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북 셀프 테스트' 뒷이야기

지난 11월 말에 만들어서 <슬로우뉴스>를 통해 올린 '종북 셀프 테스트'는 아마 내가 온라인에서 만들어 낸 무언가 중에서 가장 넓고 깊게 퍼진 게시물이 아닌가 싶다.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는데, 이것은 작금의 종북몰이에 염증을 내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미지 풍자물로서는 이명박 집권 초에 만들었던 '2MB'도 재미있어 하시는 분들이 많았는데, 그보다 훨씬 많이 퍼졌다.



<슬로우뉴스> 해당 페이지는 페이스북 '좋아요'를 1만9천여 개 찍었으며, 트윗 공유도 1천 개를 넘었다. 뗏목지기님에 따르면 <슬로우뉴스>는 갑자기 트래픽이 늘어나서 용량을 두 차례 셋업해야 했다고 한다. 이미지는 많은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전파되었으며, <경향신문> <헤럴드경제> 같은 매체는 관련 기사를 냈다. (아이디 일부 가리는 것은 좋은데, 그 '누리꾼'은 정말 혐오스럽다. 꾸준히 나온 지적이지만, '네티즌'과는 어감도, 의미도, 근원도 다른 말이다.) (12월18일 4:00 pm 덧붙임: <헤럴드경제> 다른 기사)

한 촛불 시위에서는 이 이미지가 그대로 크게 인쇄되어 거리에 등장하기도 했고:




12월6일 녹음/녹화된 팟캐스트 '최고탁탁'에서는 문재인을 출연시켜 토크쇼를 진행하는 도중 이 테스트를 꺼내서 문재인을 시험해 보기도 했다:



많은 사람이 테스트를 해 본 뒤 자신도 몰랐던 종북성이 드러나게 되자, 이를 간증하고 괴로워하며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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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정책에 반대하면 종북 딱지를 붙이는 것은 한국 정치에서 단골로 쓰여온 술수 중 하나다. 시기에 따라 빨갱이, 용공, 좌경, 친북 등으로 이름만 바뀌었을 뿐, 정부 비판 여론에 붉은 색 페인트를 퍼부어 대중으로부터 고립시키고 파급을 막는다는 얼개는 늘 똑같았다. 빨갱이 김대중과 노무현이 대통령이 된 뒤에도 일부의 예상과는 달리 한국이 공산화되거나 북한에 편입되는 일 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았고, 그래서 지긋지긋한 레드 컴플렉스 자극 전술은 그 수명을 다한 것으로 보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위로 북한이 존재하고 아래로 북한을 이용해 먹으려는 세력이 존재하는 한, 빨간 페인트칠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이처럼 유구한 뼁끼칠 전통의 최근 버전인 종북 딱지 붙이기는, 국가 기관의 대선 개입으로 인해 정권의 민주적 정당성조차 의문의 대상이 되는 상황이 전개되면서 점입가경이 되고 있다. 이러한 비판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는 북한을 추종하는 세력이라고 딱지를 붙이거나, 아니면 불법으로라도 뒷조사를 하여 혼외 자식이 있는가를 알아보는 수밖에 없다고 여기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정부 여당과 극우 세력이 종북 딱지를 남발하는 상황을 보면 신경질적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그래서 '종북몰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런 '닥치고 종북' 딱지 붙이기는 지난 11월22일 천주교 전주교구가 박근혜 사퇴론을 직접 들고 나오면서 정점을 이루었다. 하지만 종북몰이는 원세훈 휘하 국정원의 친정부 공작 같은 일상적 작업을 통해 대한민국 사회 곳곳에 독버섯처럼 스며든 지 오래다. 정부를 비판하거나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경우는 물론이고, 일반적인 진보 아이디어에 대해서도 무작정 종북 딱지가 붙는다. '종북(從北)'이라는 말의 뜻을 조금이라도 돌아보았다면 창피해서라도 벌어지지 않을 일이니, 생각 없는 단무지 국민이 나쁜 것인지, 아니면 그런 국민을 부추겨 정치적 목적을 추구하는 모리배들이 더 나쁜 것인지 가늠을 하기가 쉽지 않다. 심지어 보수끼리도 자신의 생각과 다르면 대뜸 서로 친북, 종북이라고 헐뜯고 힐난하는 지경이니, 종북몰이에 미친 한국 정부와 사회 일각의 광기가 얼마나 저급한 코메디 수준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종북 셀프 테스트'를 만든 것은 이런 문제의식 때문이다. 의도는 간단하고 명확했다. 최근의 종북몰이가 어느 정도로 어이없는 양상인가를 한눈에 일별해 보자는 것이다. 출발은 신문 기사 댓글이나 게시판 댓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종북몰이였다. 그러나 조금 더 조사를 해가면서, 이렇게 댓글에서 읽을 수 있는 개인 차원의 종북몰이 중독증은 곧 정부와 여당, 일부 종교계 등 보수적 여론 주도층이 닥치는 대로 퍼뜨린 싹의 열매에 지나지 않음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각종 사회 이슈에 대해 종북몰이가 벌어지는 현장을 확인하고 이를 40여 개의 항목으로 추렸다. 그 중 사회적 함의가 약하거나 지나치게 개인적인 차원에서 나온 종북몰이를 빼고 34개 이슈로 압축한 뒤, 진단 테스트 모양으로 꾸며 순서도로 만들었다. 득점 측정 방식이 아니라 순서도 방식을 택한 것은, 각 이슈에 대해 국민들이 생각하는 '종북성'의 체감 정도가 다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처음에는 그럴 듯해 보이다가, 갈수록 코메디가 되는 것이다. 내가 코메디를 만든 게 아니고, 지금 우리 사회가 그렇게 되어 있다. 따라서 이것은 분명한 풍자물이지만, 불행히도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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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우뉴스>에 이미지를 보낼 때의 제목은 '종북 자가 진단표'였다. <슬로우뉴스> 편집팀은 이를 '종북 셀프 테스트'로 바꾸었다. 꼭 필요하지 않은데도 영어를 쓰는 일은 피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지만, 이 경우는 제목이 바뀜으로써 훨씬 감각적으로 되었고 소구력도 커진 것 같았다. 이 게시물이 널리 퍼진 데에는 '셀프 테스트'라는 찰진 제목도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이미지는 처음에는 근거 링크 없이 테스트 순서도만 나갔다. 그 뒤 종북 기준으로 선택된 이슈들이 억지라며 근거에 문제를 제기하는 주장이 나와서, 각 종북 이슈의 근거가 된 기사나 문건들을 모조리 링크를 달아 2차로 내보내며 '소스 공개'라는 보론을 덧붙였다. 나름의 반전인 셈인데, 이런 시간차 공개는 애초에 의도한 바는 아니었다. 자료 조사 때 확보한 근거들은 나만 갖고 있고, 풍자물이므로 자세한 설명은 달지 않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제 제기가 나와서 근거까지 꺼내 보여주게 된 게 오히려 더 잘된 일이었다. 금시대 막장 풍경을 실사화로 함께 구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북한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고 북한이 있어야 정권을 유지할 수 있는 의북(依北) 세력의 종북몰이가 한국 민주주의의 건강성은 말할 것도 없고 대북 안보에도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여러 차례 지적했다. '종북'이 우스꽝스러운 말이 되고, 심지어 정상적이고도 상식적인 아이디어를 지칭하는 말로 변질되어 버린 것은 불행이다. 누가 그런 불행을 초래했는가. 진성 종북주의자들이 아니라, 정권 안보를 위해, 그리고 자신의 독단을 위해 국민에게 종북몰이라는 몰핀을 수시로 주사해온 종북뽕 제조책과 판매책들이다. 국민이 종북에 무뎌져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수원 촛불 시위 사진: 다산인권센터 페이스북. '최고탁탁' 사진: 유튜브 동영상 중.

