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가시나무 섞일雜 끓일湯 (Others)

눈길인데......




밑에 쌓인 것은 눈이지만, 나무에 얹힌 것은 눈이 아니다.




나뭇가지에 날카로운 얼음 가시가 촘촘히 박혔다.

이것을 무엇이라 불러야 하나. 자연 현상이니까 분명 이름이 있긴 있을 텐데, 들어본 적이 없네. 실은 본 적도 처음. 그냥 얼음 가시라고 해야 하나.

어제 온도는 하루종일 영하 6도(C) 정도로 안정적이었고, 흐렸고, 아주 가는 비가 이따금씩 왔다. 비는 내려와 차가운 표면에 닿자마자 얼어붙는 어는 비(freezing rain)였다. 눈을 녹이기 위한 소금을 뿌려두지 않은 뒷길이나 밖에 세워 둔 자동차 같은 물체에는 두터운 얼음 코팅이 덮였다.



밤이 지나고 새로 밝은 흐린 아침에, 멀리 보이는 나무들이 일제히 은은한 은색을 띠고 있어서 예전에 본 것처럼 이슬비 내린 게 나무 위에 얼어붙은 줄 알았다. 그런데 가까이 가 보니 얼음 가시들이 잔뜩 달려 있다.









이것은 서리의 일종인 것 같다. 날이 흐리고 찬 이슬비가 조금씩 왔으므로 추우면서도 습도가 높았다. 어젯밤의 이슬점은 영하 6도~7도 사이였고, 상대습도는 95%에 육박했다. 공기 속에 습기가 가득 차서, 온도가 조금 내려가는 것 같은 빌미만 주어지면 바로 이슬(추우니까 서리)로 응결되어 나올 태세가 된 날씨다.



그래도 이렇게 특이한 가시 모양이 형성되는 데에는 바람이나 온도 변화 같은 또다른 기상 조건이 충족되어야 할 듯싶다. 그런 조건들이 딱 맞아떨어졌는지, 가지마다 이렇게 가시가 잔뜩 솟아나왔다. 얼음 가시는 긴 것은 2cm까지 됐다. 아주 날카롭고도 위협적인 모습으로 매달려 있지만, 만지면 힘없이 떨어져나와 부스러졌다. 내 뒤로 보러 오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서, 만져보는 일은 딱 한 번만 했다.

나무뿐 아니라 콘크리트 기둥 모서리나 구부러진 낡은 못 위에도 얼음 가시가 피어났다.




날이 밝으면 다시 한번 살펴보러 가고 싶었는데, 새벽 4시 지금 눈이 또 퍼붓고 있다. 얼음 가시를 섬세하게 달았던 나뭇가지들도 세상도 또다시 폭설에 하얗게 덮여 버렸다. 저녁 6시까지 하루종일 눈과 어는 비를 동반한 폭풍 경보. 기러기가 된 오빠들을 위해 가시덤불로 스웨터를 짜던 소녀는 어쩌나.


길 잃고 굶주리는 산짐승들 있을 듯
눈더미의 무게로 소나무 가지들이 부러질 듯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때죽나무와 때 끓이는 외딴집 굴뚝에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과 골짜기에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최승호의 시 '대설주의보' 중 마지막 연.


[덧붙임] (12월23일 오후 2시50분)

아래 댓글에서 도리님이 이것의 정체는 '상고대'라고 알려주셨다. 상고대는 사전'[명사] 나무나 풀에 내려 눈처럼 된 서리'라고 되어 있다. 서리 상(霜)이 들어간 한자어 같은데, 어원이 순우리말로 되어 있다. 한자어로는 목가(木稼), 무송(霧淞), 수가(樹稼), 수개(樹介), 수괘(樹掛), 수빙(樹氷), 수상(樹霜) 같은 말이 있고, 내가 가진 국어사전에는 몽송(霿淞)이라는 어감 좋은 말도 더하여져 있다.

송(淞)이라는 한자어는 그 자체로 상고대를 가리킨다. 무송의 무(霧)는 물론 안개이고, 몽송의 몽(霿)은 안개자욱할 몽이다. 목가와 수가의 가(稼)는 무엇을 심는다는 뜻이고 괘(掛)는 걸린다, 개(介)는 사이에 낀다는 뜻. 좀더 직설적인 말 수빙은 나무 얼음, 수상은 나무 서리다.

