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 벗기기 섞일雜 끓일湯 (Others)

최근 블로그가 조금 무거워지는 것 같아서 체중 감량 포스팅.

얼마 전에 <슬로우뉴스>가 페이스북에서 다음과 같은 '슬로우 카드'를 보여준 적이 있다.



네 번째 항목에 '앞뜯, 꼭뜯'이 있다. 이걸 보자니 삼인행 필유아사라, 사람은 태어나서부터 늙어죽을 때까지, 보이지 않는 바람으로부터도 배워야 한다는 각성을 통절하게 재확인하게 된 계기이자, 나의 바나나뜯을 코페르니쿠스적으로 뒤바꾼 거대한 사건이 생각난다.

나는 바나나 껍질을 벗길 때, 언제나 꼭지가 없이 맹송맹송한 쪽으로 개봉해왔다. 저 그림에 따르면 앞뜯이다. 그런데 늘 귀찮은 일이 한 가지 있었다. 바나나 껍질을 벗기려면 손톱을 사용하거나 손가락에 힘을 주어야 하는데, 따라서 언제나 개봉 직후 손가락을 닦거나 씻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래도 이것은 바나나 흡입에 동반되는 당연한 일로 생각했다. 안 깎는 게 어디냐.

그러던 어느 날.

<베이직(Basic)>이라는 영화가 있다. 군대 추리물이랄까, 나름대로 스토리를 잘 짠 스릴러이다. 새뮤얼 잭슨과 존 트라볼타가 주연을 했다.

이 영화에는 조연으로 로절린 산체스라는 여배우가 나온다. 푸에르토리코 출신으로, 재주가 참 많은 연예인이다. 영화에서는 신경질적인 육군 레인저스 부대원으로 나온다. 조연이라 잠깐잠깐 나오는데, 몸집도 유달리 작은 여자가 산만한 야전 장비를 지고 다니는 깡다구 연기가 인상적이어서, 영화를 보고 나서 찾아봤다. 솔직히 고백해. 우린 뒷조사 같은 거 다 하잖아.

그러다 만난 게 이런 엄청난 장면. (경고: 아래 유튜브 링크는 영화에서 잘라온 짧은 동영상이지만, 사무실, 도서관, 지하철 같은 공공 장소나 소개팅 자리 등에서 보기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난 경고했다.)

Roselyn Sanchez (번역은 생략...)

나는 충격을 받았다. 아아, 세상에 바나나를 이렇게 벗기는 방법도 있었단 말인가. 에로 코믹이라 할 이 장면에서 딴 건 모두 뇌리에서 하얗게 사라지고(정말임), 산체스가 꼭지를 잡고 바나나를 '빠득!' 하며 너무도 시원스럽게 뜯는 모습만이 각인되었다. 큰스님이 등짝을 죽비로 내려치는 것처럼 강렬한 깨달음이었다.

이후 나는 꼭뜯이 되었다.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가끔 좀 덜 익은 놈들은 단단히 저항을 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손을 더럽히지 않고 깔끔하게 섭취에 성공한다.

이렇게 해서 나는 통렬한 가르침을 받고 앞뜯에서 꼭뜯으로 전향했다는 이야기. 아주 오래 전에, 화장실 안에서 벌이는 일은 한 번 학습하면 수정할 기회가 없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래도 바나나 껍질 벗기기는 산체스 선생님 때문에 수정이 됐다.

참, 저 동영상 클립이 나온 영화는 코미디인 <보트 트립(Boat Trip)>이다. 연애 좀 못 할 것 같은 두 친구가 쭉빵 여자들을 꼬셔보려고 물 좋다는 크루즈 배를 타고 가면서 겪는 일이(라느)ㄴ데, 나도 보지는 않았다. 에로 코미디 다 거기서 거기일 텐데, 네이버 영화 이용자 평에는 "내 인생 최고의 영화"라는 평가도 있네... 영화 안 보고 사는 사람인가... 하지만 보고 나면 나도 그렇게 될지 모르지. 여하튼 취존중.

 

덧글

  • NorthShore 2014/02/04 04:33 # 삭제 답글

    저도 궁금증에 Rotten Tomatoes로 확인해 보니 긍정적인 리뷰의 비율이 무려 7%더군요. 정말 취존중이라는 말밖에는...
  • deulpul 2014/02/04 09:31 #

    오오 좋군요...... 그런데 하긴 저도 <행오버> 1, 2 같은 것은 열심히 남들한테 추천하기도 하고(킬링 타임용으로), 제 인생의 영화 중 하나로 꼽는 <르네상스 맨>도 장르로는 시시껄렁한 코미디일 테니 아주 이해가 안 가는 바는 아닙니다. 역시 취향이 다양해서 사람 살기가 재미있어요.
  • clement 2014/02/04 12:35 # 답글

    왘ㅋㅋㅋㅋ귀엽닼ㅋㅋㅋ
  • deulpul 2014/02/04 15:56 #

    쿠바 구딩 주니어가 좀 귀엽긴 하죠...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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