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을 봐도 못 믿겠다 섞일雜 끓일湯 (Others)

못 믿는가, 김훈을 보라

전체 분량의 5분의 1 남짓한 내용인 김훈이 제목에 대표선수로 불려 올라왔다. 낚시의 다양한 진화 양상을 보면 경이로운 느낌까지 갖게 된다.

갑자기 웬 김훈인가 싶어서 봤다가 쓴 입맛만 다셨다. 지인들만 오락가락하는 페이스북이나 블로그 포스팅도 아니고, 수많은 독자를 상대로 한 대중매체 글들이 이런 모양이 된 것은, 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된 일인지.

김훈을 내세우며 믿으라는 것이 '시대착오적인 것이 얼마나 힘이 있는가'라는 주장이다. 딴 건 놔두고, 제목에서 김훈 내세웠으니까 김훈만 보자.


작가 김훈은 2001년 첫 소설 <칼의 노래>로 ‘한국 문학에 벼락처럼 쏟아진 축복’이라는 평과 함께 동인문학상을 받았다. 주어와 동사만으로 쓰려 했다는 그의 문장은 갑자기 드러난 유물처럼, 무척이나 시대착오적인 것이었다. 그의 문체는 1500년대 말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모범으로 했다니 그럴 만도 했다. 21세기에 홀연히 나타난 16세기풍 문장은 그야말로 벼락처럼 뜬금없었고, 그래서 무척이나 신선했다. 김훈의 문체는 강력한 파장을 일으켰으며 이후 많은 사람들이 그의 글쓰기를 흉내 내곤 했다.


<칼의 노래>는 김훈의 소설이 아니다. 그에 앞서 이미 7년 전에 장편 소설 <빗살무늬토기의 추억>을 책으로까지 펴낸 바 있다. 위키만 찍으면 10초 만에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글 쓴 사람은 그렇다치고, 이런 착오가 걸러지지 않는 편집 과정은 심각하다고 평가할 만하다.

이러한 일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김훈의 문장이 갑자기 드러난 유물 같다고 한 점이다. 이것은 김훈의 기사와 작품을 통해 그의 글 세계를 접해온 독자들이 보기에는 황당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자신이 처음 보았다고 해서 세상에서도 처음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김훈은 이미 오래 전부터 수식어를 최대한 배제하고 관념어를 사용하는 건조한 문장의 구조를 설립해 두고 있었으며, <칼의 노래>는 이러한 그의 문장 방식의 연장에 있다. 그 전에 나온 에세이집 <자전거 여행>의 아무 페이지나 펼쳐보라. 위 글쓴이가 '갑자기 드러난 유물처럼'이라고 표현한 <칼의 노래>의 문장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부장품 가득한 고분 발견? '16세기풍 문장'이라니, 대체 그게 뭔지 16세기풍 문장을 잘 아는 사람이 있다면 좀 가르쳐주면 좋겠다. 나는 율곡, 퇴계를 꼼꼼히 읽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이런 억지를 편 것은 물론 '시대착오는 힘이 있다'는 주장에 김훈을 끼워맞추려고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주장은 글쓴이가 한 <허핑턴포스트코리아>의 '시대착오적인 광고 방식'을 합리화하고 그 성과를 강조하는 데로 모아지고 있다.


최근 <허핑턴포스트코리아>의 론칭에 참여했다. 전통적 뉴스 미디어의 대안으로 떠오르며 빠르게 영향력을 넓혀가는 글로벌 온라인 뉴스 미디어의 한국판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나와 동료들은 광고를 조금은 시대착오적으로 만들고 싶었다. 우리는 첨단적인 방식보다는 고전적인 인쇄광고처럼 점잖게 말하는 방식을 택했다. 슬로건도 구식이었다. ‘인생은 뉴스로 가득하다.’ 소비자 경험(UX·User Experience)을 강조하고 영어를 많이 쓰는 요즘의 광고 트렌드와는 여러 모로 동떨어진 것이었다. 이 구식(?) 광고 여러 편을 만들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전파했다. 광고가 시작되자 이런저런 논란과 몇몇 해프닝이 겹치면서, 한국에선 듣보잡 미디어에 가까웠던 <허핑턴포스트코리아>는 투입 비용에 비해 아주 큰 광고 효과를 누릴 수 있었다.


