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요커>: 아리아나 허핑턴은 누구인가 섞일雜 끓일湯 (Others)

한국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다루어지는 방식을 보자면, 성공이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성공의 유전자 같은 것이 있어, 그런 것을 가진 사람들만이 성공을 이룰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은 성공한 사람들이 오로지 미화되기 때문에 갖게 되는 생각이다. 성공한 사람들에게 남다른 노력과 재능이 있는 것은 사실이겠지만, 그들도 인간이고 그래서 단점도 있고 부족한 점도 있다. 성공한 사람을 겉핥기 식으로 훑는 이야기들에는 이런 점이 늘 빠진다. 그래서 성공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휴먼 드라마가 아니라 '성공 신화'가 된다. 성공만을 드러내고 소비하는 사회에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성공만 하면 된다.

이렇게 성공한 사람을 신격화하는 한편에서는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억지스러운 희망 풍선 부풀리기가 일상적으로 이루어진다. 몹시 이율배반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아리아나 허핑턴이 쓴 책이 한국에서 팔리고 <허핑턴 포스트> 한국판도 등장하면서 그녀의 이름이 자주 눈에 띄는데, 그녀 자신에 대해서는 위에서 쓴 의미에서 제대로 된 인물기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 흥미롭다. 오로지 인터넷 매체를 성공시킨 자수성가형 미디어 창업자, 엄청난 인맥을 가진 온라인 사업자 같은 이미지만으로 알려진다. 혹은 비판적인 사실만으로 인물을 재구성하기도 한다. 잘못된 사실도 부지기수다. 허핑턴에 대해 쓰인 어떤 글이라도, 대여섯 줄만 넘어가면 반드시 잘못을 잡아낼 수 있을 정도다.

이것은 애먼 사람이 한 이야기를 그녀가 한 것으로 잘못 옮긴 트윗이 무한 회자되는 것과 비슷한 양상이다.

<허핑턴 포스트>를 만든 아리아나 허핑턴은 미국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는 인물이다. 그녀가 만든 매체에 대해서가 아니라 그녀 자신에 대해서이다. 인터넷 매체를 만들어 성공시키고 막대한 영향력과 부를 획득하였다는 점은 그녀의 재능과 노력을 분명하게 보여주지만, 그녀 자신의 태도와 삶은 많은 논란거리가 되어왔다. 이런 점이 모두 합쳐져서 허핑턴이라는 인물을 구성하게 된다. 한쪽 면, 즉 성공한 면이나 비판 받는 모습만을 보여주면서 '아무개는 누구인가' 같은 제목을 붙이면 안 된다.

인간 아리아나 허핑턴에 대해, 성공한 사람에 대한 결과회귀적 칭송이 아니라 개인이 가진 다양한 면모를 잘 살펴본 (영문)글 중 하나는 2008년에 <뉴요커>에 실린 글이다. 3년 전에 시작한 <허핑턴 포스트>가 성공으로 입증되긴 했지만 거액에 매각되기는 전인 시점이다. 글은 방대한 조사와 밀착 취재를 통해 작성되었으며, 허핑턴의 성공과 실패, 장점과 단점, 논란이 있거나 비판을 받는 행적 등을 자세히 살펴보고 있다. 제목(부제)부터가 '아리아나 허핑턴의 여러 개의 삶'이다.

원문 중에서 어떤 모임 모습을 지나치게 자세히 묘사한 부분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전문을 옮겼다. 회색 글자와 링크들은 이해를 돕기 위해 내가 추가하였으며, 중간 제목도 내가 붙였다.




신탁을 전하는 사제(The Oracle)
아리아나 허핑턴의 여러 개의 삶

by Lauren Collins
2008년 10월13일

리아나 허핑턴이 쓴 베스트 셀러 전기 <마리아 칼라스>(1981)와 <파블로 피카소>(1988)는 모두 작은 일화로 시작한다. 이 일화들은 주인공의 운명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려는 목적으로 도입부에 사용된 것이다. 허핑턴은 만일 자신이 자기의 삶에 대해 책을 쓴다면, 그 도입부는 1969년 봄이 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때 허핑턴(당시 이름은 스타시노폴러스였다)과 엄마 엘리는 아테네에서 런던으로 이사왔다. 허핑턴이 케임브리지 대학의 입학 시험을 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허핑턴은 두어 해 전에 잡지에서 케임브리지 대학 사진을 본 뒤, 그 대학에 가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나중에 "그 사진은 지금 우리가 시각화(visualization)이라고 부르는 것의 완벽한 본보기였다"라고 썼다. 두 사람은 맨체스터 스퀘어의 임대 아파트에서 살았다. 어느 날 오후 전보가 도착했다. 'AWARDED. GIRTON. EXHIBITION'라고 되어 있었다. (케임브리지 대학을 구성하는 31개 칼리지 중 하나인 거튼 칼리지에 합격했다는 소식.) 아리아나와 엄마는 exhibition이란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서, 아리아나의 선생님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그 말이 부분 장학금을 준다는 뜻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허핑턴은 그해 가을 케임브리지에 들어갔다. 방 하나짜리 아파트에서 살았는데, 난방은 동전을 넣어야 가동되었다. 그녀의 그리스식 영어는 수업 시간 때보다는 계급적 편견을 가진 동료 학생들과의 대화 때 더 문제였다. 그녀는 최근 이렇게 말했다. "어느 날 여러 사람 있는 데서 'horseback riding'(승마) 같은 말을 했어요. 그랬더니 사람들이 모두 웃는 거에요. '말 말고 다른 뭐 탈 게 있나? 당나귀 타기?' 이랬죠."

동아리를 소개하는 행사에서 허핑턴은 대학 토론팀을 살펴보았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영적인 데 대한 충동이 있었다. 힌두교를 공부하기도 했고, 성모 마리아의 날에는 금식했다. 케임브리지 유니언(토론팀)은 그녀에게는 또다른 성역이었다. 그녀는 이렇게 회상했다. "저는 그냥 거기 빠져들었어요. 토론이 벌어질 때마다 나가봤고, 그런 자리에서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죠. 말을 기가 막히게 하는 사람들이 연출하는 장관, 그들의 말에 감동하거나 분노하는 청중들을 보면서 넋을 잃었습니다."

이제부터 흔히 듣던 이야기가 나온다.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던 외지인은 이윽고 토론팀의 회장이 되었으며(그녀를 싫어하던 동료들은 그녀를 '스타리아나 코메아크로팔로스'라는 별명으로 불렀다(일부 동료는 허핑턴의 지나친 정치적 야심을 싫어했다), 그뒤 보수적인 평론가로 나섰으며, 유명 저널리스트(버나드 레빈)의 애인이 되었고('그리스 푸딩'이라는 별명), 런던 상류 사회의 일원이 되었고('이카루스 이래 가장 많이 올라온 그리스인'), (미국으로 건너와서) 공화당원의 정치적 아내가 되었고, 이혼한 뒤 케이블 방송 코미디언이 되었으며, 자가 치료를 주제로 한 책의 저자, 진보주의자, 초기 환경운동가, 주지사 선거에 나갔다 떨어진 후보, 블로거, 인터넷 거물 등등으로 변신하여 왔으며, 이 모든 과정을 거치는 동안 영어권 세상에서 가장 민첩하고 눈에 띄는 커뮤니케이터가 되었다. 허핑턴은 말하기를 통해 나오는 힘에 지속적으로 집착했으며, 따라서 자신을 부르는 곳이라면 CNN이든(올해 '래리 킹 라이브'에 벌써 열 두어 차례나 나갔다) 공무원퇴직자협회 정기행사든 가리지 않았다.

현재 허핑턴은 로스앤젤레스에서 산다. 지난 봄 어느 날, 허핑턴은 시애틀에서 가족계획협회 모금 행사의 발표자로 나서기로 약속했다. (이 운동의 지지자인 그녀는 강연료를 받지 않기로 했으며, 모금함이 돌 때 수표를 넣기도 했다.) 오래 전부터 이런 종류의 모임에 단골 연설자로 등장하는 허핑턴은, 그녀와 별로 상관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행사에도 모습을 드러내곤 한다. 그녀의 연설은 '깨달음의 순간(aha moment)' '밈(meme)'같이 비즈니스 세계에서 흔히 통용되는 말로 가득차 있다. 전화를 끊을 때 "지금 빨리 나가봐야 돼요" 하고 말하는 일이 잦다. 밤에는 세 개나 되는 블랙베리 전화기를 화장실에 감춰놓는다.

힐러리도 쓰고 오바마도 쓰는 <허핑턴 포스트>

시애틀의 벨 하버 국제회의장에서 허핑턴은 (강연 순서를 기다리며)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테이블 앞에 앉아서 손가방을 열어 삶은 달걀 두어 개를 꺼내서 접시에 올려두었다. 간식이다. 키는 거의 6피트(183cm)에 이르렀고, 이마는 작았으며 뾰족한 윗입술을 갖고 있었다. 머리는 구리 냄비 같은 광택이 났다. 허핑턴에게 다가가기는 어렵지 않은데, 일단 다가가면 그녀는 늘 같은 태도를 보인다. 손을 움켜잡는다든가, 마루운동을 시작하려는 체조 선수처럼 한 발을 앞으로 내딛는다든가 한다. 그녀의 행동거지는 경박하면서도 절제되어 있다. 주름진 브라우스를 입었는데, 프랑스 하녀나 조지 워싱턴을 연상케 했다.

허핑턴의 강연을 특징짓는 이러한 격의없음과 솔직함은, 그녀가 AOL 경영자 케네스 레러와 함께 2005년에 만든 <허핑턴 포스트>의 특징을 말해주기도 한다. '인터넷 신문'을 표방한 이 사이트는 수집된 뉴스, 여섯 개의 '세로 영역'(만일 <허핑턴 포스트>가 신문판으로 나온다면 이들은 섹션 B~G가 될 것이다), 그룹 블로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룹 블로그에는 2천 명 정도가 활동하는데, 여기에는 허핑턴의 친구인 아리 이매뉴얼, 알렉 볼드윈, 래리 데이빗, 노라 에프런, 존 쿠삭 같은 유명인이 포함된다.

허핑턴은 그녀의 일생 대부분을 보수주의자로 살아온 것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허핑턴 포스트>는 일종의 진보적인 <드러지 리포트>라 할 만하다. 닐슨 온라인(Nielsen Online)에 따르면, (2008년) 2월에는 방문자가 370만으로 <드러지 리포트>를 추월했다. 광고주에는 스타벅스, 폭스바겐, 홈디포, <타임> 등이 포함된다. 8월에는 방문자 수 510만을 기록했다. 선거철이라서(2008년 대선) 힐러리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 모두 <허핑턴 포스트>에 열정적인 독자의 표심을 잡기 위해 나섰다. 클린턴은 출산의 권리를 위협하는 부시 행정부나 아동 빈곤 문제에 대해 포스팅을 썼고, 오바마는 (해외 세력에 대한 감시를 규정한) 해외정보감시법(FISA)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정당화하거나 제레미아 롸잇 목사와의 관계를 해명했다. (허핑턴 자신은 오바마를 지지했는데, 그가 이라크 전쟁에 반대했다는 이유도 있었다).

