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하늘색 물은 파란색 섞일雜 끓일湯 (Others)

과천의 한 어린이집이 아이들이 체험 학습을 받는 장면을 기록한 웹페이지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양파를 관찰하고 물가꾸기를 설치하는 과정을 사진으로 꼼꼼히 기록하여 올렸다.

마지막 쯤에서 인상적이면서도 가슴 아픈 장면을 만나게 되었다.




이것은 아이들이 투명한 컵에 물을 담고 양파를 얹어 물가꾸기 장치를 만든 뒤, 그 모양을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열 여섯 명이 작성한 활동지인데, 그림이 모두 비슷하다. 단 한 명을 제외한 모든 아이가 컵에 담긴 물을 파란색으로 그렸다.

물이 실제로 파랑으로 보였다면 제대로 관찰하고 그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홈페이지에 실린 사진들에 따르면, 이 아이들이 양파 물가꾸기 장치를 만드는 동안 물이 파란색으로 보였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물은 언제나 투명한 색깔이었을 뿐이다. 순수한 물이 투명한 컵에 담겼으니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거의 모두 똑같이 물을 파란색으로 그렸다. 아이들은 대체로 사물을 인식하고 표현하는 데 솔직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왜 물을 모두 파랑으로 칠하는 일이 벌어졌을까.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아이들이 작성하고 있는 활동지에는 물가꾸기를 만드는 방법을 보여주는 부분이 있다. 여기에 예시된 그림은 물을 파랗게 표현하고 있다. 따라서 아이들은 모두 자신이 직접 관찰한 결과를 무시하고 이 예시를 모범답안으로 삼아 따라 그린 것이다.





이것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충분히 주의하지 않으면 교육이 곧 인식의 획일화로 이어질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이 활동지는 양파 물가꾸기 그림을 직접 제시하지 말고 아이들이 실제로 본 모양으로 그리게 하거나, 제시하더라도 색깔을 입히지 않는 편이 나았을 것 같다. 아이들이 자신의 관찰 결과에 따라 제대로 그림을 그렸다면 물은 무색이었거나, 아니면 앞에 앉은 동무의 옷색깔을 띄는 모양으로 나왔어야 할 것이다. 물론 이것은 이 어린이집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교육 환경이 가진 일반적인 문제라고 해야 할 것이다.

어릴 때 크레파스 한 세트를 쓰면 늘 하늘색과 고동색이 모자랐다. 나뿐만 아니고 반 친구들도 그랬다. 하늘은 늘 하늘색으로 칠해야 했고 땅은 늘 고동색으로 칠해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똑같은 교실에서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시험에 똑같은 답을 외어 적으며 자랐고, 개성이나 창의의 싹은 전체와 불화하여 일찌감치 정에 깎여 떨어져나갔다.

저 아이들은 앞으로 물을 그릴 때 언제나 파란색을 칠할지 모른다. 물은 파랑이라는 공식이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에게 어떻게 보이는가는 이런 정답과 공식에 밀려나 버린다. 이 아이들이 자라면서 계속 그림을 그린다면, 언젠가는 물이 파란색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때가 있을 것이고, 그렇게 표현하기 시작할 날이 올 것이다. 그 사이의 기간은 불필요하게 소모해야 할 시행착오 기간이 된다.

그런 점에서, 맨 처음의 물가꾸기 그림 16개 중에서, 제시된 정답에 현혹되지 않고 자신이 보는 대로 물을 투명하게 표현한 단 한 개의 그림(첫줄 왼쪽에서 세 번째)을 그린 아이의 지조와 솔직함은 크게 칭찬해야 마땅한 일이다. 이런 아이들을 많이 만드는 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교육이 아닐까 싶다.

※ 이미지: 해당 어린이집 홈페이지(링크는 하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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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떡이 2014/09/07 18:11 # 삭제 답글

    대체로 사람들의 일생에서 인생의 꿈과 행복은 언제 결정되는가?
    1. 10대
    2. 20대
    3. 30대
    4. 40대
    5. 50대
    정답: 1 (현행 중학교 도덕 교과서)

    급속한 경제 성장에 필요한 "부품형" 국민을 만들어 내기 위해 학교의 교육 과정이 만들어진 측면이 큽니다. 국민의 존재 이유가 권력에 순종하고 조국의 발전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개인의 의견이나 일사불란을 해치는 것은 "악" 내지는 "불순 책동" 등으로 몰려 온 경우가 많습니다.
  • deulpul 2014/09/08 00:16 #

