 큰소리를 낼 필요가 없습니다."

브러너는 아이브가 "앞으로 애플의 얼굴이 될 것 같습니다"라고 말한다. "애플은 디자인에 전적으로 매달리는 몇 안되는 회사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애플은 모든 일을 사용자의 경험에서 출발하며, 이로부터 자신의 기업 구조로 되돌아와서 생각을 실현해 갑니다. 이런 회사에서는 편집적인 목소리(editorial voice)를 강하게 가진 지도자가 필요하며, 바로 그 때문에 지금과 같은 시점에서 조니가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널리스트 맥스 채프킨은 애플의 디자인에 대한 구술 역사서인 전자책 <디자인에 미치다: 멋진 제품, 다혈질, 그리고 애플의 진정한 천재들(Design Crazy: Good Looks, Hot Tempers and True Genius at Apple)>을 쓰고 있다. 이 작업을 위해 지난 몇 달 동안 애플의 전(前) 직원 십여 명을 인터뷰했다. 그는 "애플에 대한 낙관론자들은 조니가 이 회사의 디자인을 이끌어가는 수호자가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채프킨은 iOS 7의 급진적인 디자인이 이미 이러한 희망을 반영하고 있다고 보았다. "(애플의 전 직원들 사이에서는) 애플이 과감하거나 충격적인 어떤 일도 시도하고 있지 않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아이팟이나 아이맥처럼 디자인과 기능을 과감히 비튼 것들이 없다는 얘기죠. iOS 7은 새롭고 다르며 위험합니다. 바로 그게 흥미진진한 거죠. 애플은 다시 우리에게 충격을 주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 같습니다."

"그냥 조니라고 불러주세요"

아이브가 지난 몇 년 동안 만들어낸 제품과 디자인은 실제로 세상에 충격을 안겨 주었지만 (호주머니 안에 노래 1천 곡이라니, 놀랍지 않은가), 아이브 자신이 마이크를 들고 무대의 전면에 나서는 인간으로 진화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조용히 안 보이게 일하는 것이 그의 스타일이다. 친구 보노(U2)의 자선 경매를 돕기 위해 금장미색 특별 이어폰을 제작할 때도 그랬고, BBC의 인기 어린이 공작 프로그램 <블루 피터(Blue Peter)>에서 진행자가 공손하게 '조너선 경'이라고 부르자 황급히 "그냥 조니라고 불러 주세요"라고 바로잡아 줄 때도 그랬다.

인간으로서 허식이 없다는 점이 그의 디자인에 대한 신뢰를 더욱 강화시킨다.

"전에도 말한 바 있지만, 단순함이란... 거슬러 올라가자면... 무엇의 핵심을 말하려 할 때 도저히 피할 수 없고 빠뜨릴 수 없는 무언가를 발견한다면 바로 그게 단순함입니다. 많은 사람은 잡동사니로 채워져 있지 않는 것이 단순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닙니다. 진정한 단순함이란, 일을 계속 진행하다가 '아, 이제 더 이상 다른 합리적인 대안은 없군' 하는 단계에 이를 때 성취됩니다."

그러한 사례는, 아이폰 5s의 중심과 하단 홈 버튼에 내장되어, 어떤 각도에서도 즉석에서 지문을 인식하는 지문 인식기인 TouchID일 것이다. 그게 어떻게 만들어지게 됐는지를 질문하자, 아이브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바로 이게 내가 애플을 사랑하는 이유입니다. 매우 정교하고 강력하면서도 당신이 거의 알아채지 못하는 기술. 그런 게 나를 빠져들게 만듭니다. 다양한 기능을 복합적으로 고려하지 않으면 구현할 수 없는 것이죠."

페데리기는 비슷한 기능을 놓고 씨름해 본 엔지니어라면 누구나 아이브의 탁월한 성과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 방식이란 예를 들면 이런 거죠. '스캔하겠습니다!' 하고 떠들썩한 메시지가 나옵니다. 그리고 나서 삐리리릭 소리가 계속되다가 이윽고 '확인되었습니다!' 하는 소리와 함께 10초 동안 애니메이션이 등장하는..." (아이브는 옆에서 웃었다.) 페데리기는 계속해 말했다. "우리는 이런 게 궁극적으로 사라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런 게 사라진다면 우리가 제대로 일했다는 걸 알 수 있는 것이죠."