미학적으로 말하자면, 이 사이트는 사생활을 캐서 보도하던 타블로이드 신문들을 연상시킨다. 대문짝만한 크기에 느낌표까지 찍힌 매우 우스운 제목들이 그렇다. ('맥케인, 휴식을 원하다 - 도대체 왜?') 편집 감각도 마찬가지로 무디다. 비정치적인 뉴스와 포스팅들은 촌스러운 흥미거리의 범주에 속한다: 선정적인 소식('한국, 한 여성을 위해 개를 복제'), 건강 정보('기름진 생선은 왜 머리에 좋은가'), 통속 심리('확실히 긴장 해소 해주는 네 가지 방법'), 여자애들 관심거리(앤 해서웨이 - 당신과 데이트하는 남자를 제대로 파악해야 할 때') 따위다.

<허핑턴 포스트> 트래픽의 50%는 정치 뉴스에서 나온다. 좌파의 짜증을 풍자적으로 드러내는 게 특징이다. 부시 대통령, 전쟁, 애국법, 존 맥케인의 520달러짜리 페라가모 구두나 월 스트리트 구제금융 때의 '방해자' 역할 등이 그 대상이다. 맥케인이 사라 페일린을 부통령 후보로 선택했다는 소식이 알려졌을 때, <허핑턴 포스트>는 불과 몇 시간도 안 되어, 페일린이 1984년 미스 와실라 선발대회에 나갔을 때의 사진을 올렸다. 대통령 선거 운동 기간에 이 사이트는 뉴스 보도에 더해, 정치분야 편집자와 기자 여섯 명(모두 유급)이 비평을 쓰게 했으며, OffTheBus 프로젝트 중 하나로 시민 저널리스트 1만1천명이 참여하기도 했다. (OffTheBus 프로젝트는 선거 관련 보도에 일반인으로 이루어진 시민 기자를 참여시키는 작업이다.)

이 사이트는 큰 특종도 만들어 냈다. 그 중 몇 개는 대선 정국에 파문을 일으켰다. 시민 기자인 메이힐 폴러는 오바마가 '총과 종교에 집착하는' 시골 유권자들이 '끔찍하다'라는 말을 했다고 폭로했다. 또 빌 클린턴이 민주당의 짐이 되고 있다고 쓴 <배니티 페어>의 토드 퍼덤을 클린턴이 '쓰레기'라고 불렀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이런 일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폴러는 자신이 저널리스트라고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언론계에서는 그녀가 언론인의 윤리 규범을 어겼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이런 일은 여러 사람이 있는 데서 벌어진 것이기 때문에, 오바마나 클린턴의 명예를 실추한 것 말고는 특별히 뭘 어겼다고 보기는 어렵다.

9월에 맥케인이 경제 위기 해소를 위해 선거 운동을 중지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허핑턴 포스트> 기자인 샘 스타인은 주요 지역의 맥케인 선거운동본부 15곳에 전화를 걸어, 선거 운동을 중지한 곳은 한 군데도 없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5월에 아리아나 허핑턴은 '존 맥케인이 내게 말한 것, 그가 얼마나 잘못 가고 있는지를 알려주다'라는 제목의 블로그 포스팅을 썼는데, 이 역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나 찜찜함을 남겼다. 허핑턴은 그 글에서, 수년 전의 한 저녁 파티 자리에서 맥케인이 조지 W. 부시에게 투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고 썼다. 맥케인의 대변인은 이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라고 부정했다. 사실이든 아니든, 허핑턴은 비밀을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고 인식되었다. 그녀의 친구이기도 한 토크쇼 사회자 태비스 스마일리는 "존 맥케인 일이 있고 나니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내가 말한 게 어떻게 이용될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거든요" 하고 말했다.

"아리아나의 인맥은 6단계 아닌 2단계"

(시애틀에서) 허핑턴은 가족계획협회에서 강연한 뒤 마이크로소프트 캠퍼스로 향했다. 패널 토론회에 사회자로 참석하기 위해서였는데, 여기에는 힐러리 클린턴 진영의 전략가 마크 펜과 공화당 전국위원회 e캠페인 디렉터 사이러스 크론이 토론자로 나왔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동안 허핑턴은 이들에게 질문을 퍼부었다. "플로리다, 미시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펜에게 물었다. 크론은 공화당 전국위원회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1만 명이 친구로 등록했다고 말했다. 그는 허핑턴에게 "공화당원이 되기 좋은 때입니다. 위로 올라갈 일만 남았거든요" 하고 말했다.

공화당원도 그녀의 환심을 사야 될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것이 허핑턴의 접근 방식이다. 그녀는 자신이 가쉽과 아이디어들의 주요 통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즐기고 있다는 점이 명백하다. 내가 허핑턴에게 가장 좋아하는 책이 뭔지 물어봤을 때, 그녀는 <하워즈 엔드(Howards End)>(<뉴요커>의 Howard's End는 오기)에 나오는 챕터 제목을 언급했다. "E. M. 포스터가 '연결만이' 큰 깨달음의 순간이 된다고 언급한 게 생각나요."

접시가 그녀의 자본이며 인맥을 만들고 유지하는 수단이다. 그녀가 <허핑턴 포스트>의 아젠다를 결정하고, 더 나아가 수많은 독자를 위한 아젠다를 결정하기 때문에, 그녀의 방식을 한 입씩 나누어 주는 것(즉 한 번씩 언급해 주는 것)은 일종의 투자다. 독보적이라는 평가가 그 보상으로 따라온다. 환경운동가 로리 데이빗은 이렇게 말한다. "허핑턴은 모든 것의 최고를 다 알아요. 누구랑 요가를 해야 가장 좋은지, 어디 가서 얼굴 피부 관리를 해야 하는지. 뭔가 필요하다면 아리아나에게 물어봐요." 내가 그녀를 취재하는 기간에도 그녀는 (캘리포니아 주지사) 제리 브라운에 대해서 썼고('주지사에 다시 출마할 예정'), 또 (구글 공동창립자) 세르게이 브린에 대해서도 썼다('그의 아내가 임신했다!')

허핑턴의 사업과 영적 추구는 인간 잠재력을 키우는 운동에 대한 관심에서 하나로 합쳐진다. 무언가가 부풀어나는 것인데, 그녀는 이에 대해 '새로운 존재의 위대한 가능성을 열어주고 우리의 진화를 뒤흔들 새 시대의 개막'이라고 쓴 바 있다. 허핑턴은 일주일에 한두 번씩, 세심하게 선택한 친구들을 이끌고 하이킹을 간다. 석류 주스업계의 거물인 린다 레즈닉은 "그녀가 나에게 영감이 돼요"라고 말한다. "2006년에, 로리 데이빗(위에 나온 환경운동가)의 생일이었죠. 우리는 산타 모니카 산에 올라서 풍경을 바라보았어요. 샴페인을 빨대로 나눠 마시고 부드러운 치즈와 살라미 소세지를 먹었죠. 로리는 <불편한 진실> 제작을 막 시작할 때였고, 아리아나의 웹사이트는 대박을 치고 있었으며, 리타 윌슨(톰 행크스의 아내)은 브로드웨이의 <시카고>에 출연할 예정이었죠. 아리아나가 나에게 '당신은 일상을 떠나 뭘 할 거에요?' 하고 물었죠. 그래서 '내 꿈은 마케팅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을 모두 전달하는 거에요'라고 말했어요."

인터넷 기업가인 미카 시프리는 허핑턴의 웹 비즈니스 성공 비결의 하나로, 그녀가 대화의 질을 (상대방에 조화가 되도록) 조절한다는 것을 꼽았다. 그는 "그녀가 관심을 끌 줄 안다는 게 전부가 아니에요. 그녀는 관심을 공유하거든요"라고 말했다. '연결자'로서 그녀의 능력을 평가한 사람은 이미 많다. 케네스 레러도 그 중 하나다. 그는 "여기 주머니 세 개가 있어요. 로스앤젤레스, 뉴욕, 워싱턴 DC죠. 이 세 도시를 하나로 연결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아리아나에게 있어서 인맥은 6단계가 아니라 2단계에요." 허핑턴의 세계는 종종 (여론의) 메아리를 울려낼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는 2006년 12월에 <LA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데이빗 게펜은 벌써 오바마 지지를 선언했고요, 많은 할리우드 유력 인사가 아직 공개적으로 선언할 준비는 안 됐지만 사적으로는 힐러리만 아니면 누구나 좋다는 뜻을 드러내고 있지요." 미국 정치에서 연예 산업 거두들이 중요한 전조를 보여준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다시 시애틀로 돌아가자. 허핑턴은 타운 홀에서 강연을 갖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마무리했다. 블라우스 앞섶에는 펜이 꽂혀 있었다. 그녀는 무대에 올라가서 다음과 같은 말로 강연을 시작했다: "저는 지금 마이크로소프트 컨퍼런스에서 마크 펜을 보고 왔습니다."

글보다 말에 더 재능이 있다

그보다 앞서 며칠 전, 허핑턴은 뉴욕에 있는 구글 사무실에 나타났다. 자신이 낸 12번째 책 <옳은(right, 우파와 같은 말이라는 점을 활용) 것은 틀렸다: 광기 어린 소수가 어떻게 미국을 납치하고 헌법을 찢어발기고 우리 모두를 위험하게 만들었나(그리고 이런 광기를 끝내기 위해서는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 (Right Is Wrong: How the Lunatic Fringe Hijacked America, Shredded the Constitution, and Made Us All Less Safe (And What You Need to Know to End the Madness)>를 홍보하기 위해서였다. 그 제목이 책의 내용을 다 말해준다. 말장난('흐린 전구: 의회의 저용량 에너지 법안'), 상투적인 생각('우익 미치광이들이 공화당이라는 정신병원을 운영한다'), 그리고 많은 군더더기 말들('알 카에다는 이라크에서 도주하고 있으나 군중은 여전히 그들에 대한 승인을 우렁차게 외치며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일회용 라이터들을 쥐고 흔든다')로 가득찼으며, 미디어에 대한 몇 가지 회의나 전쟁이 좋은 몇 가지 점, 의료 체계 등을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감정은 과잉이고, 뭔가를 실행해야 한다는 듯한 논조는 수전 포터(동기 부여 강사)나 마이클 무어를 연상케 한다.

허핑턴은 (책보다는) 직접 나서서 말하는 데에 더 재능이 있다. 그녀는 구글의 파랑, 녹색, 노랑의 큼직한 블록이 뒤섞인 한가운데 서서 이렇게 말했다. "미디어는 똑같은 점을 반복해 말합니다. 이라크가 '뒤죽박죽 주머니'라는 거죠. 지금 이라크는 뒤죽박죽 주머니가 아닙니다. 이라크는 유례 없는 재앙이에요. 이라크를 뒤죽박죽 주머니라고 하는 것은, 당신이 의사를 찾아갔더니 의사가 '뇌종양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좋은 소식도 있어요. 얼굴에 여드름이 없어졌네요' 하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집니다."

