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 애애 섞일雜 끓일湯 (Others)

눈이 제목에 들어간 작품 중에 '대설부(待雪賦)'가 있고 '백설부(白雪賦)'가 있다. 눈을 기다리는 글이라는 뜻의 '대설부'는 한수산이 쓴 단편소설이고, 흰 눈에 대한 글이라는 뜻의 '백설부'는 김진섭이 쓴 수필이다. 둘 다 명작이다.

수필 '백설부'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만일에 이 삭연(索然)한 삼동이 불행히도 백설을 가질 수 없다면, 우리의 적은 위안은 더욱이나 그 양을 줄이고야 말 것이니, 가령 우리가 아침에 자고 일어나서 추위를 참고 열고 싶지 않은 창을 가만히 밀고 밖을 한번 내다보면, 이것이 무어랴, 백설 애애(白雪皚皚)한 세계가 눈앞에 전개되어 있을 때, 그때 우리가 마음에 느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애(皚)는 서리나 눈빛이 희다는 뜻의 한자다.

눈 오면 연병장 눈 밀어낼 걱정부터 해야 하는 병사들이라면, 애애한 눈을 보며 김진섭처럼 위안을 받기는 어렵겠지만, 여기서는 잠깐만 서정적 인간이 되어 보자. 아침에 창을 열거나 커튼을 젖혔을 때 갑자기 다가오는 흰 세상, 이게 작은 찬탄을 동반한 경이로움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아, 밤새 눈님이 오셨구나.

그런데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위안이든 경이로움이든 그 감동이 좀 떨어지게 된다. 아, 눈 또 왔구나.

입춘은 물론이고 춘분도 지난 3, 4월에 눈이 오는 지경이면 이제 감동은커녕 지겨움이 질척질척 쌓이게 된다. 아, 제길 또 눈이군. 이 때에는 눈이 사라지는 것이 너무나 큰 위안이 된다.

같은 자연의 은혜라도 시기나 횟수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는 것일까. 사람의 은혜도 그 비슷한 게 아닌가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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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밖은 백설 애애한 세계다. 설상가설이 반복되므로, 이런 세계는 앞으로 한참 동안 지속될 것이다. 어제 밤에는 사나운 바람소리가 윙윙 하며 창을 울리길래 살짝 내다봤더니, 새로 오는 것인지 이미 온 게 날리는 것인지, 날카로워보이는 눈이 가로등 아래에서 바람을 따라 옆으로 흩날리고 있었다.

요 며칠 눈이 계속하여 왔으므로, 아침마다 일어나서 차 위에 덮인 눈을 쓸어내다가, 종내 포기하고 말았다. 눈을 제때 걷어내지 않으면, 낮에 햇빛이 들 때 눈이 녹으면서 동시에 다시 얼어붙는다. 고드름 같은 원리다. 심하면 차 문이 잘 열리지 않을 때도 있다. 그래서 중간중간에 치우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바보짓 같았다. 눈이 연이어 들이닥치는 도중에는 치우지 않는다는 것이 눈 많이 오는 세상에 사는 사람들의 처세이기도 하다.

날이 쌩하게 추운 탓에, 요사이 온 눈은 마른 눈이다. 잘 뭉쳐지지 않아서 눈사람을 만들거나 눈싸움을 하기에 안 좋다. 그래도 미끄럽긴 하다.

집 바로 뒤에 작은 비탈이 있다. 꼬맹이 녀석들이 눈썰매를 타기에 딱 좋다. 동네 슬로프 치고는 길이도 20미터 가까이 되고 경사도 꽤 가파라서, 요놈들한테는 나름 중급 코스다. 나도 몇 번 미끄럼을 타 봤는데, 엉덩이 아파 죽는 줄 알았다. 이런 일은 나긋나긋한 성장기 뼈대가 아니면 감당하기 어려운 것 같다.

집에 가만히 있으면 밖에서 아이들 노는 소리가 웅웅웅 들린다. 이따금씩 이런 일도 있다: 와아아- 함성이 나다가 잠깐 조용해지고 쿵! 소리가 난다. 바로 이어서 아앙~ 하는 울음 소리가 난다.

이건 그중에서도 비교적 어린 녀석이 썰매를 타고 내려오다 막판 정지를 못하여, 내가 사는 아파트 외벽에 쿵 부딪치고 나서 울음을 터뜨리는 상황이다. 고녀석한테는 안 된 일이지만, 방에서 가만히 듣다 보면 웃음이 난다. 어떨 때는 굵은 남자 목소리로 "괜찮다. 거기서 정지를 했어야 하지. 이제 알았지? 중간에 서야 하는 거다" 하고 지도를 하는 소리도 들린다. 이건 아빠가 옆에 와서 지키고 있는 경우다. 막 달려와서 애를 나무라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개 이렇게 쿨한 대인배들이다.

이런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롤링 스톤즈의 'As Tears Go By'가 떠오른다. 가진 게 많지만 아이들 노는 소리는 없는 믹 재거가 나은지, 가진 건 없지만 아이들 노는 소리는 있는 내가 나은지 잠깐 생각하게 된다. 물론 그 답은 2초 안에 쉽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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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터 블루스'가 있다. 계절이 심리적 장애를 가져오는 SAD(Seasonal Affective Disorder) 중 하나다. 위키에 따르면, 그 증상은 아침에 일어나기 어렵다, 지나치게 자거나 지나치게 먹는다, 따라서 살이 찐다, 무기력하다, 할 일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 친구/가족/사회적 활동으로부터 고립된다, 성욕이 떨어진다 등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사람이라는 동물도 애초에 겨울에는 실컷 먹고 잠이나 푹 자도록 기획되었으나, 주제넘게 4철 활동을 하는 습성을 서로에게 강요하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겨울이 오래 계속되고 백설 애애한 세계가 시야에서 도무지 사라지지 않으면, 윈터 블루스가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그 블루스가 생활이나 일에서 비롯된 것인지, 백설 요요한 세계에서 비롯된 것인지 종종 혼동되기는 하지만 말이다.

김진섭의 '백설부'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그러나 불행히 우리의 눈에 대한 체험은 그저 단순히 눈 오는 밤에 서울 거리를 술집이나 몇 집 들어가며 배회하는 정도에 국한되는 것이니, 생각하면 사실 나의 백설부(白雪賦)란 것도 근거 없고 싱겁기가 짝이 없다 할 밖에 없다.


눈을 그리고 사랑하며 세상의 눈을 보기를 갈망하는 김진섭에게는, 복된 눈이 오더라도 기껏해야 서울 거리를 배회하는 것으로나밖에 기릴 수 없는 양이 성에 차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선생님! '그저 눈 오는 밤에 서울 거리를 술집이나 몇 집 들어가며 배회하는 정도'가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아십니까! 그저 눈 오는 밤에 벗과 함께 서울 거리를 술집이나 몇 집 들어가며 배회한다면, 윈터 블루스 같은 것은 도무지 생기지도 않을 것 같다.

대신 알콜 중독이 생기려나.

어쨌든 그러한 축복을 갖지 못한 나는 12월 중순, 백설 애애한 세계를 창밖으로 바라보며 as tears go by나 할 밖에. 지금도 차분히 내리는 저 하얀 우울함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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