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먼저 다가와 악수를 건넨' 중매媒 몸體 (Media)

언론 기사에 나온 시시콜콜한 잘못을 이야기하자면 끝도 없다. 아무리 잘못이 흔하고 오보가 일상이라도, 잘못은 여전히 잘못이고 오보는 여전히 오보며, 언론으로서 수치스럽다는 점도 여전하다.

27분 늦은 완주…페루 스키선수의 '올림픽정신'

남과 자기 자신을 극복하며 경쟁을 펼치는 운동 경기에서는 흔히 감동적인 인간 드라마가 발생한다. 이 기사가 눈에 띈 것도 그런 짐작과 기대 때문이다.

소치 동계올림픽 남자 15km 크로스 컨트리 종목에서 페루 선수가 부상중인 몸을 이끌고 참가하여 완주하였다는 내용이다. 놀라운 투혼이고 찬사를 받아 마땅한 스포츠 정신이다.

기사 마지막은 이렇게 되어 있다.


불혹을 넘긴 나이에 부상까지 겹쳐 출전 자체가 불투명했지만 카르셀렌은 올림픽 출전을 강행하며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도전이 되겠지만 이야말로 올림픽 정신 아닌가'라는 글을 자신의 홈페이지에 남겼다.

이날 포기하지 않고 결승선을 통과해 거친 숨을 몰아쉬던 그에게 가장 먼저 다가와 등을 두드려주고 악수를 건넨 이는 다름 아닌 챔피언 콜로냐였다.

미국 일간지 USA투데이는 "승리한 선수가 다른 선수들을 격려하는 건 흔한 일이지만 수십 분을 기다려 축하하는 경우는 보기 드물다"며 "챔피언이 진정한 올림픽 정신을 가진 선수를 알아봤다"고 전했다.


페루 선수도 대단하지만, 우승을 한 뒤에도 자리를 떠나지 않고 기다렸다가 꼴찌 선수를 격려한 스위스 선수도 대단하다.

그런데 기사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던"이라고 한 표현이 걸린다. 이것은 기자가 현장에서 선수 가까이 있거나, 아니면 그렇게 가까이에서 찍은 영상을 보아야 알 수 있고 쓸 수 있는 표현이다.

영상을 보니 거친 숨을 몰아쉰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본인은 최선을 다 했겠지만, 여하튼 천천히 들어온 탓인지 그다지 힘들어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거친 숨을 몰아쉬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정작 문제는 "그에게 가장 먼저 다가와 등을 두드려주고 악수를 건넨 이는 다름 아닌 챔피언 콜로냐였다"라고 한 부분이다. 이것은 명백히 사실이 아니다. 페루 선수에게 가장 먼저 다가가 포옹하며 등을 두드려 준 사람은 네팔 선수(등번호 91번)이다(아래 사진). 우승한 스위스 선수(35번)는 그 뒤 오른쪽에서 다가가서 페루 선수를 축하하는데, 서로 등을 두어 번 두드리는 정도다. 또 그가 악수를 나눈 사람은 페루 선수가 아니라 그를 맞이한 네팔 선수다. 네팔 선수는 스위스 선수와 악수를 나눈 뒤 다시 한번 꼴찌 페루 선수를 포옹하는데(뭔가 분위기가), 이 때 스위스 선수는 먼저 퇴장한다. (또다른 영상)




이것은 실수일 수도 있다. 페루 선수에게 맨 처음 다가가 환영한 사람이 아시아계라는 점에 주목했다면, 이런 실수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현장 선수들의 신원과 등번호는 이런 기사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실수라 하더라도 선의의 실수는 아니다.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사실을 그냥 의도적으로 써버린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실과 다른 내용이 강조되어 기사에 삽입된 것은, 독자에게 감동을 일으키려는 의도가 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에 인용한 <USA 투데이> 기사의 해당 부분은, 우승자인 스위스 선수가 기다려서 축하를 해 줬으니 올림픽 정신을 아는 사람은 (부상을 딛고 완주한) 페루 선수뿐만이 아니라는 부분이다. 초점이 스위스 선수에게 맞춰져 있는데, 한국 기사에서는 그 역시 올림픽 정신의 소지자라는 원 기사의 취지가 바뀌어 인용되었다. 하지만 이런 사소한 오류는 그 위의 명백한 잘못에 빛이 바래고 만다.

이런 내용을 찾아서 확인해 보는 데 20분 정도 걸렸다. 해당 경기는 2월14일(현지 시간)에 벌어졌으며, <USA 투데이> 기사는 한국 시간으로 14일 밤 11시30분쯤 게재되었고, 선수들의 등번호를 명시한 위 NBC 기사는 15일 새벽 2시쯤이다. 연합뉴스 기사가 송고된 시간은 15일 오후 3시쯤이다.


※ 이미지: Deadspin.com에 첨부된 동영상 한 장면(이 동영상은 해당 <USA 투데이> 기사에 링크되어 있다.)
 

덧글

  • 수시렁이 2014/02/23 11:21 # 답글

    기사의 잘못된 점을 지적해주는 deulpul 님 같은 분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 deulpul 2014/02/23 13:43 #

    이런 일은 몰라도 큰 상관이 없습니다만, 우리가 알게모르게 얼마나 많은 오보와 의도된 편견에 노출되며 세상을 보는 시각이 왜곡되고 있을까 하는 걱정은 늘 듭니다.
  • 스치는바람 2014/02/23 16:16 # 삭제 답글

    당사자인 기자는 소설 출판사의 편집부로 가는게 나을 것 같네요 :)
  • 아공 2014/02/24 02:36 # 삭제 답글

    불법 행위에 대해서 해당 회사에 벌금등으로 징벌하는 경우 효과가 낮았지만, 불법행위에 대해 해당 직원을 징계하거나 고발하는 경우 훨씬 효과가 좋았다고 합니다. 해당 조직이나 업계는 그게 불법이라 해도 해당 처벌보다 더 큰 이익을 준다면 다시 하는게 생리이기 때문이겠습니다.

    기사를 비판할 때에 우리는 항상 어느 신문의 기사, 혹은 신문사도 가리고, 신문의 기사라고 하는데, 이 기사를 비판 할 때에 기자의 이름을 거명하는게 좀 더 적절한 비판이고 (결국은 자기 이름이 걸려있는 기사이니까요.) 그리고 신문 기사의 질을 높이는 데에 훨씬 더 좋은 효과를 기대해 볼 수 있다고 봅니다.

    물론, 한국 문화에서 실명비판에 대한 문화적 거부감이 있지만, 1980년대부터 강준만 등이 누누히 주장한 것 처럼, 조직뒤에 자신의 얼굴을 감추고 조직의 논리에 따르게 우리를 허락한 것이 많은 모순을 낳지 않나 싶습니다. 기사 칭찬은 물론이고 기사 비판도 기자의 이름을 언급해야한다고 봅니다.
  • n 2014/02/24 05:25 # 삭제 답글

    기사에 블로그 같은 트랙백 기능이 없는게 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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