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목소리가 담긴 구호판 때時 일事 (Issues)

한 대학생의 대자보에서 시작된 '안녕들 운동'이 2013년 연말 한국 사회에 큰 울림을 일으키고 있다. 어떤 이들은 이게 작은 희망의 불씨가 되어 활활 타오르기를 열렬히 기대하고, 또 어떤 이들은 그런 일이 벌어질까봐 찬물을 끼얹으려 기를 쓴다.

운동이 시작된 계기와 번져나가는 양상이 극적이고 그 함의가 중대하므로, 언론은 이런 움직임을 열심히 들여다 보고 있다. 언론을 통해 묘사되는 이 운동은 대체로 '사회 모순에 눈조차 돌릴 수 없는 열악한 환경에 처한 젊은이들의 자각과 행동' 정도로 간추릴 수 있겠다. 이 운동은 지금도 진행중이고, 따라서 그것이 던진 파장의 깊이와 넓이는 시간이 조금 더 지나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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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여름, 미국소 수입 문제로 시작되어 이명박 정권의 반민주적 파행들에 총체적으로 반발하며 번졌던 촛불 시위 때 일이다. 광화문 지하도에서 나와 서울시청앞 광장으로 발을 옮기는 일은 쉽지 않았다. 엄청난 인파 때문이었다. 시청 건물에 다다랐을 즈음, 한쪽에서 인쇄된 구호판을 쌓아놓고 나눠주고 있었다. 촛불 '문화제'를 주관하는 대책회의에서 만든 구호판이었을 것이다. 내가 받은 것에는 'MB OUT'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모습은 예컨대 다음과 같다.




MB OUT은 무엇을 뜻하는 구호일까. 이명박은 당장 대통령 자리에서 내려오라는 뜻일까. 이명박을 그 자리에서 쫓아낼 때까지 투쟁하겠다는 뜻일까. 이명박은 더 이상 사회를 혼란시키는 정책을 추구하지 말라는 뜻일까. 이명박을 우리 사회의 주요 의제로부터 배제시키겠다는 뜻일까.

나는 내가 받은 구호판에 적힌 글귀가 무슨 뜻인지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고, 따라서 이 구호판을 들고 있기가 불편했다. 대통령에서 물러나거나 쫓아내는 의미로만 생각해도 그랬다. 이명박이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기를 바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명박뿐만 아니라 권력을 가진 어떤 인간도 쉽사리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 이 말이 이명박이 스스로 물러나라는 뜻이라면, 아무런 의미 없는 영어 다섯 글자에 지나지 않았다.

이명박을 자리에서 쫓아내자는 뜻이라면 더욱 얄궂다. 그것이 민주적 절차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둘째치고, 이렇게 거리에 앉아 구호판이나 들고 있는 편안한 방식으로는 집권자를 쫓아낼 가능성이 전혀 없었다. 서울광장에서 MB OUT을 들고 있는 사람치고, 이렇게 하면 이명박을 쫓아낼 수 있다고 신실되게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 구호판은 좋게 보면 정권에 대한 불신과 불만을 단적으로 응축한 것이라 할 수 있지만, 다른 말로 하면 아무런 실천적 각성과 전략적 주장을 동반하지 않은 허세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비록 이 구호판을 들고 있었더라도 그것은 나의 의사를 정확히 나타내고 있지 않았다. 나는 내가 동의하지 않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문구가 담긴 구호판을 통해 내 뜻을 표현하는 모순된 상황에 처했다. 이것은 이 구호판이 주최측에 의해 대량 생산된 기성품이라는 점과 관련이 있었다.



위 사진은 문재인이 9월23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천주교 시국 미사에 참여했을 때 모습으로, 보수파의 피가 꺼꾸로 솟게 만든 장면이다.

문재인이 국정원 해체를 주장했던 적은 한 번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국정원 해체는 민주당의 당론도 아니다. 그러나 이 시위에서 주최측이 나눠준 구호판을 들자니, 본인 생각이야 어쨌든 '국정원 해체론자'가 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 사진 한 장은 정치인 문재인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역할을 했다. 남의 목소리로 표현되는 정치적 의사는 이렇게 위험할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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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안녕들 운동 초기에 한 보도에 나왔던 다음 장면을 보며 매우 인상깊게 생각했다. 12월14일 고려대 후문에서 벌어진 모습이다.



