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희, 설방, 허유 때時 일事 (Issues)

6월로 예정되어 있는 지방선거에서 마땅한 서울시장 후보감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새누리당이 자꾸 손석희 JTBC 보도부문 사장에게 집적댄다는 일부 보도가 있다. '십고초려' 이야기도 나오고 공작 가능성까지 제기하는 판이다. 이런 모양을 보자니, 옛날 이야기 한 토막이 생각난다.

중국 요순 시절에 ​요(堯)임금이 왕위를 물려주려고 은자 허유(許由)를 찾아갔다가 단칼에 거절당한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이 일은 '기산(箕山)의 절개', 즉 기산지절(箕山之節)이라는 고사성어가 되어, 세속의 이익에 굴하지 않는 강직한 절개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기산은 허유가 은거해 살던 산이다.

이 고사성어의 출전은 <한서(漢書)>다. 권31부터 시작되는 열전(列傳) 중 권72 '왕공양공포전(王貢兩龔鮑傳)' 제42 부분의 끝무렵에 나온다.


왕(왕망, 王莽)이 설방(薛方)이라는 사람을 중용하기 위해 사람을 보내어 초빙하였으나, 설방은 다음과 같이 말하며 사양하였다: "요순 임금님이 재위하실 때 그 아래에 (부름을 사양한) 소부(巢父)와 허유가 있었습니다. 이제 임금의 현명함이 요순의 높은 덕에 비길 만하니, 소신은 기산지절을 지키고자 합니다."


설방을 부른 왕망은 전한의 왕실 인척 출신으로, 왕위 찬탈이나 다름없는 방식으로 제위에 오른 인물이다. 따라서 설방이 이에 응하지 않은 것은 도가적인 은거의 뜻에서가 아니라 '나라에 도가 있으면 나가서 벼슬하고, 도가 없으면 물러가 숨는다(邦有道則仕, 邦無道則可券而懷, <논어> 위령공)'의 정신이라고 할 것이다.

기산지절은 물론 허유와 소부가 높은 벼슬이나 왕위를 마다하고 속세를 피하여 기산이라는 산에 은거하여 평생을 보낸 절개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여기서는 그 말만 나올 뿐 구체적인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허유의 고사를 좀더 자세히 기록한 것은 황보밀(皇甫謐)이 지은 <고사전(高士傳)>이다.


허유의 자는 무중(武仲)이며 양성 괴리 사람이다. 의(義)에 따라 살고 도리에 따라 행동하였으며, 삿된 자리는 앉지 않고, 삿된 음식은 먹지 않았다. 깊은 숲속에 은거하여 살았다. 요임금이 천하를 허유에게 양위하려고 하여 말하기를 "해와 달이 떠 있다면 횃불을 끄지 않더라도 그 빛을 내기가 어렵지 않겠습니까. 때맞춰 비가 오는데도 논밭에 물을 댄다면 그 노력이 의미가 없지 않겠습니까. 당신이 나선다면 천하는 잘 다스려질 터인데 내가 왕을 계속하는 것은 헛되이 그 자리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청컨대 천하를 맡아 주십시오" 하였다.

허유가 말하기를 "당신이 천하를 다스리매 이미 잘 다스려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내가 당신을 대신하여 나선다면, 그것은 그저 이름을 얻기 위함이 아니겠습니까. 이름이란 진실의 곁다리에 지나지 않나니, 내가 이런 곁다리가 되어야 하겠습니까? 뱁새는 깊은 숲에 둥지를 틀지만 단 하나의 가지를 쓸 뿐이며, 두더지는 큰 강에 나가 물을 마시지만, 배를 채울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돌아가서 자리에 계속 머무소서. 나는 천하를 다스리는 일에는 아무 소용이 되지 않습니다. 요리장이 부엌 일을 다스리지 않는다고 하여, 제사를 돌보는 이가 제기(祭器)를 버리고 요리장의 자리를 맡지는 않습니다"라고 하며 도피해 버렸다.

설규(齧缺)가 허유를 만나 묻기를 "앞으로 어찌할 것인가?" 하니 허유가 "앞으로 요임금을 피할 것이다" 하였다. 설규가 "어찌 그를 나쁘다고 하는가?" 하니 허유는 "요임금은 현명한 사람이 천하를 이롭게 한다는 것은 알지만 또한 천하를 해롭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은 모른다. 임금은 그 점을 잊더라도, 현자 자신은 잘 알고 있다"라고 하였다.

