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어트 홀 말년 인터뷰 섞일雜 끓일湯 (Others)

문화연구의 태두라 할 스튜어트 홀이 오늘(2월10일) 82세로 세상을 떠났다.

한국에서 1990~2000년대에 인문학 주변을 서성거린 사람치고, 문화연구의 크고 너른 흐름에 옷고름 한번 적셔보지 않은 이는 드물 것이다. 나는 물론 이 분야에 문외한인데, 그럼에도 미국에 올 때 더글라스 켈너를 비롯한 몇 권의 책을 소중하게 가져왔다(지금도 잘 갖고 있다). 그 뒤로도 도서관 서가를 지날 때마다 유독 이쪽 책들이 눈길을 끄는 것이었다. 미국에는 드문 문화연구학자 래리 그로스버그의 수업도 들었다. 선생님은 좋았고 공부는 흥미로웠지만, 내가 갈 길은 아닌 것 같아서 계속하지는 않았다.

이렇게 한참이나 비켜서 있는 문외한인 나는 문화연구나 그 전공자들의 작업에 대해, 그것이 생산하는 이론적인 의미보다는, 사람들이 세상을 이해하고 이를 변화시키는 데 도움을 주는 실천적인 공부로서의 의미에 더 주목하게 된다.

아래는 스튜어트 홀이 살아 있을 때 마지막으로 한 인터뷰 몇 중 하나다. 2년 전인 2012년 2월10일, <가디언>이다. 영국에서 영국 기자와 가진 인터뷰 기사이기 때문에 영국의 국내 문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홀이 내보인 문제의식은 보편적이라고 생각한다.

인터뷰 당시 영국은 집권 보수당이 국가 의료 서비스인 NHS를 개편하려는 정책을 추진함에 따라 논란이 일고 있었다. 이 문제에 대해 홀은 이렇게 말한다: "누군가가 아프다는 사실 때문에 이익을 취하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

돈 많은 사람은 이런 말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또 돈이 없어서 큰 병이라도 걸리면 극단적 어려움에 처하게 될 사람 일부도 어이없게도 이런 말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우리 대부분이 이런 말을 들으면 뭔가 불편하게 생각할지 모른다.

우리가 당연한 원칙으로 믿고 사는 것들은 사실 얼마나 시대한계적인 것인가. 이해관계가 은밀히 투사된 제한적인 주장들을 우리는 영원한 진리인 것처럼 믿으며 살고 있지 않은가. 그것을 의심할세라 자신과 남을 지레 단속하면서 말이다.

이렇게 사람들을 두들겨 깨우고, 세상에 우둔하거나 비열하게 감춰진 코드들을 읽어내고, 사회와 공동체가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끊임없이 모색하는 것은 소중한 작업이 아닐 수 없다. 홀이 평생 해온 일도 이와 비슷한 것이라고 믿는다.

인터뷰에서 홀은 여전히 정력적이지만, 지금의 세상에 실망하는 모습이 읽힌다. 기자는 이를 비관주의라고 했다. 자신의 평생을 경제 결정론과의 싸움이라고 말하는 홀은, 경제만이 사회의 유일한 가치가 되어가고 소수가 모든 특혜를 틀어쥐는 착종의 사회 구조가 더욱 고도화하는 가운데 떠났다. 마지막에 어떤 희망의 싹이라도 남겨 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중간 제목은 내가 넣었다.)



토요일의 인터뷰: 스튜어트 홀
(The Saturday Interview: Stuart Hall)

by Zoe Williams
2012년 2월10일



스튜어트 홀은 좌파 지형에서 신 같은 존재다. 그가 받는 존경을 과장한 의미에서가 아니라, 다문화주의, 여성주의, 카를 마르크스, 자유 시장 등 어떤 주제에 대한 대화든 일정한 깊이에 들어가는 순간 그의 사상으로 회귀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홀은 1951년에 영국으로 건너와 로즈 장학금을 받으며 옥스포드 대학 머튼 칼리지를 다녔다. (스튜어트 홀은 자메이카 출신이다.) "옥스포드에서 석 달을 지내자, 그게 내 집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난 영국인이 아니었으며, 앞으로도 그렇지 않을 겁니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삶은 부분적 유배의 하나에요. 나는 탈출을 위해 영국에 왔으나, 결국 그건 실패였습니다." 그는 이 모든 이야기를 즐겁다는 투로 말한다. 그런 유배가 그의 행복에 지장을 가져온 것은 아니며, 그가 설령 실패한 게 사실이라 해도, 그게 재미있는 실패라는 듯이.