(구글에서의 강연 뒤 미국 선거 상황에 대해 벌어진 질문-응답 내용 생략)

직업적으로 웃기는 사람들에게 허핑턴은 친구로서, 또 농담의 소재로서 거부할 수가 없다. 그녀는 코미디의 황금 비율을 갖고 있다. 몸만큼이나 유연한 마음을 통제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술집에 들어가면 귀걸이를 떨어뜨린다. 자동차에 타면 머리를 찧는다. 엉덩방아를 찧으며 웃기는 코미디는 못생긴 남자나 예쁜 여자가 해야 가장 웃기는데, 괴짜 같은 에너지로 넘치는 허핑턴은 바보들이 등장하는 코미디 같은 상황에서 단골 주인공이 된다. 어느 날 저녁 식사 자리에서, 핸드백을 난로에 너무 가까이 둔 나머지, 그 안에 들어있던 블랙베리 폰이 녹아버렸다. 어느 날 내가 그녀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했는데, 잡음이 심했다. "머리가 모두 젖었어요!" 하고 말하는 뒤로 헤어 드라이어의 소음이 들려왔다.

작년에 허핑턴은 찰리 로즈(방송인)와 저녁을 먹으러 갔다가, 지하철 환기구 쇠창살을 잘못 밟아 발목 부상을 입었다(이브 생로랑의 하이힐을 신고 있었다). 로즈는 특수 수술 전문 병원의 발목 전문가 록 포스타노 박사를 소개해 주었다. 포스타노 박사는 지금 <허핑턴 포스트>에 글을 쓴다. 지난 5월의 이틀 동안 허핑턴은 다음의 사람을 <허핑턴 포스트> 블로거로 초빙했다: 롭 라이너(배우, 감독) 집에서 만난 적이 있으며 저자 서명 행사에서 다시 만난 어떤 사람, 강연을 들으러 온 15세 참석자, 책방 주인, 라디오 디제이의 아들로서 아스퍼거 병에 걸린 10대 소년, 살충제 살포에 항의하기 위해 녹색 옷만 고집하는 여자 등. 허핑턴은 마구잡이로 사람들을 초청한다. 구글에서 열린 강연에서 허핑턴은 청중에게 블로그 글을 이메일로 보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제 말은, 제가 여러분에게 제 이메일 주소를 알려드리겠다는 거에요."

"우리는 권력 있는 사람들을 좋아하죠"

돈이 아니라 영향력을 추구하는 것이 허핑턴을 추동하는 과제인 것처럼 보인다. 다른 사람의 관심을 지휘하고 마음을 바꾸는 일 말이다. 저자 서명 행사에서 한 팬이 물었다. "음... 좋은 냄새가 나네요. 무슨 향수를 쓰시나요?" 허핑턴은 이렇게 대답했다. "샘플이요! 공항 검색대를 통과할 수 있거든요." 그녀는 리무진을 타는 진보주의자(강남 좌파)다. 어느 날 밤, 로스앤젤레스에서 우리는 기사가 운전하는 프리우스를 탄 적이 있다. 허핑턴은 "이런 차를 타고 매일 출근해야 하다니 상상이나 할 수 있어요?" 그러나 그녀는 많은 다보스급 인사들처럼 음식, 옷, 숙소에 대한 허영심이나 특별한 선호는 가지고 있지 않다. 어느 날 나는 그녀가 무엇을 입고 있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귀걸이는 린다 레즈닉으로부터, 시계는 스티브 마틴으로부터, 실크 블라우스는 친구이자 디자이너인 도메니코 바카로부터 받은 것이었다. 마치 종이 인형과 같은 양상이었다.

듣기 좋은 이야기를 기민하게 내놓는 짧은 대화가 허핑턴의 특기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10분도 안 되는 동안 내 신발, 재킷, 가방, 옷 등을 칭찬했다. 허핑턴의 비판자나 친구들은 그녀의 특기 중 하나로 사람 사귀는 재능을 꼽는다. 지난 몇 년 간 그녀에 대해 나온 보도도 마찬가지다. 로스앤젤레스와 뉴욕의 상위 계급 사회에서는 다른 사람에 대해 질문을 계속하는 것을 지진아의 특출한 재능(다른 능력은 떨어지지만 한 재능은 탁월한)을 보여주는 증표 정도로 간주한다. 그러나 친근한 관계를 만들기 위한 허핑턴의 시도에는 저항하기가 어렵다. 그녀는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물을 것이다: "당신은 재충전 어떻게 해요? 좋아하는 음식이 있나요?" 코미디 작가 빌리 킴볼은 이렇게 말한다. "허핑턴은 유럽 여자들에게 특징적인 재능을 갖고 있죠.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데, 매력적이면서 동시에 바보같다는 느낌을 갖게 된단 말이에요. 그래서 질문에 대답해주려 하고, 그러다보면 필요한 것 이상으로 말하게 되는 거죠."

허핑턴이 이카루스이든 오프라 (윈프리)이든 간에 (왁스칠을 한 선의를 갖고 있으니 두 가지 모두의 측면이 있다고 해야 하겠다) 늘 호기심을 갖고 있다. 작년에 MTV 네트워크 사장이었던 톰 프레스턴은 허핑턴에게 세계 음악으로 가득 찬 아이팟을 선물로 주었다. 그는 이렇게 회상했다. "아이보리 코스트의 레게 스타인 알파 블론디의 노래들이 정말 좋다는 거에요. 그 가수는 흑인의 억압과 해방을 노래하거든요." 허핑턴은 어떤 의제를 일곱 단계의 방식으로 정리하기를 좋아하는데, 그런 딱부러진 태도와는 달리 친절함이 자주 드러나며, 이런 친절함은 특정한 계층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워싱턴 포스트>에서 일하는 27세 기자 호세 안토니오 바르가스는, 워싱턴 프레스클럽에서 주최하는 만찬에 참석했을 때 누군가가 그를 웨이터로 착각하는 해프닝이 벌어진 뒤, 옆에서 이 장면을 보고 있던 허핑턴이 인사하며 자신을 소개했다고 말했다.

인맥을 챙기는 것도 일의 한 형태다. 힘이 들며, 대신 보상이 따른다. 허핑턴은 이 일을 하는 데 있어 다른 일을 하는 것과 똑같은 부지런함을 투자한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영국에 있을 때, 글자 그대로 모든 것을 봤죠. TV 쇼를 봤고 대중적인 잡지를 읽었어요. 퍼질러 앉아 'Laugh-In'을 보던 기억이 나네요. 뉴욕으로 왔을 때에도 똑같은 일을 했어요. 내가 놓친 것을 따라잡으려 했어요." <옳은 것은 틀렸다>에서 허핑턴은, 부시 행정부 각료들이 국민을 두렵게 만드는 재능으로는 "1927년 양키스나 피츠버그 스틸러스, 전성기의 LA 레이커스의 압둘 자바나 제임스 워시 같다"라고 썼다. 스포츠는 "아주 가끔 친구들과" 본다는 사람이 내놓은 목록으로서는 인상적이지 않을 수 없다.

(환경운동가) 로리 데이빗이 허핑턴을 만난 것은 자신의 집에서였다. 데이빗과 남편은 로스앤젤레스 시장 안토니오 비야라이고사를 위한 행사를 여는 중이었다. 데이빗은 이렇게 회상했다. "허핑턴은 내게로 일직선으로 걸어와서 말하기를 '안녕하세요, 우리 등산을 좀 해야 해요' 했죠. 이게 그녀가 다른 사람을 만나거나 알고 싶을 때 잘 쓰는 접근 방법 중 하나예요." 이렇게 상대를 딱 찍어서 접근하는 방식은 과묵한 사람들 사이에서라면 나쁜 행동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 하지만 허핑턴의 친구 그룹은 스스로를 선택한 사람들이다. 린다 레즈닉은 "허핑턴은 저와 같아요. 우리는 권력 있는 사람을 좋아하죠"라고 설명한다.

(5월의 <타임> 선정 세계 100대 영향력 있는 사람들을 위한 만찬에 허핑턴이 참석한 이야기 생략)

마이스페이스나 페이스북 때문에, 사회적으로 신분을 올리는 일은 이제 낡은 개념이 된 것처럼 보인다. 사회적 신분 상승(social climbing)은 이제 사회적 네트워킹(social networking)이 되었으며, 사람들을 모으는 일은 부끄러울 것 없는 취미 활동이 되었다. 허핑턴의 친구들은 이러한 일을 정복하는 그녀의 태도에 감탄한다. 코미디언 빌 마는 이렇게 말했다. "아리아나가 당신의 친구가 되고 싶어한다면? 포기하세요. (그에 저항하는 것은) 강한 물살을 거스르려는 수영 초보자 같은 거에요. 언젠가 나는 그녀하고 큰 파티에 참석한 적이 있어요. 순간 '음? 아리아나가 어디 갔지?' 하고 찾게 되었는데, 그녀는 어느 새 루퍼트 머독 옆에 앉아서, 이 세상에서 가장 친한 오래된 친구처럼 이야기를 하고 있더군요."

어찌됐든 수많은 사람이 허핑턴의 사랑을 받고 싶어한다. 내가 페이스북에서 허핑턴을 친구로 신청했을 때, 자동 응답 메시지가 돌아왔다: "아리아나님은 너무 많은 친구를 갖고 있습니다."

경력의 출발이 되었던 반여성운동 책

허핑턴이 처음 미국을 온 것은 15살 때, 여름 교환학생으로서였다. 이 때에는 뉴욕과 펜실베이니아를 방문했다. 두 번째는 맨해튼이었다. 23세 때였는데, 책 <여성적 여성(The Female Woman)>의 저자였다. 이 책은 저메인 그리어의 <여성 내시(The Female Eunuch)>에 대한 반박이었다.

허핑턴에 따르면 출판사측은 책을 홍보하기 위해 바바라 월터스의 방송에 출연 약속을 잡았다. "별로 당황스러운 일이 아니었죠. 바바라 월터스가 누군지 전혀 몰랐고, '투데이' 쇼에 대해서도 들어본 적이 없었거든요." 10년 뒤 월터스는 허핑턴의 결혼식에서 신부측 들러리가 되었다. 월터스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아, 그때 뉴욕에 왔었죠. 그리고 그뒤 조금씩 알려지는 거에요. 아리아나 스타시노폴러스가 누군지."

허핑턴의 아버지인 콘스탄틴은 저널리스트이자 경영 컨설턴트였다. 어머니 엘리는 러시아 혁명 뒤 그리스로 이민 온 러시아 집안 출신이었다. 두 사람은 전쟁 이후 아테네 교외에 있는 키피시아의 요양원에서 만났다. 독일 점령 때 체포되었던 콘스탄틴은 수용소에서 풀려난 뒤 요양중이었고, 엘리는 결핵에서 회복중이었다. 엘리는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될 것이라는 통보를 받았지만, 결혼식 때 이미 배가 불러 있었다.

아리아나는 1950년에, 그녀의 여동생 아가피(고전극 배우이자 동기 부여 강사)는 1952년에 태어났다. 아리아나가 11살 때 부모가 헤어졌다. (아리아나가 자기 엄마에게 "엄마는 행복하지 않잖아요. 행복해야 해요" 하며 떠나라고 촉구했다는 설이 떠돈다.) 아가피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부모님은 서로를 정말 사랑했어요. 그러나 아빠는 집을 나가서 여기저기 여자친구를 두고 싶어했죠. 엄마는 이를 참을 수 없었고요." 그러나 아리아나의 부모는 서류상으로 이혼하지는 않았으며, 두 딸은 여전히 아버지와 친했다. 아버지의 사업은 오르락내리락 했다. 아가피는 이렇게 회상했다. "코르푸 섬에 놀러 가면 아빠는 도박을 했죠. 언니와 저한테 카지노 칩을 주었고, 우리는 이걸 돈으로 바꾸거나 작은 복권 기계로 게임을 하기도 했어요."