아이브는 자기 회사 엔지니어링 파트와 본격적으로 협업하게 된 이 첫 경험을 통해, 자신의 디자인을 구현하기 위해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하는 부서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팀들이 진정으로 통합되면서 만들어 낼 수 있는 미래의 제품들에 대한 희망도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장난스러운 웃음을 띄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지금 어떤 작업을 하는지 정말, 정말, 정말 말해주고 싶지만, 그럼 내가 직장을 잃게 되겠지요."

그는 계속 말했다. "하지만 우리가 어떤 것을 만들고 있는지는 몰라도, 우리가 팀을 이뤄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감이 왔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올바른 답을 얻을 때까지 우리가 어떻게 끊임없이 시도하는지 말이지요. 나는 우리에게 진정함이 있다고 사람들이 생각해 줄 것으로 믿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제품을 만들며, 쉽게 입증하거나 평가하긴 어렵지만, 어쨌든 그게 옳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현재 애플의 CEO는 팀 쿡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생각하듯, 이 회사의 방향타를 잡은 사람은 아이브가 아닌가? 혹은 잡스가 만들어 놓은 배를 아이브와 페데리기가 함께 움직이게 될 것인가.

잡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말을 꺼려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 회사에서 잡스의 영혼은 도처에 존재하고 있었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회의실 한 층 밑에는 벽에 잡스의 말이 새겨져 있다. "만일 당신이 무슨 일을 해냈고 그게 썩 괜찮다면, 거기에 빠져 오래 머물러서는 안 되며 또다른 멋진 일을 하러 나서야 한다. 다음에 할 게 무엇인지 생각해 보라." 한 모퉁이에는 초기 매킨토시를 내려다보는 젊은 잡스의 사진이 걸려 있다.

이렇게 그에 대한 존경이 이 회사의 공기 안에 넘실거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경영진은 애플이 잡스의 거대한 그림자를 넘어서 존재할 수 있고 또 실제로 그런 것으로 보고 싶어함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아이브는 말했다. "내가 여기 몇 년이나 있었지만, 우리가 일하는 방식은 똑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죠. 우리는 엄청나게 복잡한 미래의 제품을 놓고, 아무도 해보지 않은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합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많은 사람은 이제 누군가가 더이상 애플에 없다는 식의 이야기들을 종종 합니다. 그건 애플이라는 회사를 자기들 마음대로 보고 있는 것이죠."

페데리기가 나섰다. "이 회사 사람들은 우리가 만드는 모든 제품으로 입증된 가치들을 위해 이곳에 나옵니다. 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릴 때, 그건 우리를 우리의 가치 시스템으로부터 떼어놓으려는 사람들 간의 싸움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러한 가치를 더욱 배가시키기를 바라며, 그 가치가 겨냥하는 것은 제품을 좀더 단순하고 집중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드러나든 드러나지 않든, 바로 이게 우리가 벌이는 모든 토론에 담겨 있는 애플 정신입니다. 당신은 그걸 스티브 (잡스)의 유산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애플 그 자체입니다."

아이브는 자신이 경쟁자의 기술적 디자인에 세심하게 주목하고 있긴 하지만 그로부터 영향을 받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우리를 이끄는 것은 우리 자신, 또 우리 제품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다른 기업이 우리를 이끌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며, 우리는 그런 점을 오랫동안 실제로 입증해 왔죠."

아이브는 머리를 흔들었는데, 군사 기지처럼 굳게 통제된 애플의 디자인 센터 문을 열어서, 현재 준비중인 자신의 작품들을 잠깐이라도 보여주지 못해 한이라는 점을 다시금 표현하는 것처럼 보였다.

"매 순간마다 우리는 시작이 시작되는 지점에 서 있다는 느낌을 갖습니다. 그것도 매우 즐거운 시작이죠. 내가 말씀드리는 게 무엇인지 아신다면, 그게 그냥 말장난이 아님을 아실 겁니다." 자신의 미학적 감각과 취향을 통해, 애플이 현재까지 7억 개에 이르는 iOS 기기를 파는 데 기여한 이 사내는 계속해서 말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기는 정말 쉽습니다. 그러나 하루이틀만 지나면 더이상 새롭지 않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더 나은' 것을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렇다면 조너선 경, 만일 다음번에 개발될 더 나은 무언가가 기술적 장치가 아니어야 한다면, 과연 무엇이 되겠소?

아이브는 잠시 생각했다.

"컵을 디자인하고 싶네요."

컵이라고?

"컵이죠."

손잡이가 달린 것? 아님 없는 것?

