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절 계약 때時 일事 (Issues)

4400억 대박났는데, 작가 손엔 1850만원뿐

작가가 책을 펴낼 때 출판사와 맺는 '매절 계약' 때문에 창작자인 작가의 권익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이에 따라 공정거래위원회가 시정 조처를 했다는 소식이다.

출판업계에서 매절이라는 말은 두 가지 경우에 쓰인다. 1) 작가가 책을 펴낼 때, 일정한 대가를 지불하면 이후 어떤 수익이 발생하더라도 작가에게 지급하지 않는 계약을 가리키기도 하고, 2) 출판사가 서점에 책을 넘길 때, 책이 팔리지 않아 남더라도 출판사에 반품하지 않도록 한 계약을 가리키기도 한다. 위 기사에서 말하는 매절은 전자의 경우다. 보통 번역 출판물의 경우나 유명하지 않은 작가가 책을 내는 경우 적용하는 계약 형태라고 한다.

이 계약의 문제는, 저작권과 관련하여 작가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계약 형태라는 점이다. 책을 내면서 일단 출판사로부터 돈을 받으면, 작품과 관련한 다양한 저작재산권과 2차적 저작권이 모조리 출판사에 영구 귀속된다는 것이다. 작가로서는 맨 처음에 푼돈을 받으면 이후 발생하는 어떠한 수익에 대해서도 권리를 주장할 수 없게 된다.

이것은 그야말로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되놈이 버는 형국이 아닐 수 없다. 출판사 쪽에서 볼 때 매절 계약한 작품들에서 늘 돈이 벌리는 것은 아니겠지만, 수익성 여부를 떠나 계약의 성격 자체가 매우 부조리한 것은 틀림없다.

기사에 언급된 인기 동화 <구름빵>사례를 보면, 작품으로 발생한 부가가치 중 작가 백희나의 수익은 0.0043%다. 대비 사례로 든 <해리 포터>의 조앤 롤링 경우는 0.32% 정도다. 수익률이 100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저작물과 관련한 창작자의 권리를 출판사가 모조리 영구히 가져가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이해할 수 없지만 법적으로도 용인되기 어렵다. 출판물의 저작권과 관련한 전문가 김기태는 <출판 저작권>에서 이렇게 썼다.


이러한 매절 계약은 저작물의 이용 대가를 책의 판매부수 또는 발행부수에 따라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 일괄 지급하는 형태의 계약을 의미하는데, 이를 두고 저자는 이용허락 계약으로 파악하는 데 반하여 출판사에서는 저작재산권 양도 계약으로 해석함으로써 분쟁의 여지가 높아지게 된다. ...

한편, 이와 같은 매절 계약의 해석에 대해 우리 법원의 판례를 살펴보면 줄곧 "저작물 이용 대가를 판매부수에 따라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 일괄 지급하는 형태로서 이른바 매절 계약은, 그 원고료로 일괄 지급한 대가가 인세를 훨씬 초과하는 고액이라는 등의 소명이 없는 한 이는 출판권 설정 계약 또는 독점적 출판 계약이라고 보아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

결국 매절에 따른 대가로서 저작권 사용료가 매우 큰 금액이었다는 등의 별다른 사정이나 특약이 없는 한, 저작자와 출판사 사이에 체결된 매절 계약은 출판권 설정 계약이나 독점적 이용 허락 계약으로 해석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 따라서 매절 계약을 무조건 저작재산권 양도 계약이라고 주장하는 출판사가 있다면 이는 잘못된 것이다. 또 매절 계약의 경우 이를 저작재산권 양도 계약이라고 여기다 보니 계약 유효기간을 명시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출판권은 당사자 사이에 특별한 약정이 없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최초 발행일로부터 3년 동안만 존속하기 때문에 그 이후에는 매절 계약에 따른 출판권마저도 소멸되는 것이다. ...

아울러 저작재산권의 양도에 해당한다 하더라도 저작권법에 따르면 "저작재산권의 전부를 양도하는 경우에 특약이 없는 때에는 2차적 저작물을 작성할 권리는 포함되지 아니한 것으로 추정한다"라고 했으므로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이 규정은 저작재산권자의 이익을 합리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저작재산권을 양도해야 하는 상황은 대개 저작재산권자로서는 매우 불리한 경우가 많을 것이며, 그렇다면 저작재산권을 양도받으려는 측의 의향에만 의존한 일방적인 내용으로 계약이 체결되는 상황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2차적 저작물 작성권까지 양도받으려면 계약서에 이 같은 내용을 명시해야만 한다.


요약하면, 매절 계약은 독점적 출판을 위한 계약일 뿐, 저작재산권을 통째로 넘기는 계약으로 보아서는 안 되며,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2차적 저작물 작성권까지 양도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과 법원의 판단이 상식에 가깝다. 당연한 상식과 부조리한 현실 사이에 존재하는 괴리를 발생시키는 것은 첫째는 관행이요 둘째는 무명 작가와 출판사 간의 갑을 관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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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공정거래위의 조처는 두어 달 전에 나왔던 문화체육관광부의 정책 방침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6월12일 문체부는, 작가와 출판사 사이에 체결되는 계약이 작가에게 불리하게 되어 있는 현실을 반영하여, 작가의 권한과 선택 폭을 넓힌 새로운 표준 계약서 7종을 제정해 발표한 바 있다. 문체부 자료는 그 내용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 양도계약서의 권리이전 범위를 한정하여 복제권, 공연권, 공중송신권, 배포권 등 저작재산권 종류를 제시하고 이중에서 선택적으로 양도토록 함.

▲ 양도계약에 2차적 저작권을 포함하는지의 여부는 별도의 특약으로 규정하도록 해, 2차적 저작권이 작가에게 있음을 다시 한 번 환기함.

