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의 국정 연설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미국美 나라國 (USA)

앞에 쓴 버락 오바마의 신년 국정 연설 관련글에서, 이 연설 자체가 미국의 위상을 보여주는 것 같다는 말씀을 드렸다. 그럼 이런 연설을 준비하고 연출하는 사람들은 누군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런 연설의 효과는 어느 정도인지도 궁금해진다. 이 글은 앞의 글들에 대한 애프터 서비스.

2년 전인 2012년의 국정 연설은 1월24일에 행해졌다. 바로 그 날, 백악관은 동영상 하나를 공개했다. 오바마 팀이 국정 연설을 어떻게 준비하여 왔는지를 보여주는 영상이었다. 미국에서 대통령 연설, 특히 신년 국정 연설인 State of the Union을 어떻게 준비하는지 그 과정을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자료다. 2년 전 자료지만, 올해 연설을 만든 사람이나 과정도 거의 같으리라고 생각한다.






위 영상에 나온 스탭들의 진술 중 인상적인 것 몇 개.

데이빗 플러프(선임 보좌관): 이러한 연설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역할은 그저 원고를 수정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처음 개념을 잡을 때부터 아이디어가 발전되는 과정까지 개입하며, 그 자신이 많은 부분을 쓰기도 합니다. 존 패브로(연설문 작성팀 디렉터)와 저, 그리고 대통령 자신도 과거에 행해진 신년 국정 연설들을 보며 연설 상황에 대한 감을 잡습니다.

진 스펄링(경제담당 디렉터): 대통령은 예산에 반영될 많은 정책을 내놓고, 국정 연설을 만드는 사람들은 올스타 팀을 구성하는 선수 같은 역할을 하며 이를 뒷받침합니다.

새라 비앙키(부보좌관): 대통령이 선택한 모든 아이디어들이 개진되는 양상을 지켜보며, 그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얼마나 많이 가진 사람인지 보는 일은 매우 즐겁습니다.

세실리아 무노즈(국내정책담당 디렉터): 지금은 연설문 작성팀에게는 일 년 중에 매우 바쁜 때입니다. 밤이 되면 팀은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연설문의 구상들을 취합합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대통령이 내용을 관장하며, 그래서 이 연설을 자신의 것으로 만듭니다.

데이빗 플러프: 대통령은 연설문 구조가 어때야 하는지, 또 어떤 정책이 연설문에 포함되어야 하는지 등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말하면서 이 모든 과정을 주도합니다.

로라 딘(연설문 작성팀): (연설문에 등장할 사람들을 영부인 주변 좌석에 초대하는 것과 관련해) 대통령의 연설문에서 언급되는 사람들을 강조함으로써, 정책에 실제 사람의 얼굴을 투영하여 보여주는 것이죠. 연설문에서 그들이 언급되는 이유는, 우리가 제안하는 정책에 현실성과 인간성을 불어넣기 위함이니까요. (정책과 인간 사이에) 실질적인 구체적 연결을 짓기 위해 이들을 연설 자리에 초청하는 것은 멋진 일입니다. 이들이 바로 미국을 대표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죠.

1차 초안의 내용을 오바마가 수정한 모습


연설문 작성을 위한 아이디어 회의


이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는 점들은 다음과 같다.

  • 연설문은 고위 보좌관, 연설문 작성팀 책임자,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공동으로 작성한다.
  • 오바마와 담당 보좌관, 연설문 작성팀은 과거 대통령들의 연설 장면을 보며 감을 잡는다.
  • 브레인스토밍을 거친 뒤, 연설문 작성팀이 원고를 작성하면 오바마가 1차 수정한다.
  • 수정된 내용을 갖고 대통령과 스탭이 다시 토론한다.
  • 토론 내용을 취합한 원고가 만들어지면, 연설문 작성팀은 백악관 내 각 정책 담당팀을 모두 찾아가서 사실 관계를 재확인한다.
  • 미디어팀은 연설 내용과 관련한 사진 및 도표 자료들을 수집하여, 연설 장면 옆에 흐르도록 하는 온라인 확장판을 제작한다(올해 나온 것은 이것).
  • 처음 아이디어를 내는 단계에서부터 완성 원고가 만들어질 때까지 모든 과정을 주도하는 사람은 오바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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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의 신년 국정 연설과 관련해 워싱턴에 계신 선배께서 소중한 자료를 알려 주셨다. '미국 대통령의 신년 국정 연설과 관련한 다섯 가지 잘못된 믿음'이라는 <워싱턴 포스트> 기사다. 기사를 쓴 사람은 제럴드 포드와 조지 W. H. 부시 때 연설문 작성을 담당했고 지금은 캘리포니아 대학(롱비치)의 커뮤니케이션 교수로 있는 크레익 스미스다. 아래는 요약.

1. 미국 대통령의 State of the Union은 반드시 연설 형태로 행해져야 한다. (X)

헌법에는 대통령이 "이따금씩 국가의 상태에 대한 정보를 의회에 제공하고, 자신이 필요하거나 용이하다고 판단하는 조처를 고려해 주도록 제안한다"라고 되어 있다. 이에 따라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1790년 1월8일에 의회에서 연설. 그러나 제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대중 연설을 불편하게 생각했고, 또 대통령이 의회에서 거드름을 피우며 연설하는 것은 군주적이라고 생각해서 문서로 대신했다. 문서 전달의 전통은 1913년 우드로 윌슨 때 와서 중단되고 다시 연설 형태가 살아났다. 그러나 그 뒤에도 문서로 대신하는 대통령들이 있었으며, 가장 최근은 지미 카터.

