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조 말씀言 말씀語 (Words)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 사람이 "곤조 있다"라고 말할 때의 곤조는 일본말 根性(こんじょう)다. 끝.

지난 6월에 <프레시안>이 한 팟캐스트 내용을 소개한 기사 중 일부다.


김윤철 교수는 '자진 사퇴' 여론에도 아랑곳없는 문(창극) 총리 후보자에 대해서도 "곤조(gonzo, 根性) 있다"고 평했다. 북아일랜드 사투리로, '곤조'는 술자리에서 끝까지 남은 사람을 일컫는다. 도무지 어찌할 수 없는 막무가내(莫無可奈) 인사라는 비난이다.


기사는 1) 김윤철 교수가 "문창극은 곤조 있다"라고 말했다는 점과 2) 곤조는 북아일랜드 사투리라는 점을 이어붙임으로써, 마치 김윤철이 북아일랜드 사투리의 뜻, 즉 술자리에서 끝까지 남은 사람의 뜻으로 이 말을 쓴 것 같은 맥락을 만들었다. 그러나 한국어를 쓰는 한국 사람이 북아일랜드 사투리의 뜻으로 이 말을 쓰는 경우는 장담컨대 전혀 없다. 저 둘째 문장에는 일본말에서 온 곤조라는 단어가 흔히 어떤 뜻으로 쓰이는지를 설명하는 내용이 들어갔어야 옳을 것이다.

이 기사를 홍보한 트윗에서는 다음과 같은 장면이 벌어졌다.




기사를 소개하는 이 트윗에서는 아예 "여기서 '곤조'는 북아일랜드 사투리로..."라고 하여, 기사에 쓰인 곤조라는 말이 북아일랜드 사투리의 의미로 쓴 것처럼 묘사했다.

다시 말하지만 한국 사람 중에서 말을 하거나 글을 쓰면서 북아일랜드 사투리를 섞어 쓰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화자(혹은 필자) 자신이 그 정도로 그쪽 말에 조예가 깊은 경우도 드물겠지만, 그보다 그런 북아일랜드 사투리를 이해할 수 있는 독자가 (아마도)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말에서 온 곤조는 한국인 화자(혹은 필자)라면 누구나 아는 말이고, 독자들도 거의 모두 알고 있는 말이다. 대중을 상대로 한 말이나 글에서 곤조라는 말을 등장시켰을 때, 이것이 무슨 의미로 소통되는지는 자명하다. 이를 북아일랜드 사투리의 의미로 썼다고 하는 것은 억지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트위터에서 독자가, 기사에 등장한 곤조라는 말이 일본어 根性에서 온 말이 아니냐고 물은 것은 당연한 질문이다. 이에 대해 <프레시안> 트위터는 또다시 원래의 의미 맥락과 전혀 관계없는 사항, 즉 헌터 톰슨의 곤조 저널리즘까지 꺼냈다. 불필요하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한발 더 나간 셈이다. 문창극이 언론인 출신이긴 하지만, 그가 당시 곤조 저널리즘 하고 있던 것은 아니다. 그냥 곤조통을 부리고 있었을 뿐이다.

이 장면에는 곤조라는 말과 관련한 두 가지 사실이 뒤섞여 있다. 1) 위에서 말한 대로, 한국인이 다른 사람의 성격이나 태도를 평하며 '곤조 있다'라고 할 때의 곤조는 일본말이라는 점, 2) 같은 말로서 영어권 일부에서 속어처럼 쓰이고 헌터 톰슨에 이르러 독특한 저널리즘 방식을 표현하는 용어로 정착된 것도 있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는 별개의 사실이며 서로를 간섭할 수 없다. 두 단어가 얼핏 보면 뜻이 비슷한 데다 한국어(혹은 일본어)로 발음하면 '곤조'라는 단일한 음가를 갖는다는 것은 오로지 우연일 뿐이다.

이것은 반성적 고찰이다. 나도 혼동한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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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가 아닌 영어에서 쓰이는 곤조라는 말의 어원은 분명하지 않다. 사람에 따라 이런저런 유럽어에서 어원을 유추하여 보는데, 대개 그 뜻이 지금의 의미와 맞아떨어지지 않아서 견강부회의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점이 있다. 이 말이 대중적으로 알려지고 지금의 그 의미를 갖게 된 뽀인트에 헌터 톰슨이 있다는 점이다.