거리에 나온 대학생들이 들고 있는 피켓 중 똑같은 것이 단 하나도 없다. 모두 각자가 쓰고 만들었기 때문이다. 내용도 아주 다양하다. 시국과 상황에 똑같이 불편해 하더라도, 사람의 처지와 관심이란 다양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 구호판들은 개인의 주장이 가진 다양성을 탈색하여 한두 개의 구호로 추상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것은, 조금 과장하여 표현한다면, 한국 사회에서 공공 이슈와 관련해 거리에 나가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방식에서 새로운 전기가 열렸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한국의 시위 피켓들도 이제 본격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의 가두 시위에서 개인이 만든 구호판이 등장한 것은 물론 처음은 아니다. 2008년 촛불 시위 때도 자체 제작한 구호판들이 등장한 바 있었으며, 이후로도 개성 넘치는 구호판들을 종종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언제나 본대는 대량 생산된 '손팻말'을 일사불란하게 흔들었다. 개인의 뜻을 구호판으로 내세우는 현상은 확산되지 않았다. 시위에 참가하는 사람은 여전히 다른 사람이 나의 생각을 표현해 주도록 의지했고, 그렇게 표현된 결과가 발에 잘 맞지 않는 신발처럼 불편할 때에는, 신발에 발을 맞췄다.

나는 외국의 거리 시위에서 그런 장면을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어떤 단체가 자기네 회원만을 동원하여 벌이는 시위라면 단체로 제작한 시위용품을 사용하기도 한다. 혹은 대중 집회에 조직적으로 참여한 일부 단체 회원들이 함께 제작한 구호판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대중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거리 시위 전체가 단일한 구호판으로 채워지는 모습은 보기 드물다.



이것은 2011년 미국 위스콘신에서 반노동 입법에 대한 저항이 벌어졌을 때, 이웃 주(州)인 미네소타에서 열린 연대 시위 장면이다. 화면에 등장한 피켓들은 모두 제각각이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교훈도 있고, '노조가 마지막 희망'이라는 바람도 있고, '윗대가리부터 잘라라'는 요구도 있고, '우리를 한 명 건드리면 우리는 수없이 불어날 것이다'는 협박도 있고, '시민들도 권리가 있다'는 항변도 있고, '미네소타 노동자는 위스콘신 노동자를 지지한다'는 연대 선언도 있다. 이것을 모두 뭉뚱그려 '주지사 OUT'라는 구호판 하나만을 만들어 일사불란하게 표현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만일 그랬다면, 이 시위 장면은 얼마나 단조롭고 볼품없게 보일 것인가.

다양한 생각을 담은 제각각의 푯말은 사자의 갈기와 비슷하다.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는 개인들조차 다함께 거리로 몰려나오지 않으면 안 되었음을 상징함으로써, 저항의 기세를 풍성하게 보일 수 있는 것이다. 개인이 제각각 만든 구호판은 중구난방처럼 보이지만, 사실 중구난방은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가 아니던가. 삿된 권력자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중구(衆口)가 난방(難防)인 상황이다. 일사불란한 힘은 떨어지지만, 그런 힘을 보고 싶다면 예컨대 관제 규탄 대회가 열리는 북한의 능라도 경기장 같은 데로 가야 할 것이다.



이것은 위스콘신에서 주지사를 축출하기 위한 주민 소환 운동이 한창 벌어지던 때 모습이다. 인쇄된 구호판이 등장했지만, 개인이 만든 구호판 역시 지지 않고 자기 목소리를 열심히 내고 있다.

