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포유>로부터 배워야 할 것 중매媒 몸體 (Media)



‘꿈이 없어 방황하는 학생들이 합창을 통해 변화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취지로 제작되었던 SBS의 추석특집 프로그램 <송포유>가 논란 속에 세 차례 방영을 내보내고 끝났다.

이 프로그램에 쏟아진 수많은 비판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으므로, 여기서는 이런 사태가 시사하는 점은 무엇인지, 비슷한 일이 다시 벌어지는 것을 방지할 방법은 없는지 생각해 보고 싶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렇게 된다: 1) 방송사에 청소년 등 미성년자를 보호하는 명문화된 윤리 규정이 없고 2) 방송 종사자 자신들도 그런 의식이 없거나 희박하며 3) 이런 방식으로 방송이 나가도 규제가 따르지 않는다면, 시청률에 목매다는 방송은 비슷한 프로그램을 또다시 만들어낼 것이다. 제2, 제3의 송포유(사실은 송포미)가 언제든 등장하여 부정적인 방식으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고, 방송사는 시청률이라는 현찰을 챙기려 할 것이다.

'미성년자' 등장하면 일단 빨간불

방송에 대해 말하기 앞서 조금 옆길로 가 보자. 행동과학에서는 연구 대상이 주로 사람이다. 다양한 방법으로 인간들을 연구한다. 설문조사를 통해 의견을 알아보기도 하고, 상황을 만든 뒤 실험을 통해 행동을 조사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만들어 낸 무언가를 들여다보며 내용 분석도 한다.

이러한 연구들은 어떤 식으로든 인간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엄격한 윤리 규정이 부과된다. 연구 과정에서 대상자가 해를 입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행동과학뿐 아니라, 인문-사회-자연 과학을 통틀어 제대로 관리되는 모든 연구 작업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규정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처럼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에서도 특히 윤리 규정이 까다롭게 적용되는 경우가 있다. 피해를 쉽게 볼 수 있는 이들이 대상이 되는 경우인데, 그 대표적인 경우가 어린이나 청소년 같은 미성년자다.

연구 계획서에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다는 항목이 포함되면, 연구 심의 과정에서 빨간불이 켜진다. 성인 일반을 대상으로 할 때 필요하지 않은 조항들이 추가로 부과되고, 대상자들이 연구 과정에서 아무런 해를 입지 않도록 보장하는 여러 장치를 요구받게 된다.

그 가장 기본은 학부모나 보호자의 동의를 받는 것이다. 연구가 학교에서 이루어진다면 교사의 동의도 필수적이다. 이런 동의는 반드시 서면으로 받아야 한다. 하기 싫으면 빠질 수도 있고, 그래도 아무런 불이익을 받지 않아야 한다. 당사자(학부모)가 동의한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조건을 충족시키더라도 연구의 내용 때문에 승인이 나지 않을 수 있다. 예컨대 음란 영상이 미성년자에게 미치는 영향은 매우 흥미롭고 의미 있는 연구 주제일 수 있지만, 이를 조사하기 위해 아이들에게 포르노를 보여주는 연구를 계획하더라도 승인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일단 포르노에 노출된 아이들이 입게 되는 정신적 피해를 복구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청소년 보호 규정조차 제대로 없는 방송 강령

이것은 방송에서도 마찬가지다. 보도나 오락을 목적으로 하는 대중매체인 방송은 엄밀성을 추구하는 학문의 영역보다 윤리 규정이 덜 까다로울 수 있지만, 미성년자의 경우는 큰 차이가 없다. 미성년자 보호는 분야에 따라 어디서는 해야 하고 어디서는 안 해도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컨대 영국 BBC의 방송 편제 전체를 관장하는 'Editorial Guidelines' 중 '섹션 9.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어린이와 미성년자' 항목에는 다음과 같은 부분이 나온다.


BBC는 BBC에 출연하는 어린이와 청소년이 해를 입지 않도록 보장하는 조처를 반드시 갖추어야 한다. 여기에는 방송에 나올 것인지 결정하는 권리를 당사자가 갖도록 보장하는 조처가 포함된다. 이것은 유엔 아동권리협약(pdf)에 따른 것이다.

영국 방송통신위원회(Ofcom)는 "방송 프로그램에 참여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관여하는 18세 미만 미성년자들이 물리적 혹은 정서적 해를 입지 않도록 충분한 조처를 취해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강제 조처는 미성년자의 부모나 보호자가 동의를 했더라도 이와 상관없이 취해져야 한다.

방송통신위원회는 또 "18세 미만 미성년자가 어떤 프로그램에 출연하거나 혹은 이런 프로그램의 방영으로 인해 불필요한 고통이나 불안을 갖도록 해서는 안 된다"라고 규정한다. 이런 규정과 더불어, BBC는 어린이와 관련된 기존 법들을 준수한다.


말하자면 부모의 동의는 기본이고, 동의를 받았더라도 방송에 출연하거나 방송을 시청하는 미성년자가 물리적, 심리적 해를 입지 않는 조처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강제 조항이기 때문에, 이런 조처가 없으면 방영할 수 없다.