역시 알려주신 대로, 영어로는 hoarfrost라는 말이 있다. hoar는 희다는 뜻과 서리라는 뜻을 함께 갖고 있다. 특히 이렇게 나무에 매달린 것을 air hoar라고 하는 모양이다. 영어 사전에는 '[명] (기상학) 나무 서리'라고 풀어 놓았다. air hoar에 대해 네이버 지식백과에는 농촌진흥청을 출처로 하여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나무 등에 대기 중의 수증기가 승화하여 생긴 수 없이 많은 얼음의 결정, 즉 서리임. 눈의 결정의 생성과 같이 기상조건의 차이에 따라 바늘형, 비늘형, 깃털형, 판자형, 컵형 등 여러가지 결정이 되며, 바람이 불면 쉽게 날아갈 정도로 부착력이 약하고 바람 없는 맑은 날 밤부터 새벽 사이에 나무나 지물(地物)의 풍상측(風上側)에 성장하기 쉬운 상고대의 일종임.

상고대가 더 폭이 넓은 말이고, 그 중 나무 서리라는 게 있다는 의미인 듯하다. 두산백과를 출처로 한 풀이에는 둘을 같은 것으로 서술해 놓았다. 상고대, 나무 서리, 무송, 몽송... 모두 실물만큼이나 예쁜 말이다.

 

덧글

  • 유독성푸딩 2013/12/22 21:27 # 답글

    워메 저것이 대체 무엇이드래요; 우와;; 진짜 예쁘고 신기방기하네요
  • deulpul 2013/12/22 21:39 #

    저도 참 신기하게 생각했습니다. 자연의 창의력은 그 끝을 짐작할 수가 없군요.
  • Merkyzedek 2013/12/22 22:12 # 답글

    정말 예쁘네요. 다치는게 아니라 모양만 그렇다니 다행이네요.

    코퀴토스의 꽃이라던가 천빙만결의 톱날이라던가... 예쁜 이름이 따로 있지 않을려나요~
  • deulpul 2013/12/22 23:45 #

    오, 그렇게 격조높고 풍부한 상상력이 반영된 이름들도 있을 수 있네요. 일단 기상학에서는 (이름이 있더라도) 좀더 건조한 이름이 붙었을 가능성이 높지만요. 구글에 icethorn을 넣으면 WoW가 제일 처음 뜨고요... ice thorn로 넣어도 게임 장르 위주로 뜨는군요.
  • 도리 2013/12/23 09:26 # 답글

    상고대 아닐까요?
    텔레비전 방송 종료하면서 애국가 나오던 시절에 화면에 나오던 상고대는 가시보다는 좀더 부드러웠던 것같지만 발생원리는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구글에 상고대나 hoarfrost라고 검색하면 비슷한 이미지도 나오네요.

    그나저나 정말 예뻐요!
  • deulpul 2013/12/23 14:05 #

    맞네요, 상고대! 날이 추울 때 나무에 서리가 맺혀 생기는 것들을 그렇게 부르는 모양입니다. 서리 상(霜)이 들어간 한자어처럼 보이지만 순우리말인 것 같아서 그 점도 기분이 좋습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상고대 자체가 흔한 현상은 아니라는데, 더구나 이렇게 특이한 모양으로 맺힌 걸 보게 된 건 참 행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름과 관련한 내용은 본문에 덧붙임으로 추가하겠습니다. 도움 말씀 주셔서 고맙습니다.
  • Silverwood 2013/12/23 19:54 # 답글

    겨울의 거리는 참 아름다운것 같아요. 특히 이런 동화같은 사진은 더욱 더! 마치 환상을 품고있는것 같아서 정말 봐도 봐도 좋네요. 워낙 겨울을 좋아해서 더 그런감도 없잖아 있지만요.
  • deulpul 2013/12/24 15:39 #

    눈은 늘 동심하고 잘 연결되고 환상적인 이미지도 있어서 그런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 같습니다. 겨울과 눈을 배경으로 한 아름다운 판타지 영화도 많았죠. <올드보이>라든가... (절반은 농담)
  • 2013/12/24 16:58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13/12/28 01:43 #

    초대 감사하지만 이번에는 패스하도록 할께요. 행복한 연말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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