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총선 때 비례대표 경선 과정에서 대리투표를 하여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통합진보당 당원 45명에 대해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이 소식이 전해진 뒤 많은 사람이 어이없어 하거나 화를 내는 모양이다. 그럴 필요 없다. 내가 보기에 이 판결은 솔로몬의 지혜를 능가하는 혜안과 통찰을 담은 명판결이다.
민주적인 선거의 원칙들은 정치 영역에서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민주 사회에서 벌어지는 모든 선거에 적용되는 것으로 인식된다. 초등학교 반장을 뽑을 때도 마찬가지고 노동조합 위원장을 뽑을 때도 마찬가지고 아파트 동 대표를 뽑을 때도 마찬가지다. 이런 조직들의 규정은 '1인은 1표를 행사한다'는 식으로 선거 진행 방식을 시시콜콜하게 언급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너무나 당연하고 기본적인 사항이기 때문이다.
이런 선거들을 비롯해 사회의 어떤 영역에서 벌어지는 선거라도, 일부 구성원이 배제되거나(보통 선거 위배), 한 사람이 여러 표를 행사하거나(평등 선거 위배), 다른 사람을 대신해 투표해 주거나(직접 선거 위배), 공개적으로 표를 보이며 투표한다면(비밀 선거 위배), 그 선거는 난리법석이 벌어지는 아사리판이 될 것이며, 선거의 유효성을 인정받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재판부는 이 사건에서 통합진보당에 이와 같은 민주 선거 원칙을 적용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한다. 기사에 따르면 (강조는 내가, 이하도 마찬가지)
고 한다. 또
고 한다. 또
고 한다. 또
고 한다. 또
라고 했다고 한다. 다른 기사에 따르면
고 한다.
이상 재판부의 주장을 요약하면, 통합진보당은 애초에 민주적 질서를 가지지 않은 비민주적 집단이므로, 그 안에서 벌어지는 절차가 민주적 요건을 충족시킬 필요는 없다는 말밖에 안 된다. 해당 정당의 처지에서는 매우 불명예스러운 판결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어쨌든 이것은 아주 현명한 판결이라고 볼 수 있다. 첫째, 부정 선거 논란 과정에서 드러난 해당 정당의 비민주성을 기정사실로 확정함으로써, 이 정당에 비판적인 사람들의 인식을 반영시켰다. 둘째, 기소된 당사자들에게는 무죄의 선물을 안겨줌으로써 이들의 희망도 충족시켰다. 셋째, 아울러 판결문 곳곳에 개그를 은밀히 숨겨서 보는 사람을 즐겁게 하는 유머도 선보였다. 가히 솔로몬의 지혜를 능가하는 명판결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통합진보당은 해당 판사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는 일을 검토해 보는 것이 좋겠다.
이 소식이 전해진 뒤 많은 사람이 어이없어 하거나 화를 내는 모양이다. 그럴 필요 없다. 내가 보기에 이 판결은 솔로몬의 지혜를 능가하는 혜안과 통찰을 담은 명판결이다.
민주적인 선거의 원칙들은 정치 영역에서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민주 사회에서 벌어지는 모든 선거에 적용되는 것으로 인식된다. 초등학교 반장을 뽑을 때도 마찬가지고 노동조합 위원장을 뽑을 때도 마찬가지고 아파트 동 대표를 뽑을 때도 마찬가지다. 이런 조직들의 규정은 '1인은 1표를 행사한다'는 식으로 선거 진행 방식을 시시콜콜하게 언급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너무나 당연하고 기본적인 사항이기 때문이다.
이런 선거들을 비롯해 사회의 어떤 영역에서 벌어지는 선거라도, 일부 구성원이 배제되거나(보통 선거 위배), 한 사람이 여러 표를 행사하거나(평등 선거 위배), 다른 사람을 대신해 투표해 주거나(직접 선거 위배), 공개적으로 표를 보이며 투표한다면(비밀 선거 위배), 그 선거는 난리법석이 벌어지는 아사리판이 될 것이며, 선거의 유효성을 인정받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재판부는 이 사건에서 통합진보당에 이와 같은 민주 선거 원칙을 적용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한다. 기사에 따르면 (강조는 내가, 이하도 마찬가지)
(재판부는) 공직선거 후보자 추천을 위한 정당의 당내 경선에 보통·직접·평등·비밀 등 선거의 4대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는 검찰 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선거 원칙 적용을 전제로 한) 검찰의 공소사실은 전제부터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 한다. 또
(재판부는) "정당의 공직선거 후보자 추천을 위한 당내 경선은 실질적으로 당선자를 결정하는 효과를 갖고 있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면서도 "후보자 추천 과정, 방식에 있어 정당의 자율성이 가급적 존중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 한다. 또
재판부는 "당헌·당규에 규정한 '당원 직접선거'는 '대의기관에 의한 선출'에 대응하는 직접 선출을 의미하는 것이지 대리투표를 금지한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고 한다. 또
(재판부는) 통진당이 채택한 전자투표 방식에 대해서도 "통진당이 대리투표 가능성을 사전에 인식하면서도 가급적 많은 당원들의 참여를 위해 스스로 결정을 내린 것"이라며 "전자투표에 대리투표가 안된다는 어떤 지침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고 한다. 또
(재판부는) "가족·친척·동료 등 신뢰관계가 일정하게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대리투표를 한 것"이라며 "선거의 본질을 침해한다고 볼 수 없고 업무방해의 고의가 있었다고도 볼 수 없다."
