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핑턴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섞일雜 끓일湯 (Others)

최근 이런 말을 옮기는 사람들이 부쩍 눈에 띈다.


"제대로 된 사람을 사귀고 있다는 가장 분명한 신호는 함께 있을 때 자신이 변해가는 모습이 마음에 드는 것이다" - 아리아나 허핑턴


이게 멋있거나 뜻있는 말이라고 생각해서 적고 옮기는 것일 게다. 그건 좋은데, 미안하지만 아리아나 허핑턴은 저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이 말이 허핑턴이 쓴 책 <On Becoming Fearless>(한국에서는 <담대하라, 나는 자유다>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나왔다)에 나오는 것은 맞다. 해당 부분은 다음과 같다(형광펜 칠한 부분).




이처럼 그녀가 쓴 책에 나오는 말이기는 한데, 보시다시피 원래 그 말을 한 사람은 따로 있다(빨간 줄 친 부분). 저 말은 허핑턴이 아니라 캐시 프레스턴이라는 여자가 <바로 그 사람: 쏘울 메이트를 만나고 관계를 지속하는 법(The One: Discovering the Secrets of Soul Mate Love)>이란 책에서 한 말을 허핑턴이 인용해 온 것이다. 한국어판에는 어떻게 되어 있는지 확인할 수 없지만, 거기서도 분명히 저런 모양을 취하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저 말을 인용하려면 허핑턴이 아니라 프레스턴이 말 한 사람으로 표시되어야 한다. 허핑턴만큼 유명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기가 한 말까지 빼앗길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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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지적 문화에서는 이상할 정도로 출처가 허투루 다루어지고 찬밥 대접을 받는다. 어떤 정보의 출처가 어딘지를 따지기보다 그런 정보를 교묘히 활용하고 소비하는 데 급급하다. 그 결과, 정보는 연원도 없이 떠돌고, 그 정보의 신뢰성을 확인할 수도 없으며, 원작자보다는 긁어오고 변조하고 활용한 사람이 더 대접을 받는다.

포털 검색에서는 원문 웹페이지보다 펌질한 웹페이지가 더 앞으로 올라오고, 신문들은 남이 공들여 쓴 기사를 서로서로 베끼는 일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심지어 남의 기사를 말만 조금 바꾸어 자기 이름 달고 내보내기도 한다. 대학에서는 남이 쓴 글을 짜깁기하여 자기 이름으로 과제를 내는 일이 비일비재하며, 남의 작업을 자기 것인양 인용해서 학위를 받은 유명인들은, 문제가 되면 잠시 피했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자기 자리로 다시 돌아온다. 모든 지적(知的) 작업은 다른 사람이 앞서 해놓은 일에서 출발하며, 따라서 이를 활용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이런 행위의 계통을 세우고 바로잡아 주는 틀이 출처 명기다. 이렇게 기본이 되는 상식적인 일인데도 무시하거나 게을리한다. 그러다보니 한국의 지적 작업은 남의 성취를 가로채는 사기 작업과 비슷한 꼴이 된다.

저 인용문을 말한 사람이 엉뚱한 이로 둔갑한 것도, 이처럼 출처를 밝히는 일에 예민하지 않은 한국적 분위기를 보여주는 또 한 사례라고 생각한다. 저 말을 처음으로 책에서 꺼내 글자로 옮긴 사람이 첫 번째 책임일 게다. 의도적이지는 않았겠지만, 명백한 일을 흐려 놓았다. 덕분에 잘못된 정보가 동네방네로 퍼져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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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있는 말들에는 함정이 있다. 내용과 표현이 모두 멋있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는 점이다. 멋있는 말들은 주로 표현만 그렇다. 속 빈 뻥튀기 과자에 설탕을 잔뜩 발라놓은 것처럼, 겉으로 핥기는 달지만 두 번만 생각하면 아무 의미 없는 내용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아포리즘적인 단문들을 지혜로 생각하는 일은 위험하다. 잘 짚어보면 대부분은 말장난이다.

내가 여기저기 유행하는 저 말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애초에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제대로 된 사람을 사귀고 있다는 가장 분명한 신호란 게, 함께 있을 때 자신이 변해가는 모습이 마음에 드는 것이라니? '제대로 된 사람'이란 무슨 뜻인가? 내가 나에 대해 갖는 인상이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될 수 있나?