 

덧글

  • 만슈타인 2013/12/12 22:16 # 답글

    아 그것의 기원이 여기였다니 진심으로 성지순례하고 갑니다 (__)
  • deulpul 2013/12/16 15:47 #

    환영합니다. 차린 건 없지만서두요....
  • 아저씨 2013/12/16 14:32 # 삭제 답글

    오랜만에 댓글달러 왔습니다. 우리나라만 유독 그런지 다른나라에 살아보지 않아 모르겠습니다만, 풍자가 갖는 의미를 파악하는데 서툰 사람들이 이 나라에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 deulpul 2013/12/16 15:49 #

    다른 집들도 비슷한 것 같고, 그래서 이건 풍자물이 가진 본질적인 측면이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중복해 소개드리는 것 같습니다만, http://deulpul.net/3840553 에서 그 한 모습을 들여다보았습니다.
  • 2014/01/28 18:07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14/01/28 18:28 #

    본문에 "'종북 셀프 테스트'를 만든 것은 이런 문제의식 때문이다"라고 했는데 그런 문제의식을 이해하지 못하시는 모양이네요. --- ** --- ** --- 로 나눈 세 글덩이 중에서 가운뎃덩이를 잘 보시면 조금은 이해가 되시리라 믿습니다.
  • 날집사 2014/04/11 22:20 # 삭제 답글

    깨소금이었어요 ^^
  • deulpul 2014/04/14 01:53 #

    웃기는 현실이기도 하고요...
  • jjhappy 2014/07/13 22:43 # 삭제 답글

    글의 내용중 틀린게 있습니다. 모든 정부를 비판한다고 종북딱지가 붙진 않습니다. "새누리당(혹은 그 전신이나 후신)"의 대통령, 즉 보수정권을 비판해야만 종북딱지가 붙지요. 새누리당에서 잃어버린 10년이라 생각하는 김대중, 노무현정부를 보십시오. 그 당시 정부 비판하는 이들이 3대신문(그 유명한 "조·중·동"), 보수단체, 한나라당으로 부터 종북이라 몰렸던 적 있나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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