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글에 실성한 사람같이 섞일雜 끓일湯 (Others)

단재 신채호는 중국에서 조선 독립운동과 무정부주의 활동을 벌이던 중, 1928년에 대만에서 체포되었다. 만주국으로 송환되어 뤼순 감옥에서 옥고를 치르다, 1936년 2월에 옥사하였다.

신채호가 사망한 지 한 달 뒤인 3월12일, 소설 <상록수>의 작가 심훈이 신채호를 기리는 짤막한 글을 <동아일보>에 실었다. 제목은 '丹齋(단재)와 于堂(우당)'이었다. 상하 2편으로 쪼개진 이 글은 12일자에는 단재에 대해서, 다음날인 13일자에는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에 대해서 쓰고 있다.

심훈은 3.1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뒤, 중국으로 건너가 상하이와 항저우에서 대학 공부를 했다. 상하이로 내려가기 전에 베이징에 있을 때, 당시 베이징에 머무르던 신채호를 찾아가 만난 적이 있었던 모양이다. 연배로는 신채호(1880년생)가 심훈(1901년생)보다 20년 넘게 위다.

"그가 모년기(牡年期, 장년기壯年期의 오식인 듯)에 박은 듯한 중국옷을 입은 사진을 들여다보고 앉았자니, 바로 엊그제인 듯 머릿속에 떠오르는 몇 토막의 추억이 있다"라고 운을 뗀 심훈의 신채호 관찰기는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꼭 필요한 부분만 지금말로 바꾸었다.)


기미년 겨울 옥고를 치르고 난 나는 어색한 청복(靑服)으로 변장하고 봉천을 거쳐 북경으로 탈주하였다. 몇 달 동안 그곳에 체류하며 연골에 견디기 어려운 풍상을 겪다가, 성암(醒庵, 이광)의 소개로 서너 차례 단재를 만나뵈었는데, 신교(지명) 무슨 호동엔가에 있는 그의 우거(寓居)에서 며칠 저녁 발치잠을 자면서 가까이 그의 목소리와 모습을 접하였다.

감명 깊은 그의 말씀도 여기서는 줄일 수밖에 없다. 그 당시 그는 42, 3세의 장년이었는데, 원체 문명(文名)을 높이 들었을 뿐 아니라, 금강산 단풍 구경보다도 몽고 사막풍에 흉금을 펼치고 싶다고 한 만치, 기골이 늠름한 XX가(家)로 알았던 것과는 딴판으로, 남산골 샌님처럼 그 체구와 풍모가 옹졸하여서, 전형적인 충청도 양반으로 고리삭은 선비로구나 하는 첫인상을 받았다. (중략) 그러나 내 눈이 유치하나마 지척에 그를 대하여 관찰을 거듭할수록, 기우(氣宇, 기개와 도량)에 떠도는 정채(精彩, 생기 넘치는 활발한 기상)와 샛별 같이 빛나는 안광(眼光) 이마, 추상같이 쌀쌀한 듯 하면서도, 춘풍(春風)으로서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평범한 인물이 아닌 것만은 넉넉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 때 마침 <천고(天鼓)>라는 잡지를 주간하였는데, 희미한 등불 아래에서 모필로 붉은 칸을 친 원고지에다가 철야 집필하는 것을 목도하였다. 그 창간사인 듯 "천고, 천고여, 한 번 치매 무슨 소리가 나고, 두 번 두드리매 어디가 울린다"라는 의미의 글인 듯이 몽롱하게 기억되는데, 한 구절 쓰고는 소리높여 읊고, 몇 줄 또 써내려가다가는 붓을 멈추고 무릎을 치며 위연(喟然)히 탄식하는 것이, 마치 글에 실성한 사람같이 보였다. 붓끝을 놀리는대로 때묻은 '면포자(棉袍子, 무명옷)'의 소매가 번쩍거리는데, 생각이 막히면 연방 엽초(葉草)에 침칠을 해서 말아서는 태워 물고 뻐끔뻐끔 빤다. 그러다가 불시에 두 눈에 이상한 측광(仄光, 어렴풋한 빛)이 지나가는 동시에, 수제품 송연(담배)을 아무데나 내던지며 한편으로 붓에 먹을 찍는다. 나는 그 생담배 타는 연기에 몇 번이나 기침을 하였다. (하략)




