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핑턴포스트코리아> 닷새 중매媒 몸體 (Media)

<허핑턴포스트코리아>(HPK)가 등장하고 나서 벌어진 일들을 지켜보았다. 이 매체가 시작되었다는 것, 미국 창업자가 한국 찾아와서 행사를 가졌다는 것, 그리고 거기에 글 쓰기 시작했다고 알리는 이야기들 말고, 정작 그 매체에 실린 글이나 기사가 화제가 되는 것은 거의 못 봤다. 이것은 매우 시사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2012년에 <슬로우뉴스>가 처음 선보였을 때, 그런 매체가 생겼다는 사실보다는 초판에 올라온 글들이 개별적으로 회자되면서 매체가 알려졌다. <뉴스타파>도 해직 기자들이 만든다는 사실보다는 그렇게 생긴 방송이 어떤 보도들을 일구어 왔나에 의해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콘텐츠로 뒷받침되지 못하는 유명세는 곧 허명으로 끝나게 된다. 잔치가 아무리 크게 소문이 나도 먹을 게 없으면, 주린 배를 안고 돌아가는 손님들 입에서 좋은 소리 나올 수가 없다.

<허핑턴 포스트>는 미국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는 온라인 매체다. 그 포맷을 그대로 한국에 들여오면 한국에서도 성공할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틀을 이식하는 것만으로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오마이뉴스>는 직업적 기자가 아닌 일반인의 뉴스 생산 참여를 개척한 매체다. <오마이뉴스>는 이렇게 개발한 플랫폼을 외국에 수출하려는 시도도 했고, 때로 외국에서 비슷한 포맷이 자생적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이런 시도는 모두 실패했다. 한 곳에서 먹힌 것이 다른 곳에서도 그대로 먹힌다는 보장은 되지 않는다.

매체를 둘러싼 환경과 이용자의 이용 패턴은 나라마다 다르다. 한 곳에서 성공한 모델이라 하더라도 개개 사회의 특성을 충분히 고려한 로컬라이징 과정이 빠지면, 환경과 이용 패턴의 차이는 성패의 차이와 동의어가 된다. 그런 측면에서 몇 가지 점을 돌아보자.


1. 한국에는 <오마이뉴스>와 네이버가 있다.



HPK 창간 즈음에 나온 홍보물 중 하나다. 이런 개념은 미국에서는 새로울지 모르지만, 한국에서는 10년도 더 전에 <오마이뉴스>가 이미 제시한 것이다. 뉴스에 대한 한국인(특히 온라인 독자)의 생각은 아주 오래 전부터 크게 바뀌어 있거나, 아니면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누구나의 이야기가 뉴스'라고 광고하면서 필자는 자신들이 골라 초빙하는 모순은 그렇다치고, 한국은 이런 개념이 일찌감치 잘 (간혹 지나치게 잘) 실험되고 있는 나라다.

HPK를 기획한 사람들이 고민하며 뛰어넘어야 했을 가장 큰 산이 <오마이뉴스>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야 정상일 것이다. 경쟁 매체라서가 아니라, 허핑턴의 아이디어의 신선함이 상각되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그런 고민을 거쳤는데도 그 결과가 이런 카피라면 실망스럽지 않을 수 없다.

미국 뉴스 매체 환경과 다른 점이 또 하나 있다. 이상하게도 한국 온라인 독자들은 네이버, 다음과 같은 포털을 통해 뉴스를 보는 일에 익숙하다. 뉴스를 자잘자잘 모아서 보여주는 플랫폼이 이미 존재하며, 이에 종속된 독자의 뉴스 읽기 패턴은 아주 견고하다. 게다가 바로 옆에 온갖 유용하고도 재미나는 정보 조각들이 덤으로 잔뜩 포함되어 있다. 제목들은 얼마나 들여다보고 싶게 만드나.

포털의 위상이 약하고, 특히 뉴스 전달 채널로서 더욱 그런 미국 온라인 매체 상황에서 '하이브리드 매체' <허핑턴 포스트>의 역할은 독특한 점이 있었다. 한국은 비슷한 형태의 뉴스 소비가 포털을 통해 꾸준히 진행되어 왔다는 점에서 상당히 다르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2. 한국 명망가들은 글을 안 쓰거나 못 쓴다.

미국 <허핑턴 포스트>가 각계 명망가를 블로그 필자로 끌어와 지면에 등장시켰고, 이러한 전략이 주요 성공 요인으로 손꼽힌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것도 한국과 상황이 좀 다르다.

예전에 한 미국 잡지의 한국어판 웹사이트를 만들 때, 이 사이트에서 활동할 블로그 필자를 초빙하는 문제를 놓고 잠깐 논의한 적이 있었다. 물론 미국 사이트에서 그러한 명망가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고려한 일이었다. 결과적으로 안 됐다.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미국과는 달리 한국 명망가들은 1) 글을 잘 안 쓰거나 2) 글을 못 쓰거나 3) 글을 자주 쓰고 또 잘 쓰는 사람은 이미 어딘가에서 글을 쓰고 있다. (아울러 이들은 대개 매체에 속하여 블로그를 한다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데, 이것은 정치색이 뚜렷한 한국 매체의 특성 탓이 아닐까 싶었다.)

HPK가 유치한 블로그 필자 중 HPK에 단단히 둥지를 틀고 내용 있는 글을 일관되게 써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일찌감치 짐작할 수 있다. 그 사람이 과거에 해 왔던 글쓰기의 흔적을 보면 된다. 글 쓰는 사람 처지에서 보자면, 쓸 게 없거나 못 쓰는데 새 멍석을 깔아줬다고 갑자기 글을 잘, 자주 쓰게 되지는 않는다. 하던 지랄이 넘쳐서, 멍석을 펴 주면 제 세상을 만난 듯 펄펄 뛰어야 제대로 된다. (GR은 속담을 원용한 표현임.)

그렇게 보자면, 지금 늘어선 필자 중에 몇이나 그럴까는 이미 충분히 예상되고도 남을 것이다. 그걸 모르거나 외면하고 필자 이름을 깔아 놨다면 순진한 거고, 그걸 알면서도 그랬다면 명망가들의 유명세를 이용해서 새 매체를 띄우려는 생각이라는 오해를 피할 수 없다. 이것은 예컨대 매체 창간에 늘 따라붙는 유명인들의 공허한 창간 축사와 별로 다른 것도 없게 된다.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끝은 미약한 필자들의 존재는 HPK의 위상 자체를 흔들게 된다. 요한계시록만큼이나 생생하게 예견된 일이다.


3. 모호한 성격?