그는 웃으며 말했다. "아, 그건 제가 결정할 일이지요."

지금까지 아이브가 이룩해온 기록으로 보건대, 나머지 세상 사람들이 할 일은 그 컵을 사는 게 될 것이다.


※ 이미지: 애플, <USA 투데이> 재인용(본문에 링크)

 

덧글

  • par2Ki○ 2013/09/22 23:23 # 답글

    잘 읽었습니다..고맙습니다..
  • deulpul 2013/09/23 10:30 #

    고맙습니다.
  • Ll 2013/09/22 23:38 # 삭제 답글

    감사합니다
  • deulpul 2013/09/23 10:30 #

    고맙습니다.
  • 에스티마 2013/09/23 02:05 # 삭제 답글

    요즘 들풀님 글이 뜸하셔서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는데 조니 아이브 인터뷰 기사 번역이라니 좀 의외입니다. ^^ 이미 읽은 글이지만 다시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deulpul 2013/09/23 11:14 #

    역시 이미 다 읽고 계셨군요! 저처럼 한 발 늦는 사람들, 그리고 행간에서 분위기를 짐작해 보려는 사람들에게 쓸모가 있을까 싶어서 훑어 보았습니다. 재미도 있고요. 전 아이브라는 인물에 대해 잘 몰랐는데, 매우 흥미로운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황이 없어서 생각을 하며 써야 하는 글들은 올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저 메모와 초고들만 늘어가는 중입니다.
  • 포비커 2013/09/23 13:31 # 삭제 답글

    들풀님, 블로그도 하셨군요. ^^ 몰랐습니다. 잘지내시죠?
  • deulpul 2013/09/23 14:06 #

    아, 아마도 포비커님이 아시는 분과 저는 다른 사람인 것 같습니다. 블로그 말고 다른 SNS 활동은 안 하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드는군요. 같은 닉을 쓰시는 분들이 더 있는 것 같아서, 그렇지 않아도 혼동을 드리지 않을까 늘 걱정하곤 합니다. 죄송합니다.
  • eg35 2013/09/23 13:50 # 답글

    자신의 분명한 철학이 느껴지는 인터뷰입니다 역시 애플에서 느껴지는 매력은 단순한 이미지 광고에서 오는게 아니었군요 좋은글 고맙습니다
    그리고 많이 바쁘신가봐요 들풀님 글을 애타게 기다리는 독자로써.. 외국 시사 블로그중 들풀님께서 자주 들르시는곳이 있다면 추천받을 수 있을까요?
  • deulpul 2013/09/23 15:05 #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업계를 이끄는 회사 관계자들이라서 더욱 두드러져 보이고, 그렇지 않은 회사의 리더들 중에서도 존경할 만한 철학을 가진 사람이 많겠지만, 여하튼 새로운 것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 정신과 창의력을 모태로 하는 이쪽 업계 종사자들의 면모를 다시 한 번 볼 수 있었습니다. 문/답식의 인터뷰가 아니라 기자가 중간에 양념을 치며 관찰하는 부분이 있어서 더욱 흥미로운 기사였다고 생각합니다.

    아, 그리고 저는 블로그들, 특히 외국 블로그들을 폭넓게 접하고 있진 않습니다. 매체를 중심으로 들여다보는 편이며, 자주 찾는 블로그는 보편적인 시사 이슈보다는 저의 개인적인 관심 분야를 다루는 곳들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말씀하셨으니, 기회가 되면 단 몇 개라도 추천할 수 있는 곳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 아크몬드 2013/09/23 23:08 # 삭제 답글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 deulpul 2013/09/25 14:14 #

    고맙습니다.
  • 민노씨 2013/09/24 07:09 # 삭제 답글

    내용도 재밌었지만, 인터뷰를 정리하는 방식이 인상적이네요.
    인터뷰이에게 지나치게(?) 친화적이고, 우호적인 인터뷰 구성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요.
    그나저나 에스티마 님 말씀처럼 한동안 잠잠하시던 '가로수 블로그'에 이런 저런 글들이 올라오니 참 반갑고 기분이 좋습니다.
    더불어 eg35 님께서 문의하신 들풀 님께서 탐독하는 매체와 블로그 추천은 아주 기다려지네요. :)
  • 민노씨 2013/09/24 07:10 # 삭제 답글

    추.
    당연히 이런 글이 인기일 것으로는 예상하긴 했지만, 저 개인적으론 '한겨레/KBS' 신뢰도 관련 논평을 담은 칼럼이 훨씬 재밌는데 말이죠. ㅎㅎ 페북에서 쉐어링되는 '좋아요'의 수는 앞도적으로 이 글이 많네요, 아쉽게도(?).
  • deulpul 2013/09/25 18:55 #

    기자도 보나마나 애플X다... 라는 편가르기는 이미 식상하고 또 지양해야죠. (라면서 이미 써놨음...) 는 농담이고, 분명 그런 느낌이 나는 것은 사실이네요.