이에 허유는 기산 아래 중악(中岳)의 영수(潁水) 근처에서 농사를 지었으며, 죽을 때까지 천하를 다스리는 일 같은 것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요임금이 다시 불러서 구주(九州)를 맡기려고 하니, 허유는 이를 듣기 싫어하여 영수에 나아가 귀를 씻었다. 때마침 친구 소부가 송아지를 이끌어 물을 마시게 하려다 허유가 귀 씻는 것을 보고 무슨 일인가 물었다. 허유가 말하기를 "요임금이 나를 불러 구주를 맡기고 싶어하매, 그 소리 듣기가 싫어서 귀를 씻노라" 하였다. 소부가 말하기를 "자네가 만약 높은 산 깊은 골에 살아 사람의 길이 끊긴다면, 누가 자네를 볼 수 있으리요. 자네가 떠돌아다니며 명예를 구하였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내 송아지의 입이 더러워질까 염려하노라" 하며 송아지를 이끌고 상류로 가 물을 마시게 하였다.

허유는 죽고 나서 기산의 봉우리 아래, 양성(陽城) 남쪽 십여 리 되는 곳에 묻혔다. 고로 기산은 허유산(許由山)이라고도 불린다. 요임금이 그 묘를 기려서 가로되 기산공신(箕山公神)이라 칭하며, 오악(五岳)에 올리는 음식으로 대대로 제사를 지내게 하여 지금도 그치지 않고 있다.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 허유도 대단한 사람이지만 소부는 한 술 더 뜬다. <고사전>에는 허유보다는 짧지만 소부의 이야기도 나온다. 이렇게 되어 있다.


소부는 요임금 시대의 은자다. 산에 살면서 속세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았다. 나이가 들자 나무에 새집(巢)을 틀고 거기서 살았으므로 사람들이 소부라고 불렀다. 요임금이 허유에게 천하를 넘기려 했다는 이야기를 허유로부터 듣고 말하기를 "자네는 왜 자네의 모양을 숨기고 빛을 감추지 않는가. 만일 내가 자네와 친구가 아니었다면 자네 가슴을 후려패 쓰러뜨렸을 것이다" 하였다. 허유가 스스로 깨닫지 못했음을 부끄럽게 여겨, 이에 깨끗한 물로 나아가 귀를 씻고 눈을 닦으며 말하기를 "탐욕스러운 말을 듣는 꼴에 처하여 친구를 잃게 되었다" 하였다. 이렇게 헤어진 뒤 일생토록 서로 만나지 않았다.


지독한 인간이다. 소부편이 허유편보다 짧은 것은 소부가 자신의 뜻을 잘 지키며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허유는 이름이 전하여져 오고 그 이름을 따서 '허유산'까지 되었지만, 소부는 이름조차 전하지 않는다. 이것도 그가 초지일관한 삶을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역사에는 소부보다 더한 인간들도 있다.

<장자(莊子)> 잡편 양왕(讓王)은 세상에서 설치며 이름을 파는 일을 극도로 혐오한 사내들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그 중 북인무택(北人無擇)이란 사람은 순(舜)임금이 찾아와 천하를 맡아달라고 하니 "임금의 사람 됨됨이가 이상해졌다. 밭이나 매다 요임금 밑에 들어가 놀더니 이제 나까지 욕되게 하려는구나" 하면서 물에 투신하였다.

하나라 폭군 걸(桀)왕을 꺾고 상나라를 세운 탕(湯)왕은 걸왕을 치기 전에 변수(卞隨)를 찾아가 자문을 구한 적이 있고, 이 때 변수는 모른다고 잡아뗐다. 나중에 탕왕이 천하를 변수에게 물려주려고 하니, 변수는 "걸왕을 칠 때에는 나를 역모나 하는 사람으로 보고 내게 와 묻더니, 이제는 나를 탐욕스러운 인간으로 여기고 천하를 물려주려 한다. 도리를 모르는 이들이 자꾸 찾아와 나를 욕되게 하니 그 따위 이야기는 정말 듣지 못하겠다" 하고는 물에 투신하였다.