라고 했다고 한다. 다른 기사에 따르면
재판부는 “통합진보당은 대리투표의 가능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고, 통상적인 대리투표는 감수할 의사가 있었다”면서 “통합진보당 입장에서 대리투표를 실제 업무방해죄로 적용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할 것”이라고 판시했다.
고 한다.
이상 재판부의 주장을 요약하면, 통합진보당은 애초에 민주적 질서를 가지지 않은 비민주적 집단이므로, 그 안에서 벌어지는 절차가 민주적 요건을 충족시킬 필요는 없다는 말밖에 안 된다. 해당 정당의 처지에서는 매우 불명예스러운 판결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어쨌든 이것은 아주 현명한 판결이라고 볼 수 있다. 첫째, 부정 선거 논란 과정에서 드러난 해당 정당의 비민주성을 기정사실로 확정함으로써, 이 정당에 비판적인 사람들의 인식을 반영시켰다. 둘째, 기소된 당사자들에게는 무죄의 선물을 안겨줌으로써 이들의 희망도 충족시켰다. 셋째, 아울러 판결문 곳곳에 개그를 은밀히 숨겨서 보는 사람을 즐겁게 하는 유머도 선보였다. 가히 솔로몬의 지혜를 능가하는 명판결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통합진보당은 해당 판사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는 일을 검토해 보는 것이 좋겠다.
덧글
히요 2013/10/08 10:39 # 답글
그들은.... 무죄판결 났다고 좋아할까요?
deulpul 2013/10/08 11:28 #
히요 2013/10/08 12:02 #
deulpul 2013/10/08 12:41 #
措大 2013/10/08 11:16 # 답글
deulpul 2013/10/08 11:48 #
루시앨 2013/10/08 13:36 # 답글
아무래도 제가 이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는, 물론 실제 법정과 다르겠지만, 저같은 일반인 입장에서는 보스톤 리걸 4시즌 Indecent Proposal의 논쟁이 인상깊게 남아있어서요. 그때 역시 경선 문제였는데, 민주당 전당 경선에서 힐러리를 뽑기로 하고 당선된 Delegates가 실제로는 자신의 입장을 바꿔서 Obama에게 투표를 해서, 그것을 막기 위해서 DNC(Democratic National Committee)를 고소하는 내용인데요. 고소하는 측에서는 양당제 하에서, 자신의 투표가 단지 Delegate의 변심으로 반영되지 않는건 전혀 민주적이지도 않다고 하지만, 오히려 피고소인 측(DNC)은 사조직의 규칙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하는건 말이 안되고, 또 그런 변심이 있었기에 2차대전때 Franklin D. Roosevelt를 뽑을 수 있었다고 주장했죠. 결국 극중에서는 판사 역시 어차피 이 나라엔 당이 두개밖에 없어서 우려하는 내용은 알지만 정당은 사적기관이기에 자기 마음대로 룰을 정할 수 있다면서 Motion denied시킵니다. 이것도 아마 실제 판결을 배경으로 만들었을텐데 제가 과문하여 잘 찾진 못하겠고.. 차라리 양당제가 정착되었을때 사실상 사조직이라고 더이상 볼수는 없는 정당에 대해 어떤 식으로 민주적 절차를 강요할 것인가는 고민할 만한 영역이겠으나, 통진당 같이 제 3당에 대해서까지 굳이 왜 민주적 절차를 가져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그래서 사실 저 판결이 통진당의 비민주성을 비웃는다고 보기엔 좀 무리가 있는거 같습니다.
루시앨 2013/10/08 13:51 # 답글
여기서는 Wisconsin 법에 따라 민주당 경선 Delegates을 뽑을때 비민주당원도 넣어서 뽑으라고 하니까 민주당 측에서 wisconsin의 Delegates를 아예 경선에 불참시켜서 위스콘신주 대법원에서 위스콘신 주는 Open Primary System에 Compelling Interest 가 있으니까 민주당은 받아줘야 한다는 판결을 내려서 연방대법원까지 간 사안입니다. 물론 연방 대법원에서 반대로 결정이 났지요.
deulpul 2013/10/08 19:30 #
위 사건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대리 투표와 관련하여 중요한 점은 투표의 주요 원칙들(4원칙)을 어떻게, 혹은 어디까지 적용하는가의 문제일 텐데, 이것은 법 규정적인 의미와 민주적 상식의 의미,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겠습니다.
