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인의 심리 치료를 위한 역할극 섞일雜 끓일湯 (Others)

우연히 보게 된 이택광의 트위터 중 일부.

"뻔히 앞에 사람이 있는데도 전화 받기에 여념이 없는 모습은 그렇게 보기 좋지 않죠. 보다 못해서 내가 한 마디 하니까 처리 속도가 빨라졌다는 게 중요한 겁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데 그러지 않았다는 건 뭔가 이상하죠."

나는 이게 이렇게 다시 쓰여야 옳다고 생각한다.

"내가 한 마디 하니까 처리 속도가 빨라졌다는 게 이상한 겁니다. 그렇지 않을 수 있는데 그랬다는 건 뭔가 중요하죠."

민원을 담당하는 공무원에게 한 마디 해서, 더구나 본인이 말한 대로 스마트폰에 유명세 검색해서 보여주는 식으로 한 마디 해서 처리 속도가 빨라진다는 것은 중요한 게 아니라 이상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판단들에는 수많은 주변 요소와 상황이 함께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예컨대 민원인을 앞에 두고 '전화 받기에 여념이 없는' 공무원이, 이를테면 애인과 히히닥거리는 농지거리를 하고 있었다든가 고교 동창생과 엊저녁 가진 술판을 되새김질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한 마디 해서 속도가 빨라진 게 중요할 것이다. 그게 아니라 또다른 민원 전화를 받느라 '여념이 없는 모습'이었다면, 한 마디 해서 속도가 빨라진 것은 비정상적인 것이고 이상한 것이다.

어떤 상황인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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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관련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참에 늘 생각하고 있던 점을 풀어보고 싶다.

요즘은 관공서에 민원인이 직접 찾아갈 필요 없이 전화나 이메일, 웹사이트만으로도 많은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 나도 필요하거나 문제가 생기면 전화부터 한다.

이런 일과 관련해 늘 갖는 궁금증, 혹은 약간의 불만이 있다. 다음과 같은 상황이다. 내가 관공서를 직접 방문하여 일을 처리하고 있을 때, 담당 직원 자리에 전화가 온다. 물론 사적인 전화가 아니라 나 같은 민원인이 업무 처리를 위해 건 전화다. 이때 벌어지는 일은 대체로 다음의 경우다.

1. 전화벨 소리가 시끄럽게 울리니까, 직원은 나에게 양해를 구하거나 구하지 않고 전화를 받는다.

1-1. 직원은 전화 속의 인물이 문의하거나 요청한 일을 챙겨 준다. 힘들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 아니라면 전화기를 들고 모니터를 보면서 대답을 해주는 일을 흔히 목격하게 된다.

이럴 때 나는 좀 불공정한 상황에 처한 느낌을 받게 된다. 나는 시간 내서 일껏 여기까지 찾아온 사람이 아닌가. 하지만 저 전화 속의 사내(혹은 여편네)는 모르긴 해도 어디 마음껏 퍼질러 앉아 손가락만 까딱까딱하는 것으로 자기 볼 일을 보려고 한다. 그것도 나보다 먼저. 이것은 불공정하지 않은가. (내가 늘 갖는 궁금증, 혹은 약간의 불만이란 이 경우를 말한다.)

1-2. 직원은 시끄럽게 울부짖는 전화를 받긴 받되, 일단 나하고 일을 처리하고 있으므로 전화 속 인물에게 기다리라고 엄히 명령하며 전화기를 내려놓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나로서는 크게 불공정한 느낌을 받지 않지만, 내 뒤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보다 전화 속 인물이 여전히 먼저 자기 볼 일을 보게 된다는 점은 여전히 조금 불편하다.

2. 직원은 전화를 무시하고 받지 않는다. 이 경우, 내 일은 지장을 받지 않고 처리되니까 나는 상관없고, 한편 직원에 대해 원칙적인 사람인 것 같다는 인상을 갖게 된다. 하지만 전화가 시끄럽게 계속 울어대면 불안하고 불편한 마음이 점점 커진다. 게다가 이 지경이 되면, 직원이 내 일을 열심히 처리해주고 있음에도, 민원인을 무시하며 제대로 업무를 하지 않는 사람인 것 같다는 희한한 느낌이 조금씩 솔솔 피어오르게 된다.

한편, 내가 집에 퍼질러 앉아서 전화나 하는 역의 사람이라고 해 보자. 1-1의 경우라면 해당 직원의 창구 앞에 얼마나 긴 줄이 늘어서 있든 내가 알 바 아니다. 나는 간단히 전화 한 통화로 목표했던 일을 달성했다. 문명의 이기는 얼마나 편리하며, 세상은 얼마나 공정한가 말이다.

1-2의 경우라면 일단 통화가 되었으니 좀 기다리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전화가 걸린 채로 주구장창 기다리게 된다면, 이건 차라리 전화가 안 걸리는 것보다 더 성질 나는 일이다. 다시 걸 수도 없고 어디 갈 수도 없지 않느냐 말이다. 게다가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직원 목소리는 별로 바쁜 것 같지도 않고 말이다. 이럴 때 1분은 대개 5분 정도로 체감된다.