HPK에는 초빙 블로거들의 글과 뉴스가 함께 제시되어 있다. 뉴스 기사들은 다른 매체의 기사로 가는 링크를 단 것이 적지 않다. 다른 매체가 만든 기사를 자기네 콘텐츠로 활용한 것이다. 통신사 뉴스 같으면 계약을 맺고 전재를 하겠지만, 이건 전재도 아니다. 그냥 링크만 큼지막하게 만들어 달았다. 콘텐츠이면서 콘텐츠가 아니다. 따라서 저작권과 관련한 법망도 피했다. 이런 모습을 놓고 보면, 뉴스 포털이라고 할지언정 뉴스 매체라고 하기는 낯간지럽다. <한겨레>가 <한국일보>와 <동아일보> 기사를 활용하여 자기네 지면을 채운다면 어떻겠는가. 물론 이런 점은 <허핑턴 포스트> 원래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것이 혁신의 모습이고 '새로운 뉴스'의 모습이라면,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 포털들은 비슷한 방식을 통해 원 기사를 생산한 매체보다 훨씬 높은 수익을 올리고, 더 나아가 매체들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돈벌이의 측면에서만 보자면 매력적인 방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한국 매체 시장을 왜곡하고 오늘날의 추잡한 너절리즘을 초래한 주요 원인이 바로 이런 포털 방식 뉴스 소비라는 점을 떠올리면, 이런 시도는 특히 한국에서 매우 위험하고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라 할 수 있다.

링크로 콘텐츠를 (본의 아니게?) 제공하는 매체들도 그렇다. HPK와 이들 사이에 공식적인 협조 관계가 존재하는지, 있다면 어떤 내용인지 궁금하다. 만일 이들이 당장 챙길 수 있는 약간의 추가 유입 트래픽에 만족하며 용인한다면, 기껏 콘텐츠는 자기가 만들어 놓고도 도매상인 포털에 질질 끌려가는 꼴에서부터 아무 것도 배운 게 없음을 증명힌다고 할 수 있겠다.

HPK는 타 매체의 기사를 콘텐츠로 만들어 링크한 것도 모자라서, 개인 블로거가 쓴 글까지 따로 이미지를 만들어 붙이며 링크를 달기도 했다. 이런 방식으로 끌어와 콘텐츠로 삼은 것은 심하게 비도덕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오마이뉴스>도 똑같은 일을 한다. <오마이뉴스> 웹페이지에 '[블로그]'라는 단서를 달고 게시된 기사들이 그렇다. 그러나 <오마이뉴스>는 해당 블로거의 허락을 얻는 것은 물론이고, 글을 이용한 대가도 지불한다. HPK는 남의 글을 자기 사이트에 끌어와 쓰면서도 대가 지불은커녕 주인에게 알리지조차 않는다. 그냥 콘텐츠로 가져와 활용한다.

그렇다면 HPK는 메타블로그 성격의 사이트인가? 메타블로그들은 대부분 원글 필자인 블로거가 원해서 노출된다. 그럼 HPK는 흔한 큐레이션 사이트인가? 그렇다면 필자도 모르게 글을 링크함으로써 자신의 콘텐츠를 삼는 모습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 뉴스 매체 코스프레는 그만두어야 옳다. 독자가 오도되기 때문이다. 링크로 콘텐츠를 삼은 개인 블로그 글이 잘못된 내용을 담고 있을 때, HPK는 책임을 질 것인가? 당연히 아닐 것이다.

그래서 하이브리드라는 이름 아래 뉴스 포털을 지향하는 것이라면, 바람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한국에는 네이버가... (다시 반복)


4. 한국은 글장이에게 불리한 사회다.

HPK 출발 즈음에 논란이 되었던 원고료 미지불 정책에 대해서는 별로 말하고 싶지 않다. 다만 이 문제를 두 가지 점에서 조금 다른 시각으로 (비판적으로) 보려고 한다.

이 논란과 관련해 HPK나 이들의 정책을 이해하는 쪽은 아마 두 가지 정도의 대답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첫째, 너는 어쨌든 돈 안 받고 네 블로그 열심히 하고 있지 않느냐(아리아나 허핑턴의 말로 하자면 "요즘 돈 안 받고도 페이스북에 자기 얘기를 올리곤 하지 않나.") 둘째, 돈은 안 주더라도 우리가 실어주니 너도 유명해지고 좋잖냐.

첫째 주장에 대한 고찰은 쉽다. 자기 블로그나 페이스북에 글 쓰면서 그 대가로 자기가 자기에게 돈 지급하는 멍청이는 없다. 왜냐. 자기 블로그니까. 하지만 남의 마당에 글을 제공한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전자는 취미, 여흥, 오락이 될 수 있지만, 후자는 거래-제공의 형태가 되어 비지니스가 되고 즉시 교환가치가 발생한다. 이것은 자기가 먹을 빵을 만들어 먹을 때 스스로에게 빵값을 주고받는 사람은 없지만, 이 빵을 도매로 떼어가 다른 사람에게 팔고 수익을 남기려고 하는 중간상에게는 돈을 받고 파는 이치와 비슷하다. 너는 너 먹는 빵을 공짜로 만들고 있으니, 내가 가져가도 공짜여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그런데도 이런 교환가치는 무시하자고 한다. 왜냐. 너는 착하거나 바보라서 우리 집 간판만 보고 네 스스로 빵을 공짜로 줄 것이기 때문에. 아니면 필자에게는 원고료만큼 중요한, 혹은 원고료보다 더 큰 대가일 수도 있는 유명세를 얻을 수 있기에. 이게 두 번째 주장이(ㄴ 듯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런 거래 구조는 미국이라면 먹힐 여지가 좀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불가능하고, 그 결과 매체가 콘텐츠 생산자를 일방적으로 활용하는 결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왜 그런가.

미국은 문화 시장의 규모가 한국과는 비교도 안 되게 크다. 이것은 글 쓰는 사람이 자신의 노동과 그 결과인 글을 판매할 가능성의 측면에서 볼 때, 한국과 미국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말이다.

미국에서 발행되는 책은 한 해에 30만 권 수준으로, 4만 권 수준인 한국의 7.5배다(참고). 글장이들의 대표적인 노동 및 생업 공간이라 할 수 있는 잡지 시장도 마찬가지다. 북미에서 발행되는 잡지는 2만 종을 넘지만(정기 간행물로 따지면 7만5천 종 이상), 한국(hwp 파일)은 정기 간행물로 폭을 넓혀도 6천 종에 불과하다.

1년 동안 책을 한 권 이상만 읽으면 '책 읽는 사람'으로 간주하는 독서율 통계를 보면, 한국(67~71%)은 미국(68%)과 비슷한 수준이다. 그러나 이 사람들이 모두 한 권씩만 읽었다고 할 때 한국에서 팔린 책은 미국에서 팔린 책의 6분의 1에 그친다.

이런 것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글을 써서 먹고 살기가 한국은 미국보다 몇 배나 어렵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글로 유명해졌더라도 그 유명세의 환금성이 매우 저조하다는 것이다. 미국 필자와 한국 필자가 똑같은 의지와 실력과 생산성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그로부터 필자 개인이 수령할 수 있는 수익은 크게 다를 수밖에 없다. 결국 미국에서는 글로 유명해지고 먹고사는 일이 가능하더라도, 한국에서는 시장 규모의 차이 때문에 이런 일이 매우 어렵다. 이런 상황은 현실적으로 양국에 존재하는 프리랜서 기고가들의 규모나 위상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따라서 '글 기부를 통해 우리는 콘텐츠를, 너는 유명세를!' 같은 구도는 대체로 빛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고, 한 측이 당장 실익을 챙기는 데 비해, 다른 측은 기껏해야 "나 허포에 글 써" "그게 뭔데? 먹는 거야?" 같은 일이나 벌이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HPK의 개시와 더불어 '재능 기부' '재능 착취' 논란이 심각하게 벌어진 것은 이러한 한국적 사정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글장이들이 글값을 현찰로 챙기지 않기가 곤란한 사회인 것이다.