부모가 헤어진 뒤 엄마와 두 딸은 키피시아에서 아테네로 이사했다. 소방서 건너편의 아파트에서 살았다. (허핑턴은 <두려움이 없어진다는 것(On Becoming Fearless)>에서, 엄마가 지갑을 집 안에 두고 잠가버려 소방대원이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 꺼낸 일을 서술한 바 있다.) 독학을 한 엄마는 네 가지 언어를 말하는 사람이었는데, 딸들에게 따뜻하고 개방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다. 어느 토요일에 선생님 한 분이 아리아나의 가족에게 요가를 소개해 주었다. 엄마는 물구나무를 설 수 있었다. 허핑턴은 "엄마는 동네에서 좀 특이한 사람이었죠"라고 말했다. 그녀의 엄마가 자주 한 말은 "네 교육이 너의 지참금이다"라는 것과 "얘야, 푹 삭게 내버려둬라", 또 "무엇을 하든 100% 힘을 다해라"라는 것이었다. (요가는 좋았지만, 여러 가지를 함께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좋지 않았다. 허핑턴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포즈가 트리코나사나라고 했는데, "세 가지를 한꺼번에 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리아나는 자기 주장이 강한 부지런한 아이였다. 그녀는 자신의 생일날 이웃집 애들을 불렀다가, 얘들이 책 읽는 것을 방해한다고 다 쫓아버린 일화를 즐겨 이야기한다. 그녀와 아가피는 '백조의 호수'를 연기하곤 했는데, 춤은 아리아나가 꾸며냈다. 그러나 아리아나는 주로 책을 읽는 아이였다. 그녀는 "도무지 지루할 수 없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았죠. 그건 마치, '오, 이 세상에 이렇게 책이 많다니!' 하고 감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어요"라고 말했다.

아리아나는 청소년 때 영국으로 건너와 카너비 거리에 정착했다. 록큰롤에는 무관심했다. 그녀는 지칠 줄 모르는 논쟁자였다. 케임브리지에서의 마지막 해에 텔레비전 토론에 나갔는데, 주제는 여성주의였다. 여성해방운동에 대한 반론은 책 <여성적 여성>(1973)으로 발전했다. 이 책에서 허핑턴은 남성과 여성이 평등하지만 서로 다른 역할을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늘날 허핑턴은 자신의 책이 포스트 페미니즘의 전조가 되었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 책은 그녀 자신이 기억하고 싶어하는 것보다 훨씬 반동적이다. ("여성해방운동은 전적인 해방의 성취를 통해 모든 여성의 삶이 더 나은 쪽으로 변화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은 강한 동성애 기질을 가진 여성들의 삶만을 변화시키리라는 것이 진실이다.") 어쨌든 책은 성공했으며, 상식을 뒤집는 일로 유명인이 되는 경력의 출발이 되었다.

"허핑턴의 신비주의가 레빈의 저널리즘을 타락시켰다"

1971년에 아리아나는 BBC의 클래식 음악 퀴즈쇼인 'Face the Music'에 출연했다. 함께 참여한 패널리스트 중에는 <타임스>의 칼럼니스트 버나드 레빈이 있었다. 당시 42세로, 한 번도 결혼을 하지 않았다. 21세인 허핑턴은 레빈의 팬이었다. (그녀는 레빈의 칼럼을 신문에서 오려서 밑줄을 치며 읽고 특별한 파일에 묶어두곤 했다.) 허핑턴에 따르면, 퀴즈쇼 녹화가 끝날 무렵에 레빈이 그녀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나중에 그녀는 이렇게 썼다. "내가 기억하는 것이라고는 일주일 내내 그를 만날 준비를 했다는 것이다. 최근 북아일랜드 소식, 소련의 최근 상황, 새로 나온 바그너의 레코드 같은 이슈에 익숙하도록 노력했다."

허핑턴의 벼락치기 공부는 보상을 받았으며, 레빈의 격식 높은 세계에 계속 드나들 수 있게 되었다. 극장, 오페라, 바닷가재, 웩스퍼드로의 연례 휴가 등이었다. 지금도 레빈을 '내 인생의 큰 사랑'이라고 부르는 허핑턴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자신과 침대로 가는 일이 교양 교육이라고 말하곤 했죠." 이 시기에 나온 그녀의 책(<이성 이후(After Reason)>, '정치적 복음주의'에 대한 복잡하고도 격렬한 논박을 담았다)은 레빈의 자유주의적 정치관과 허세 스타일을 반영한 것이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그에 관해서라면 모든 것이 맛있었던 것이죠."

두 사람은 점차 (정신세계 같은) 형이상학적 관심을 추구하기 시작했는데, 그로 인해 친구나 동료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지고 언론의 흥미거리가 되었다.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이렇게 썼다. "기록에 따르면, 1979년 10월... 버나드 레빈은 자신이 오랫동안 추구하던 것에 완전히 빠져 있는 상태였다. 그 장소는 카페 로얄(런던의 호텔)이었다. 그의 동반자(즉 허핑턴)가 피워 놓은 향 연기와 동양풍의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레빈은 방에 초대한 많은 사람 앞에 일어서서, 150파운드를 내고 50시간의 '내면 훈련'을 받으면 인간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가를 역설했다. (이 훈련 프로그램 Insight는 영적 지도자 존-로저가 창안한 것으로, 허핑턴은 존-로저와 일정한 관계가 있었다. 허핑턴은 그날 모임에서 향과 동양풍의 음악이 어떤 역할을 했다는 점을 부인했다.) 2004년에 레빈이 죽었을 때, <타임스>의 부고 기사는 허핑턴의 "신비주의 문화에 대한 관심이 레빈의 저널리즘을 창피스러운 것으로 이끌고 갔다. 이를테면 자칭 현자인 바그완 쉬리 라즈니쉬를 칼럼에서 여러 차례 과장된 언어로 칭송한 것이다"라고 썼다.

두 사람 관계는 1980년에 끝났다. 아이를 갖기를 절실히 원하던 허핑턴은 소개장 편지들로 무장하고 엄마와 함께 뉴욕으로 건너왔다. 모녀는 이스트 61번가에 타운하우스를 얻었으며, 곧 복숭아와 무화과를 늘어놓은 테이블을 앞에 두고 댄 래더(CBS 뉴스 앵커)빌 팔리(CBS 사장) 같은 명망가들을 즐겁게 해주기 시작했다. 허핑턴은 매일 아침 바바라 월터스와 운동을 함께 했다. 잡지 <뉴욕>은 한 기사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아리아나 스타시노폴러스는 재산, 직위, 통상의 아름다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뉴욕 동부 사교계에서 가장 짧은 시간에 고정 등장인물로 올라섰다."

허핑턴은 자선사업가 앤 게티와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1985년에 게티는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자신의 저택에서, 텍사스 석유 부호이자 보수적 인맥을 가진 마이클 허핑턴과 아리아나의 만남을 주선했다. (마이클 허핑턴은 조지 H.W. 부시가 초대 상원의원일 때인 1968년 여름, 그의 사무실에서 인턴으로 일한 적이 있다.) 대륙을 가로지르는 몇 번의 단체 데이트를 더 한 뒤(억만장자 존 클루지의 버지니아 농장 방문, 월터스와의 여행 등), 마이클과 아리아나는 깊이 사귀는 관계가 됐다. 마이클은 내게 보낸 이메일에서 이렇게 썼다. "나는 아리아나의 지성과 유혹하는 힘(seductiveness)에 이끌렸습니다. 그녀 같은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었죠."

아리아나는 이렇게 회상한다. "내 친구들이 그를 묘사한 단어는 '사랑스러운(adorable)'이라는 거였어요." 그러나 두 사람의 결합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월터스는 이렇게 말했다. "마이클은 매우 좋은 사람이지만, 그가 아리아나의 정신을 가지지 않았다는 것도 분명했습니다. 그는 매우 과묵하고 정체를 알기 어려운 사람이죠. 그러나 뭐 어쨌든 점잖고 사랑스러워요."

두 사람은 1986년 4월에 맨해튼에 있는 성 바르톨로뮤 교회에서 90분에 걸친 성대한 식을 치르며 결혼했다. 500명에 이르는 하객에는 헤레라家, 키신저家, 로더머러스家, 버클리家 등이 포함되었다. 앤 게티는 결혼식 피로연 비용을 댔다. 철갑상어알, 송아지 고기, 동 페리뇽 샴페인 등이 나왔는데, 청구서에 찍힌 비용은 게티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높았다고 보도되었다. <Women's Wear Daily>는 이 결혼식을 몇 페이지에 걸쳐 보도했다. 그에 따르면 식이 끝난 뒤 허핑턴의 엄마는 시가를 피우며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리아나를 결혼시켰으니 이제 나는 그리스로 돌아갈 수 있겠다."

말싸움을 마다하지 않는 전사적 취향

전령사인 헤르메스는 그 변화무쌍한 재능으로 잘 알려져 있다. 허핑턴이 가장 좋아하는 그리스 신이기도 하다. 그러나 허핑턴의 여동생은 언니를 아테나에 비유한다. 아가피는 이렇게 말했다. "언니는 근면하고 일을 즐기며 무언가를 기막힌 방법으로 만들어 내는 걸 좋아하죠. 언니가 리허설하던 게 기억나요. 아마 무슨 연설이나 독백 같은 거였는데, 단어를 하나 놓치면 엄마에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거야' 하고 말했죠. 적당히 좋은 것 같은 건 없었어요."

아테나는 전쟁의 여신이기도 하다. 허핑턴 역시 말싸움을 마다하지 않는 전사적 취향을 갖고 있음을 그녀의 전 경력을 통해 과시해 왔다. 논쟁적인 이슈에 대한 그녀의 발언은 쪼그라들 줄을 몰랐다. 빌 프리스트(공화당 상원의원), 칼 로브(조지 부시 참모), 딕 체니, 선거 비용, 마약 전쟁, 이라크 전쟁(심지어 테러와의 전쟁에 의문을 제기하는 일이 그다지 인기가 없을 때에조차) 등이 그런 이슈였다. 지난 9월 <허핑턴 포스트>의 머릿기사는 '로마가 불타고 있다... 맥케인 진영은 립스틱, 돼지, 늑대, 사슴, 물고기, 스노우 차량, 유치원생을 상대로 한 성교육 따위를 말하고 있다'라는 것이었다.

2003년에 CIA 공작원 밸러리 플레임의 신분이 노출되었을 때, 허핑턴이 가장 열심히 공격한 상대 중 하나는 <뉴욕 타임스>의 기자 주디스 밀러였다. 허핑턴의 공격은 가차없었고 혹독했으며 미래를 예견하려고 했다. 그녀는 2005년 7월27일에 이렇게 썼다. "이런 시나리오라면, 밀러는 아무 죄 없는 단순한 필자로서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게 아니다. 그녀는 그 소용돌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이러한 글들은 가장 중요한 주장을 뒷쪽에 배치함으로써 논조를 누그러뜨리는 허핑턴식 자만심을 반영하는 것이었는데, 그런데도 혹독한 성격을 띠었다. 혹은 글이 혹독했기 때문에 그런 구조를 취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이렇게 썼다. "바로 이런 점이 밀러가 백악관의 '취재원'을 밝히고 싶어하지 않는 이유다. 그녀 자신이 그 취재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중에 밀러는 루이스 리비라는 사람이 취재원이라고 공개했다.