홀은 영국에서 60년을 살았으며, 런던 대학 교수인 캐서린 홀과 결혼도 했다. 80번째 생일을 하루 앞둔 날, 햄프스티드에 있는 그의 집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는 부엌에 앉아 그의 젊은 날 이야기를 듣자니, 전혀 손상되지 않고 완벽하며 성공적인 학자, 마치 존 업다이크 소설에나 나올 듯한 학자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홀은 또다시 재미있다는 투로 말한다. "나는 (삑삑삑) 지식인이 되려고 했단 말이에요. 학문의 세계가 바로 내가 돈을 버는 곳이었죠."

홀은 1950년대에 이미 <뉴 레프트 리뷰>의 주요 인물이 되었다. (랄프 밀리밴드와 함께 했는데, 밀리밴드 이야기는 그의 정치적 무덤으로 미뤄놓자.) 대처 총리 때와 그 이후 시기를 풍미한 이 출판물에 실린 중요한 아이디어 다수가 홀의 작품이라는 사실은 흥미롭다. 베아트릭스 캠벨은 올 1월에 <런던 북 리뷰>에 쓴 글에서 대처의 '퇴행적 현대화'를 언급했는데, 이는 홀이 쓴 말이다. 그러나 저명한 사상가로서 홀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버밍엄 대학 현대문화연구센터 교수로, 그리고 나중에 소장으로 재직하면서 이룬 다문화주의 분야의 성과다.

"아이디어도, 분석도, 비전도 없는 좌파"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홀은 다문화사회가 60년대식 가치의 견고한 성과인 것으로 보는 듯했다. 어떤 정치적 수사나 사회 양극화로도 되돌릴 수 없는 하나의 발전인 것이다. 그는 학계가 그와 같은 신질서를 이끌어 왔다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거부한다. "이미 60년대에 선을 그었죠. 우리는 여기에 있었고, 그들은 거기에 있었던 겁니다. 됭케르크처럼 보이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었어요. 그런 일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학계가 한 기여가 좀 있지만, 사실 다문화 추세를 이끄는 데 더 크게 공헌한 것은 다른 문화에서 온 사람들이 주변에 실재로 존재하는 상황, 그들에게는 꼬리가 없고 그들이 당신을 잡아먹지 않는다는 인식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쇼핑 센터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은 흑인일 수도 있죠. 텔레비전을 켰을 때, 나와서 노래하는 사람이 흑인일 수도 있고요. 이런 점이 사람들을 다문화에 대해 생각하도록 이끄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겁니다."

그러면서도 홀은 영국이 그가 도착했을 때와는 크게 다르다는 생각을 여전히 갖고 있다. 30년 동안 밥 말리를 칭송해온 나라이면서도 말이다. (밥 말리도 자메이카 출신) 홀은 "나는 지금이 30년 전보다 정치적으로 더 비관적이라고 봅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비관주의는 다문화주의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작년에 (영국 총리) 데이빗 카메론은 연설에서 다문화주의의 실패를 선언했다. 홀은 이런 보수당의 행태를 무시하기보다는 점잖은 태도로 대응했다. 그는 정작 실패한 것은 문화의 일부인 다문화주의가 아니라 기회 균등을 보장하는 법안이라고 비판했다. 그를 괴롭히는 가장 큰 문제는 이런 게 아니라, 좌파의 현 상황이다. "좌파는 지금 곤경에 처해 있습니다. 아무런 아이디어도 없고, 그 자신에 대해 객관적으로 분석하지도 않아요. 따라서 아무런 비전도 없죠. 그저 온도나 재면서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오, 지금은 좋지 않군. 오른쪽으로 가자구.' 사람들을 정치적으로 교육시키지도 못하고,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정치적으로 바꾸는 데에도 아무런 감각이 없어요."

