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 사고로 두 번 죽은 사람 중매媒 몸體 (Media)

진도 앞바다에서 큰 사고가 벌어졌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채 실종 상태다. 살아 돌아오는 기적이 벌어지기를 바라는 것은 모두의 심정일 것이다.

21년 전에도 비슷한 큰 바다 사고가 있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하여 다시 언급되는 서해훼리호 사건이다. 1993년 10월10일 전북 부안 위도 인근 바다에서 벌어진 이 사건으로 승객과 선원 등 모두 292명이 숨졌다. 대형 참사로 아까운 목숨이 초겨울의 찬 바닷물 속에서 사라졌는데, 그 중에는 두 번 죽은 사람도 있다. 사고가 난 배를 지휘하던 선장 백운두씨(당시 56세)였다. 그는 바다에 빠져서 한 번 죽은 뒤, 언론에 의해 한 번 더 죽었다.

서해훼리호 사고가 난 날은 바람이 심하고 물결이 높았다. 날씨가 안 좋아 손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동안 참사는 빠르게 진행됐다. 사고 당일인 10일 하룻동안 이미 50여 구의 시신이 인양되었다. 그날 밤에 송고된 11일 조간신문 기사들은 100명에서 140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되었다고 보도했다. 그리고 사고 이틀째인 12일, 한 신문은 다음과 같은 사회면 머릿기사를 냈다.




<한겨레 신문>(당시)의 특종 기사였다. 사고가 난 배의 선장 백운두씨가 구조 어선을 타고 선착장에 도착한 뒤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기사의 근거가 된 것은 마을 주민 세 명의 증언이었다. 이들은 백씨를 잘 아는 다른 뱃사람으로서, 자신들이 백선장을 목격했다는 점을 확신하고 있었다.

"남은 것은 백선장 인터뷰뿐"

'백선장 찾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언론은 백선장의 거취를 확인하기 위해 동분서주했고, 그러는 과정에서 백선장이 배를 탈출하여 도주했다는 설은 기정사실이 되었다. 취재 경쟁을 하던 언론은 근거 없는 추측 보도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백선장이 어딘가에 은신하고 있다거나 몰래 해외로 도피했다는 식이었다. 유례 없는 대형 참사 앞에서 언론은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를 따지기 전에 죄를 덮어씌울 희생자를 찾기에 더 바빴다. 10월 말에 작성된 <시사저널>의 기사는 그런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사고 당일인 10월10일 오후부터 퍼지기 시작한 백선장 생존설은 다음날인 11일, 지방석간인 <ㅈ일보>가 사회면 1단으로, 그리고 ㄱ방송이 오후 3시 뉴스에서 이를 보도함으로써 거의 전언론으로 증폭되었다. 특히 <ㅎ신문> 전주지역 기자 ㅇ씨가 11일 오후 식도에서 최문수씨를 인터뷰한 기사가 12일 오전 <ㅎ신문>에 보도된 이후, 최선장 단독 인터뷰를 낙종한 기자들 사이에서는 “이제 남은 것은 백운두 선장 인터뷰뿐이다”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백선장 생존설은 기정사실화되었다.

여기서 갖가지 정황증거들, 예를 들어 UDT 대원들이 침몰한 서해훼리호의 조타실을 맨먼저 수색했으나 백선장이나 다른 선원을 발견하지 못했던 점(당시 조타실 내부가 한치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시야가 안좋아 초기 발견에 실패했다고 한다), 구명보트 한 척이 전남 영광군에서 발견된 점, 구조작업에 참여한 어선 중 한 척이 수상한 행동을 했다는 정보 등 갖가지 정황이 생존설을 그럴 듯하게 뒷받침하는 근거들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시민들의 무책임한 장난 전화, 허위 제보가 더해져 ‘살아있을 것’이라는 소문은 ‘살았다더라’로 바뀌고, 심지어는 ‘내가 백운두다’라는 장난 전화까지 신빙성 있는 얘기로 받아들여졌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언론은 확인되지 않은 각종 소문과 추측을 앞다투어 내보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동아일보> 13일자 보도다. 확인되지 않은 전화 통화 제보를 그대로 썼으며, '고향 사람들의 원망이 두려워 숨었다'라는 추정은 따옴표도 치지 않고 부제로 썼다.

