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를 마음대로 바꾸면 안 되지 말씀言 말씀語 (Words)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미국에서 한국 식품 홍보를 벌이고 있다고 한다. 동영상도 만들었는데, 유튜브에 있다. 중간에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온다.



빨간 고추를 들고 '파프리카'라고 하고 있다.

한국에서 어떻게 부르든지 상관없다. 고추로 부르든 피망으로 부르든 파프리카로 부르든, 그게 다 같은 것이든 모두 다른 것이든, 상관없어요. 당신 마음대로 하십시오. 언어는 약속. 북슬북슬하고 멍멍 하는 소리를 내는 것을 '고양이'라고 부르기로 약속했으면, 그건 고양이가 되는 거다.

하지만 다른 곳에 광고를 내려면 그곳 사람들에게 알아먹히는 말을 써야 하겠지.

미국에서 이런 채소는 파프리카라고 하지 않는다. 파프리카는 고춧가루다. 우리가 쓰는 고춧가루보다 조금 더 잘고 곱게 빻은 가루다.



이렇게 고추 종류를 말려서 가루로 만든 향신료를 파프리카라고 한다. 미국넘들이 고추 비슷한 것에 다 붙이는 'OO 페퍼'류의 말보다 훨씬 보기 어려운 말이기도 하다. 이넘들은 음식에 페퍼는 쑥쑥 잘라서 많이 넣어도, 고춧가루를 넣는 경우는 그만큼 흔하지 않으니까 당연한 일이라고 하겠다.

그럼 저 시뻘건 피망은 뭐라고 하나요? 레드 페퍼. 똑같이 생기고 색이 노란 것은 옐로우 페퍼. 흔히 보는 녹색은 그린 페퍼. 나의 냉장고에도 그린 페퍼 두 개가 들어 푹푹 썩고 있다.

이런 것들은 모두 뭉툭하게 종(鐘)처럼 생겼으므로 통칭 벨 페퍼다. 그럼 길쭉한 놈들은? 걔들도 다 이름이 있다. 연노랑색 길쭉한 것은 바나나 페퍼, 빨갛고 매운 것은 칠리 페퍼, 작은 고추가 매운 것은 할라피노 (페퍼) 등등... 한국에서 먹는 풋고추 같은 것도 냉장고에 있는데, 보니까 그냥 '페퍼' 이렇게 써 놨다.

여하튼 딴나라에서 물건을 팔든지 홍보하려면 그 나라에서 쓰이는 말을 챙겨서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저렇게 레드 페퍼를 들고 나와서 파프리카! 하면, 닭을 들고 나와서 삼계탕! 하는 정도로 받아들일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저 광고가 고춧가루를 홍보하는 것은 아닐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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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 한미 양국 사이에 고추 이름이 달라서 벌어진 에피소드인데 실화라는 설도 있음. 한 젊은이가 미국으로 온 지 얼마 안 됐다. 식료품점에 가서 피망을 사려고 하는데, 어디 있는지 안 보이는 것이다. 영어 연습도 할 겸, 물건을 정리하고 있는 직원에게 가서 물었다.

"익스큐즈 미, 웨어 두 유 해브 피망?"
"왓?"
"피망."
"왓?"

젊은이는... 아, 내가 영어 발음이 이렇게 후지구나 하면서 잠시 좌절을 했다. 영어에선 액센트를 확실히 살려줘야 한다는데, 안 그래서일까?

"."
"왓?"

이런... 2음절인가보다.

"?"
왓?

이런 제길... P가 아니고 F였나?

"휘망?"
"왓?"
"휘맹?
"왓?"

이런 제길... 장음이었나?

"휘이이망? 피이이망? 피이이맹? 퓌맹? 퓌몽? 풰뮁? 쀟뭷?......"

직원이 고개를 갸웃갸웃하더니 성큼성큼 가서 피망을 들고 오며 소리쳤다.

"오~! 그뤼이인 페퍼!!"

※ 미국판 파프리카 이미지: Seriouseat.com

 

덧글

  • 고추병 2013/10/10 02:50 # 삭제 답글

    엊그젠가 한국 뉴스에서 저 비디오 문제 있다고 보도가 나갔는데 비디오 만든 홍보회사 왈, 호주출신 직원에게 감수를 받아서 문제가 없다고 대답하다랍니다.... 뭔소리를 하는건지 모르겠네요..
  • deulpul 2013/10/11 18:48 #

    그랬습니까? 그게 사실이라면, 두 나라(세계) 사이에 차이가 크다는 점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경솔한 제작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 무색 2013/10/10 03:21 # 삭제 답글

    고추병// 그렇다면 저 광고는 호주에서 틀어야지요. 마치 일본에서 된장을 미소라고 부른다고 한국에서도 된장을 미소라고 부르는게 괜찮다는 것과 뭐가 다른지.
  • 고추병 2013/10/11 04:49 # 삭제

    제 말이 바로 그말입니다..^^
  • eg35 2013/10/10 14:22 # 답글

    오늘도 좋은 얘기 고맙습니다 피망ㅋㅋㅋ
    그나저나 벨페퍼는 한국 음식에서는 거의 안쓰이지 않나요? 잡채에서 밖에 못봤는데..
  • deulpul 2013/10/11 18:51 #

    잘 모르겠습니다만, 일상적으로는 꽤 쓰시지 않는가요? 하긴 저도 중국음식 탕수육과 고추잡채밖에는 금방 떠오르는 게 없긴 하네요.
  • 민노씨 2013/10/11 02:07 # 삭제 답글

    꽤 돈 들인 광고일텐데... 참 어처구니가 없구먼요...;;;
    이런 광고 만들기 전에 기획 단계에서 들풀 님 같은 분을 자문위원으로 모셔야하는 건데 말이죠. ㅎㅎ
  • deulpul 2013/10/11 19:01 #

    하하, 농담이 지나치십니... 시식위원은 할 수 있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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