그런 상황을 보여주는 사례는 어디에나 널려 있지만, 가장 두드러진 것으로 NHS 사태를 들어보자. (NHS는 영국 국가의료서비스로, 보수당 집권 아래 사영화 성격을 강화하는 개편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참고 기사) "지금껏 NHS로 혜택을 받아온 수백만 명이 이를 지키기 위해 거리에 나서야 하잖아요? 그런데도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 게 어떻게 가능한지? 말도 안 되죠. NHS는 평화 시기에 정착된 제도로서는 가장 인본주의적인 것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그 원칙, 즉 누군가가 아프다는 것 때문에 이득을 취하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 사라졌어요. NHS를 미국 의료보험 회사에 맡기는 편이 더 효과적이라고 누군가 주장한다 해도, 그런 주장을 물리칠 수 있는 이 원칙을 기억해 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단 말입니다. 이런 근본적인 원칙들이 사라졌기 때문이지요." 미국은 1인당 의료비가 더 높은데도 결과는 더 형편없다. 왜 그런가를 분석한 최근 연구가 있다. 그 답은 명확했다. 이윤 동기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부자는 지나칠 정도로 보호되고 빈자는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다. 사람들은 불필요하게 죽어간다.

따라서 의료 영역에 사기업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매우 합리적이고도 실용적인 비판이 존재하는 셈이다. 그러나 홀의 반론은 그보다 훨씬 더 따끔한 윤리적 비판이다. 어떤 이가 아프다는 사실을 이용하여 이익을 취하는 자는 누군가? 세상에 이따위 사람이 있단 말인가? 돈을 보고 진료를 하는 사람이, 당신이나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건강을 챙기는 것은 둘째치고, 의료비나 사실대로 청구할지 믿을 수 있겠는가? 이런 윤리적 주장이 강력하게 개진되고 있지 않다. 아니, 실제로 완전히 배제되고 있다.

"교환 가치로 설명할 수 없는 나누기와 베품"

그 자신도 인간이고 게다가 80살이나 됐으니, 홀도 최근 NHS를 직접 체험하며 살고 있다. 그는 신장 이상 진단을 받은 이래 7년 동안 투석 치료를 받아 왔다. 그에 따르면 이것은 "사람을 살리면서도 동시에 죽이는 것" 같다고 한다. 이런 경험은 그에게는 매우 심각한 것이었다. "(병에 걸리면) 당신 자신에 대해 새로운 개념을 갖게 됩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 규정되는 당신이라는 새로운 개념이죠. 아내가 당신의 보호자가 된다구요. 이런 제길!"

그러나 이런 경험은 물론 그의 정치적 정체성을 심화시켜 주기도 했다. "나는 내가 섬 같은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고 늘 생각해 왔는데, 그런 점을 정말 실제로 깨달았습니다. 신장만이 문제가 아니에요. 내가 가진 문제를 이야기한다면 한참을 늘어놓아야 할 거에요. 다른 사람이 찾아와 도와주지 않으면 이틀도 살 수 없습니다. (영국 사회학자) 리처드 팃머스는 이걸 선물을 주고받는 관계라고 부르지요. 당신이 빵을 물에 던지는 것과 같은 겁니다. 누가 그걸 주울지 알 수 없고, 나중에 당신 자신이 필요로 하게 될 수도 있죠. 그저 당신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눠주는 겁니다. 이건 교환 가치의 반대에요. 아무런 반대 급부가 없는 베품이거든요."

"반대 급부로 받는 건 아무 것도 없어요. 나는 애덤 스미스가 말한 에고(ego), 이기적인 개인이 잘못된 개념이라고 늘 생각해 왔습니다. (원래 그런 게 아니라) 외부 세계가 우리 머리 속으로 들어오고 끊임없는 변증법적인 과정이 진행되며 결국 뿌리 깊은 인식이 되는 것이죠. 따라서 우리는 혈족 관계(같은 안전망)를 만들게 됩니다. 전에도 그런 점을 잘 이해했지만, 일단 내 몸이 불편하면 이게 훨씬 더 중요한 문제가 돼요. 신장 투석 한 번 받는 데 비용이 얼마 드는지 알아요? 공공 의료 체계를 내가 신봉하냐구요? 물론이죠. 그렇고 말고."