HPK에 글 열심히 써서 이름 좀 난 뒤, 방송에 나가 광대 노릇을 하며 인기를 얻는 인생을 꿈꾼다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이건 글만 써서 먹고 살려고 하는 것보다는 좀 더 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려면 본지, 즉 HPK가 잘 돼야 한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써도, 보는 사람이 없거나 좋은 말을 못 듣는 매체라면 소용없다. 내 인생이 남에게 달려 있다. 블로거들은 대체로 이런 구도를 싫어하는 사람들이다.

사실 이 논란은 HPK에 초빙된 블로그 필자 다수에게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닐 것이다. 글을 쓰지 않더라도 먹고사는 데 별 지장이 없어서, 더 유명해짐으로써 얻을 수익의 증가분 같은 것은 별로 기대하지 않을 사람들인 것 같기 때문이다.


5. 한국 미디어 환경에 대한 고민은?

한국 뉴스 매체의 문제는 이미 다 드러나 있다. 원인도 다 진단되어 있다. 알면서도 그저 살아남기 위해서 귀를 닫고 아사리판을 계속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 대한 반성에서 대안적 지향점들이 모색된다. 나는 그것을 저널리즘 정신의 회복, 독자의 신뢰 구축, 깊이 있는 안목과 독자적인 시각의 확보, 그리고 뉴스 콘텐츠에 대한 (독자의) 정당한 대가 지급으로 정리하고 싶다.

현재의 HPK 모습을 보면 이런 부분에 기여하는 바가 거의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깊이보다는 잡다한 아이템을 다 끌어들이는 잡화상을 택했고, 그 중에는 본문이 서너 줄에 불과한 아이템들도 있다. 이것은 '충격, 경악' 같은 말만 쓰지 않았을 뿐, 새로운 유형의 낚시라고 할 수도 있다.

한국 저널리즘의 위기 상황에서 새로운 뉴스 매체를 세상에 내놓으려면, 그 사령탑의 역할이 특히 중요하다는 것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다. 이것은 저널리즘의 실추된 신뢰를 회복할 만한 안목과 한국 미디어 시장의 판도에 대한 이해, 기성 매체의 틀에 얽매이지 않은 창의적인 사고 등을 동시에 가져야만 풀어나갈 수 있는 힘든 과제다. 그저 아름답고 아기자기한 꿈만으로 매체가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HPK의 편집장편집인으로 지명된 이를 보는 순간, 나는 이 매체에 대한 큰 기대를 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뉴스위크>의 티나 브라운 생각도 났다. (나는 HPK가 개봉되던 즈음에 두 번 깬 적이 있었는데, 하나는 이 부분이고 다른 하나는 '내뱉은'이라는 말을 사용한 카피를 봤을 때였다.)

<허핑턴 포스트>의 CEO인 지미 메이먼은 "한 조사를 봤더니 (한국인은) 한 주 14시간을 온라인에서 지낸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하루 40분은 온라인에서 뉴스를 소비한다고 볼 수 있다"라고 했다고 한다. 이건 HPK에 우호적인 조건인 것만은 아니다. 한국 온라인 독자들은 만만하지 않다. 흥미만 자극하는 단신들, 눈길(만)을 끄는 사진들,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제목들, 정파적 입장이 물씬물씬 들어간 당파지 같은 기사들에 신물 날 정도로 단련된 사람들이다.

이런 요소들은 한국 매체의 고질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이러한 문제에 대처하거나 각을 달리 하려는 진정한 노력이 있어야 한국 독자에게 어필할 수 있고, 매체 시장에서도 의미 있는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이미 그런 노력이 도처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런 움직임과는 달리, 이슈를 보는 깊은 안목도 새로운 시각도 찾을 수 없다면, 비슷한 기사를 다시 읽고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 '새로운 뉴스', '제3의 잣대'라는 근사한 말만 하지 말고, 그게 무엇인지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하지 않는가. 제호는 맨 위 한 줄로 끝난다. 제호가 그 아래 콘텐츠를 모두 커버해 줄 수 없다.

아, 개인의 일상에서 뉴스를 찾을 수 있지 않냐고? <오마이뉴스>의 '시민 기자' 7만 명을 당할 수 있다면 그것도 의미가 있긴 할 것이다.


6. 굿 럭!

나는 <허핑턴 포스트>의 한국판이 나온다는 결정이 내려졌을 때 큰 기대를 했다. 누가 봐도 심각한 문제가 있는 한국 미디어판에서 신선한 '충격'과 '경악'을 줄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막이 열린 모습을 보니, 기대가 과했던 것 같다.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스스로도 정확히 포지셔닝을 하지 못한 것 같고, 지금의 매체 환경을 읽는 일이나, 무엇보다 중요하게 고려했어야 할 로컬라이징에 대한 고려도 충분했는지 의구심이 든다. 물론 이것은 HPK의 큰 방향을 정하는 실질적 주체가 <허핑턴 포스트>이고, 이 회사가 미국 사이트의 기본 틀을 유지하고 싶어한다는 점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초기 며칠의 모습을 보고 평가를 한다는 것은 성급한 일일지도 모른다. 앞으로 조금씩 더 나아지는 모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런 것은 오탈자같이 시간이 지나면서 고쳐질 사항들이 아닌 구조적인 문제라서, 낙관하기가 쉽지 않다. 어쨌든 위에 쓴 비판과 걱정들이 모두 기우가 되기를 바란다.

 

덧글

  • 민노씨 2014/03/04 08:43 # 삭제 답글

    역시, 들풀 님!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을 대신 다 해주셨네요. : )
    정확히 말하면, 제가 막연하게 정리하지 못했던 부분까지 정확히 짚어 상세히 풀어주셔서 머리가 아주 상쾌해졌습니다.
  • deulpul 2014/03/05 10:44 #

    이런 글은 써놓고도 마음이 편하지 않은데, 어쨌든 보실 만하다니 다행입니다.
  • 요니 2014/03/04 09:40 # 삭제 답글

    들풀님 글 몇년째 잘 읽고 있습니다. 그런데 볍신 이라는 단어는 좀 그렇네요
  • deulpul 2014/03/04 11:17 #

    밑에 바보 나와서, 바보보다 더한 걸 찾다보니 그쪽 계열밖에 없지 않나 싶었습니다만, 일리 있는 지적이라 순화하였습니다. 다른 분들 답글은 생각을 좀 한 뒤에요!
  • 김주완 2014/03/04 11:29 # 삭제 답글

    잘 읽었습니다. 공감합니다.
  • deulpul 2014/03/05 10:47 #

    아, 누추한 곳을 찾아 주셔서 영광입니다. 고맙습니다.
  • self_fish 2014/03/04 12:13 # 답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 deulpul 2014/03/05 10:47 #

    고맙습니다.
  • 지나가다 2014/03/04 12:33 # 삭제 답글

    <오마이뉴스>는 직업적 기자가 아닌 일반인의 뉴스 생산 참여를 개척한 매체다. <오마이뉴스>는 이렇게 개발한 플랫폼을 외국에 수출하려는 시도도 했고, 때로 외국에서 비슷한 포맷이 자생적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이런 시도는 모두 실패했다.