다음은 예전에 쓴 헌터 톰슨과 관련한 글에 달린 댓글과 나의 답글이다.




톰슨이 곤조라는 말을 자신의 글 스타일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한 계기와 그 이전의 용법을 거슬러 올라가면 다음과 같다:

1. 1970년, <보스턴 글로브> 일요판 편집장이던 빌 카도소(Bill Cardoso)는 톰슨이 보낸 켄터키 더비 관련 기사를 보고 "이거야말로 진짜 곤조 저널리즘일세!"라고 적어 보냈다. 말하자면 톰슨의 글쓰기에 곤조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그의 동료이자 친구인 카도소인 셈이다. 카도소의 부고 기사를 보면, 톰슨 역시 '곤조 저널리즘'이란 말을 만들어 낸 공을 늘 카도소에게 돌렸다고 한다.

2. 그럼 카도소가 쓴 곤조라는 말은 어디서 나왔을까. 여기에 대해서는 말이 엇갈린다. 그는 이 말이 보스턴의 아일랜드계 사람들 사이에 쓰이는 속어로서, 밤새 퍼마시는 술자리에서 끝까지 버티는 사람을 가리킨다고 한 바 있다. (여담이지만 이런 내용은 한국으로 건너오면서 보스턴은 빠지고 그냥 '아일랜드 속어'가 되었다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아일랜드 속어'로까지 변질되었다.) 그러나 카도소 자신도 그 어원에 대해 정확히 지식은 없었던 듯하다. 그는 이 말이 프랑스계 캐나다인이 쓰는 말에서 나왔다고 설명하기도 했다고 한다(위 부고 기사 및 위키).

3. 카도소가 곤조라는 말을 특히 톰슨의 글에 붙인 이유는 다른 데서 찾을 수 있다. 위에 링크한 예전 글에도 썼지만, 오랫동안 톰슨의 친구였으며 그가 죽은 뒤 편지 등 방대한 문서 자료를 정리한 당사자이고 톰슨 기념관의 문서 자료 큐레이터 역할도 하고 있는 라이스 대학 역사학과 교수 덕 브링클리의 말이다:


닉슨이 1968년에 대통령 선거에 나왔을 때, 헌터는 <패전트>지를 위해 닉슨을 취재하게 된다. 이 취재 과정에서 헌터는 <보스턴 글로브 매거진>의 칼럼니스트 빌 카도소와 함께 뉴햄프셔의 한 모텔에서 지낸 적이 있다. 헌터는 자신이 좋아하던 재즈 음악(제임스 부커의 연주곡으로, 곡 이름이 '곤조'였다) 카셋을 가져와서 죽어라 틀어댔다. 카도소는 미칠 지경이 되었으며, 그날 밤에 농담 삼아 헌터를 '곤조 사나이(the Gonzo man)'이라고 부르며 놀렸다. (톰슨의 전기 <곤조> 중에서)


말하자면 카도소의 '곤조 저널리즘'은 갑자기 보스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도 아니고 '북아일랜드' 땅에서 쑥 솟아난 것도 아니며, 톰슨이 무지하게 좋아하던 재즈곡, 그걸 끈질기게 틀어댄 일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4. 카도소가 이 말의 어원으로 '아일랜드계 보스턴 속어, 끝까지 버티는 술꾼' 같은 말을 한 데 대해, 브링클리는 톰슨이 그건 구라일 뿐이라고 일축했다고 전한다. 실제로 카도소 자신이 이리저리 말을 바꾼 것으로 보아, 그 같은 어원을 신뢰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한국 언론이나 거기 글을 쓰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어원을 인용한다. 물론 확인 없는 교차 인용 때문이며, 그래서 '북아일랜드' 같은 뜬금없는 오류마저 그대로 재생산된다.)

5. 그럼 톰슨이 좋아했던 부커의 연주곡에 붙은 제목 '곤조'는 어디서 나왔을까. 이에 대해 브링클리는 이렇게 말한다:


'곤조'라는 말은 미국 남부 속어로서, 수십 년 동안 프렌치 쿼터(뉴올리언스의 구 시가지 지역)의 재즈계에서 널리 쓰여 왔다. 그 대략적인 뜻은 '어수선하고 분방하게 연주하라'는 것이다. (위와 같음)


나로서는 이 말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20세기 초중반에 미국 남부 재즈에서 왜 곤조라는 말이 슬랭으로 쓰이기 시작했는지에 대한 자료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까지로는 이런 추적이 가장 신뢰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일설에는 부커의 연주곡에 붙은 '곤조'라는 제목은, 음반이 나온 바로 그 해(1960년)의 영화 <The Pusher>에서 악역을 맡은 주인공의 별명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데, 이것도 확인은 어렵지만 역시 사후 유추의 일종이 아닌가 싶다.