허핑턴이 근거 없는 낭설을 합리화하기 위해 수사학에 기대려 한다는 사실은 비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다. 2006년 3월에 허핑턴은 <배니티 페어>가 밀러를 옹호하는 글을 내보내자 이렇게 썼다. "이건 저널리즘이 아니다. 시골 구석에서 자기들끼리 짜고 치는 멍청이 놀음일 뿐이다." 그러나 허핑턴은 그녀 자신이 그런 방식으로 정보를 얻고 바로 그것을 근거로 하여 비판한다는 사실은 일부러 무시했다. 8개월 전에 허핑턴은 자신의 주장의 근거로, 밀러를 잘 아는 사람들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다고 썼다. "(내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밀러가 여름을 보내는 도시 주변에 가서 주말을 보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그녀의 주장의 비일관성을 지적하며 비판하려 한다면, 허핑턴은 고압적 태도로 나올지도 모른다. 1988년에 허핑턴은 (남편) 마이클이 레이건 행정부의 국방부 부차관으로 일하던 워싱턴 DC를 떠나, 캘리포니아의 산타 바바라로 이사했다. 이곳에서 마이클은 미 의회 제22선거구에 출마해 당선했다. 1994년에 그는 상원의원 자리를 놓고 다이앤 페인스타인에게 도전했으나 실패했다. 선거전은 치열했다.

산타 바바라의 신문 <인디펜던트>에서 오랫동안 정치 기사를 담당해온 닉 웰쉬는 허핑턴에 대해 비판적인 기사를 썼다. 그 뒤 벌어진 일에 대해 그는 이렇게 회상한다. "그녀가 내게 한 일은 이런 거였습니다. 우선 우리 둘 다 아는 이 지역 유명인을 찾지요. 그리고는 모두가 참석해야 하는 식사 자리를 주선합니다. 바로 거기서 감정적인 말들을 내뱉으며 횡설수설 떠드는 겁니다." (허핑턴은 웰쉬와 식사를 했다는 이야기를 부정했다.) 그럼에도 웰쉬는 허핑턴에 부정적인 칼럼을 계속 썼다. 허핑턴 가족이 불법 이민자를 유모로 썼다는 폭탄 소식과 후속 기사도 썼다. 그러자 아리아나는 웰쉬가 유모의 남편에게 돈과 영주권 제공을 약속하고 취재를 했다고 말하며, 그 남편이 서명한 공증서를 디밀었다. 웰쉬는 이러한 사실을 부정했다.

결별하거나 싸우다 화해한 사람도 군단 규모

허핑턴은 유혹적일지 몰라도,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데 늘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그녀의 정치적 변신 때문에 일부 지인과의 관계가 소원해졌다. 허핑턴의 딸 이사벨라의 원래 대모는 엘라인 차오였다. 그러나 차오가 부시 대통령의 노동부장관으로 임명되자, 두 사람 관계는 불편해졌다. 허핑턴은 이렇게 썼다. "그래서 나는 딸에게 엄마 친구들 중에서 다른 대모를 골라보라고 했죠." (린다 레즈닉이 새 대모가 되었다.) 허핑턴은 케임브리지 시절부터 "나와 진정으로 계속 관계를 맺은 사람은 없어요"라고 말했다. 이렇게 평생 친구가 없는 것에 대해 그녀는, 자신이 엄마나 여동생과 친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엄마는 2000년에 사망했다.) 그러나 한편 "내가 경험을 빨리 소비하기는 해요"라고 인정했다. 그녀는 자신과 같은 스타일의 역사적 전례로서 샤를 드 골(프랑스 대통령)을 들었다. 한 각료가 드골에게 모든 공직자의 친구들이 드 골의 정책에 반대한다고 말했을 때, 드 골은 "그럼 친구를 바꾸시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허핑턴의 경우, 친구를 바꾸는 것은 물론이고 정치색도 바꾸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그건 마치 이런 거에요. 어떤 일이 벌어졌잖아요. 근데 대처가 안 돼요.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는 거죠."

허핑턴과 결별하거나 싸우다 화해한 사람은 군단 규모다. 정치 컨설턴트 에드 롤린스와도 다툰 적이 있다. 그는 남편 마이클이 1994년에 상원의원에 도전했을 때 마이클과 함께 일한 사람이다. 1996년에 롤린스는 회고록을 펴냈는데, 거기서 아리아나에 대해 "내가 전국을 무대로 한 정치에 30년 동안 관여해오면서 만난 가장 무자비하고 부도덕하며 야심만 가득찬 사람이었다"라고 썼다. 롤린스의 책은 그 근거로 다양한 주장을 폈는데, 그 중 하나는 아리아나가 <배니티 페어>에 자신에 대한 기사를 쓴 기자 모린 오스를 뒷조사하기 위해 사설 탐정을 고용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허핑턴은 "나는 사설 조사원을 고용한 적이 없어요. 그저 내년 한 해를 에드 롤린스와 소송을 하며 보내야 할까, 아니면 나에 대한 그의 평가가 잘못되었음을 시간이 입증하도록 할까 하는 걸 생각할 뿐이죠"라고 말했다. 그녀는 자신이 (CNN의) 앤더슨 쿠퍼 방송에 나갈 때 우연히 롤린스와 마주친 적이 있다고 덧붙였다. 그 때 그녀는 <허핑턴 포스트>에 블로그 좀 하라고 그에게 말했다는 것이다.

허핑턴과 <배니티 페어>의 오스 기자의 갈등은 점점 커져갔다. 오스는 1994년 기사 '아리아나가 후보자 노릇하다'에서 여러 가지 비판적인 내용을 보도했는데, 그 중에는 마이클이 두 명의 젊은 남성 직원을 "껴안았다"라는 것, 그리고 아리아나가 아동 학대 기금을 후원한다고 말했지만 그 기금의 활동에 기여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 등이 포함되었다. (이 기사는 선거 몇 주 전에 지면에 실렸으며, 전국잡지협회에서 수여하는 상의 후보 기사로 선발됐다. 물론 허핑턴 부부는 기사 내용 대부분을 부정했다. 마이클 허핑턴은 "나는 사람들을 좋아하며, 그래서 가끔 껴안기도 합니다"라고 말했다.) 오스는 또 아리아나가 유권자들에게 기독교적인 가치를 선전하면서, (사이비나 이단으로 평가받기도 하는) 내부 영적 각성 운동 교회(MSIA)의 지도자 존-로저와의 긴밀한 관계는 그저 '친구'라고 부름으로써 제대로 드러내지 않는다고 썼다. 허핑턴은 이렇게 말했다. "구석에 몰린 것 같았죠.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을 설명하려 했으니까요. 두 세계는 다른 건데 말이죠."

오스는 팀 러서트(TV 언론인)의 아내였다. (오스와의 갈등이 있고 난 뒤) 허핑턴은 러서트가 올 여름에 죽기 전까지 여러 차례 그를 비판했다. 책 <옳은 것은 틀렸다>에서는 한 섹션을 털어 그를 비판했는데, 섹션 제목은 '러서트를 조심하라!'였다. 뿐만 아니라 <허핑턴 포스트>의 시리즈 기사에서도 그를 '손쉽게 출세하는 저널리스트' '상식에 찌든 좀비' 등으로 부르며 계속 비난했다. 이에 대해 허핑턴은 자신의 비판이 전적으로 직업적 기준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러서트가 속했던) NBC 뉴스의 대변인인 제니 타키오프는 코멘트를 거절했으며, 오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정치 평론가이자 러서트의 친구인 제임스 카빌은 "팀(러서트)이 인터뷰어로서 무능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아리아나 허핑턴 한 명뿐입니다. 개인적인 공격이죠"라고 단언했다.

최근에 허핑턴의 또다른 공격 목표가 되는 것은 밥 우드워드(워터게이트를 파헤친 기자)다. 그에 대해서는 "미국 저널리즘의 멍청한 금발" "권력 가까이에 있다는 것에 도취된 나머지, 내미는 것은 무엇이든 받아들인다" 같은 말로 공격했다. 우드워드는 이에 대해 "아마 마케팅 전략이겠죠"라고 말했다. 허핑턴은 <옳은 것은 틀렸다>에서 <뉴욕 타임스> 칼럼니스트인 윌리엄 크리스톨에 대해서도 썼다. 그가 휴대폰에 대고 "막판 철회 전략이 먹혀들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는 것인데, 어느 날 오후 4시에 뉴욕에서 워싱턴으로 가는 기차에서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넘겨들었다는 것이다. 허핑턴은 이 언급에 대해 "승리를 착각하는 사람들의 허튼 소리"라고 묘사했다. 크리스톨은 나에게 다음과 같은 이메일을 보내왔다.

그런 보도가 나왔을 때, 나는 아리아나가 내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도 못했다고 생각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녀가 열받은 상태에서 어깨 너머로 들은 대화를 받아적는 일에 익숙하다고는 생각하지 않거든요!) 하지만 나 역시 대화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고, 물론 적어둔 것도 없기 때문에, 그냥 냅뒀습니다. 그녀가 '딱 걸렸어!' 하는 식으로 쓴 것을 <허핑턴 포스트> 기사에서 봤는데(책은 안 봤습니다), 참 웃겼어요. 그도 그럴 게, 그녀가 그 자리에 있었다는 걸 나도 알고 있었고, 우리는 3분 동안이나 대화를 나누며 서로 어떻게 지내는지, 애들은 어떤지 등등에 대해 말했거든요.

남편의 양성애에 대한 상반된 진술

마이클 허핑턴은 내게 보낸 이메일에서 "아리아나와 내가 결혼한 것은 우리가 서로 미치도록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라는 점을 100% 확신할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그녀가 아름답고 내가 부자라는 사실이 특이할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미모와 재산이 우리 두 사람을 결혼으로 이끈 것은 아닙니다."

1994년 상원의원 선거에서 마이클 허핑턴은 피를 말리는 재검표 끝에 페인스타인에게 패배를 선언했다. 표차는 2%도 나지 않았다. 그는 이 선거에 자기 재산 3천만 달러 가까이를 쏟아부었다. 선거에 패배한 지 3년 뒤에 두 사람은 이혼했다. 아리아나는 이렇게 회상했다. "마이클은 유럽에 가서 보트나 타자고 했죠. 그러나 저는 내 인생을 갖고 계속 글을 쓰고 싶었어요. 그는 빠져나오고 싶어했고, 저는 들어가고 싶었죠."