    프랑스의 메디아파르트는 예외 아닌지요?

    http://slownews.kr/9973
  • deulpul 2014/03/05 11:11 #

    <메디아파르트>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말씀드린 것은 '직업적 기자가 아닌 일반인의 뉴스 생산 참여' 형식이고, <메디아파르트>는 직업적 기자가 주축이 되고 시민들이 포럼의 형태로 참여할 수 있는 형식이죠. 이 점은 인용하신 글에서,

    >> 이 사이트는 참여저널리즘의 세계적인 상징이 된 오마이뉴스 모델을 빌어오고자 했으나 오마이뉴스는 민주주의의 전환기라는 한국의 독특한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있어 프랑스에는 적용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참여’와 ‘공동체’라는 이 두 가지 속성은 오마이뉴스 모델에서 빌려왔음을 밝히고 있다.<<

    라고 한 부분을 참고할 수 있겠습니다. 요컨대 (초기) <오마이뉴스> 모델이 매력적이었으나 한국과 프랑스의 상황이 다르므로 시민 참여라는 '속성'은 취하되 방식은 직업 저널리스트들의 탐사 보도를 주축으로 했다는 것이죠. <오마이뉴스> 플랫폼을 그대로 적용한 것이 아니고요... 어떤 매체 포맷의 성패 여부는 각국의 독특한 상황과 관련되기 때문에 모델 그대로 이식하기 어렵다는 점이 바로 제가 드리는 말씀입니다.
  • 올~ 2014/03/04 12:54 # 삭제 답글

    공감하고 감니다
  • deulpul 2014/03/05 11:12 #

    고맙습니다.
  • jerome 2014/03/04 16:49 # 삭제 답글

    글 중에 '편집인' 에 대한 실망을 언급해 주신 부분이 굉장히 적절했다고 생각합니다.
    한겨레는 계속 이너서클 안에서 '오프라인' 기반의 편집인을 선정한 것은 정말 아쉬운 대목이 아닐까 싶습니다.
    온라인 편집인을 오프라인 기자로? 온라인이 만만해 보이는걸까요?
    아니면 '인력'을 늘 그 바닥에서만 찾으려는 진보언론의 속성 때문일까요?
    정 사람이 없다고 하더라도
    일간워스트 개발자님이나 딴지일보 기자분을 찾으셨으면 그나마 나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deulpul 2014/03/05 11:44 #

    '편집장'을 말씀하시는 것이죠? 회사가 직원을 이리저리 이동 발령하는 것이야 자신들 마음이겠지만, 무슨 말씀 하시는 것인지는 이해합니다. <한겨레>의 문제 의식의 깊이를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겠고요, 그보다 제 관심은 회사의 방향과 관련한 정책적 결정을 담당하는 편집인이었습니다.
  • hi 2014/03/04 17:49 # 삭제 답글

    매체의 수익이나 도덕성을 차치하고서라도 사람들이 HPK를 볼 동인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인 것 같아요. 신선함에 대한 기대는 일주일 정도면 사그라들듯.
  • deulpul 2014/03/05 11:49 #

    매체 입장에서 당장 큰 문제는 그것일 수밖에요.
  • 루시앨 2014/03/05 08:00 # 답글

    평소 들풀님 글은 잘 보고 있지만, 이번 글은 조금 동의하기 어려운것 같습니다. 언론사도 기본적으로 회사일 뿐이고, 시장 안의 존재이며, 글의 가치가 싸졌다는 것을, 정확히는 글이 더이상 사적 재화가 아니라 공공재라는 것을 받아들이는게 시작점인것 같습니다.

    인터넷 이전에는 글은 분명 비경합성은 없어도 배제성이 있었죠. 어쨌든 인쇄 매체라는 Tangible한 매체를 통해야 하는 만큼, 그에 따른 돈을 받을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1. 인터넷으로 인해 더이상 비경합성과 비배제성이 유지 되지 않으며, 2. 이미 수익성 높은 독자는 컨설팅 회사 혹은 각 분석기관의 독자가 되어버린 상황입니다. 결국 언론사에 남은 시장은 수익성 없는 독자에 초과공급이 일상인 시장, 게다가 인터넷을 통해 비경합성과 비배제성을 띤 글 뿐 입니다.

    이 경우 언론이 취해야 할 태도는 1. 컨설팅 회사가 되던가 2. NYT같은 신뢰에 기반한 구독료 모델을 가지는 것 뿐입니다. 그런데 사실 NYT가 취하는 태도는 어쩌면 개별 언론사보다는 개별 글쓴이에게 더 어울리는 모델이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전 한국 언론과 관련해 알아볼때는 먼저 들풀님의 블로그부터 검색하곤 합니다. 외교와 관련된 상황은 Sonnet님의 블로그를, 전사과 관련되선 길잃은 어린양님의 블로그를 찾는 식으로 말이죠. 이렇게 이미 신뢰가 있는 사람들이 만약 앞으로 구독에 있어 돈을 받겠다면, 저는 기꺼이 그럴 용의가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건당 10달러 이상을 지불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말이죠.

    사실 그런 의미에서 허핑턴 포스트를 공격하는건 사실 이해가 되지 않는데, 1. 허핑턴 포스트 역시 사기업이고 사람들에게 돈을 준다고 속이는 것도 아닌데 굳이 그들의 무원고 모델이 공격받아야 하는지 모르겠고, (만약 쓰신대로 명성이 제대로 오르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글을 안쓸것입니다.) 2. 언론사가 아니면 큐레이션에 있어 허락을 받지 않아도 되고, 언론사면 큐레이션에 있어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것도 역시 왜 그래야 하는지 잘 납득이 안갑니다. WWW에서 하이퍼링크는 당연한 문화 아닌가요. 구글이 서치를 통해 수익을 낸다고 해서 구글에게 서치에 대한 대가를 내놓으라 하진 않지 않습니까. 게다가 학계에서도 인용을 허락맡고 하는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 식의 플랫폼에 잘못을 돌리신다면 사실상 월드와이드웹 구조 자체를 문제삼게 되는것 같은데, 이는 너무 나간 비판이 되는거 같습니다.
  • deulpul 2014/03/05 14:24 #

    우선 공격이라고 쓰신 것이 불쾌합니다. 이 글은 제가 뭘 공격하려고 쓴 게 아니라, 새 매체가 등장하여 보인 모습에서 제가 어떤 점을 아쉽게 느꼈는가를 쓴 것일 뿐입니다. 공격이라면 저렇게 쓰고 있지 않습니다.