법 규정적인 측면에서 보면, 사실 우리 헌법에서 우리가 아는 4원칙을 명시하고 있는 경우는 국회의원 선거(제41조 1항)와 대통령 선거(제67조 1항) 뿐입니다. 헌법이나 기타 법률에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모든 선거는 구성원의 보통, 평등, 직접, 비밀 선거에 의하여야 한다"라는 식으로 규정하는 부분은 없지요. 결국 위 두 선거를 제외한 각각의 선거는 그것을 규정하고 있는 하위법, 관계 법령, 조직의 내규, 정강 등, 각 조직이 정해둔 약속에 따르면 되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위 판결이 통합진보당 내부 선거에 4원칙을 직접 적용한 검찰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은 것은 옳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런 법 규정적인 측면을 넘어 민주 사회의 상식으로 볼 때, 우리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많은 선거에서 이 4원칙이 일반적으로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는 점에 비추어, 그러한 원칙을 따르지 않고 대리 투표가 얼마든지 가능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정당을 어떻게 볼 것인가는 또다른 판단의 영역이라고 하겠습니다.
통합진보당의 경우에는 문제가 하나 더 있는데, 이렇게 진행된 선거의 결과가 자당 내에서 끝나지 않고 국가를 대표하는 국회의원의 선출과 직접 관련이 있게 된다는 점입니다. 이런 경우, 내부 규약에 따라(사실 대리투표를 허용하는 명문화된 규약 같은 것도 없었습니다만) 4원칙을 적용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선출 과정이 상당히 민주적이고 상식적인 방식으로 관리되어야 한다는 기대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벌써 많은 분이 잊었겠지만, 당시 통합진보당의 부정 투표 상황은 단순한 대리 투표가 아니라 '총체적 부정'(당 자체 진상조사보고위원회의 보고서)이었습니다. 물론 이정희 등 당시 당권파들은 이런 보고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만. 민주 국가의 공당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그런 과정을 통해 국회의원이 선출되는 것이 옳은가를 따지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공당이라는 말이 나왔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정식 의회 활동을 하는 정당을 말씀하신대로 사조직이라고 하기는 곤란하겠고요, 이 점은 통합진보당을 포함하여 어떤 당이든 부당한 처우를 받는다고 생각할 때 스스로 '공당의...' '공당에 대한...'이라고 말하는 바로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미국 정당의 선거 절차와 관련한 말씀을 자세히 해 주셨는데, 이것은 각 정당이 나름의 제도를 가질 수 있다는 측면을 말씀하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통합민주당에도 공통으로 적용될 수 있는 부분이지만, 논의의 차원이 조금 다르지 않나 싶습니다. 저는 이 부분과 관련하여, 선거에 흔히 적용되는 4원칙이 '투표의 행위'를 규정하는 것이지, 후보자를 뽑거나 당선자를 뽑는 선거 제도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환기하고 싶습니다. 후자(선거 제도)는 얼마든지 다양하게 채택할 수 있지만, 그런 제도 아래에서 시행되는 투표는 대체로 이러한 원칙들을 준수한다는 점이죠. 이 점은, 대통령 후보를 뽑는 데 필요한 대표자를 선출하는 제도는 정당마다 (심지어 주마다) 각자의 규약에 따라 다양하더라도, 그 제도를 구현하는 구체적인 선거 행위는 대개 민주적 원칙에 의거해 이루어진다는 점을 상기해 보면 되겠습니다. 말하자면, 미국 민주당이 예컨대 말씀하신 위스콘신 주에서 delegate를 뽑을 때, 아버지 대신 아들이 대리 투표하고 투표함에서 뭉터기 표가 발견되고 측근을 동원하여 여론조사를 조작하고 자격도 없는 사람이 표를 행사하고, 그런 선거를 통해 당선된 사람이 '어느 나라도 완벽한 선거는 없다, 어느 선거나 부정 선거는 존재한다'라고 합리화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를 상상해보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2013/10/16 00:49 # 삭제
비공개 답글입니다.긁적 2013/10/09 01:12 # 답글
저건 유죄판결 내는 것 보다 더 굴욕적임 ㅋㅋㅋㅋㅋ
deulpul 2013/10/09 18:10 #
민노씨 2013/10/11 01:53 # 삭제 답글
그런데 저 역시 위 루시엘 님과 같은 입장도 어느 정도는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글 속의 판결문을 읽으면서 했는데요. 들풀 님의 답변을 읽으니 조목조목 타당해서 쉽게 동의하게 됩니다. : )
deulpul 2013/10/11 18:55 #
2013/10/11 02:01 # 삭제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nina 2014/03/08 19:10 # 삭제 답글
deulpul 2014/03/10 01: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