그런데 애초 증언자들의 말에는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되는 점이 있었다. 사고가 난 배에서 선장이 가장 먼저 구조되었다는 점도 그랬지만, 증언자들이 백선장 옷에 물 한 방울 묻어있지 않다고 했다는 점은 더욱 비상식적이었다. 이런 점은 증언자들의 백선장 목격담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강력히 시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백선장 생존설이 기정사실이 되어가는 동안, 이런 의문을 계속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차라리 오보가 사실이었더라면"

사고 정황을 가장 잘 알 뿐더러 사고에 책임이 있을 수도 있는 선장이 살아서 도피하였다는 설이 나돌자, 수사 당국도 손을 놓을 수 없게 되었다. 검찰은 백선장 생존 최초 보도 때부터 그를 찾는 데 주력했다. 검사와 검찰 수사관들이 직접 위도에 찾아가 가족과 주민을 상대로 탐문 수사를 벌였다. 백선장의 집은 압수 수색되었으며, 12일에는 전국에 지명수배가 내려졌다. 분명한 증거도 없는 상태에서 검찰 간부는 "백선장의 생존 가능성은 98%이다"라고 공언했다.

백선장을 비롯해 탈출 의혹을 받던 선원의 가족들로서는 기가 막힐 일이었다. 그들 자신도 남편이나 아들이 실종되어 애가 타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언론과 수사 당국은 이들을 승객을 버리고 도망간 무책임하고 비겁한 선원들의 가족으로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선원들의 도주를 도와주었다는 의혹까지 받았다. 백선장의 부인은 "차라리 그런 보도가 사실이었으면 좋겠다"라고까지 말할 정도였다.

당시 주요 언론의 보도 양상은 아래 표에서 짐작할 수 있다. 한국언론재단에서 펴낸 <언론인의 직업 윤리> 중 한 대목이다(밑줄은 내가).




언론과 수사 당국의 백선장 찾기는 사고가 난 지 닷새 만에 끝났다. 백선장이 발견된 곳은 자기 집 헛간도, 일본으로 가는 밀항선도 아니었다. 그는 서해훼리호의 조타실 뒤편 통신실에서 역시 도주 의혹을 받던 다른 선원 2명과 함께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시신이 인양된 뒤 오열하던 가족은 취재진에게 "당신들이 살았다고 했으니 살려내라"라고 울부짖었다.


유족들은 그동안 검찰과 경찰이 섬 일대를 샅샅이 뒤지는가 하면 형사들이 계속 집에 들락거리자 아예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지내왔다. 더욱이 주위에서 "배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승무원들이 승객들의 생사는 돌보지 않고 자신들만 달아났다"고 수근대는 것만 같아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였다.

백 선장의 부인 김효순씨(51)는 남편의 주검이 발견됐다는 소식을 듣고 북받치는 설움을 참지 못한 채 통곡하다 실신했다. 김씨는 집으로 찾아간 보도진에게 "그동안 살아있다고 하더니 이제 와서 무슨 소리냐. 평소 책임감이 누구보다 강한 남편에게 모든 책임을 덮어씌우고 그것도 모자라 살아서 은신하고 있다고 떠들어댄 검찰이나 언론이 모두 원망스럽다"며 몸부림쳤다.


위 기사는 잘못된 증언을 그대로 보도함으로써 백선장 생존설의 불을 지핀 바로 그 신문에 실린 것이다. 물론 이 한 신문의 문제가 아니었으며, 위에서 본 대로 최초 보도 이후에 벌어진 현상이 더 문제였다.

"비뚤어진 경쟁의식, 선정주의, 무책임..."

2평 크기 통신실에서 익사한 백선장의 주검이 인양된 뒤, 백선장 생존설을 앞다투어 냈던 언론은 사설, 칼럼, 독자 편지 등 다양한 형식으로 사과문을 썼다. <한겨레 신문>은 사설 '언론.검찰, 유족과 국민에게 깊이 사죄하고 반성해야'에서 스스로 이렇게 썼다.


무엇보다도 언론의 자괴감은 무어라 표현하기 어렵다. 그것이 단순한 오보여서가 아니다. 거기에는 신문.방송의 비뚤어진 경쟁의식, 선정주의, 무책임 따위의 온갖 부정적 요소들이 덕지덕지 묻어 있기 때문이다. ... 선장의 생존.도피설이 닷새를 넘게 끄는 동안, 그러한 소문의 진상을 확인하고 추적하는 노력은 어느 신문, 어느 방송에도 보이지 않았다. ... 유감스럽게도 신문들은 곧바로 그가 무인도에 은신중이라느니, 이미 육지로 도망쳤을 것이라느니, 심지어는 해외로 피신했을 것이라는 '소설'을 제멋대로 써댔다. 결과적으로 기사 욕심에 취해 풍문과 억측에 덩달아 춤춘 꼴이 되어버린 언론의 행태는 어떤 변명으로도 합리화될 수 없다.


<동아일보>는 다음과 같은 외부 필자의 칼럼을 실었다.


'백선장 생존설 오보'에 대한 도하 각 언론의 이례적인 사과 보도를 보면 오보가 나올 수밖에 없었던 한국 언론의 문제점을 나름대로 지적하면서 반성하고 있다. 예컨대 속보성, 특종 경쟁, 선정주의, '떼거리 저널리즘'의 병폐 등 모두 올바른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진일보한 언론의 자세로 평가받을 만하다.