1998년에 마이클은 <에스콰이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남성들과 성적 관계를 가진 적이 있다고 인정했다. 나는 아리아나에게 마이클과 결혼할 때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냐고 물어보았다. 그녀는 과거에는 같은 질문에 대해 몰랐다고 대답해 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자신과 마이클이 이 문제에 대해 말하지 않기로 약속했다는 대답을 내놨다. 같은 질문을 마이클에게 했는데, 그는 이렇게 말했다. "1985년 12월(결혼하기 1년 전)에 휴스턴의 내 집에서 아리아나를 앉혀놓고 말했습니다. 내가 여성뿐 아니라 남성과 데이트를 해왔다고요. 그러니까 그녀도 알고 있었던 겁니다. 내 양성애 취향을 그녀에게 숨기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죠. 그게 아리아나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겁니다."

오늘날 두 사람은 친구다. 결혼 20주년 기념으로 무엇을 했냐고 물었다. 마이클은 아리아나에게 노란 장미 꽃다발과 카드를 보냈으며, 카드에는 "우리는 늘 훌륭한 두 딸의 부모로 남아있을 거요"라고 썼다고 말했다. 그는 동방정교회로 개종했으며, 이따금씩 영화를 제작한다.

마이클과 이혼한 뒤 아리아나는 두 딸 크리스티나(19), 이사벨라(17), 그리고 동생 아가피와 함께 산다. 그들의 집은 저택으로 묘사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동화책에 나오는 작은 집에 더 가까운 느낌이다. 백합 모양의 뾰족쇠가 달린 녹색 칠을 한 철대문은 여닫이로 열리는데, 이 문이 비밀의 정원으로 통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흰색 벽돌로 된 건물 벽은 담쟁이덩굴로 뒤덮였고 농구 골대가 매달려 있다. 가족 자동차인 프리우스도 있다. (허핑턴의 딸들은 이 차를 '프리이'라고 부른다.) 집 안에는 로코코, 빅토리아, 선(禪) 양식의 장식품들이 기분좋은 정도로 어지러져 있다. 선반은 크리스티나와 상원의원 바바라 미컬스키가 함께 찍힌 사진, 초, 향, 비타민통 등으로 가득 찼다.

동생 아가피에 따르면 허핑턴은 "차 하나도 끓일 줄 모른다". 허핑턴이 가족을 부양하지만, 가족에 완전히 의존하기도 한다. 딸들에 대해서는, 자신의 엄마가 자신에게 그랬듯 무조건적인 사랑을 스스럼없이 드러낸다. 어느 날 이사벨라가 아팠는데, 허핑턴은 딸을 아기처럼 무릎에 누이고 머리를 만져 주었다. (내가 이 집을 찾아가기) 전날 시애틀에서 만났을 때, 허핑턴은 딸과 통화하면서 전화에 대고 햄스터 같은 뽀뽀 소리를 내며 말했다. "엄마 침대에서 잘 거지?"

아가피는 "우리는 삶을 함께 살아요"라고 말했다. (이 가족은 두 명의 가정부를 두고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불법 이민 시비가 일었던 가르시아다. 그녀는 지금은 합법 체류자다.) "하나의 팀이 되어서, 할 일의 목록을 만들고 수행하죠. '자동차를 서비스 센터에 맞겨야 하는 거 잊지 마' 이런 식이죠. '그럼 네가 가서 쇼핑해'하고 지시하는 식은 아니에요. 언니는 종종 저한테 이런 식으로 말해요. '나 시간이 너무 없으니까 네가 그거 좀 처리해 줄래?'" 아리아나가 출장으로 떠나 있을 때가 아니면, 하루가 끝날 때 그녀와 아가피는 아리아나의 욕실에 들어가 함께 화장을 지운다.

캠프나 키부츠(이스라엘 공동체) 같은 괴상한 공동체가 만들어내는 난장판은 가정부가 관리한다. 어느 날 가정부 한 명이 70달러가 필요하다고 하자, 허핑턴은 자신의 지갑을 열어서 가져가라고 말했다. 몇 분 뒤, 가정부는 허핑턴의 지갑을 찾을 수 없다고 말했다. "아가피에게 물어봐요." 허핑턴이 말했다. 가정부는 "지금 아가피는 명상을 하고 있는데요" 하고 대답했다.

첫 애를 낳고 나서 유체이탈 경험

스타시노폴러스 자매의 우주를 채우고 있는 것은 비전, 조짐, 본능 같은 것이다. 허핑턴의 첫 번째 임신은 사산으로 끝났는데, 그런 일이 벌어지리라는 것이 꿈으로 암시되었다고 한다. 자궁 속 아이의 눈이 떠지지 않는 꿈이 자꾸 꾸어지더라는 것이다. 허핑턴은 크리스티나를 낳은 지 얼마 안 되어 유체이탈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그녀가 새천년을 맞아 '하나되기'를 찬양하는 뜻으로 펴낸 책 <네 번째 본능: 영혼의 부름(The Fourth Instinct: The Call of the Soul)>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나는 내 몸을 떠났다. 공중에서 나 자신, 아기, 침대맡 탁자 위의 화분, 그리고 방 전체를 바라보았다. 그 시간이 얼마나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평화 속에서 공중을 떠다녔다."

지난 몇 년간 허핑턴의 생각을 묶어주는 것이 있다면, 그건 반(反)상대주의(anti-relativism)일 것이다. 그녀는 늘 함께하고 믿는 사람이었지, 무관심하거나 냉소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의 세계관에서 볼 때, 가장 큰 죄악은 불가지론일 것이다. <네 번째 본능>에서는 이렇게 썼다. "기술적 변화는 90년대에도 계속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변화는, 인간의 마음 속 깊은 동굴을 따라 강물처럼 흐르는 지혜를 영접한 사람들이 가져올 변화에 비하면 하찮은 것일 뿐이다." 나중에 인터넷 거물이 되는 사람이 이러한 예언을 하였다는 것은 좀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허핑턴의 사업과 영적 충동 모두는 그녀의 오랜 믿음, 즉 위대한 변화가 지금 우리 시대에 일어나고 있으며 그녀 자신이 그런 변화의 한 요소로 운명지어졌다는 믿음에서부터 나온다. 허핑턴은 자신의 생애를 통틀어, 대중운동, 인간 잠재력, 인간의 개선 가능성 같은 것에 일관된 흥미를 유지해 왔으며, 마찬가지로 약리학, 공리주의, 스키너 상자(동물의 학습 능력을 연구하는 데 쓰이는 장치) 같은 것은 일관되게 회의하여 왔다. 허핑턴에게는 자신의 인생 자체가 최대의 프로젝트인지도 모른다.

허핑턴은 자신을 개발하려는 50년 세월 동안 별별 일 다 해보았다. 불 속 걷기, 목록 적기, 일기 쓰기, 수은 해독 치료, 동종 요법(문제를 일으키는 것과 비슷한 물질을 주입하여 증상을 완화시키는 요법), 카이로프랙틱, 적외선 사우나, 피부 미세박피술, 심신 통일 훈련(est) 등. 2006년에 펴낸 책 <두려움이 없어진다는 것>에서는 이런 것도 했다고 썼다. "베버리 힐즈 다이어트, 현미 다이어트, 자몽 다이어트, 양배추 수프 다이어트, 탄수화물 배제, 지방 배제, 칼로리조차 배제된 다이어트 등." 현재 그녀가 매일 하는 요법에는 요가, 명상, 기도가 포함된다. 허핑턴은 1996년부터 자기 수입의 10%를 자선 사업에 기부해 왔다. 그녀의 영적인 처방(최근에 올린 블로그 포스팅에서는 오바마에게 잠을 더 자라는 충고를 주는 데 다섯 단락을 썼다)은 종종 정치 세계에서 웃음거리가 된다. 맥케인의 참모인 마크 솔터는 저녁 식사 자리에서 (허핑턴과) 논쟁을 벌인 뒤 <워싱턴 포스트>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 여자는 괴짜고 가식덩어리이며 관심받기를 추구하는 여류 명사일 뿐입니다." 나는 허핑턴에게 이같이 여성임을 들어 공격하는 일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보았는데, 이렇게 대답했다. "누군가가 당신을 좀도둑이라고 부른다면, 그걸 신경쓰겠어요?"

지난 몇 년 동안 허핑턴은, MSIA의 영적 지도자 존-로저와의 관계에 대해 신경질적으로 반응해 왔다. 동안(童顔)을 한 존-로저는 1934년 유타의 레인즈 출신으로, 원래 이름은 로저 딜라노 히킨스였다. 1963년에 신장결석 수술을 받다가 혼수상태에 빠졌고, 9일 뒤에 정신을 되찾은 뒤 이름을 바꿨다.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은 그가 '신비로운 여행자 의식'이라는 특이한 권능을 가진 것으로 믿는다. 1988년에 보도된 <LA 타임스> 기사에 따르면, 존-로저는 교회 재정과 성 관련 부적절한 행위를 한 적이 있었다. (존-로저는 대변인을 통해, 그러한 혐의가 "처음 나왔을 때나 오늘날이나 마찬가지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남아 있다"라고 말했다.) 그가 사람의 신체를 보는 시각이 특이한 것은 분명하다. 그는 <섹스, 영혼, 그리고 당신(Sex, Spirit & You)>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썼다. "여성이 자신이 가진 창조적 흐름을 차단당하고 이를 표현하지 못해 그 에너지를 다시 창조성의 중심으로 되돌이키는 경험을 하게 되면, 생리혈의 흐름과 관련한 많은 문제를 갖게 된다."

허핑턴과 존-로저 간의 관계는 그녀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해왔다. 바바라 월터스는 80년대에 허핑턴이 존-로저를 자신에게 소개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나는 허핑턴이 그를 바라보는 식으로 그를 보지는 않았죠. 이 때문에 허핑턴과의 관계가 좀 소원해졌고, 다른 사람들도 그랬을 겁니다."

최근 허핑턴은 자신과 존-로저와의 관계에 대해 덜 수세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취재를 위해 그녀를 만난 첫날, 샌프란시스코에서 내게 자신의 아이팟을 건네주었는데, 그 중에는 '다차원적 의식을 위한 내면 조절'이라는 이름이 붙은 명상 프로그램이 들어 있었다. 그걸 눌러보았더니 이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당신이 당신 자신에게 덧씌운 모든 억압과 한계를 벗어버리세요. 억압과 한계가 들어있던 공간을 신(神)이 채우도록 하세요."

"자신이 초래한 피해에 무감각한 사람"

허핑턴은 이른 저녁, 샌프란시스코에서 검은 자동차 뒷좌석에 앉아 휴대폰에 대고 이렇게 말했다. "이거, 정치 문제 관련 전화죠?" 그녀는 뉴욕과 워싱턴에 있는 <허핑턴 포스트> 편집자 및 기자들과 전화 회의를 하는 중이었다. 정치 담당 기자 샘 스타인에게 "샘,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했다. 그들은 스타인이 작성하고 있는 기사, 즉 클린턴의 후원자에 대한 기사에 대해 협의했다. 상당히 민감한 기사처럼 보였으며, 스타인의 취재원 신분은 보호되어야 했다. 허핑턴은 전화에 대고 이렇게 말했다. "당신을 교도소로 면회가는 일 같은 건 벌어지지 않을 것 같아요. 주디 밀러를 생각해 봐요. ... 결과적으로 그녀 자신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가... 하하하 ... 감옥에서는 블로그 하는 게 허용되나요? 당신, 감옥에 간다면 오스카 와일드처럼 <심연으로부터(De Profundis)> 같은 걸 쓸 수도 있겠네요." (오스카 와일드는 동성애와 관련한 논란을 벌이다 투옥되었는데, 거기서 옥중기 <심연으로부터>를 썼다.) 허핑턴은 이런 통화를 하는 동안 또다른 휴대폰을 체크했으며, 얼굴에 파운데이션을 바르기도 했다. <허핑턴 포스트>의 국내 뉴스 에디터 니코 피트니에게는 이렇게 말했다. "아, 그거 알아요? 척 헤이글(상원의원)과 인터뷰한 적이 없었네요. ... 그에게 안부 전해줘요!"