    둘째 단락에서 쓰신 말씀은 무슨 말인지 짐작하기가 어려운데, 제 나름대로 유추를 하여 보면, 글이 인쇄 매체에 찍혀 나올 때는 널리 퍼지는 데 한계가 있으니까 정보로서의 가치가 있어서 돈을 받을 수 있었으나, 인터넷 시대에는 글이 쉽게 퍼질 수 있으므로, 돈 낼 만한 독자는 그런 글이 실리는 언론이 아니라 자신의 돈벌이나 재산 관리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주는 데에만 돈을 낸다. 이런 말씀인가요? 따라서 언론이 돈을 벌려면 배타적인 정보를 소수의 구독자에게만 주는 형식이 되든지, 아니면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하여 구독료를 받든지?

    저는 개인이 작성한 글이 공공재가 되었다(제가 드린 말씀으로 하자면 교환가치가 없어졌다)는 점에 전혀 동의하지 않습니다. 쉽게 공유가 가능한 미디어의 상황 때문에 어떤 창작물이 공공재가 되기로 한다면, 글뿐 아니라 책, 음악, 영화 같은 것도 모두 공공재라고 우길 수 있을 겁니다. 제가 보기에 루시앨님은 이렇게 전제를 두시고 있는 데서 저와는 다른 결론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글이 더이상 사적 재화가 아니라 공공재라는 것을 받아들이는게 시작점"이라고 하셨는데, "무엇의" 시작점인가요? 제가 괄호 안에 넣어 채울 수 있는 것은 "온갖 파행과 불합리" 정도입니다.

    지금의 왜소하고 파행적인 언론 상황을 현실로 놓고 그 인식 위에서 그런 말씀을 하신 것으로 이해합니다만, 언론 안에 있는 사람이나 밖에 있는 사람이나 누구도 이런 상황을 정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개인 블로그가 아무리 뛰어나다 하더라도 커버하고 전달하는 정보의 양 측면에서 허술한 언론 하나를 당할 수 없으며, 개인 블로그가 돈을 버는 것보다 언론이 돈을 잘 버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고 사회에도 도움이 됩니다.

    HPK와 관련하여 말씀하신 부분에서, 저는 원고료를 주지 않는 HPK의 정책이 잘못되었다기보다 그런 정책의 근거가 큰 의미가 없음을 말씀드렸습니다. 의미가 있든없든, 그런 정책 하고 싶은 매체는 하고, 그런 조건으로 글 쓰고 싶은 사람은 쓰면 되는 것이죠. 말씀대로, 또 제가 본문에 쓴 대로 시간을 두고 보면 알 수 있는 일이겠고요.

    링크 뉴스 문제를 지적하신 것은 대체 어디부터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언론사가 제시한 정보를 볼 때, 독자는 그 정보에 언론에 요구되는 여러 사항이 충족되어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래서 언론사를 운영하고 기사를 쓰고 영상을 찍어 내보내는 데에는 여러 가지 규제와 강령들이 부과됩니다. 정상적인 언론들은 이러한 규제와 직업적 강령들을 모두 당연한 것으로 수용하고 그에 맞게 활동(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많은 정보를 싣더라도 언론에 부과되는 규정으로부터 자유로운 찌라시들을 언론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거꾸로, 눈길 잡아끄는 정보만 실을 뿐 이런 매체 윤리를 도외시하는 언론을 찌라시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언론에 부과되는 사항들이 단순한 큐레이션 서비스 회사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다른 콘텐츠를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니까요. 포털이 미디어인가는 논란이 있는 문제지만, 저는 언론사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고 주장합니다. 콘텐츠 생산을 하지 않고 전달만을 하기 때문이죠. 네이버 직원들이 기자 윤리 강령의 적용을 받지는 않습니다. 물론 스스로를 언론사나 뉴스 매체라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뉴스 매체라고 하면 자신이 전달하는 정보에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매체나 개인 블로그를 끌어와서 콘텐츠를 삼는다는 것은 이러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롭게 됨을 의미합니다. 본문에도 썼지만, 내용이 잘못되거나 예컨대 명예훼손이 되어도 자기들이 만든 콘텐츠가 아니니까 책임이 없죠. 하지만 독자들한테는 뉴스 매체라고 하니까, 독자는 일정한 신뢰를 갖고 보게 되고, 그러한 정보의 가치로부터 나오는 이익은 챙기게 됩니다. 이건 언론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명색 스스로 뉴스 매체라고 내세우면서 다른 언론사가 생산한 콘텐츠를 이용해 자기 지면을 채우는 것은 법 이전에 상도덕의 문제이고, 무엇보다 쪽팔리는 일이지요. 법의 부분은 논쟁의 여지가 있고요. 수익을 올리기 위해, 다른 매체가 쓴 것을 대충 링크 달아서 자기 콘텐츠로 올리는 매체가 있더라도 '글이 공공재가 되었기 때문에' 상관없다면, 힘들고 어렵게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많은 언론과 언론인과 문화 종사자를 모욕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어떤 매체가 기사를 쓸 때, 다른 매체에 나온 기사를 참고하였다면 이를 링크로 표시해야 옳으며 그런데도 그런 일을 하지 않는 한국 언론을 자주 비판해 왔습니다. 이것은 정보의 출처를 밝혀주고 다른 매체가 만든 성과를 존중한다는 의미에서입니다. 닥치고 링크만 달아 자기 지면을 채우는 것은 그런 의미가 아니며, 다른 매체가 만든 콘텐츠로 돈벌이를 하자는 의도 말고는 아무런 건설적 함의가 없습니다. 웹 플랫폼의 하이퍼링크 특성을 들어 이런 행태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지경까지 왔다는 데 놀라움을 금치 못하겠네요.

    논문에서 인용을 하는 것은 수익을 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확한 출처를 밝혀 내용의 신뢰를 담보하기 위한 것이고요. 참고로, 논문에서도 인용의 양상이 어떤가(예를 들면 분량은 어떤가, 논의를 발전시키는 방식으로의 인용인가, 인용과 자신의 글의 주종관계가 어떻게 되나) 하는 점이 모두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어쨌든 모두에 말씀드린 것처럼 '이제 글은 공공재다'라는 전제를 가지셨기 때문에 이런 생각들을 하시는 것으로 짐작합니다. 저는 그에 동의하지 않으며, 그런 '비정상의 정상화'가 하루빨리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며, 그런 비정상을 부채질하는 정책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노동력과 노동 시간이 투입된 재화와 서비스가 거래되고 소비될 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여야 할 이유는 아주 간명합니다. 대가가 없으면 노동 재생산이 이루어지지 않아 그러한 재화와 용역의 생산이 중단되기 때문입니다. 그게 바로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모습이고요. 취미와 여흥으로 생산할 수 있는 사람은 생산하면 됩니다 다만, 취미와 여흥으로 생산된 재화와 용역만으로는 이 세상이 제대로 굴러가지 않습니다.