그래서 탕왕이 이번에는 무광(務光)에게 천하를 넘겨주려고 하니 무광은 "임금을 몰아내는 것은 의로움이 아니고, 백성을 죽이는 것은 어진 행동이 아니다. 의로운 사람이라면 그 녹을 받지 않고, 도가 없는 세상에서는 그 흙을 밟지 않는다. 하물며 그런 세상에서 나를 높이려 하니 그런 일은 참을 수 없다"라고 하고 돌을 안고 물에 투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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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유의 이야기는 <장자> 제1편 소요유(逍遙遊)에도 나오는데, 여기에는 요임금과 허유의 대화까지만 실려 있다.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 열전에도 나온다. 열전 맨 첫 번째 편인 백이열전(伯夷列傳)에서다. 여기서 사마천은. 악인들은 호의호식하면 잘 사는 반면 뜻 있고 의기로운 이들은 그 덕이 높을수록 더욱 더 곤궁에 처하고 후세에 이름조차 전하여지지 않는 문제를 실존적으로 고민하는데, 그 한 사례로 허유와 무광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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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이 실제로 손석희를 손짓하고 있는지, 그렇다면 장차 그가 새누리당의 러브콜에 응할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걸 생각하기 앞서 먼저 생각하여야 할 점이 있다. 보도들을 보자면, 새누리당이 지금 고민하는 것은, 누구를 서울시장으로 뽑아야 서울시가 살기 좋은 곳이 되고 서울시민의 살림이 좀 나아질까가 아니다. 그저 누구를 내세워야 박원순을 꺾고 이길 수 있을까를 생각할 뿐인 것 같다. 지방 단체의 행정을 잘 할 사람이 아니라 이길 사람을 찾는다. 여기에서 서울시의 주인인 시민은 완전히 빠져 있다. 어떻게 하면 자기네가 좀더 많은 권력을 차지할 것인가만이 관심의 대상일 뿐이라고 보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그렇게 후보를 내세우더라도, 선거가 다가오면 서민들이 깃들어 사는 남루한 시장 골목들을 쑤시고 다니면서 이것저것 퍼먹으며 서민을 위하는 행세를 열심히 하긴 할 것이다.

손석희가 이런 모습을 보이는 장면은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언론인으로 오래 생활한 사람은 정치를 하면 안 된다는 법은 없다.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애초부터 뚜렷한 편향적 자세를 갖고 언론을 했던 사람, 이를테면 윤창중 같은 사람은 정치 하기도 쉬울 것이다. 그냥 해오던 일을 계속하되, 조금 더 바보 같은 스타일로 바꾸기만 하면 된다. 저널리즘의 기본 가치인 중립성을 추구했던 사람은 갑자기 치열하게 한쪽 편(만)을 들어야 하는 위치에 처해 살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손석희가 과거에 말해왔듯 정치를 할 뜻이 없음이 지금도 마찬가지라면, 새누리당의 삼고초려나 십고초려는 큰 의미가 없을 뿐더러, 손석희를 욕되게 하는 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을 찾아오는 새누리당 사람들 때문에 돌을 안고 물 속에 뛰어들 필요는 없을 것이다. 대신, 시정(市政)의 주인인 시민의 안녕도, 모셔오려고 하는 손석희의 안녕도 아닌 자당의 당파적 이익을 보존하기 위해 문지방을 넘는 이들을 맑고 푸른 물로 떠밀어버리기를 바란다.

 

덧글

  • 스치는바람 2014/01/17 16:10 # 삭제 답글

    언제나 격조 있는 비판, 잘 보고 있습니다 :)
  • deulpul 2014/01/18 08:50 #

    친절한 말씀, 고맙습니다.
  • 미스티 2014/01/18 09:17 # 삭제 답글

    서울을 잘 이끌사람이 아니라 무조건 이길 사람을 찾는다는데 동감합니다. 근데 유권자들도 자신들의 이익과 서울의 발전을 위할 최적의 인물을 뽑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과거의 경우에서 보면 특정 동네 몇곳은 인물이 아니라 당만 보고 표를 던지죠..
  • deulpul 2014/01/18 14:41 #

    사실 반대쪽 일부도, 정도 차이는 있을지언정 저런 모습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기고 나서 어떻게 할 것인가보다 우선 이겨야 하는 게 선거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중적 인기를 정당 공천의 가장 결정적 요소로 삼는 정치가 바람직할 리 없고, 게다가 자기 당의 정강 정책과 일치하지 않더라도 오로지 이기기 위해 끌고오려 한다면, 정당의 존재 의의를 스스로 훼손하는 행동이라 하겠습니다.