2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받지도 않는 전화, 얼른 끊어버리고 책임 부서나 민원실로 전화를 돌려, 아무아무 부서의 민원인 응대가 개판이라고 질타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공무원들은 왜 이렇게 게으르고 나태한가 하는 탄식을 참을 수 없게 된다.

대체로 이렇다. 자기가 어떤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똑같은 세상이 이렇게도 저렇게도 보이고, 똑같은 직원이 열심히 일하는 공복으로도 보이고 일은 뒷전인 채 수다나 지껄이는 세금 도둑놈으로도 보인다. 내가 잘 모르는 세상과 만나는 접점에서 내가 겪는 반쪽의 경험을 절대화하기는 늘 위험하지 않을 수 없다.

 

덧글

  • 그러면 2013/09/26 14:20 # 삭제 답글

    전화거는 역이라고 가정해서요. 응답여부가 불확실한 것이 아니라, 응답가능은 확인하되, 순서가 밀려있다고 상기시키는 방법은 안될까요? 방문창구 상담중이라면 자동응답시스템으로 바뀌고, 번호표와 연계해서 재발신 예상시간을 공지하는 형태로요. 행정적으로 간단한 문제가 아닌걸까요, 서비스수요자가 불쾌한 일일까요, 공무원이 업무태만 혹은 업무과다가 될까요? 방문과 전화의 우선순위는 생각도 못했었는데 재밌는 발견이네요.
  • 마언니 2013/09/26 14:50 #

    그러면 아마도 민원인은 공무원들은 전화를 돌리거나 받지않는다고 하실겁니다. ㅎㅎㅎ
  • deulpul 2013/09/29 04:40 #

    좋은 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새로 제기될 수 있는 문제도 있는 게, 1) 전화를 거는 것은 빠르고 간단히 처리하려는 생각 때문인데, 줄 서서 기다리는 것과 같은 수준으로 대접하면 결과적으로 전화를 거는 의미가 없어지고, 2) 이것은 마언니님이 말씀하신 대로 전화 민원인의 분노 폭발로 이어질 것이라는 점... 그래도 여전히 직접 찾아가는 것보다는 수월합니다만, 방문/전화 민원 때 지체 상황의 체감도가 크게 다르고 전화를 걸 때의 기대가 있기 때문에 새로운 문제가 나올 것 같습니다.
  • 민노씨 2013/09/26 18:34 # 삭제 답글

    업무적으로 전화문의와 방문문의 업무를 엄격하게 구별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는 생각도 들지만, 현실적인 인력을 고려하면 양자를 구별하거나 혹은 전화문의만 전담하는 인원을 뽑기가 어려운 건가 싶기도 합니다. ㅎㅎ

    추.
    그나저나 이택광이라는 이름이 등장하는 순간 (거의 조건반사처럼) 이 분 또 무슨 "이상한" 말씀을 하셨나 하는 관극틀이랄까 스키마가 형성되는데, 이 글을 읽으니 그런 제 체험적으로 축적된, 그렇지만 그 체험들이 갖는 한계를 고려하건데 다소 부당할 수도 있는 편견을 조심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그렇습니다? ^ ^;
  • deulpul 2013/09/29 04:45 #

    업무를 구별하고 전화 처리 담당자를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말씀대로 업무 처리 인원이 이중으로 필요하거나, 아니면 구체적인 업무 내용 관련 문의는 여전히 담당자에게 돌릴 수밖에 없다는 점도 문제가 될 것 같습니다. 답이 쉽지 않네요... 현재로선 담당자의 현명한 융통성이 최선인 것 같긴 한데, 시스템으로서 어떻게 소화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 pine25 2013/11/27 08:33 # 삭제 답글

    간과되기 쉽고 무심해버릴 수 있는 장면일 수 있지만,
    사건 상황을 읽고 문제점를 추리해내는 모습이 참 인상적입니다.
    객체화 되지 못한 경솔한 판단과 결론은 모순의 재생산에 기여하고,
    이 사회의 진보는 요원해 질수 있겠지요.
    은연중 선의를 명분삼은 자기애적 유명세의 과시를
    핀셋으로 집어내듯 명료하게 속아내어 정화시켜버리는
    겸허한 이야기들이 참 좋습니다.
    사회적 거대담론만이 아닌 일상의 파편화된 사건 속에서도
    글쓰기 소재로 부족함이 없고, 님의 글쓰기는 여전히 매력을 발하군요.
    "내가 잘 모르는 세상과 만나는 접점에서 내가 겪는 반쪽의 경험을 절대화하기는
    늘 위험하지 않을 수 없다"
    비록 불편하고 더디게 갈지라도,
    세월이 흘러 다양성이 틀림이 아니라고 이해 되듯,
    대척의 그 편이지만 진리 또한 자리할 수 있음을 일께워 주는 이야기 같습니다.
    특히나 자신의 능력이상을 대중으로부터 제공받은 권력인, 유명인은
    위임자에게 갚음하는 지극히 보편적 순리에 더욱 모범적이여야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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