2. 대통령과 연설문 담당자 두 사람이 연설문을 쓴다. (X)

이런 형식은 존 F. 케네디 때가 마지막. 이후로는 일단의 참모진이 참가하는 형태. 연설문은 각 분야 담당 스탭이 회람하면서 자신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첨삭. 개나새나 다 한 마디씩 참견해서 작성팀이 골머리를 앓는 일도 종종 벌어진다.

3. 연설문은 모든 이슈를 담아야 하므로 길어질 수밖에 없다. (X)

대통령 연설문에 자신의 이해관계를 넣고 싶어하는 사람이 천지 가득. 장관들, 의원들, 로비스트, 활동가 등. 연설문에는 대통령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어젠다가 모조리 담기게 마련. 그러다보니 빌 클린턴 때는 74분의 연설 동안 74개의 주제가 언급되기도. 반면 로널드 레이건은 정해진 주제 구조에 딱 맞춰서 작성하고, 중요한 이슈라도 이 구조에 맞지 않으면 탈락시켰다. 시간으로는 40분 정도에 끝냈다.

4. 국가의 상태는 언제나 strong이어야 한다. (X)

(미국 대통령의 신년 국정 연설에는 나라의 상태를 집약하여 표현하는 문구가 들어가는데, 관례적으로 '우리 나라는 강건한 상태입니다(the state of the union is strong)' 같은 형식으로 표현된다.)

지난 다섯 대통령들은 연설문에서 '강한' '더 강한' '최고로 강한' 같은 말을 사용했다. strong을 사용하는 것은 효과적이고도 안전하다. 강하다고 말하면 그런갑다 하는데, 다르게 말하면 왜 강하지 않은가 하고 의심한다. 그러나 다른 말을 쓰는 튀는 대통령도 있었다. 린든 존슨은 "자유롭고 부지런하며 희망에 가득 차 성장하는 상태"이라고 했고, 존 F. 케네디는 "175살이나 된 이 늙고도 젊은 나라의 상태는 좋습니다"라고 하기도. 쿨리지는 "미국 의원들이 이때껏 볼 수 없었던 전망 좋은 상태"라고 했다.

심지어 비관적으로 요약한 대통령도 있었다. 제임스 뷰캐넌은 남북전쟁을 넉 달 앞둔 1860년 12월의 연설에서 "이 나라는 파괴될 위기에 처한 상태"라고 했다. 에이브러햄 링컨이 암살당한 1865년 12월에 앤드루 존슨은 "솔직히 말하자면, 건국의 아버지들이 의도하였고 우리가 이해해온 바와 같은 나라란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상태"라고 했다. 최악은 제럴드 포드다. 그는 1975년 불황을 맞아 "나라의 상태는 좋지 않습니다. 수백만 명이 실업 상태이고 불황과 인플레이션 때문에 또 다른 수백만 명의 돈이 종잇장이 됩니다. 물가는 뛰고 판매는 저조합니다"라고 했는데, 이건 청중이 듣고싶어 하는 말은 아니었지만, 정확히 말하자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5. 대통령의 신년 국정 연설은 취임 연설을 빼면 가장 중요하다. (X)

수천만 명이 이 연설을 TV로 지켜보고, 쇼의 요소를 다양하게 가진 것이 사실이지만, 그 영향은 놀라울 정도로 미약하다. 연설에서 제안된 법안 중 통과되는 것은 거의 없다. 사회 보장 제도를 사영화하겠다는 부시의 약속은 어디로 갔으며, 샌디 훅 총기 사건 이후 오바마가 추진한 총기 규제안은 어디로 갔나? 의원들은 대통령의 연설에 설득되기보다는, 재주는 자신들이 넘고 성과는 대통령이 챙길 게 틀림없는 약속들에 짜증을 낸다고. 또 이 연설은 대중을 설득하는 데도 큰 효과가 없다. 갤럽 조사에 따르면, 연설이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 또 말은 휘황찬란해도 나중까지 기억되는 경우도 별로 없다. 클린턴의 '큰 정부 시대는 끝났습니다'와 부시의 '악의 축' 정도가 성공한 케이스.

이런 정례 연설보다는 위기 상황에서 한 연설이 감정, 신뢰도, 정책 모두에 훨씬 큰 효과를 가져온다. 챌린저 호 사건 이후 레이건의 연설, 9.11 때 부시의 연설, 투산(원문의 Tuscon은 오기) 총기 사건 때 오바마의 연설 등. 또 나라를 전쟁으로 이끌어 가거나 전쟁을 종결하는 연설, 혹은 한 가지 이슈에만 초점을 맞춘 연설 등이 강한 효과를 낸다고 한다.

 

덧글

  • 만슈타인 2014/02/03 22:48 # 답글

    민주주의 하의 국정운영에서 최고 통수권자가 어떤 마인드를 가지고 어떻게 자신의 신년 정책 기조를 이끌어 나갈 것인가 전국에 생중계하는 연설답게 진짜 철저히 만드네요 그만큼 들인 정성 때문인지 양과 질이 좋을 수 밖에....
  • deulpul 2014/02/04 09:27 #

    그런 면과 더불어, 또 어떻게 보면 이렇게 해야 지지를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습니다. 그런 면에서, 대통령 언급을 조작하는 '마사지'나 하는 것을 임무로 생각하는 인간들에 비하면 더할 나위 없이 프로들인 것 같고, 게다가 그런 과정을 인상적인 영상으로 기록한 뒤 저런 몇 분짜리 동영상으로 만들어 다시 홍보로 활용하는 기획성에서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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