강력한 도덕적 주장으로 사람들을 각성시키지 못한 것은 노동당의 잘못이다. 홀은 바로 이 점이 (지금의) 정치적 지형을 위기 상황으로 이끌고 간 이유라고 본다. 홀은 (노동당 당수) 에드 밀리밴드가 당 대회 연설에서 기업 '포식자들'을 비판한 것은 인상적이라고 보지만, 크고 작은 기업들이 행하는 악습을 그저 유행처럼 비판하는 일에 대해서는 흥미가 없다. 그는 기성 정치인들의 단점을 분석하는 일에 주력하는데, 이건 복수심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훨씬 더 잘 할 수도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영국 국내 정치 관련한 두 단락 생략)

"경제 결정론에 대한 반박이 내 인생의 과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지난 여름에 벌어진 폭동으로 옮겨갔다. 긴축 재정, 이른바 다문화주의의 '실패', 정치의 부재 같은 것들이 쇼핑몰에서 모두 만난 것 같은 사태가 이 폭동이었다. "폭동 사태를 보면서 두 가지 점 때문에 매우 불편했습니다. 하나는 아무 것도 바뀐 게 없다는 점. 사다리의 바닥에 있는 젊은이들은 (폭동 이후에) 더 깊이 소외되었고, 대처리즘이나 블레어리즘, 연정(coalition)이 내놓는 메시지, 즉 '너희들은 그저 몸이나 팔아라'라는 메시지를 순응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죠. 그들을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이 젊은이들은 정치적으로 조직된 목소리도 없었어요. 흑인 운동으로 조직된 목소리도 없었고, 좌파에서도 공감하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어요. 분노가 정치적 표현을 통한 탈출구를 찾을 수 없으면 폭동이 됩니다. 언제나 그렇죠. 내가 불편했던 두 번째 이유는 가게를 부수고 운동화를 훔치는 모습이 무엇을 표현하는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이건 폭동을 일으키는 젊은이들조차 신자유주의를 추동하는 핵심인 소비주의에 잠식되어 있음을 뜻하는 거에요. 소비주의는 모든 사람을 한 가지 원칙으로 이끌고 갑니다. '당신의 상황이 아무리 형편없더라도, 당신은 여전히 소비할 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라는 것이죠. 시장(市場)의 눈으로 볼 때, 우리는 모두 평등한 겁니다."

홀이 자신의 모든 분석과 전망 중 가장 비관적으로 보는 부분이 바로 이 점이다. 신자유주의 30년은 사람들의 의식을 바꿔놓았고, 젊은이들이 빈곤에 대응하는 방법을 오염시켰다. 이것은 정치인들에게는 자기네 이익을 주장할 수 있는 목소리를 주면서도 젊은이들에게는 이를 거세한 것과 흡사하다. "내가 문화연구를 한 것은, 인간의 삶이 오로지 경제적인 이유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나는 내가 해온 모든 것이 경제 결정론을 반박하는 주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내 인생을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또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박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최종적으로는 경제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언제가 최종적이라는 것인가요? 만일 당신이 지금 당장 벌어지는 사태를 분석한다면, 경제에서 시작해서 경제로 끝낼 수는 없습니다. 그건 필요한 작업이지만, 그것으로는 불충분합니다."

홀은 지금 당장 벌어지는 사태로 인해 모든 영역에서 후유증이 발생하는 모습을 본다. 근본적으로 경제 이슈에만 매달리는 잔치 뒤에 따르는 숙취다. 좌파는 비틀거린다. 대처가 시작했던 것을 자신들이 중단했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오래된 사회복지 국가의 주요 제도들은 이미 "곳곳이 깎여나갔습니다. 이게 바로 블레어가 한 일입니다. 사영화에 맞서 싸울 필요가 없다는 거죠. 공공 영역과 사영 영역을 가르는 구분을 잊기만 하면 된다는 거에요."

경제 결정론에 맞서서 평생을 살아온 홀이 이처럼 견고한 비관적 전망에 도달했다는 것은 의문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를 비관적인 사람이라고 한다면 공정한 말은 아닐 것이다. 그가 지성에 대해 낙관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니까. 그러나 홀이 평생 해온 작업은 이러한 지성이 표현됨으로써 좀더 나은 세상이 될 가능성을 높이려는 것이 아니었던가. 경제 결정론을 뿌리뽑기 위해서는, 한 차례의 금융 위기 사태, 30년 이상의 신자유주의, 카메론이 이끄는 연정 같은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이 있어야 할 것 같다.


※ 그의 말년에 나온 또 하나의 읽어볼 만한 기사: NewStatesman.com, 2012년 8월.

 

덧글

  • 2014/02/11 15:0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4/02/11 16:19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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