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국민에게 바가지를 씌워요 때時 일事 (Issues)

여름 휴가철에 피서를 떠날 때 가장 짜증나거나 걱정되는 것이 무엇인지 설문조사를 하면 늘 앞쪽에 꼽히는 게 있다. 하나는 바가지요, 또 하나는 인파,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다. 가장 큰 불만도 이것들이고 휴가를 망치는 원인도 이것들이다.

피서지에서 개미귀신처럼 함정을 파고 기다리는 바가지 장사꾼들은, 값이 없는 것에 값을 붙이고 값이 있는 것에 가욋돈을 뻥튀기하여 붙여서 바가지를 씌운다. 피서 떠난 시민들의 즐거운 마음은 일순간에 구겨진다. 생각 같아서는 침이라도 한번 뱉아주고 되돌아가고 싶지만, 어렵게 떠나온 길이라 울며 겨자먹기로 바가지를 덮어써야 한다.

피서지에서 바가지 상혼이 판을 치는 것은 물론 비상식적으로 돈을 긁어내려는 상인들의 의지 때문이다. 그 이유를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구조를 발견할 수 있다. 1) 바가지를 씌워도 피서객은 어쩔 수 없이 지불할 수밖에 없다. 2) 값은 상인쪽이 일방적으로 정할 수 있다. 3) 한철 장사라든가 돈을 많이 받아야 시설물의 품질을 유지할 수 있다든가 하는 명분이 있다.

이번엔 바가지 못지 않게 짜증나는 요소인 혼잡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휴가철에 산과 바다는 사람의 산이고 사람의 바다가 된다. 인간은 흔히 자기 주변에 적절한 공간이 있어야 편안함을 느끼게 되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그러한 편안함을 기대하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단기간에 사람이 많이 몰리게 되니 여러 부작용이 발생한다. 쓰레기, 환경 훼손, 위생 불량, 안전 사고, 범죄 등이 그렇다.

이런 상황에서 얼핏 보면 바가지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바가지를 씌우는 것은 피서지에 사람이 몰리지 않게 하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바가지 쓰고 호구되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따라서 되도록이면 바가지를 피하려고 할 것이다. 따라서 바가지를 크게 씌우면 씌울수록 사람들은 피서지에 오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바가지는 피서지에서 벌어지는 여러 문제를 풀 수 있는 해결책이 된다!




바가지 장사꾼들이 이런 주장을 하며 바가지를 합리화한다면, 그것이 합당한 논리라고 이해해 줄 수 있을까? 바가지란 좋은 것이며, 단속해서는 안 되며, 기쁘게 덮어써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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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뱃값을 대폭 인상하려는 정책은 피서지에 판치는 바가지 장사꾼의 행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설득력 없는 명분을 내세우며, 어쩔 수 없이 소비해야 하는 상황을 이용하여 무리한 잇속을 채우려고 한다는 점에서 아주 흡사하다. 다른 점은 그렇게 챙긴 수익이 개인의 호주머니가 아니라 세수로 잡힌다(고 믿고싶다)는 점, 또 그래서 그런지 담뱃값 바가지(정확히 말하자면 세금 바가지)꾼은 피서지 바가지꾼과는 달리 죄책감을 갖지 않는다는 점 정도가 될 것이다.

담뱃값 인상의 목적은 국민 건강 증진이 아니라 세수 확대다. 끝.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 좀더 하자면, 담배가 국민 건강에 해로워서 못 피우게 하려면, 당연히 생산과 공급을 통제해야 한다. 그런 일 안 하면서 건강을 위해 못 피우게 하겠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대마초, 히로뽕이 몸에 해로우므로 생산-유통은 얼마든지 하되 값을 비싸게 하면 될 일인가?

또 담배값을 올려 금연을 유도한다는 발상은 소득 불평등 및 그에 따른 차별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회에서 통용되는 논리 구조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값을 올려 소비를 억제한다는 것은, 다시 말해 구매력이 없는 놈들은 소비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값을 아무리 올려도 돈 있는 놈들은 상관없다. 이것은, 피서지에서 엄청난 바가지를 씌워, 이를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부유한 자들만 산과 바닷가에 가서 놀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담뱃값 인상이 금연에 미치는 효과도 확인된 바 없다. 도시 전설이거나, 아니면 그렇게 될 것이라는 선전만 있을 뿐이다. 예컨대 한 기사는 이렇게 썼다(강조는 내가).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11일 담뱃값 인상안을 포함한 금연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내년 1월부터 담뱃값을 평균 2000원 인상할 계획이다. 정부는 담뱃값 인상을 통한 금연 효과로 국민 건강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 3일 발표한 담뱃값 인상에 대한 설문조사가 이를 뒷받침한다.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64.5%가 담뱃값 인상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또 담뱃값을 4500원으로 올리면 흡연자의 32.3%가 금연하겠다고 응답했다.


'뒷받침'이 안 됩니다. 이유는 다음 기사까지 보고나서 살펴보자.

다른 신문의 사설은 같은 발표 자료를 인용해서 이렇게 썼다(강조는 내가).