BBC의 내부 가이드라인의 내용을 구성하는 것이 Ofcom 같은 영국 정부의 규정이므로, 이 같은 조항들은 결국 영국의 모든 방송에 적용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린이 참여 프로그램이 많은 미국 PBS는 어린이용 프로그램만을 대상으로 한 12페이지짜리 특별 제작 가이드라인(Producer Guidelines, pdf)을 채택하고 있다. 이 가이드라인은 PBS Kids의 모든 프로그램이 그 제작팀에 교육 전문가를 컨설턴트와 조언자로 포함시켜야 한다고 규정한다.

저널리스트이자 언론학 교육자인 앤드루 보이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방송사 대부분은 미성년자의 출연과 관련한 가이드라인을 갖고 있다. 그 전반적인 목적은 미성년자들을 공정하게 다룰 것, 사실과 다르게 묘사하지 않을 것, 방송에 나온 것으로 인하여 놀림, 괴롭힘, 기타 다른 피해를 입지 않을 것 등을 보장하는 것이다.


그럼 <송포유>를 방영한 SBS는 어떤가. 이 방송사도 윤리 강령을 갖고 있긴 하다. 그러나 이 강령은 방송 프로그램 전체의 윤리 규정 모습을 하고 있지만, 실제 내용은 주로 뉴스 취재와 보도에 관계된 윤리 규정들을 담고 있다. 이 윤리 강령에서 미성년자와 관련한 항목은 다음뿐이다.


1. 인권보호 지침
③ 미성년 형사사건 피해자와 미성년 성폭행 피해 여성의 인권을 침해하는 직접적인 인터뷰와 보도를 하지 않는다.


뉴스 보도가 아닌 일반 방송의 경우 미성년자의 인권이나 권익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은 공개된 것이 없다. <송포유> 같이 미성년자가 연루된 민감한 오락 프로그램이 만들어지더라도 이를 검토하고 점검할 규정이 없다는 말이다.

(Walt Jabsco, 'Television, the Drug of the Nation')


한국의 세 지상파 방송사(KBS, MBC, SBS) 중에서 관련 규정의 양으로 보아 가장 진일보한 지침을 갖고 있는 MBC의 경우도, 방송에 나오는 폭력, 범죄, 성 따위가 미성년자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고 되어 있을 뿐,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미성년자가 이와 같은 내용에 관련되어 있는 경우에 대한 부분은 없다. 거꾸로 말하자면, 미성년자가 직접 프로그램에 나와 폭력, 범죄, 성 따위를 말하거나 보여주는 것이 방송 윤리의 측면에서 얼마나 예외적이고 위험한 일인가를 시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매체 윤리는 매체가 신뢰 받는 초석이자 매체에 관련되는 사람들의 인권을 수호하는 지침이다. 그 중에서도 미성년자와 관련한 대목은 매우 민감하게 접근해야 하는 부분이다. 꼼꼼하고 정밀하게 규정되어 있어야 한다. 보이드는 방송사 대부분이 이런 가이드라인을 가졌다고 했다. 한국 방송사들의 사례는 몰랐을 것이다. 없으면 빨리 만들어야 한다.

연예인 다루는 법보다 매체 윤리부터 배워라

방송에 등장하거나 방송으로부터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보호하여야 한다는 것은 강령 같은 규정 이전에 상식의 문제이다. 상식이기 때문에 교육, 법, 대중매체, 학문 등 여러 분야에서 두루 강조되는 것이다. 여기에 텔레비전 오락 방송만이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설령 금과옥조 같은 미성년자 윤리 규정이 있다 하더라도, 방송 종사자들이 이를 제대로 모르거나 인권 의식을 갖지 못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보도든 오락이든, 매체 종사자들은 매체 활동을 시작할 때 매체 윤리부터 배워야 한다. 학교에서 배우면 더 좋고, 배울 기회가 없었다면 회사 입사하자마자 배워야 한다. 언론사는 새로 입사한 보도와 제작 담당 직원들에게 경찰서 드나드는 법이나 연예인 다루는 법보다 매체 윤리부터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배운 것을 지켜야 한다.

<송포유>가 방영되는 동안 제기된 문제들은, 서구의 방송 윤리 규정들이 규제하거나 금기시하는 바로 그 교과서적인 사례들을 일부러 골라서 모아둔 것 같은 지경이었다. 이 프로그램이 방영되는 동안 지적된 문제들은 다음과 같다.

- 학생들은 폭행(= 범죄) 전력을 자랑스럽게 말한다.
- 방송 촬영중에 출연 학생들이 프라이버시 침해에 항의한다.
- 성인 출연자는 학생들에게 거짓말을 한다.
- 출연 학생 중 한 명으로부터 성추행 피해를 입은 여학생이 방송사에 항의한다.
- 방송이 왕따 피해자로 묘사한 학생은 실제로는 가해자다.
- 문제를 잘 맞히지 못하는 것으로 방영된 학생은 전국적인 웃음거리가 된다.
- 해당 학교 교사가 "아이들을 가장 나쁘게 보이게 만들기 위해 말도 안 되는 질문을 던졌으며 앞도 뒤도 다 자르고 마치 아이들을 양아치 깡패처럼 보이도록 교묘히 편집을 했다" "이런 막장 프로그램 하나로 상처받을 저희 아이들이 너무나 불쌍하고 억울할 것 같다"라고 문제를 제기한다.

