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로 겸손해지는 가족 섞일雜 끓일湯 (Others)

이 글은 표창원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그의 말에서 엿볼 수 있는 우리 모두의 의식에 대해 잠깐 생각해보려는 것이다.

표창원 “앞으로 정치 문제는 입 닫고 살겠다”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지만, 가족과 관련하여 이런 언급이 잠깐 나온다.


그는 고등학교 2학년생인 딸과 초등학교 6학년생인 아들을 둔 아빠다. 한국의 보통 중년 남성들과 달리 가정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편이라고 한다. 술·담배는 하지 않는다. 등산 외에는 운동을 하지 않는 그의 아들은 축구를 하고 있다. 그는 “내가 보기에는 타고난 재능이 없는데 축구에 대한 열정과 성실성이 있다”며 “본인이 좋아하니까 하라고 한다”고 말했다.


나는 표창원의 아들이 아빠의 인터뷰 기사를 보고 어떤 느낌이 들까 조금 걱정이 되었다. 왜 이런 말을 했는지는 충분히 이해가 된다. 자녀와 관련한 일을 겸손하게 표현하려는 뜻에서 한 말일 것이고, 또 열심히 한다는 점을 치하하려는 뜻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린 아들이 보기에는 썩 기분이 좋은 평가가 아니리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어떤 행사를 하면서, 담임 선생님이 나와 우리 반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한 이야기를 우연히 듣고 큰 상처를 받았다. 우리가 열심히 해낸 일이고 그래서 좋은 평가를 해주시리라 기대했는데, 다른 사람에게 한 말이긴 하지만, 치하와는 반대의 언급을 하셨다는 사실에 무척 섭섭했다. 물론 선생님은 당신의 학급의 성취를 겸손하게 표현하려 한 것이었겠지만 말이다.

우리는 자신에 대해 겸손하도록 교육받는다. 요즘은 별로 그런 것 같지도 않지만, 어쨌든 전통적인 교육에서는 자신을 되도록 낮추고 자신의 성취는 큰 일이 아니라며 적절히 평가절하하는 게 도리인 것처럼 되어 왔다. 나 역시 자기 자랑을 하기 바쁜 사람보다는 겸손한 사람에게 훨씬 더 큰 믿음이 간다. 나에게 전통적 인간형의 면모가 있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이렇게 겸손함은 좋은 덕목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주체가 좀 지나치게 확대되기도 한다.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이 속한 집단까지 함께 끌고가 겸손하도록 시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게 '저희 나라'와 '돈아(豚兒)'다.

돈아는 돼지 같은 아이라는 뜻인데, 자기 자식을 남에게 표현할 때 낮추어 부르는 이름이다. 말하는 이가 사람이니 아들도 사람임이 분명한데도 새끼 돼지라고 한다. '아둔한 자식'이란 표현도 많이 쓰인다. 자식이 아무리 똑똑하고 명민해도 그렇게 표현한다. 말하자면, 자신뿐 아니라 가족 구성원까지 강제로 겸손의 덕목에 밀어넣는 것이다.

전통 시대에는 그랬다 하더라도, 지금 이렇게까지 겸손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다. 가뜩이나 재미없고 팍팍한 청소년기를 보내는 아이들에게 좀더 자신감을 키워주고 고무해주는 것도 좋지 않을까. 더구나 세상살이에 시달려 터지고 갈라지며 박히기 시작하는 굳은살 같은 것은 아직 없는 아이들의 마음은 의외로 섬세하고 상처를 잘 받으니 말이다. 서양의 부모들이, 자기 자식이 흥미롭게 몰두하는 활동에 대해 대외적으로 '재능이 없다'라고 공표하는 경우는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사회와 인간을 보는 시각이 동서양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표창원의 아들이 아빠의 인터뷰나 이 블로그 글 같은 것을 볼 기회가 없었으면 싶다.

물론 그렇더라도 이렇게 함께 겸손한 편이, 내 새끼 기죽이지 말라고 펄펄 뛰는 철딱서니없는 부모보다는, 아이를 위해서나 사회를 위해서나 1만 배 낫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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