    (답글 올린 뒤 오탈자를 수정하였으므로 게시 시간이 실제와 일치하지 않습니다.)
  • 루시앨 2014/03/05 17:36 #

    먼저 공격이라는 말을 쓴 것에 사죄드립니다. 제가 글을 제대로 읽지 못한 탓입니다. 제가 드리고 싶었던 말은 당위적 측면에서가 아니라 먼저 현실적 측면에서 상황을 인식하고 그 해결책을 찾아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공공재라는 말에 감정을 가라앉히고 보시면 현재 상황의 원인을 해결할만한 측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아시겠지만, 저는 언론에 대해서는 들풀님 및 민노씨님의 지식에 턱없이 부족한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들풀님 및 민노씨님께서 말씀하시는 "언론의 정상화”가 언론이 가야할 길임에 대해서 전혀 부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경제학 및 경영에는 약간의 지식이 있고, 그 부분에 대한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댓글을 쓰게 되었죠. 자세하지 못한데에 사과드리며, 부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말씀하신것처럼 책, 음악, 영화, 이런것들도 저작권법이 없다면 충분히 비배제성과 비경합성을 가지기에, 경제학적으로 우리는 그것을 공공재라 부를 수 있습니다. 다만 공공재는 언제나 사회적으로 최적인 만큼 공급되지 않기에, 저작권법을 두고 이에 대해 경합성과 배제성을 강제로 부과하는 것일 뿐입니다. 기사역시 저작권법의 대상이긴 하지만, 한가지 특수한 측면이 있습니다. 기사는 시의성을 기반으로 하기에, 자연스럽게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단순히 저작권법 만으로 기사의 가치를 보장하기는 어렵다는데에 동의하실 겁니다.

    이 상황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건 당연히 “기사”를 어떻게 사적 재화로 만들 것인가? 라는 측면입니다. 거기에 들풀님께서 저보다 훨씬 잘 아실 언론이라면 마땅히 가져야 할 윤리 혹은 강령을 “강제하면서” 어떻게 기사를 사적 재화로 만들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저는 우리가 현실을 인정하고 이 상황에서 새로운 메커니즘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을 뿐입니다.

    현재 상황이 비정상이라고 생각하신다면, 답은 하나 뿐입니다; 정상이던 상태의 기술 수준으로 돌아가는 것 뿐입니다. 왜냐하면 정상이라고 생각하신 과거의 언론 시장은 사실 특수한 기술 수준 하에서만 성립될 수 있었던 시장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간단하게, 법으로 모든 뉴스 전달을 종이 매체로 강제하고 인터넷을 통한 뉴스의 전달을 금지하고 강하게 강제한다면, 아마 과거의 정상이었던 상태에 상응하는 언론을 가지게 될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렇게 한다는게 사실 불가능하다는 것은 굳이 말씀드리지 않아도 아시지 않습니까?

    이 상황에서 볼때 컨설팅 회사와 NYT는 현명한 선택을 했습니다. 컨설팅 회사는 애초에 시의성과 높은 분석력을 가지고, 특수한 독자(기업)에게 접근합니다. (일반 보고서 판매를 합하면 사실상 언론이라 볼 수 있죠.) NYT의 경우, NYT가 파는건 기사가 아니라 브랜드와 신뢰입니다. NYT를 구독한다는 것이 나타내는 사회적 정체성과, 동시에 이제까지 NYT가 쌓아왔던 기사의 분석력 및 진실성에 대한 신뢰도가 NYT를 구독하게 만드는 겁니다. (저는 푸틴이 NYT를 자신의 사설을 낼 곳으로 선정한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새로운 경쟁자로서 일반 블로거들이 나타났습니다. 사실 시의성있는 정보는 트위터에서도 충분히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잘 공급되지 않는 것은 분석력을 갖춘 기사이죠. 트래픽 낚시글이 아니라, 어떤 사건이 가지는 각 측면을 잘 분석해주는 글은 생각보다 많이 공급되지 않습니다. 이 부분을 채워 주었던 것은 바로 블로그들입니다. 들풀님 블로그를 언급드린건 그 한 예이구요.

    이상과 같은 상황에서 보았을때, “언론이 가지는 규제와 직업적 강령”을 유지하면서 “수익성”을 내기 위해서는 한가지 방법밖에 없다고 보여집니다. 시의성과 분석력의 분리입니다. 시의성은 이미 트래픽 낚시가 효과적인 보상을 해주고 있고, 우리는 그 현상을 이미 포털에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분석력을 갖춘 기사는 시의성을 갖춘 기사와 같이 취급되어서 (소비자 입장에서 제목만 보고 이 글이 충분히 좋은 기사인지 낚시인지 가려낼 방법이 없습니다.) 덩달아 가격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경제학에서 일반적으로 시장을 분리하면 좀더 효율적이 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냥 두면 레몬마켓으로 멀쩡한 중고차도 잘 거래 안될 것을 방지하기 위해 연식과 정비 정보, 주행 거리등을 명시하게 하는게 한 예입니다. 그와 같이 언론사들 역시 시그널링을 통해서 분석력 및 언론 강령을 지키는 기사라는 것을 소비자들에게 알릴 수 있다면, 돈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디지털 시대에는 어떤 것이 시그널링이 될까요? 바로 경험밖에 없죠. 결국 기사는 사람에게서 나오니까, 그 사람이 쓴 글을 몇번 읽어봤더니 괜찮다면, 우린 다음번 글도 괜찮을거라 기대할 수 있을겁니다. (결국 NYT가 신뢰를 얻음으로서 구독료로 연명하게 된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결국 시장을 분리해서 특정한 사람 혹은 집단의 이름으로 시그널링을 해야, 우선 다른 공공재적 성격을 지닌 기사들과 차별화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으로 끝은 아닙니다. ㅍㅍㅅㅅ나 슬로우뉴스 등은 이런 신뢰를 얻고 있지만 여전히 돈을 벌고 있지 못합니다. 이는 여전히 경합성과 배제성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둘을 획득할 수 있을까요? 한가지 방법은 “더 많은 신뢰”입니다. 이미 NYT가 보여주었듯, 신뢰가 크고 기대가 크다면 사람들은 지불합니다. 하지만 그 NYT조차도 사실 수익이 그리 많이 나는건 아니죠.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이미 우리는 기술로 인한 시장 파괴를 되돌린 좋은 선례 하나를 알고 있습니다. 바로 음반 시장입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소리바다니 하는 공유로 인해 시끄러웠던 음반 시장은, 아이튠즈와 그 비슷한 플랫폼의 등장으로 어느정도 논란이 마무리 되는 모양새입니다. 비욘세 같은 가수들은 이미 아이튠즈로만 판매를 먼저 시작하기도 했구요. 이와 동일한 일 혹은 더 창의적인 시장(플랫폼)을 만들 수는 없을까요?