반성만 한다고 진일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반성문을 쓴 한국 언론은 과연 진일보하였는가. 대형 참사 앞에서 멀쩡한 사람을 천하의 파렴치한으로 만들었던 언론의 '속보성, 특종 경쟁, 선정주의, 떼거리 저널리즘'은 21년이 지난 지금은 많이 달라졌는가.

 

덧글

  • 사바욘의_단_울휀스 2014/04/17 10:51 # 답글

    인간의 본능일겁니다 일단 보이는 잘못을 누구한테 덥어씌우면 기분이 좋아질것같거든요 ㅋㅋㅋ
  • deulpul 2014/04/17 13:45 #

    기분이 좋기 위해서 그런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고, 그보다는 좀더 구조적이거나 관행적인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갈대사슬 2014/04/17 11:59 # 답글

    슬픈 포스팅이네요. 개인적으로, 사고 당일 오전에 계속해서 '전원 구조' 오보가 YTN을 시작으로 SBS 등 대형 언론들까지 보도되는 것을 보면서, 미드 뉴스룸의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찾아보니 시즌 1 4화의 장면이군요). 기퍼드 의원 총격사건 때 사망 소식을 속보로 올리느라 사실확인도 제대로 안 하고 보도하는 모습이, 뭐랄까, 2014년 어제의 모습과 너무 유사해서... 참 착잡했습니다.
  • deulpul 2014/04/17 17:37 #

    저는 얼마 전에 있었던 강남역 폭발물 소동 생각이 났습니다. 맞든 틀리든 빨리 전하는 것만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 같은 언론에서 '폭발물로 확인되었다'는 보도를 앵커들이 어눌한 말로 반복하는 것을 그날 저녁에 보면서, 참 언론하기 쉽구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드라마 같은 현실입니다.
  • 피그말리온 2014/04/17 12:46 # 답글

    느려도 정확한 것이 중요하다는걸 어제 뉴스특보들을 이것저것 보며서 느꼈습니다.
  • deulpul 2014/04/17 14:06 #

    소식을 빨리 전하는 측면에서 주류 언론의 역할이 꾸준히 작아지고 있는 세상입니다. 속도와 정확성이 배치될 때 정확성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은 언론의 기본 자세로서 언제나 중요한 것이지만, 지금과 같은 세상에서 특히 그 중요성이 커져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 2014/04/17 14:5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4/04/17 16:49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4/04/18 10:00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4/04/18 15:47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4/04/19 08:32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4/04/17 20:43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14/04/18 00:08 #

    <이상 전집>을 읽을 때 패익(비익)에 대해 좋은 도움말을 주셨는데 잊을 리가 있겠습니까. 제 기억력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고 쓰다 보니 도전할 만하네요... 매체 역시 사람과 마찬가지로 일일삼성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신이 하는 일을 자주 돌아보는 데서 매체다운 모습을 잃지 않게 되는데, 이렇게 큰 사건이 벌어지면 저 먼저 흥분하여 광풍에 휩쓸려 가느라 그런 기능이 모두 중단되는 것 같습니다. 거기에 경쟁과 상업성이라는 구조적인 문제도 함께 얽혀, 말씀대로 역사는 무한히 반복되는 꼴을 보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쉬운 현실이지요.
  • 미스티 2014/04/17 23:36 # 삭제 답글

    저 당시엔 그나마 인터넷, SNS등이 없었죠. 이젠 너나 할거 없이 나서서 한마디씩 해대고 있으니 상황은 더 악화되었습니다....
  • deulpul 2014/04/18 00:46 #

    그런 측면이 없지 않아 있는 것 같습니다. 매체가 뉴스 소재를 전달하는 방식을 크게 주제적인 접근과 단편적인 사건 중심의 접근으로 구분하곤 하는데, 깊이 있는 성찰보다는 자극적인 이야기거리에 끌리게 마련인 온라인 세상은 후자의 방식에만 치중한 뉴스를 생산하고 소비하게 되는 양상으로 이끈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잘못된 사실 관계가 검증이나 수정의 메커니즘 없이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가는 양상을 보면 머리가 아프게 됩니다...
  • ㅇㅇ 2014/04/20 15:20 # 삭제 답글

    저도 공감합니다. 언론 조작이다 뭐다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문제는 그게 아니라 체계적으로 사실보도를 할 만한 여건이 구성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그 이유는 임시 재난 본부에서 누가 지휘부를 맡느냐가 있기도 하겠죠.. 이걸 잘했어야 하는데. 총체적으로 수습이 느렸던 듯 해요
  • 바름이 2021/11/08 08:39 # 삭제 답글

    끊임없이
    자정하려는 노력이 없는 언론사.
    그러면서 취재의 자유를 위치는언론!
    언론 중재법 통과가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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