우선 여기서 말하는 '제대로 된 사람'이란 우리가 흔히 '사람이 제대로 되었어!' 하는 것처럼 올바르다거나 바람직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나랑 제대로 맞는 사람'의 뜻이다. 또 원래는 '사람'이 아니라 '관계'다. 저 말의 원문은 위에서 인용한 이미지에서 보듯 'the right person'이 아니라 'the right relationship', 즉 제대로 된 사람이 아니라 제대로 된 관계다. 이 말을 정확히 번역하면 '제대로 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가장 분명한 신호는 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자신이 변해가는 모습이 마음에 드는 것이다'가 될 것이다. 원 인용문이 나온 책이 쏘울 메이트를 찾는 법에 대해 쓰고 있음을 생각하면 그 맥락을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고쳐 놓아도 문제는 여전하다. 제대로 된 관계의 기준을 매우 주관적인 데 두고 있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관계, 즉 내가 쏘울 메이트를 만나고 있는지의 여부는 내가 변해가는 것이 마음에 들면 그렇다고 한다. 실제로는 자신이 변하는 모습을 알기가 얼마나 어려우며 그것이 마음에 드는가를 판단하기는 또 얼마나 어려운가. 거꾸로, 그 사람이 좋기 때문에 내가 변하는 게 마음에 드는 것처럼 느끼는 게 더 자연스럽지 않은가. 또 내가 변하는 모습이 내 마음에 든다고 해서 그런 관계가 모두 이상적이고 쏘울 메이트적인 것인가. 내가 변하는 모습이 좋아서 사귀었는데 나중에 헤어지게 되면, 쏘울 메이트가 아니었던 것인가, 아니면 내가 나를 착각한 것인가.


자신이 변하는 모습이 말할 수 없이 마음에 드는 쏘울 메이트들


이 부분은 단문적 인식을 극복하면, 다시 말해 원저자인 프레스턴이 저 말을 어떤 맥락에서 했는지를 조금 더 살펴보면 좀 납득이 될지도 모른다. 기회가 되면 저 책을 잠깐 훑어보고 보충을 해 두겠다. 여하튼 내가 드리고 싶은 말은 말과 아이디어의 출처를 제대로 밝히는 일에 좀더 민감해지자는 것이다.


※ 책 이미지: 아마존(본문에 링크), 사진 이미지

 

덧글

  • Outis 2014/03/24 07:33 # 삭제 답글

    근래에 보기드문 멋진 사진입니다.
  • deulpul 2014/03/24 12:38 #

    아주 장관이군요...
  • 가녀린 얼음요새 2014/03/24 18:26 # 답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순간적 재치와 센스에 의존한 단문의 생산과 유통이 과도하게 증가한 데에는 트위터 같은 매체의 영향이 크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런 아포리즘이야 말로 트위터에 최적화된 형태의 글이니까요. 일반인들뿐만 아니라 학자나 비평가라는 양반들도 분석과 논증보다 트위터에서의 '촌철살인 단문'으로 자신의 스마트함을 뽐내려는 광경을 보다보면, 이러다 사람들의 뇌가 여기서 반짝 저기서 반짝하는 플레시 메모리로 진화되는 거 아냐, 하는 우스운 걱정이 들곤 합니다. ㅎㅎ
  • deulpul 2014/03/24 23:09 #

    저도 비슷한 생각을 늘 갖고 있습니다. 트위터를 통한 소통은 논리(말씀하신 분석과 논증)를 갖춘 토론보다는 단정이나 선언의 형태를 취할 수밖에 없고, 논리는 생략하고 결론만 내쏘면 된다는 점에서 게으른 사람에게는 매우 편리한, 그러나 그만큼 무책임한 소통 채널이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그렇게 나온 것들을 열렬히 중계해주는 매체들이 있죠.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김으로써 풍부한 메시지를 생산하는 담화 방식은 종교나 문학 영역에서는 이상적일지 몰라도, 현실과 치열히 씨름해야 하는 영역에서는 큰 도움이 되는 소통은 아닌 것 같습니다.
  • 윤주한 2014/03/25 02:13 # 답글

    본문과 상관없는 질문이기는 한데, 저 사진의 사람들이 어떤 단체(?), 모임(?)인지 궁금하네요.
  • deulpul 2014/03/25 06:16 #

    일본에서 좀 논다 하는 불량배 녀석들(흔히 '양키'로 불림)의 졸업식 때 모습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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