위스콘신 시위 당시 개인 구호판은 그 자체가 하나의 문화 현상이 되었다. 비판 의식과 유머 감각을 절묘히 결합한 온갖 독창적인 구호판들은 시위에 나가는 일을 즐겁게 만들어 주었다. 시위 구호판을 수집하는 사람도 생겨났다. 상황은 엄혹해도 즐겁고 창조적으로 시위하기, 이것은 한국에서도 2008년 촛불 시위가 일구어 낸 중요한 성과 중 하나다. 그러한 성과는 이후에도 지속되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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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체 제작 구호판은 또 한 가지 미덕이 있다. 구호판을 만드는 작업 자체가 각성과 저항의 중요한 시작점이라는 것이다. 나는 외국 시위에 등장하는 각양각색 구호판을 볼 때마다 갖는 생각이 있다. 저 판지에 글자를 써 넣고 도안을 하는 사람은 무슨 마음으로 저렇게 했을까. 그가 판지를 자르고 풀을 붙이고 글자를 하나 하나 써 넣는 일을 상상할 때마다, 공공의 관심사에 참여하기 위해 자신의 소소한 사익을 기꺼이 희생하는 미덕 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느낌은 인간에 대한 신뢰로 이어지곤 한다. 볼품 없는 삐뚤빼뚤 구호판이야말로 타인과 사회를 염려할 줄 아는 인간 이성의 상징처럼 생각된다.

그런 점에서, 안녕들 운동에서 학생들이 들고 나선 저 각양각색의 구호판은, 나뿐만 아니라 남의 안녕함도 함께 염려하는 것으로 시작된 이 운동의 특성을 가장 잘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나는 이 사진 한 장이 안녕들 운동의 가치와 의미와 가능성을 단번에 표현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여기 이미지를 옮기지는 않겠지만, 안녕들 운동에 자발적으로 나선 젊은 세대가 자신의 목소리가 담긴 구호판 대신 제조된 구호판을 들기 시작하는 모습은 나로서는 그리 반갑지 않다. 모처럼 본격 태동되기 시작한 다양하고 독창적인 구호판들이 다시 대량 생산된 몇 개의 구호판으로 수렴되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이것은 구호판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의 경우 개인이 자체 제작한 시위용품을 현장으로 운반하기가 수월하지 않다는 현실적 문제도 있긴 하다. 그러나 이미 등장했던 사례들에 비추어 보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젊은이들의 자각적 참여가 노동권 등 기성 운동과 결합하는 것은 의미있어 보이지만, 그들 자신의 고민과 결의를 반영한 구호판들이 고민의 진화 과정을 생략한 채, 기성 운동 조직이 대량 제조한 '박근혜 OUT'으로 대치되는 모습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안녕들 운동의 의미는 단순히 무능하고 독선적인 권력자를 교체하자는 데 한정된다고 보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정권의 반대편 역시 젊은이들을 안녕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데 꾸준히 일조해 왔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안녕들 운동은 반박(反朴) 운동을 넘어서는 것이며, 젊은 세대가 민감하게 체험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총체적 모순에 대한 항의이다.

꿈과 희망을 잃고 절망하는 젊은 세대가 그들을 제대로 대표해주는 어떠한 주류 정치 세력도 발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지금은 좀더 자신의 목소리를 또렷하게 내야 할 때인 것 같다. 남의 목소리가 아니라 자신의 목소리로 세상을 보고 세상에 저항해야 할 때다. 대량 생산된 구호판이 아니라 내 목소리를 담은 나만의 구호판이 넘실거려야 한다.

 

덧글

  • 메뚜기제데구 2013/12/28 16:21 # 삭제 답글

    머릿수 동원이라는 편견을 불식시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인 시위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말씀같습니다. 농담입니다만 이런의견에 제일 경계하는 사람들이라면 의외로 피켓 제작자들 아닐까요. ^^
  • deulpul 2013/12/28 17:32 #

    정권이 늘상 하는 '배후 세력' 타령도 상징적으로 디스하고요... 한국 반정부 시위의 배후 세력은 양초회사와 피켓 제작자임...
  • eg35 2013/12/29 01:14 # 답글

    오늘도 안녕들하십니까 친구들은 각자 제작한 피켓을 들고 나왔습니다. 구호도 기성세대와 달리 결연하기보다는 너무 재밌는 구호를 외쳐서 추운 와중에도 웃음이 터졌어요. 중간에 민주노총 결의대회에 동참하긴 했지만 다른 장소에서 다른 자리를 먼저 가졌지요. 그저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직접 판단 내리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 deulpul 2013/12/29 13:44 #

    아, 그랬군요. 이제 또 많은 것을 생각해야 할 텐데...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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