이 심훈의 글은, 친한 벗이 죽은 뒤 쓴 추도문의 성격을 가졌음에도, 고인에 대한 찬사로 채우지 않고 그 사람됨을 자신이 본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 이 점에서 지난 번에 본, 시인 이상이 죽었을 때 쓴 박태원의 글과 비슷하다. 거기서 박태원은 이상이 얼마나 괴팍한 인간이었나에 대해 열렬히 썼다. 심훈은 신채호가 실성한 사람 같다고 한다. 그런데 만일 박태원이 '이상이 얼마나 위대한 시인이었던가'를, 심훈이 '신채호가 얼마나 투철한 독립운동가요 저술가였던가'를 장황하게 늘어놓았더라면, 아주 평범하면서도 따분한 글들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역시 당대의 작가요 문장가들은 사람을 하나 그려내도 이렇게 범상치 않다 싶은 생각이 든다.

더 나아가 심훈이 묘사한 신채호의 경우, 글에 실성한 것 같다는 것은 글을 쓰는 사람에게 가장 영예스러운 찬사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글에 실성함이란, 어찌 보면 글 쓰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경건하고도 치열한 집필의 자세인 것 같기 때문이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 인물 중에서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다. 신채호가 글에 실성한 사람 같은 모습으로 써낸 글 중 일부를 앞으로 이따금씩 살펴보려고 한다. 100년 가까이 된 것들이지만, 지금에도 교훈이 되는 바 있기 때문이다.

가령 신채호의 글 중에서 "'(나이) 40 이상은 다 죽이어야 되겠다'는 소리가 신청년의 입에 오르내린 지 오래이다"라는 부분을 보면, 노욕(老慾)과 노둔(老鈍)이 나라를 망치는 것이 우리 시대의 일만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죽어야'가 아니라 '죽이어야'라는 데서 시대의 강퍅함의 차이도 느끼게 된다. 또 일신과 일가붙이의 영달을 위해 오로지 이익만 좇으며 부유하는 인간들을 질타하는 웅변을 들으면, 비슷한 일이 우리 시대에만 벌어진 게 아니었구나 싶어서 일종의 안도감마저 들고, 한편 그런 군상들이 벌이는 짓이 글자 그대로 나라를 팔아먹는 데에까지 이르는 지경이었으니 신채호를 비롯해 당시 뜻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피가 끓었을까 싶은 생각도 갖게 된다.

신채호가 실성한 것처럼 붓에 먹을 찍어 붉은 색 원고지에 쓴 글을, 내가 비트를 찍어 모니터에 쓴다. 따라가는 것만도 행복이다.

 

덧글

  • 소통이 2014/01/09 11:30 # 답글

    안녕하세요. 소통이 입니다.

    우선 타임트리 서비스에 보내주신 관심 대단히 감사드려요.

    타임트리 초대장은 timetree@zum.com 메일로 발송이 되는데요. 혹, 해당 메일을 차단하시거나 스팸메일함으로 분류가 되지 않았는지 다시 체크 부탁드릴게요.

    만약, 가능하시다면 초대장을 받으실 다른 메일 계정을 비공개 덧글로 알려주세요.

    해당 메일로 다시 초대장을 발송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추워진 날씨 감기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 deulpul 2014/01/10 01:40 #

    연락 주셔서 고맙습니다. 지메일 스팸에 들어가 있네요. 자세히 확인해보지 않고 문의 드려 죄송합니다.
  • North Shor 2014/01/14 04:35 # 삭제 답글

    '마치 글에 실성한 사람같이'... 그저 경이로울 따름입니다. 단재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 더욱 깊어지는 글이었습니다. 한국의 추도문도 저런 수준이던 시절이 있었군요. 새삼 감탄스럽습니다. 단재 평전을 구해서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 deulpul 2014/01/14 14:56 #

    저도 아주 인상 깊게 느꼈습니다. 저 심훈의 글 뒷부분에는 단재가 남기고 간 아내와 아들 이야기가 나오는데, 심훈이 찾아갔을 때 단재의 아내 박부인이 구석에 기대어 조는 아들을 가리키며 "아무튼 저거나 잘 길러야 할 텐데요" 하였으며, 그 아이의 외모 비범하기가 아버지를 빼닮았다는 부분이 나옵니다. 그렇게 말하던 박부인은 단재 사망후 8년 뒤에 죽었으며, 심훈이 "어르신네의 재(才)와 절(節)이 흐르리라"라고 축복하였던 그 아들은 은행원이 되었으나, 광복 이후 이승만 정부에서 넝마주이 같은 일을 하며 고초를 겪다가, 4.19 이후에야 다시 은행원으로 복직하였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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