담뱃값을 올리면 흡연을 줄이는 효과가 확실히 나타난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담뱃값이 4500원으로 오르면 담배를 끊겠다는 응답자가 32.3%에 달했다. 특히 청소년은 성인보다 3~4배 이상 가격에 민감(敏感)하게 반응한다.


확실히 안 나타납니다. '금연하겠다고 응답' 혹은 '담배를 끊겠다는 응답'은 담뱃값 인상의 '효과'가 아니다. 그에 대한 일시적 반응일 뿐이다. 효과는 실제로 어떤 변화가 발생했음을 의미하는 말이다. 위의 사설에 쓰인 논리를 적용한다면, '새해가 되면 흡연을 줄이는 효과가 확실히 나타난다'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담배의 해악이 알려지기 시작한 때로부터 적어도 수십 년은 지난 지금,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거의 아무도 남아있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이런 선전용 '가짜 효과'는 다른 기사에서 서술한 다음과 같은 부분에서 확인할 수 있다(강조는 내가).


(일본의) 담뱃값이 이렇게 1000∼2000원 안팎으로 오른 직후 금연보조제 처방이 늘어났다는 일부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공식 연구결과는 금연효과가 거의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후생노동성 연구팀이 2010년 11∼12월 성인 남녀 1146명에게 흡연 여부 등을 설문조사한 결과 남성의 흡연율은 37.1%로 세금을 올리기 전인 2009년 11∼12월 조사 때의 36.1%보다 약간 올랐다. 여성 흡연율도 2009년 8.3%에서 8.9%로 높아졌다.

2009년 인상 전 조사에서 남성 흡연자 중 6.2%, 여성 흡연자 중 9.2%가 가격이 20엔(268원)만 올라가도 담배를 끊겠다고 답변했고, 남성 흡연자 중 36.8%, 여성 흡연자 중 53.9%는 가격이 2배가 되면 담배를 피우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이러한 약속은 전혀 이행되지 않았던 셈이다.


담뱃값이 담배 소비에 미치는 진짜 효과를 보려면 이런 도표가 도움이 된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담뱃값과 그 소비 사이에 부정적 관계를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담뱃값을 올리면 단기적으로는 흡연이 줄어드는 '효과'를 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결국 다시 원상태로 되돌아간다. 2005년에 5백원을 '대폭' 인상했을 때, 그 해와 다음 해에 일시적으로 소비가 떨어졌으나(A), 셋째 해에서부터 다시 인상 전 수준인 43억대로 되돌아갔다(B). 1990년에서 2011년까지 21년 동안 담뱃값은 531원에서 2,504원으로 4.7배 올랐지만(일반 소비자물가 상승폭의 두 배에 가깝다), 담배 소비는 각각 43억3백만 갑(C)과 43억4천1백만 갑(D)으로 거의 완벽하게 똑같다. 이 담배 소비 경향에는 담뱃값 인상뿐 아니라 점차 강화되어 온 다양한 흡연 억제 정책들이 야기한 효과도 포함되어 있을 테니, 어떻게 보자면 담뱃값 인상은 담배 소비를 촉진하여 왔다고 할 수도 있을 지경이다.

"어쨌든 값 올리면 안 피우면 되잖아요?" 그래, 넌 이담에 커서 담배 배우지 마라. 담배는 습관성 기호품이며, 강한 중독성이 있다. 담뱃값을 올려 손쉽게 세수를 늘리려는 인간들은 그런 점을 잘 알고 있다. 값을 올린다고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면, 애초에 담배값을 올릴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세수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것이 만일 오해라면, 오해임을 입증할 수 있는 아주 간단한 방법이 있다. 담뱃값 인상으로 발생한 추가 수익 전부를, 아니 적어도 그 중 상당 부분을 금연 사업을 비롯한 건강 증진 사업에 쓴다면, 그러한 정책이 초래할 효과에 대해서는 무지하지만 의도만은 좋다고 할 수 있다. 어디 그런가?

예전엔 그래도 국민 정서 저울질하고 분위기 봐가며 겨우겨우 몇백 원씩 올렸다. 이번엔 2천원이란다. 이왕 씌울 바가지, 아주 통 크게 확 덮어씌우자는 뻔뻔한 속내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뭘 어떻게 해도 사분오열되어 저희끼리 싸우느라 제소리도 못 내는 국민, 얼마나 만만하게 보였으면 이런 일을 서슴지 않나 싶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으며(7년 전에 끊었다), 흡연이 본인과 주변 사람의 건강에 중대한 위협을 가져온다고 믿으며, 따라서 흡연을 억제하기 위한 각종 정책을 지지하며, 그러나 개인이 흡연할 것을 선택하고 이로써 주위에 불편을 끼치는 일이 없다면 그것은 개인의 권리라고 생각한다. 나는 금연 정책이라는 명목으로 담뱃값을 올려 세수를 늘리는 방안에 대해 담배를 피울 때도 반대했고 피우지 않을 때도 반대하며, 노무현 정부 때도 반대했고 박근혜 정부 때도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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