이상의 내용들을 보면, 정상적인 방송에서 미성년자 보호를 위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을 일부러 모아놓은 백화점 같다는 생각을 갖게 되지 않을 수 없다. 어느 것 하나도 절대 가볍지 않다. 위에 옮긴 BBC의 규정, 그리고 보이드의 언급을 상기해 보시기 바란다.

(해당 학교 교사라고 밝힌 사람이 올린 글.)


‘반전’이 인권 침해를 합리화해 주지 않는다

보도에 따르면 <송포유> 제작진은 이 프로그램의 마지막 부분에서 참가 학생들이 참회하는 장면이 나오는 것으로서 무리한 제작을 정당화하려는 것 같다.


거듭된 논란에 SBS 관계자는 “26일 방송될 3부를 보면 아이들이 참회의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나온다. ‘힐링(치유)’을 하는 과정에 주목해 달라”고 말했다.


이것은 결과가 좋으면 과정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경쟁에서 어떤 식으로든 제외된 아이들을 다시 경쟁의 구도에 집어넣어 과장된 성공을 이룩케 하는 것으로 진정하고도 지속적인 ‘힐링’이 가능한지는 둘째치고, 설령 결론이 그렇게 나더라도 방송 과정에서 보여준 무리한 장면들을 합리화할 수 없다. 방송 영상 프로그램은 장면 단위로 출연자와 시청자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좋은 줄거리, 좋은 소재를 갖고 제작된 영화라도 장면 장면이 가위질로 잘려나가는 것도 이 때문이요, 동물을 예찬하는 영화라도 동물보호단체 직원이 제작 과정을 면밀히 모니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극영화도 아닌 리얼리티 쇼에서 ‘막판 반전’이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거나 다양하게 연루된 청소년들이 입었을 수 있는 해를 합리화해 주지 않는다.

앞으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송포유>의 방영 내용을 잘 검토하고 적절한 사후 조처를 취할 것으로 기대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할 일이 있다. 우선 이 방송으로 인해 피해를 본 출연 학생이나 피해 학생들의 가족은 피해 사실을 소명하여 소송을 제기하는 일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미성년자의 인권을 제대로 돌보지 않고 더구나 왜곡 과장 논란까지 불러일으켰으므로, 충분히 법률적 다툼의 여지가 있다. 한국에서는 매체로 인해 벌어지는 인권 침해 문제에 관해 언론보다 사법부가 좀더 민감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정신적, 육체적 피해 사실을 잘 소명하면 유리한 소송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어떤 일이나 법적 다툼을 통해 풀려는 소송 만능주의는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런 사안의 경우 방송사나 제작자 스스로는 자정 능력이 없는 것 같고,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기 때문에, 비슷한 일이 또 벌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상당한 수준으로 책임을 물어야 할 필요가 있을 듯싶다.

참고로 말하자면, 이 프로그램에 등장한 미성년자들은 모두 방송 프로그램의 희생자로 볼 여지가 있다. 그들은 사회에서 낙오된 자신들을 찾아와 노래를 가르쳐주고 외국까지 데려가서 승리감을 맛보게 해 주고 더 나아가 참회나 ‘힐링’까지 하게 만들어 준 방송을 고맙게 여기는지 모르지만, 이들의 느낌과는 상관없이 출연 학생들은 모두 방송사의 무리한 제작의 희생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출연 학생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던 과거 때문에 프로그램을 보며 다시금 고통에 빠지게 된 피해 학생들은 물론이고, 이 프로그램 때문에 왜곡된 인식을 덮어쓰게 된 같은 학교 다른 학생들도 역시 피해자 범주에 들어간다.

일반 시청자가 할 일은 이런 프로그램을 외면하고 더 나아가 방송사에 항의하는 일이 될 것이다. 좋은 의도로 시작했다고 해도 잘못 나가면 바로잡아 주는 것은 시청자의 몫이다. 개인과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는 방송의 책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으며, 그 종사자들은 어떤 분야의 직업군보다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 보호에 세심하여야 한다. 못하면 일깨워주는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나는, <송포유>를 놓고 방송사가 계산하여 들이미는 대로 감동을 받아 소비하며 함께 가해자가 되는 대신 끊임없이 제작 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한 많은 시청자에게서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


※ 첫 번째 이미지: <송포유> 예고편 동영상 중에서, 두 번째 이미지: flickr.com, 세 번째 이미지: 인터넷 게시판.

 

덧글

  • 2013/09/29 22:07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13/09/30 11:35 #

    넵, 보관본이 있으므로 이곳은 일단 정리하였습니다. 관심 가져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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