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조롱 때時 일事 (Issues)

안녕들 운동이 시작된 이래, 젊은이들의 고민과 결의를 담은 대자보가 방방곡곡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 중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본 것은 바로 이 것이다:



이것은 12월10일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1층 엘리베이터 옆에 나붙은 것이다. 필체는 비록 졸필이지만, 글은 참 명문이다. 글을 잘 써서 명문이 아니라, 이걸 내다 붙인 인간의 면모를 기막히게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런 명문을 만들어 낸 인간은 한나라당 소속 국회의원 김무성이다. 한나라당이 누구고 박근혜가 누군가. 안녕들 운동이 촉발되도록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장본인들이 아닌가. 그런 인간이 그런 인간을 위해 그렇고 그렇게 열심히 뛰자고 글을 내다 붙였다.



이것은 젊은 새대의 좌절과 고통에 대한 지독한 조롱이다. 젊은이들은 사람답게 살기 어렵다고 호소하는데, 그런 세상을 만든 자들은 절망하는 젊은이들이 눈물과 피를 찍어 쓴 언어를 끌어와서 유희질을 하고 있다. 더욱 그런 세상을 만들자고 다짐한다. 세상에 이렇게 가증스런 조롱도 다 있다. 대문 앞에 선 걸인의 쪽박을 깨버린 뒤, 이를 서러워하여 느껴 우는 울음을 흉내내며 즐거워하는 놀부 마누라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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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은 NLL 논란과 관련하여, 지난 대선 때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불법 입수하여 이를 대선에 활용했다는 혐의를 받은 사람이다.

연합뉴스 6월26일 기사는 이렇게 썼다.


대선 당시 새누리당 선대위 총괄본부장을 지낸 김무성 의원은 26일 국회에서 열린 비공개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지난 대선 때 대화록을 입수해서 읽어봤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복수의 참석자들이 전했다.

김 의원은 또 "내용이 너무 엄청나서 손이 다 떨리더라"며 "원세훈(당시 국정원장)에게 대화록을 공개하라고 했는데 협조를 안 해줘 결국 공개를 못했다"고 언급한 것으로 들었다고 참석자들은 덧붙였다.

김 의원 발언이 사실이라면 국가기록원과 국정원에 각각 1부씩 보관된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이 불법 유출된 것으로 볼 수 있어 입수 과정을 놓고 위법성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또한 새누리당이 국정원을 대선에 이용하려 했다는 점에서 관권선거 시비도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


김무성은 대선을 닷새 앞둔 작년 12월14일 부산에서 유세를 하면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때 노무현이 한 발언이라며 상당한 분량을 그 자리에 모인 대중에게 그대로 읽어 주었다. 녹음 기록에 따르면 그의 발언 내용은 국정원이 보관하는 회의록과 토씨까지 똑같았다고 한다. (실제 발언 녹음, 녹취록)

회의록 불법 유출 의혹이 커지자, 검찰은 11월13일 마지못해 김무성을 불러 조사했다. 김무성은 "나는 대화록을 본 일이 없다. 작년 선거 당시 각종 찌라시가 난무했는데 대화록과 관련된 일부 문건이 들어왔다. 밑에서 보고서 형태로 문건을 만들어서 정리했다"라며 자신은 이를 보았을 뿐이라고 둘러댔다. 얼마 전인 12월20일, KBS는 검찰이 김무성에 대해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우리는 '나쁜 공직자 딜레마'의 또 한 사례를 목격하게 된다. 범법을 저질러 처벌을 받을 위기에 처한 공직자나 정치인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있다: 나쁘거나 등신이거나. 정직하게 사실을 밝히고 나쁜 놈이 될 것인지, 아니면 멍청한 일로 둘러대어 등신이 되더라도 처벌을 면할 것인지.

김무성의 황당한 찌라시 발언은 아무도 믿지 않았다. 민주당은 김무성의 찌라시 발언이 뻔뻔한 거짓말이라고 성토했다. 그런데도 그는 처벌을 받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대선 때의 회의록 유출 의혹과 관련해 처벌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는 김무성의 주장이 사실인지 거짓말인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게 사실이라면 그 뒤 응당 뒤따라야 할 일들이 있는데, 그게 벌어지지 않는다는 점은 안다. 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어떻게 국가 정보 기관이 보관하는 기밀이 유출되어 토씨 하나까지 그대로 전재된 채 증권가 따위에 나돌았는지에 대해 엄정한 조사가 있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런 건 없다.

설령 사실이라고 쳐 보자. 찌라시에 나온 황수경 소문을 보고, 아는 사람 몇에게 문자 메시지를 돌린 <세계일보> 기자는 구속되었으나, 찌라시에서 봤다며 국가 기밀을 대중 연설에서 그대로 읽어주며 표를 긁어모은 김무성은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 한 아나운서의 이혼 소문을 퍼뜨린 것과 국가 기밀을 대중 유세에서 그대로 공개하여 선거에 이용하려 한 것 중 어떤 것이 더 위험하고 죄질이 나쁜 일인가.

그런 김무성이 자기 당사 벽에 대자보를 내다 붙였다. 젊은 세대 흉내를 내면서 말이다.

제가 대자보라고 했습니까? 아니, 잘못 말했다.

저 글귀 나부랑이는 대자보도, 소자보도 아니다. 저건 찌라시일 뿐이다. 찌라시 읽어주는 남자, 찌라시 읽으며 정치하는 남자가 써낸 찌라시. GIGO, 인풋-아웃풋이 멋지게 어울리는 기막힌 조합이 아닐 수 없다.


※ 찌라시 사진: 뉴시스, 김무성&박근혜 사진: 연합뉴스 via <프레시안>

 

덧글

  • 긁적 2013/12/30 02:29 # 답글

    등신이네요 ㅋㅋㅋ
  • deulpul 2013/12/30 06:48 #

    하지만 이른바 대선 주자...
  • 만슈타인 2013/12/30 03:03 # 답글

    일리단이라 불렸던 분이 참 ㄷㄷㄷ
  • deulpul 2013/12/30 06:48 #

    그러기도 했었던가요?
  • 만슈타인 2013/12/30 18:04 #

    모 게임의 배신의 상징 아이콘이 한떄 별명으로 통하기도 했었던 분인데 ㄷㄷㄷ
  • deulpul 2013/12/30 19:52 #

    하지만 찌라시에 나타난, 공주님에 대한 순정을 보면 맞네요. '평생 간직하자'네...
  • Some Other Time 2013/12/30 10:12 # 답글

    이글루스 이미지... 후 새드...
  • deulpul 2013/12/30 19:54 #

    이쪽도 안 보이는 모양이군요, 제길.
  • Some Other Time 2013/12/31 00:25 #

    이젠 제대로 보이네요ㅎ
  • deulpul 2013/12/31 04:08 #

    상황이 조금 나아진 모양이네요. 알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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