네브라스카 출신 공화당 의원으로 오바마에게 우호적인 헤이글은 허핑턴이 좋아하는 현 정치인 중 하나다. 과거에 그녀는 뉴트 깅리치의 조수로 일했고, 존 맥케인의 추종자였다. 맥케인의 2000년 대통령 선거운동인 'Straight Talk Express' 때 동승하기도 했다. 보수주의자이면서도 낙태나 총기 규제를 지지했다. 공화당에 대한 그녀의 환멸은 2000년 양당의 전당대회 때 '가상 전당대회(shadow convention)'를 여는 데 참여한 것에서 정점에 이르렀다. (shadow convention은 2000년 여름 대통령 선거를 위한 양당 전당대회가 열릴 때, 기성 정치와 그에 대한 주류 미디어의 보도에 항의하는 사람들이 독자적인 행사를 열고 보도 시스템을 구축한 것을 가리킨다.) 당시 맥케인이 주요 연설자였는데, 허핑턴은 그를 "현 정치 체계에서 가장 탁월한 개혁의 목소리"라고 소개했다. (지금 (기사가 쓰인 2008년) 허핑턴은 맥케인을 '트로이의 목마'라고 생각한다. "2000년 대선 경선에서 패한 때의 맥케인이 더 늙고 괴팍한" 무법자로 위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허핑턴은 2004년에 민주당 후보 존 케리를 지지하는 태도를 취함으로써 전향을 마무리지었다. 미식축구 해설가인 알 마이클스는 어떤 경기의 20야드 전진에 대해 평하면서 "아리아나 허핑턴보다 더 현란한 방향 바꾸기"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 자신은 자기의 정치적 진화가 간단한 원칙에 입각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사회의 병폐를 치료하기에는 사적 영역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허핑턴은 브렌트우드의 자기 집에서 일한다. 그녀의 사무실은 천장이 나무로 테가 둘러져있고 책이 가득 쌓인 호화로운 공간이다. 로스앤젤레스의 <허핑턴 포스트> 직원들도 그곳에서 근무한다. 내가 찾아간 날, 허핑턴은 쾌활한 태도로 직원 네 명(블로그 담당 편집자들)을 위로하고 있었다. 이들은 2층의 한 구석에 감추어진 사무실에서 일하는데, 인사 문제가 있었다. <허핑턴 포스트>가 시작된 이래 정직원과 계약직 직원을 모두 합쳐 15명 이상이 사무실을 떠났다. (헌터 S. 톰슨과 3년간 일했던 편집자는 <허핑턴 포스트>에 온 지 넉 달만에 떠났다.) 허핑턴은 이렇게 말했다. "사무실에 오는 사람 중 다수가 필자가 되기를 원하죠. 그런데 실제 해야 하는 일이 행정 관리 같은 거라면 사람들은 불쾌하게 생각합니다. 시작할 때 그런 점을 분명히 밝히지 않은 것은 제 책임이에요." 허핑턴은 직원을 채용할 때 비밀 유지 계약에 동의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직원 중에서 공개적으로 취재에 응하려는 사람은 드물었다. 나는 <허핑턴 포스트> 로스앤젤레스 사무실에서 일했던 전 직원 10명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중 한 명인 메이건 카베리는 <허핑턴 포스트> 직원으로서의 생활이 대체로 긍정적이었다고 말했다. "제가 했던 가장 값진 직업적 경험일 거라고 생각해요." (카베리는 지금은 <허핑턴 포스트>에서 블로그를 한다.)

그러나 다른 많은 직원은 허핑턴을 괴상한 고용주라고 표현했다. 그녀의 지시 중 일부는 혈기왕성한, 더 나아가 무척 신경질적인 보스가 내리는 전형적인 지시처럼 들렸다고 한다. 한 직원은 문서에 보통의 은색 클립이 아니라 분홍색 클립을 끼웠다고 책망을 들었다. (허핑턴은 그런 적이 없다고 말했다.) 2006년에 <허핑턴 포스트>에서 일한 핏 킬리는 이렇게 말했다. "아리아나는 스스로 예쁘고 유머스럽고 착하고 등등의 상태가 되고싶어할 때는 훌륭한 상사에요. 그러나 그녀가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일이 벌어질 때도 있고, 그런데도 직원들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때도 있어요. 직원들을 짜증나게 하는 것 중 하나는, 그녀가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않고 다음과 같은 일을 벌인다는 겁니다. '이봐요, 이렇게 하세요' 하고 지시한 뒤 나중에 말하죠. '당신, 왜 그런 일을 하죠? 내가 그런 거 하라고 시키지도 않았잖아요.' 그럼 직원은 '사장님이 하라고 하셨는데요?' 하고 말하지 않겠어요? 그럼 그녀는 '내가 왜 그런 일을 시키겠어요? 멍청한 말 말아요' 한다는 거죠. 따라서, 직원은 잘못한 것도 없이 계속 꾸중을 듣든지, 아니면 사장이 거짓말쟁이라고 생각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자꾸 내몰리게 됩니다."

허핑턴을 칭송하는 사람들도 그녀의 행동 방식이나 강도(强度)와 관련하여 그녀를 비난하는 사람들과 같은 이야기를 하곤 한다. 허핑턴 가족과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온 데이빗 랙은 이렇게 말했다. "아리아나는 싸움을 해 나갈 때, 상대를 포로로 잡지 않고 그냥 다 죽여요. 그리고 자신이 초래한 피해에 대해서도 의식이 없는 경우가 많아요. 그냥 앞으로만 계속 나가고, 그렇게 하면 피해 같은 것은 저절로 치유되리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건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단, 미국 안에서만요!"

합성하는 재능이 가져온 표절 시비와 허위 포스팅

허핑턴이 인용하는 자료들은 방대하다. 주디 밀러와 오스카 와일드를 단숨에 토해낸 바로 그 날, 나는 그녀가 햄릿, 나프타(NAFTA), 서파키스탄, 어팔로 크리드(권투 영화 <록키>에 나오는 헤비급 챔피언) 등에 대해 늘어놓는 것도 들을 수 있었다. 언젠가 그녀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인 랜드(미국 작가, 철학자)의 책을 그리스어와 영어로 읽었던 기억이 나요. 어느 날 교장실로 불려갔죠. 내가 쓴 작문이 아인 랜드의 철학을 반영했기 때문이에요." 이렇게 자신이 상당한 지적 능력을 가졌음을 은근히 암시하는 것은 사라지지 않는 그녀의 성격이다. 어떤 의견을 형성하고 이를 주장하는 허핑턴의 방식에서 핵심이 되는 작업은 조사며, 그것도 방대한 조사다. <허핑턴 포스트>의 창간 편집자 로이 시코프는 이렇게 말했다. "아리아나는 모든 것을 알고 싶어합니다. 그녀는 정보를 빨아들이는 최대 용량을 갖고 있고, 이런 정보를 즉시 사용할 줄 압니다. 이런 장면을 실제로 본 적이 있어요. 그녀가 어딘가 서서 연구 자료를 하나 보더니, 바로 TV에 나가 정확한 말을 사용하며 가장 중요한 세 가지 핵심을 짚고 나머지는 다 버려버리는 거에요."

이렇게 합성하는 재능 때문에 그녀의 경력과 관련해 종종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녀가 쓴 마리아 칼라스 전기는, 칼라스에 대해 그녀보다 앞서 전기를 쓴 작가로부터 표절 시비를 촉발시켰다. 이 소송은 법정 밖에서 양자의 협상으로 타결되었다. 버지니아 대학 미술사 명예교수인 리디아 가스먼은 허핑턴의 피카소 전기 내용 중 일부가 자신의 미출판 박사학위 논문과 유사하다고 주장한다. 가스먼은 1994년에 모린 오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허핑턴은 내가 20년 동안 만들어 낸 것을 훔쳐갔어요." 가스먼은 소송을 제기하지는 않았다. (허핑턴은 두 표절 주장 모두 부정했다.)

2006년에 <허핑턴 포스트>는 표현의 자유와 관련한 기사를 올렸는데, 필자는 조지 클루니였다. 클루니는 성명서를 발표하여, 자신이 그런 글을 쓴 적이 없다고 밝혔다.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허핑턴은 클루니가 공개적으로 한 여러 발언을 취합하고 주물러서 블로그 글로 꾸며낸 뒤, 확인을 받기 위해 영화사에 보냈다. 물론 영화사는 그런 확인을 해줄 위치가 아니었다.) 저널리즘 비평가들뿐 아니라 그녀 자신의 블로거들도 이런 일을 비판했다. 그와 같은 복사-붙여넣기 전술은 자신들의 글의 가치마저 실추시킬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압력을 받은 끝에 허핑턴은 자신이 잘못했음을 인정하는 글을 발표했다. 제목은 '교훈을 배우다'였으며, 클루니 건이 단 한 번의 실수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보다 10개월 전에 남캘리포니아 대학에서 발행하는 <애넌버그 온라인 저널리즘 리뷰>의 기자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한 적이 있었다. "그룹 블로거들(즉 <허핑턴 포스트>에 참여하는 명망가들)을 위해 글을 대신 써주는 대필 작가나 조수들이 존재하지 않는가?" 허핑턴은 "그런 일은 없다"라고 대답했다.

허핑턴은 자신의 사생활에 대한 비판은 비교적 편하게 헤쳐나왔지만, 직업적 잘못에 대해서는 일정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2003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가 대표적이다. 당시 허핑턴은 티나 브라운(언론인)과 함께 아일랜드에서 48시간째 휴가를 보내는 중이었다. 브라운은 이렇게 썼다. "어떤 찻집을 갈지, 아니면 빗물에 쓸려 만들어진 절벽을 구경하러 갈지를 놓고 두 집의 아이들과 입씨름을 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로스앤젤레스로 돌아와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민주당 소속 현직 주지사 그레이 데이비스는 전례없는 소환 선거 대상이 되어 있었다. 허핑턴은 데이비스를 쫓아내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으며, 그럼으로써 포르노 스타 메어리 캐리나 아역 스타 출신 게리 콜맨 등 희한한 이들이 후보로 나선 선거에 발을 걸쳤다.

전 남편 마이클 허핑턴에 따르면, 원래는 그와 아리아나 모두가 후보로 나서는 데 관심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이들이 말리는 바람에 둘 다 선거에 나서지 않기로 약속을 했다. 그는 이렇게 썼다. "그렇다. 우리는 누구도 주지사 선거에 나가지 않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그녀는 마음을 바꾸었으며, 그게 그녀의 특권이었다." 마이클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아리아나가 선거에 나서겠다고 하자 딸들이 격분하여 집을 나갔을 정도였으며(아리아나는 이 부분은 부정확한 말이라고 했다) 자신은 아놀드 슈워제네거 지지를 선언했다고 말했다.