마지막 문장이 인상적이다. <허핑턴포스트코리아>가 유명해진 데에 '논란과 해프닝이 겹치면서' 큰 광고 효과를 누렸다고 한다. 광고를 한 사람 처지에서는 광고가 성공적이었다거나 효과가 컸다고 강조해야 하겠지만, 실제로 벌어진 일을 보면 광고와 이른바 논란-해프닝 중 무엇이 '광고 효과'의 주종이었던가는 의심을 해볼 일이 아닐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시대착오적인 광고를 해서 효과가 컸다는 주장은, 내가 보기에는 '시대착오적인 광고가 아니고 첨단 광고였다면 그 효과가 훨씬 컸을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것만큼이나 주먹구구가 아닐 수 없다. 같은 주장이라도 객관적인 조사 자료, 즉 사실을 근거로 보여주며 개진했더라면 누구든 두말않고 동의했을 것이다.

이 점을 보자면, 글쓴이는 김훈을 자기 주장의 근거로 사용하기 위해 그 껍데기만 끌어왔을 뿐, 그의 문장이나 산문 정신이 무엇을 지향하는지는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야 할 듯싶다. 김훈의 '16세기풍 문장'은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벌어진 것을 벌어진 그대로, 말한 것을 말한 그대로 군더더기 없이 쓰는 정신에 기초하고 있고, 이것은 물론 그의 오랜 기자 생활과 검박한 상무(尙武)적 문장에 대한 그의 선호에 맥이 닿아 있다. 그가 싫어하고 경계하는 서술 방식이 사실과 의견을 뒤섞어서 두 세계의 경계를 허물어뜨리고 단어와 문장을 넘어서는 의지를 글에 개입시키는 일이다. 그는 "우리 사회의 언어가 의견과 사실을 구분하는 능력을 상실한 지 오래"라고 말한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김훈은 자신이 경계할 만한 종류의 글에 오히려 자신이 근거로 등장하는 모습을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해진다.

김훈의 문장, 여기저기 불려다니느라 참 바쁘다.

시대착오적인 시도를 했다가 망한 것도 수없이 많다는 점은 보너스.

 

덧글

  • 들깨 2014/04/04 01:31 # 답글

    김수영의 시가 보그지 홍보카피로 쓰이는 시대라는데
    이정도면 양호한.....씁쓸하군요.
  • deulpul 2014/04/06 02:52 #

    그래도 그 시는 허세체로 바꿀 수는 없었을 것 같아서 저으기 안심이 되네요.
  • nina 2014/04/04 10:55 # 삭제 답글

    반복되는 '시대착오적'이라는 표현이 참 불편하네요. 광고 카피 쓰듯이 쓴 글 같습니다만...이런 글을 실어 준 매체는 도대체 무엇?
  • deulpul 2014/04/06 02:54 #

    촌스러운, B급을 넘어서 새로 의미 부여를 하려는 것 같습니다만, 여러 모로 무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 2014/04/04 13:51 # 삭제 답글

    버스커버스커로 바뀌었군요. 김훈씨가 한소리할까 두려웠던 모양입니다.
  • deulpul 2014/04/06 02:59 #

    정말 그렇네요...
  • 가녀린 얼음요새 2014/04/04 20:14 # 답글

    광고에서 '시대착오적인 것'의 가치를 광고하는 방법으로 '첨단 낚시술'을 사용했군요. 말과 행동이 다를 때 진실을 알려주는 쪽은 보통 후자죠. ㅎㅎ
  • deulpul 2014/04/06 03:09 #

    그렇게 보긴 했습니다만, 실은 전통적인 흔한 방법이기도 하지요... 제목이 수행하는 여러 기능 중 눈길 잡아끌기만이 지나치게 강조되는 세상이라서, 그런 분위기에 보편적으로 영향을 받게 되는 건가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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