    이상이 제가 생각하는 언론 “시장”의 회복 방법입니다. 물론 구체적 사안들이 전부 맞다고 하진 않지만, 최소한 언론의 정상화를 위해서 필요조건은 “기사”가 사적 재화가 되어야 한다는 것, 즉 경합성과 배제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한 논의 없이는 어떤 종류의 시도도 정상화를 할 수 없지 않나 싶습니다. 어쨌든 시장에서 최적 공급이 되기위한 조건은 보편적이니까요.

    ———————

    링크 뉴스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서, 이에 대해서 하이퍼텍스트를 말씀 드린건, 애초에 인터넷이라는 매체 자체의 속성이 링크와 전재가 굉장히 쉽게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기술적으로 이를 완전히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습니다. 창과 방패의 대결처럼 전재와 전재를 막는 기술이 서로 공진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위에서 논의한 비경합성이 있는 기사를 경합성이 있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라도, 초반에는 오히려 전재되거나 공짜로 퍼지는게 이익입니다. 신뢰를 다수에게 쌓으려면 다수에게 노출되어야 하니까요. 허핑턴 포스트 사장의 말은 그래서, 물론 다른 분들의 화를 돋군건 이해가 갑니다만, 오히려 가장 현실적인 말로 들렸습니다.

    물론 말씀하신 것처럼 언론이 다른 언론사가 생산한 컨텐츠로 자기 지면을 채우는 것은 “쪽팔리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정말 그것이 독자들에게 “언론사”에 대한 신뢰 문제, 즉 내용이 잘못되거나 명예훼손이 되어서 문제가 되는 거라면, 그저 우리는 그 책임성을 전재한 사람에게도 똑같이 돌리면 해결 될 문제인것 같습니다.

    즉 책임성과 신뢰에 대한 문제는 누군가의 권위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과거와의 연속성에 의해서만 보장될 수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은겁니다. 물론 정부, 혹은 법, 혹은 규제가 그런 신뢰를 부과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고 이미) 한국 언론의 경우를 볼 수 있듯 그런 윤리는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수익 배분에 있어 문제가 된다면, 말씀하신것처럼 동의하지도 않은 글을 끌어와서 보여줌으로 인해 회사의 트래픽을 일정부분 올리고 있다면, 역시 각 페이지별 카운터를 통해서 그 기사의 존재로 인한 광고의 효과를 측정하게 하고 측정량이 없을시 일정한 양을 보상하게 할 수도 있겠죠. (사실 이는 레식이 “Free Culture”에서 음반 시장을 대상으로 제안한 방법입니다.)

    요는, 무조건 전재를 막는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겁니다. 애초의 매체의 특성이 전재가 지나치게 자유로운만큼, 우리가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건 이 특성을 인정하고, 이 안에서 “정당한 보상”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드리고 싶었던 겁니다. 결국 현재의 형태는 기사 시장이 음반시장과 달리 아직 시장으로 완성되지 못해서 나타난 것인 만큼, 어서 새롭게 시장을 구축하는게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노력은 당연히 언론사에서도, 또 소비자 입장에서도, 또 국회에서도 논의가 이루어져야 하겠죠.)

    더불어서, 사적 재화의 형태에도 여러가지가 있는데, 기존 사적재화를 성립시켰던 요인에 의거해서 성립된 현재의 언론 시장 구조가 현재의 기술 하에서 좋은 메커니즘일 가능성은 적습니다. (그리고 이미 보고 있죠.) 제가 말씀 드리는 “기사는 공공재”이다는, 이를 역전하기 위한 여러 새로운 방안들을 고민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기존 언론사 형식을 통한 언론의 정상화는 달성이 불가능하고, 다만 언론 정상화가 목표로 하는 그 “언론사라면 마땅히 지켜야만 하는 당위”를 지키게 하는 메커니즘을 고안해야 한다는 것이죠.
  • deulpul 2014/03/05 16:46 #

    하나하나 따져 말씀을 드리다가, 시시콜콜한 부분보다 큰 줄거리가 중요하겠다 싶어서 그만두었습니다. 현실을 인정한 상태에서 방법을 찾자는 말씀은 옳으나, 그것이 기술의 변화 상황뿐 아니라 그런 상황을 사는 인간의 행태에서 함께 찾아져야 하고 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며, 시의성과 분석력의 분리라고 하신 것과 맥이 닿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언론의 주요한 초점이 속보보다 깊이 있는 보도로 이동하여야 한다는 생각은 늘 갖고 있으며, 그렇더라도 속보를 담당하는 신뢰할 만한 언론의 기능도 여전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음반 시장이나 음악의 유통 형태는 저한테도 중요한 사례입니다. 돈을 치르고 구매하기 쉽게 유통 인프라가 발달함과 더불어, 음악은 당연히 다운받는다는 '비정상적인' 아이디어에서 돈을 주고 사는 것이 옳다는 인식으로의 전환이 함께 작용한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링크와 HPK의 부분은, 앞으로 이루어져야 하거나 보완되어야 하거나 달성되어야 하거나 고민해야 할 많은 방안으로 현재의 행태를 합리화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많은 방안들이 구현되고 보완되면 물론 얼마든지 자유롭고 떳떳하게 비슷한 행동을 취할 수 있겠습니다만, 말씀하셨듯이 이것은 앞으로 진행되어야 할 과제이고 지금은 그러한 장치들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입니다. 다양한 방향에서 고민해야 한다는 점에는 두말 않고 동의합니다. 여담이지만 비배제성과 비경합성을 옳게 사용하고 계시는지 한번 더 검토하여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루시앨 2014/03/05 17:41 #

    네. 첫 문단에 대부분 동의합니다. 인간의 행태와 더불어 찾아야 한다는 점 매우 동의합니다. (사실 그 점때문에 이 댓글을 쓰게 된 것도 있습니다. 이 기술에 대한 인간의 행태로 인해 기존 언론사 시장에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해서요.) 다만 시의성은 이미 트래픽을 통한 광고가 잘 보상해주고 있기에 딱히 새로운 모델이 필요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곧 형용사의 과다남용으로 인한 수익체감이 나타날것이라 생각되구요.