▲ 양도기간을 작가와 출판사가 협의하여 정하도록 하고, 기간종료 후에는 저작재산권이 작가에게 환원토록 하였으며, 환원 불이행 시의 책임을 명확히 함.


말하자면 두루뭉술하게 이루어져 온 불공정한 출판 계약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 문체부는 표준 계약서 양식을 제정하고 공정거래위는 현재 주요 출판사가 채택하고 있는 계약서의 약관을 바로잡으라는 조처를 내렸다고 보면 되겠다.

이것은 물론 바람직한 일이요 정책이지만, 청와대 할머니가 눈을 부릅떠야 비로소 이루어진다는 것은 안 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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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 소식은 정책 발표가 아니라 시정 조처다. 잘못하고 있으니 바로잡으라는 것이다. 그럼 당연히 따라야 할 사항은 '누가(무엇이) 잘못하고 있는가'일 것이다. 말하자면 이 시정 조처의 대상이 된 출판사가 어디인가 하는 점이다.

공정거래위의 보도자료에 명시된 출판사는 다음과 같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집, 단행본 분야의 매출액 상위 20개 출판사가 사용하는 ‘저작권 양도 계약서’ 및 ‘출판권 등 설정 계약서’ 중 4개 유형의 불공정 약관 조항을 시정했다.

시정 대상 업체는 웅진씽크빅, 교원, 삼성출판사, 예림당, 한국몬테소리, 에듀챌린지, 도서출판 한국헤르만헤세, 프뢰벨미디어, 아가월드, 프뢰벨하우스 등 전집 분야(10개)과 서울문화사, 시공사, 김영사, 문학동네, 창비, 북이십일, 다산북스, 비룡소, 열린책들, 사계절출판사 등 단행본 · 기타 분야(10개)이다.


이러한 소식을 전하는 매체의 기사들에서는 대부분 이런 내용이 빠졌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집·단행본 분야의 매출액 상위 20개 출판사에 대해 저작권 양도계약서 등 불공정약관 조항을 시정하도록 했다고 28일 밝혔다." (<동아일보>)

"공정거래위원회는 전집ㆍ단행본 분야 매출액 상위 20개 출판사의 저작권 양도계약서, 출판권 설정계약서에 있는 불공정약관조항을 고쳤다고 28일 밝혔다." (<중앙일보>)

"공정거래위원회는 28일 전집과 단행본 분야의 상위 20개 출판사가 사용하는 저작권 양도계약서와 출판권 등 설정계약서에 담긴 불공정약관조항을 시정토록 했다고 밝혔다." (위 <세계일보> 기사)

"이에 제 2의 구름빵 계약을 막기 위해 공정거래위원회에서는 출판 계약을 할 때 영화, 방송 등 2차 콘텐츠에 대한 권리가 작가에게 있다는 조항을 명시하도록 시정했다." (<아시아경제>)

"전집과 단행본 분야 매출액 상위 20개 출판사가 사용하는 불공정 약관을 시정하도록 한 겁니다." (KBS)


모두 출판사 이름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기사들이 공통으로 언급하고 있는 '구름빵' 사례 관련 출판사인 한솔교육은 이번 시정 조처에 포함되지 않았다. 덩치가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사들은 공정위의 시정 대상이 아닌 사례를 인용하면서 정작 중요한 대상 출판사는 빠뜨린 셈이다.

시정 대상이 된 출판사 이름을 일부나마 밝힌 곳은 다음의 둘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8일 웅진씽크빅·교원·삼성출판사·시공사·김영사 등 대표적 출판사 20곳을 상대로 매절계약이 담긴 저작권 양도 계약서와 출판권 설정 계약서상의 불공정 약관 조항에 시정을 명령했다고 밝혔다. (<한겨레>)

공정거래위원회는 출판사가 계약 체결 당시 작가에게 한꺼번에 일정 금액만 지급하면 장래 수익 전체가 출판사에 귀속되고, 저작자는 아무런 대가를 받지 못하는 매절계약 관련 불공정 약관조항을 시정했다고 28일 발표했다. 시정 대상은 웅진씽크빅 교원 서울문화사 시공사 등 전집과 단행본 분야의 매출액 상위 20개 출판사로 공정위 심사 이후 문제 조항들을 자진 시정했다. 하지만 ‘구름빵’을 출판한 한솔교육은 매출액 상위 20개 업체에 들지 않아 이번 심사대상에서 제외됐다. (<한국경제>)


<한국경제>는 10개사의 매출액까지 밝혀 표로 실었으며, 사례로 든 '구름빵' 출판사가 이번 조처와 관련이 있는지도 밝혔고 문제점까지 지적하여, 가장 잘 쓴 기사라고 할 만하다.

어떻게 시작된 일이든 간에, 표준 계약서도 정해졌고 잘못된 약관을 고치라는 조처도 내려졌다. 이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돌려주면 된다. 문제가 아주 끝난 것은 아니다. 출판사들이 이러한 조처를 잘 따라주고 상식적 관행을 정착시켜야 완전히 정상화된다. 무명 작가와 출판사의 관계를 갑을로 간주하는 문화가 남아있는 한, 아무리 시정을 하고 조처를 해도 가이사는 여전히 재주만 열심히 넘고 있어야 할 것이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문체부 표준 계약서 발표에 첨부된 해설 자료에서 김기태는 출판사와 작가가 저작권 사용료를 정하는 방법을 여러 가지로 모색해 보는데,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밑줄은 내가).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사회는 이렇게 피곤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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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피그말리온 2014/09/05 11:45 # 답글

    궁금했던 부분인데 잘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deulpul 2014/09/05 12:14 #

    고맙습니다.
  • 2014/09/06 01:22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4/09/06 05:35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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