    그런 점도 있겠습니다만, 개인의 가능성과 재능을 살피고 살려주는 방식의 교육을 할 여유가 없는 것도 중요한 이유가 아닌가 싶습니다. 지나친 경쟁 환경이라든가 한국의 전통적 사고방식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고요. 제시하여 주신 문제는 정말 어려운 문제이고, 심지어 답이 있는 문제인가 싶기조차 합니다. 세상 일에서 모든 것이 예외없이 깡그리 어떤 모습을 보이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저도 '대체로'라는 말을 잘 씁니다만, 이 문제에 쓰인 대체로는 지나치게 모호하거나 폭이 넓고, 더 나아가 일생의 꿈과 행복은 10대에 결정되어야 한다는 규범적 단정의 느낌까지 감지하게 되네요.
  • 떡이 2014/09/08 12:38 # 삭제 답글

    20 세기 초중반까지는 챨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스"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소품종 대량 생산을 통해 단가를 낮추고 매출을 늘리는 방식이 일종의 유일한 진리처럼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학교 교육에서도 이러한 산업 성장에 필요한 표준 인재의 육성이 중요하게 생각되었고 모든 학생들이 같은 교재로 같은 진도에 맞춰 공부하고 같은 시험을 보는 획일적인 방식이 흔했습니다. 하지만 그 후 여러 국가에서는 개인의 다양하고 서로 다른 욕구와 재능에 신경을 쓰고 각자의 장점을 육성하는 방향으로 전환을 해 왔고, 특히 기존에 볼 수 없었던 독특한 관점과 접근법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교육은 군국주의와 전후 복구 시대 일본에서 효율 극대화를 위해 쓰였다가 이제는 많이 사라진 "틀로 찍어내기" 방식을 받아들인 후 지금까지도 큰 변화가 없고,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극도로 경직되고 획일화된 답 찾기를 최고의 내지는 유일한 방식으로 받들고 있는 실정입니다. 위에서 사례로 든 문제 뿐만 아니라, 현행 교과서와 참고서들을 살펴보면 문학과 미술 등의 과목에서조차 각 작품에 대해 학생들이 "느껴야 하는" 것들과 "중점적으로 감상해야 하는" 부분들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deulpul 2014/09/08 13:36 #

    앞에서 말씀하신 것을 이렇게 풀어주시니 훨씬 이해하기가 쉽네요. 교육이란 결국 한 인간이 그 사회에서 독립적인 구성원으로서 자아를 실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준비를 갖추어 주는 것일 테고,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인간이 문명을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도록 구성원을 길러내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교육의 목표와 관련하여, 저는 아주 오래 전에 우연히 한 역사학 개론서에서 보고 메모해 둔 다음과 같은 구절을 좋아합니다:

    "서구 사회는 르네상스 시대의 이상에서 비롯된 폭넓은 교양 교육이라는 개념을 발달시켜 왔다. 르네상스 시기의 교육 목표 중 하나는 교양 있고 정직하며 합리적이고 다재다능하여 쉽게 고용될 수 있는 사람을 길러 내는 것이었다. 자기가 속한 세상에서 양호한 시민이 될 수 있는 시민 의식을 갖추게 하는 것도 중요하였다. 바로 이것이 오늘날까지 교양 교육의 목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교육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역할은 이해(understanding)의 창을 열어 주고 개개인에게 자신과 다른 사람에 대해 용인하고 인정하며 존중하는 자세를 갖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이러한 이해로 나아가는 길 중 하나는 과거를 공부하는 것이며, 사람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나를 돌이켜 보는 것이다." (John A. Maxwell, Mary E. Heironimus, and Sandra L. Barney. (1993). An Introduction to the Study of History. Dubuque, Iowa: Kendall.)

    우리 사회의 교육이 갖는 몰개성적이고 획일적인 성격에 대한 지적은 이미 많이 나왔는데 왜 잘 고쳐지지 않을까, 아직도 동기를 만들어 낼 반성과 성찰이 모자란 것인가, 아니면 이런 성찰을 쉽게 실천할 교육 환경이 아닌가, 아니면 사회 전체적인 부분에서 살피고 바꾸어나가기 전에는 어려운 일인가... 하는 여러 생각을 하게 됩니다.
  • mooyoung 2014/09/15 02:40 # 답글

    초록빛 바닷물에 ~ 바다색이 어떻게 초록이야? 동해보니 초록이었어요. 순간 내가 본 바다는 바다가아닌가? 는 생각을 잠시 했던 기억이... 어느 곳은 하늘닮기두 했을텐데 말입니다.^^
  • deulpul 2014/09/16 03:00 #

    뒤집어 엎고 녹차라떼 풀면 어디나 다 초록빛이 됩니다... 가사를 다시보니 "초록빛 바닷물에 두 손을 담그면 파란 하늘빛 물이 들지요"... 바다를 초록색으로 본 기억은 없는데, 물색은 하늘과 공기에 따라 워낙 변화무쌍하니까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 ㅈㄴㄱㄷ 2014/10/07 10:10 # 삭제

    괌같은 남국의 바다는 산호초때문에 근해는 녹색에 가까운 색이고 멀어질수록 흔히 말하는 코발트빛 바다가 나오긴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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