    이곳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번역글이 다른 글보다 수십 배 높은 관심을 받는데, 퀄리티로 보자면 아주 당연한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또 원 소스에 대한 수요랄까, 희구가 여전히 높구나 하는 생각도 갖게 됩니다. 외국 보도를 전하는 한국 보도들이 좋게 말하면 실수, 나쁘게 말하면 왜곡을 드물지 않게 저지르는 터라 더욱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뉴스페퍼민트(http://newspeppermint.com/) 같은 작업에 좀더 많은 관심과 지원이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합니다. 만... 한국은 나라 밖에서 들어오는 모든 지식과 정보의 알파요 오메가인 번역을 지적 작업 중에서 하급으로 대접하는 막장 기형 사회라서 슬프죠.
  • deulpul 2013/09/26 06:37 #

    농담을 써놓고 보니 민노씨께서 '기자는 애X빠다!'라고 하셨다는 뜻처럼 되어버렸네요. 전혀 그럴 리 없고, 인터뷰라는 작업의 원론적인 측면을 말씀하신 것임을 잘 압니다. 농담도 어렵네요. 앞으로 조교 시킬께요.
  • Silverwood 2013/09/25 23:47 # 답글

    디자인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인터뷰네요! 내용을 읽다보니 문득 책 한권이 떠올라서 또 웃었네요^^
  • deulpul 2013/09/26 06:45 #

    디자인이란 사실 모든 창조적인 작업을 아우르는 말이기도 하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지적 디자인'으로 연결되며 이야기는 산으로 가는데... 생각하신 책은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 민노씨 2013/09/26 18:54 # 삭제 답글

    뉴스페퍼민트, 이름은 낯설지 않은 느낌이었지만, 들풀 님 소개로 이제야(!) 찬찬히 살펴봤습니다.
    최근 번역한 기사 가운데는 에반 윌리암스의 인터뷰가 눈에 띠네요.
    http://newspeppermint.com/2013/09/23/evan-williams/

    그런데 이 가치있는 작업이 현실적으로는 저작권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이 마음에 걸리네요. 지금이야 알음알음 독자들이 고맙게 그 번역의 노고를 함께 누리고 있습니다만, 혹여라도 이런 공익적(?) 작업이 크게 미디어로서 성공한다면 당장 저작권 문제가 불거지지 않을까 염려되네요. 들풀 님 말씀처럼 좋은 해외 논문, 기사 등을 번역하는 작업을 정부와 민간 모두에서 지원하고, 또 저작권자들도 합리적인 기준을 마련해 좋은 생각과 고민들이 널리 공유될 수 있게 하면 좋겠는데 말이죠.

    해외 거대 언론사와 유명 온라인 매체드 역시 저작권-번역작업까지 포함해서-에 관해서는 엄격한 정책을 운용하고 있겠죠?


  • 민노씨 2013/09/26 18:57 # 삭제 답글

    오타가 사소하게 맘에 걸려서...ㅜ.ㅜ;;
    눈에 띄네요. ㅡ.ㅡ; ㅎㅎ
  • deulpul 2013/09/29 05:29 #

    본질적으로 뉴스 큐레이터 성격이라서 요약 형태를 취하고 있고, 그래도 중요한 부분을 잘 짚어서 선택하는 것 같습니다만, 전문을 볼 수 없다는 게 아쉬울 때도 많죠. 하지만 전문 번역으로 나가면 소요되는 노동도 만만치 않고 말씀대로 저작권의 문제가 걸릴 수 있다는 점도 곤란합니다. 좀더 공식적인 형태를 갖추면 번역을 통한 소개 과정의 저작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있겠습니다만, 일단 수익의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데에서 막히게 되네요.
  • 2013/09/29 22:12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13/09/30 11:38 #

    아, 그렇게 일이 진행되는 중이군요. 모쪼록 두 분들 모두 풍성한 성과를 거두는 의미 있는 소통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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