허핑턴의 선거 운동은 시작부터 문제투성이였다. 그녀는 후보 신청서를 제출하러 시청에 가는 시간을 슈워제네거가 제출하러 가는 시간에 맞췄다. 그의 지명도에 업혀보려는 희망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시도는 슈워제네거의 말을 듣기 위해 설치된 수많은 마이크를 엎어뜨리는 것으로 끝나고 만다. (슈워제네거가 출마를 선언할 당시의 동영상을 보면, 실제로 그의 주변에 허핑턴이 서성거리는 모습이 보인다.) 당선 가능성이 점점 옅어져가자, 허핑턴은 녹색당 소속 정치인인 피터 카메호와 연합하는 최후의 카드를 썼다. 9월 말이 되자, 지난 2년 동안 허핑턴에 낸 세금 총액이 771달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폭로되었고, 결국 후보를 사퇴했다. (허핑턴은 당시 수입의 대부분이 (전 남편 마이클로부터 받는) 자녀 양육비였다고 말했다.) 지난 달에 사망한 카메호는 나중에 이렇게 회상했다. "허핑턴은 다시 정치적 태도를 뒤집었으며, (현 주지사 탄핵을 표방하며 나섰던) 선거를 포기한 뒤 주지사 데이비스와 함께 그의 비행기를 타고 돌아다녔다. 내가 그녀를 겪어본 바에 따르면, 허핑턴은 자아 본능이 인생에서 큰 역할을 하는 사람이며, 자신의 정치적 원칙을 지킬 것인가의 여부는 바람이 어느 방향에서 불어오는가, 또 단기적으로 어떻게 해야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가에 따라 결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선거 기간에 수전 에스트리치는 아리아나를 나쁜 엄마로 묘사하는 지독한 칼럼을 썼다. 허핑턴은 이에 대해, 선거 운동을 위해 개설한 블로그에서 "여성은 사업과 정치 영역에서 '유리 천장'을 부술 수 없을 것처럼 보인다"라고 썼다. "그것은 아마도 여성이 어떤 권력을 취하려고 하면 남성 지배적인 정치 문화가 이를 가로막으려 하기 때문일 것이다." 허핑턴은 전 생애에 걸쳐 여성이라는 점 때문에 좌절한 적이 없다고 칭송받아왔지만, 이 때만은 그녀로서는 드물게 취약한 상태였다. 허핑턴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과 같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여성에게 롤 모델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그 선거에 나가기 전까지는 몰랐어요."

"<허핑턴 포스트>로 나비가 되었다"

2005년 5월9일에 <허핑턴 포스트>가 시작되었을 때, 일부 비평가들은 이를 허핑턴의 또다른 돈키호테적인 시도로 평했다. <LA 위클리>의 니키 핀크는 "허핑턴의 블로그는 너무나 폭발적이어서, 영화로 치자면 <갱스터 러버(Gigli)>, <사막 탈출(Ishtar)>, <천국의 문(Heaven’s Gate)>을 하나로 합쳐놓은 것에 비견할 만하다"라고 썼다. 그 사이트가 성공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심지어 허핑턴 자신도 확신할 수 없었던 듯하다. 그녀는 <허핑턴 포스트>를 만드는 데 자신의 돈은 투자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친구들이 즉시 돈을 대겠다고 말했죠. 나는 내 땀이라는 자산을 투자하면 될 것 같았고요."

사이트는 성공이었다. 창간 이래 허핑턴과 레러는 1천1백만 달러를 벌었다. 올해(2008년)에는 기자들을 고용하기 시작했으며, 시카고에 지국도 냈다. 민주당 전당대회장에서 공간을 얻어낸 뒤, 대회 참석자들을 대상으로 하여 요가 레슨과 얼굴 미용을 공짜로 해 주었다. (이들은 아마도 잠재 고객일지도 모른다. <타임> 최근 기사는 <허핑턴 포스트> 판매 평가액이 2억 달러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허핑턴은 조만간에 회사를 팔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허핑턴 포스트>가 AOL에 팔린 것은 2011년 2월이다.)

허핑턴과 친한 많은 사람은, 그녀가 성공적인 기업을 운영하면서 주지사 선거에서 당한 창피로부터 벗어나서 좀더 편안해진 것처럼 보인다고 말한다. 동생 아가피는 이렇게 말했다. "전에는 언니가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고 여기는 것 같았는데, 이제는 세상을 훨씬 편하게 대한다고 생각해요. 많은 것을 벗어버린 것 같아요. TV에 나오는 모습도 훨씬 부드러워진 것 같아요. 왜? 이제 더 이상 자신을 어떤 방식으로든 증명해야 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지요." 톰 프레스턴은 한때 허핑턴을 경량급으로 간주했던 업계 남성 거물들이 이제 다른 태도를 보인다고 말했다. "그들은 허핑턴에 매료됐지요. 감각과 결심 말고는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해 사업을 이루어 냈으니까요."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나비에 비유한다. "내가 보기에 이것은 최후의 번데기이고 최후의 탈피인 것 같아요." 마이클 허핑턴은 이렇게 말했다. "<허핑턴 포스트>를 시작하고 나서 아리아나는 분명히 달라졌습니다. 좀더 조용해지고 행복해 보였으며, 자신이 잘 하고 좋아하는 일을 통해 자신을 되찾은 것이죠."

내가 취재를 위해 허핑턴과 함께 보내는 날들 동안, 나는 자기 일을 사랑하는 한 사람의 유연한 삶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허핑턴 포스트>와 관련한 그녀의 일에는 미리 정해진 아젠다가 별로 없었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일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허핑턴은 열심히 달리고 있으며, 여전히 큰 재미를 준다. (그녀가 라디오 쇼 녹음을 끝내고 여자 화장실에서 변기 위에 앉아 수다를 떨던 생각이 난다.) 허핑턴은 샌프란시스코에서 그 날 세 번째의 라떼 커피를 사기 위해 스타벅스에 들어갔다. 한때 갭(GAP, 의류업체)을 '청소년에 영합하면서 그들의 취향을 결정하는 의류 체인'으로 비난하고 랩 음악을 비난하던 젊지만 고루하던 사람이, 지금은 마주치는 운전사나 커피점 직원마다 인사를 건네는("당신 이름이 뭐에요?" "전 아리아나에요!") 자연스러운 인기인이 되었다는 사실, 또 그날 밤 바퀴 달린 가방을 끌고 공항으로 향하며 헝클어진 머리를 바나나 클립으로 묶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은 믿기 어려운 것처럼 보였다.

허핑턴이 인생에서 내린 결정 중 많은 것은 서로 모순되어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공통점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끔직한 운명이란, 자신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관심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라는 확신이 그것이다. 그녀는 풍파가 몰아치면 의도적으로 반응하지 않으면서도, 일을 중지하기를 거부했다. 이것은 아마도 수년에 걸친 영적 훈련의 결과일 것이다. 우리가 차를 타고 로스앤젤레스를 돌아다닐 때, 허핑턴은 자기 엄마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러시아 음식을 자주 요리했죠. 블린치키 같은 거요. 갈은 고기와 채소, 아티초크 따위를 넣고 양념을 한 크레페죠. 또 언제나 좋았던 점심이 있었어요. 우리는 학교에 갔고, 엄마는 거기 앉아서..."

허핑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눈물이 뺨으로 흘러내렸고, 목소리를 가다듬느라고 뜸을 들였다. 마치 감정적인 보톡스 주사를 맞아서, 진실한 감정을 표시하는 데 마음보다 몸이 더 빨리 반응하는 것처럼 보였다. 보통은 거꾸로지만 말이다. 허핑턴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엄마는 매우 헌신적인 사람이었죠. 엄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묘사하기는 쉽지 않아요. 사랑으로 가득차 있었고 그녀의 전 생애가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죠. 그런 엄마들에 대해 사람들이 흔히 생각할 수 있는 나쁜 측면은 전혀 없었어요. 그렇게 자라났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그땐 몰랐어요."

몇 초 사이에 그녀는 자신을 추스렸다. 어깨를 펴고 얼굴을 들었다. 나는 그녀에게 자서전을 쓸 생각이 없냐고 물었다. 그녀는 머리를 흔들면서 말했다. "그런 건 인생이 다 끝났다는 의미 아니에요?"

 

덧글

  • 익명희망 2014/04/06 02:00 # 삭제 답글

    잘 읽었습니다. 다만, 중간에 나오는 “이브 세인트 로렌”은 프랑스 디자이너 이름을 딴 브랜드이기도 하고, 한국에서 흔히 쓰이는 대로 “이브 생로랑”이라고 고치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 deulpul 2014/04/06 02:07 #

    꼼꼼하게 지적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즉시 고쳤습니다.
  • EE 2014/04/06 07:33 # 삭제 답글

    궁금한데 혹시 번역권을 가지고 번역하시는 건지 궁금합니다(그냥 호기심). 번역권 없이 전문에 가까운 번역하면 문제가 생길 여지가 많지 않나요? 바하문드님도 그래서 일부러 비공개에 단기간만 올려놓는 포스팅을 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 deulpul 2014/04/06 13:35 #

    해당 매체와 관련한 번역권을 갖고 있으면 열심히 번역해 팔아서 돈을 벌지, 몇 년에 한 꼭지씩 철지난 글 번역해 그냥 풀어놓겠습니까? 그런 이치 몰라서 물으신 것은 아닐 테고요. 제가 우리말로 옮겨 이곳에 올리는 번역물들은 저작권법의 여러 기준에서 법이 허용하는 테두리 안에 속한다고 보며, 혹시 원저작권자가 그렇지 않다고 보아 법률적 문제가 발생하면 물론 책임은 제가 집니다.
  • 소요 2014/04/07 12:15 # 답글

    안녕하세요?

    상당한 분량의 기사를 아주 훌륭하게 번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척 재미있게 읽었고, 들풀님의 노고가 눈에 보이네요.
    아리아나 허핑턴이 어떤 사람인지를 상당히 잘 그려낸 대단한 기사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거의 모든 다른 이들의 주장을 허핑턴에게 다시 확인하고 그 대답을 명시한 것이 눈에 띄이구요.

    잘 읽었습니다.
  • deulpul 2014/04/07 17:09 #

    기사에서 유추하면, 기자가 허핑턴과 며칠을 함께 보내며 취재한 것은 봄(5월경)이었던 것 같고, 기사는 10월에 나왔습니다. 주간지 기사치고는 취재 호흡이 무척 긴 셈인데, 예전에 함께 보았던 한국 걸그룹 관련 기사도 비슷한 양상이었습니다. 오래 취재하고 꼼꼼히 확인하고 그렇게 쓴 기사에 대해 지면을 아낌없이 털어내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는데, 독자를 인스턴트적인 지식과 단편적인 인상으로 이끌지 않고 이슈나 인물의 다면적인 모습을 점검하여 폭넓은 인식에 다가갈 수 있도록 이끈다는 점에서 부러운 저널리즘이 아닐 수 없습니다.
  • ㅇㅇ 2014/05/01 00:30 # 삭제 답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뭐랄까, 제가 아직은 부족한지, 성공의 의미, 한국적인 가치관 그리고 남녀평등,,,여러 고민이 가슴에 담기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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