    공직자를 선출하면서 그 개인의 인물됨보다는 소속 정당을 보고 투표하는 것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볼 수 있는 사항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방 선거 후보자가 능력이 미흡하고 심지어 거짓말, 비리, 범죄 경력이 있는데도 내가 지지하는 당이라서 투표하는 경우(아주 흔하죠), 공동체는 막장 루트를 타게 되겠습니다. 한편 그 정도가 아니라면 지지 정당을 근거로 투표하는 일은 나름대로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볼 여지도 있습니다. 내가 지지하는 정당의 정강 정책이 이 후보자를 통해 지역에서 구현되리라는 믿음이 있는 것이죠. 경상도와 전라도에서 특정 정당들이 싹쓸이를 하는 것은, 한국 정치 전체로 보면 매우 불행한 현상이지만, 유권자들 처지에서 보면 '지역 발전에 가장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이는' 후보자를 선택한 결과이기도 하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저는 여전히 당보다 사람을 보고 벌이는 선거가 되기를 바라고, 그게 지역 구도 해소나 정당 체질 개선 등 여러 모로 좋으리라고 생각합니다만, 반대편으로부터도 존경 받는 정치인(혹은 반대편 후보인데도 존경하는 유권자) 따위는 없는 지금의 우리 정치 풍토에서는 실현되기 어려운 일임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의미 있는 화두를 던져 주셔서 개발새발 끄적여 보았습니다.
  • 미스티 2014/01/19 05:38 # 삭제 답글

    너무 단순화한건지는 모르겠지만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투표는 자신의 이익을 대변해줄 사람을 뽑는거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가장 이해안가는건 자신의 이익에 반해서 투표하는 부류들이죠. 부유층과 기득권들이 보수(!)정당에 표를 던지는것은 당연합니다만 기득권도 아니고 부유층도 아닌 저소득 저교육층의 인구들이 자신들에 반하는 정책을 펼치는 쪽에 투표하는걸 보면 정말 사람을 돌아버리게 만듭니다. 정당이 이길려고 선거에 나가는거 까지는 그러려니 합니다 다만 유권자가 더 현명해 져야한다고 생각합니다.
  • deulpul 2014/01/19 12:01 #

    맞습니다. 예전에 보았던 '마우스랜드' 생각이 나네요. http://www.youtube.com/watch?v=VdZeW9vG1xg 그래서 현실을 왜곡 없이 제대로 파악하는 일이 민주적 과정의 선차적 조건이나 다름없이 중요하고, 같은 맥락에서 언론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 유리쓰 2014/01/19 16:21 # 삭제 답글

    감사합니다. 또한 토시 한 자까지 공감합니다.

    왜곡된 진실을 언급되는 것 자체를 멀리해야 하는지, 왜 진실이 아닌지 말해야 하는지도 고민 되네요.
    왜곡된 미디어가 진실이 아닌 줄 알면서도 회자되는 것 자체로 힘을 가진다는 사실이 무섭기 때문입니다.
  • deulpul 2014/01/20 03:06 #

    무슨 말씀인지 잘 이해합니다. 요즘 가만히 생각하고 있는 점이기도 합니다. 진실됨을 따지기보다 이미 형성된 유명세를 더 쳐주는 게 지금의 세태인지라, 저는 여전히 트롤에게는 먹이를 주지 않는 편이 좋다는 생각을 합니다만, 고민스러운 것은 사실입니다. 함께 조금 더 고민해 보도록 하시지요.
  • 감사 2014/01/22 00:26 # 삭제 답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어렸을 때 이 양반들이 너무 과장된 행동을 하는 것 같아서 (물에 투신하는 것) 웃었는데 이게 그런 게 아니라 심각한 이야기라는 것이 이해가 갑니다.
  • deulpul 2014/01/23 15:20 #

    원래 대륙이 모든 면에서 스케일이 크긴 합니다만, 이런 이야기들은 상징적이라도 그 시대의 가치관을 보여주는 측면이 있지 않나 합니다. 저는 굴원(屈原)까지 포함하여, 물에 풍덩풍덩 빠진 사람들의 결기를 좋아합니다.
  • 2014/02/03 05:2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4/02/03 11:18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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