    두번째 문단 역시 과도기라는 데에 동의합니다. 다만 과도기에 각 플레이어에게 윤리성을 요구하느냐, 아니면 영악함을 요구하느냐는 결국 정치적 견해 및 관점의 차이라는 말로 나타낼 수 있을것 같네요. 여전히 시장을 신뢰하는 저로서는, 단기에서 문제가 일어난다 쳐도, 장기적 관점에서는 결국 약삭빠름과 영악함이 좋은 메커니즘은 잘 정착시키고, 나쁜 메커니즘은 반대로 빠르게 붕괴시키는 (빠르게 비효율성을 누적시키는) 효과를 낳는다고 봅니다. 물론 이 부분이 들풀님이 말씀하시는 언론의 윤리에 반한다는 점에 분명히 동의합니다. 단어 사용 지적 감사합니다. 좋은 글 써주시고 코멘트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 deulpul 2014/03/05 18:58 #

    넵, 저도 많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의 짧은 소견으로는 생각치 못한 많은 방안이 가능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의견을 정성껏 펼쳐 보여주셔서 고맙습니다. 어투가 불친절한 부분이 있었다면 이해 바랍니다.
  • 민노씨 2014/03/05 13:51 # 삭제 답글

    제가 제 개인 페북에서 위 (아마도 위에 댓글을 주신) 루시앨 님께서 유사한 질문을 주시길래 들풀 님의 글을 소개했는데요. (댓글 내용을 미뤄보건데)

    특히, 언론회사로서의 책임과 관련해 자사의 정체성을 담은 컨텐츠인'양'(가장해서) 타사의 컨텐츠를 옮겨 놓고, 거기에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를 들풀 님께서 예시하셨는데, 아주 적절한 예시라고 생각하며, 정체성의 확인/구별이라는 언론의 근간에 있어서는 아주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루시앨 님께서는 이 문제를 판단함에 있어 하이퍼텍스트링크나 저작권을 염두에 두고 계신 듯 한데요. 하이퍼텍스트링크의 취지, 혹은 저작권법상 저작재산권의 제한 규정(미국의 공정이용 조항이나 우리나라에서 그런 성격이 강한 저작권법 28조)의 취지를 혼동하고 계신 듯 합니다.

    하이퍼링크든 저작권의 공정이용이든 '출처', 즉 저작자의 정체성(저작인격권적 요소로서)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가령 최근의 실제 사례를 들면, 블로터 최호섭 기자가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 기고할 의지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허핑턴코리아가 마치 최 기자의 사용허락을 받은 양 자신의 프레임(틀, 정체성)에 최 기자의 기자를 가둬버리면 위 하이퍼텍스트 혹은 공정이용의 가장 기본이 되는 취지(그 정신)을 짓밟은 것이 됩니다. 그러니 형식론으로 이 문제를 파악해선 안 된다 봅니다.

    다른 논의들은 철학과 정책의 차이에서 비롯한 '이견'(토론)의 영역에 속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만, '하이퍼텍스트'를 언급하신 부분은, 저로선 도무지 "납득이 안 되어" 부족한 생각이나마 한 마디 거듭니다.
  • 루시앨 2014/03/05 15:15 #

    최호섭 기자님의 사례와 관련해서, 먼저 민노씨님의 말에 동의함을 알립니다. 저작인격권상 불법이라는 것에 말이죠. 다만 제 논점은 "언론사와 비언론사가 왜 큐레이션 여부에 있어서 다른 기준을 적용받아야 하는가?" 였지, 큐레이션 자체의 불법성에 대해서 논하려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하이퍼텍스트의 취지(그 정신)에 반한다고 보지 않습니다. 이는 마누엘 카스텔스의 인터넷 갤럭시나, 혹은 간단하게 comp.으로 시작되는 많은 usenet들, 혹은 에릭 레이몬드의 성당과 시장등에 잘 나와있다고 보여집니다.)

    하지만 이러한 침해 자체는 위 댓글에서 밝혔듯 기술의 일반 속성이라 비일비재하게 일어날 수 있을겁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침해 하에서도 저작인격권 및 저작권에 따른 수익을 그 저작권자에게 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만약 이런 방법이 있다면 사용하는게 더 현명하지 않을까요? 이런 고민에서 나온 것이, 위 댓글에서 논한 방법 중 하나인 저작권 공시 제도입니다. (이는 로렌스 레식 교수가 Free Culture에서 음반시장의 해결 방법으로 제안했던 방법입니다.)

    먼저 각 저작권이 있는 컨텐츠에 대해서 정부 등의 일정 기관에 그 "가격"을 공시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 가격을 지불했다는 필증을 (인터넷으로) 교부 받고, 그 컨텐츠를 사용하게 하는것입니다. 이 방법을 조금만 응용하면, 이런 저작권이 있는 컨텐츠를 함부로 사용하게 된다면, 그로 인한 부당수익 (언론사의 경우에는 그 기사로 인한 트래픽에 비례한 광고수익) 및 징벌적 배상(이런 컨텐츠의 무단 사용을 막기 위한 강제금)을 도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경우는 오히려 하이퍼텍스트 링크와 frame이라는 HTML 명령어를 잘 사용하면서 동시에 저작권자의 수익도 높일 수 있는 한 방안입니다. 저작권법의 원래 취지인 공공재를 사적재화로 만든다는 측면에서, 이러한 방안은 전혀 모순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방법이 꼭 좋은 결과를 낳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기술과 규범이 양립하는 방향으로 우리가 얼마든지 창의적인 제도를 생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미 있는 규제가 목적하는것과 그 수단을 분리불가능한 것으로 치부하게 되면, 우리는 스스로의 상상력을 제약하게 되고, 결국 그 목적조차 달성하기 힘들게 될지도 모릅니다.
  • DK紅炎卿 2014/03/18 11:27 # 답글

    그러고 보면 한국에는 역사와 전통의 딴지일보도 있었죠.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ㅎㅎ
  • deulpul 2014/03/18 14:34 #

    정말 인터넷 매체론 원년 멤버인 셈이지요. 그 대문 마빡에 붙어 있던 카운터가 1백만을 넘긴 것을 보았을 때 느낌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 조제 2014/03/20 12:48 # 삭제 답글

    글 너무 잘 읽었습니다. 허.포 보면서 좀 뭔가 정리되지 않은 편린들이 확 정리되는 느낌이에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 deulpul 2014/03/20 18:11 #

    고맙습니다.
  • 초로 2014/03/22 17:02 # 삭제 답글

    ㅂㅅ인증이네요. https://www.youtube.com/watch?v=FPDB9xQS7S0&feature=youtube_gdata_player
  • deulpul 2014/03/23 15:41 #

    예전 박근혜의 '짜고 치는' 기자회견(http://deulpul.net/4002494) 즈음에 (다시) 나돌았던 동영상이네요. 언론이 망조가 들었음을 보여주는 지표의 하나로 '질문은 던져지지 않으며...'라는 것이 있는데, 이를 글자 그대로 아주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하겠습니다.
  • 노노 2014/08/23 00:22 # 삭제 답글

    잘 읽고갑니다... 머릿속에 맴돌던 것들을 명확하게 잘 짚어주셨네요
  • 꼬마바람 2017/10/18 01:34 # 삭제 답글

    다른 이유로 허핑턴포스트에 대해 알아보던 중, 제가 무엇을 궁금해했는지에 대해 알게 된 것 같아 댓글 남기고 갑니다.
    허핑턴포스트가 제공하는 정보들이 과연 얼마만큼의 신뢰도를 보장할 수 있느냐... 그리고 그것을 독자(?)는 어느 정도로 받아들여야하는가...현재 인터넷 상에서 정보를 공유하고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의 담론, 정도일지 혹은 그 이상일지... 이 정보를 아는 것만으로도 교양인으로 불릴 수 있는 것인지...가 궁금증이었네요.
  • deulpul 2017/10/18 09:49 #

    저 역시 여전히 궁금한 내용이기도 합니다. 다른 매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만... 매체와 수용자에 대한 관심을 갖고 계셔서 아주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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