정리하면 이렇게 된다:




곤조라는 서양말에 대한 생각은 이 정도로 충분하지 않나 싶다.

어쨌거나, 이렇게 되짚어 본 말 Gonzo는 한국인인 우리가 흔히 쓰는 말 곤조가 아니다. 한국에 Gonzo라는 말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05년에 톰슨이 사망하면서부터다. 이후 그와 관련한 영화 몇 편이 한국에 소개되면서 더 자주 등장했다. ('곤조 저널리즘'이란 말이 저널리즘이나 언론 관련 분야에서가 아니라 영화 관련 기사나 칼럼에서 더 많이 나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러나 한국인은 톰슨 사망 이전부터, 심지어 곤조 저널리즘이 탄생하기 훨씬 전부터 수십 년 동안 그 말을 써왔다. 그 점은 이런저런 유추와 추정이 필요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덧붙임] 9월18일 16:30

<프레시안> 트위터에 언급된 문씨의 곤조 - 톰슨씨의 곤조의 연관을 해체하는 데 주력하느라 미처 주목하지 못하고 넘어간 게 있다:

"미국의 진보 저널리스트인 헌터 S. 톰슨(Hunter S. Thompson)은 북아일랜드 사투리 곤조(gonzo)를 인용해 '곤조 저널리즘'을 주장, <곤조>라는 책도 섰습니다"

내가 아는 한 톰슨은 <곤조>라는 책을 쓴 적이 없다.

그는 자기가 쓴 글들을 모아 <곤조 페이퍼즈(Gonzo Papers)>라는 시리즈를 네 권까지 낸 적은 있다. 또 톰슨이 쓴 책 리스트를 보면 <곤조: 사진(Gonzo: Photographs)>이라는 책이 있는데, 제목 그대로 톰슨이 찍었거나 톰슨을 찍은 사진들을 모아 만든 사진집 스타일의 전기다. 한정판으로 3천 부만 찍은 이 책은 곤조 저널리즘과 직접 관련은 없고, 초기 작업에 톰슨이 참여하긴 했지만 책이 나온 것은 그가 죽은 이후다. 그가 찍었거나 소장한 사진이기 때문에 저자가 톰슨으로 되어 있지만, 그 자신이 쓰거나 엮은 책이 아니기 때문에 autobiography가 아니라 그냥 biography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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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카우캣 2014/09/16 23:04 # 삭제 답글

    옥스퍼드 대영영사전(Oxford English Dictionary)에서는 gonzo가 '주로 미국에서 쓰이는 속어(slang orig. and chiefly)'라며 아마도 fool이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곤조(gonzo)나 goose라는 뜻의 스페인어 간소(ganso)에서 유래한 것 같다고 설명합니다. 아일랜드 얘기는 없네요.
  • deulpul 2014/09/17 05:21 #

    맞습니다. 이 풀이(​http://www.oed.com/view/Entry/79922?redirectedFrom=gonzo&)는 역시 유럽어 중에서 비슷한 말을 어원으로 추정한 결과인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곤조라는 말의 어원을 찾는 작업은 1) 관련자들의 증언에 기대는 방향(주로 전기 작가들 등 1차 자료 생산자들) 2) 언어적 유사성에 주목하여 어원을 추정하는 방향(주로 사전 편찬자들) 등 두 가지 트랙으로 이어져 왔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단어 하나의 어원을 찾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데, 속어라서 더욱 그렇겠지요. 한편, 말씀하신 사전이 찾아놓은 예문들이 모두 헌터 톰슨 이후의 것이라는 점은 시사적이라고 하겠습니다.
  • capcold 2014/09/17 04:12 # 답글

    !@#... 하도 흥미로운(...) 토픽이다보니, 관련 학술논문까지 있더군요 http://www.academia.edu/216072/What_is_Gonzo_The_etymology_of_an_urban_legend
  • deulpul 2014/09/17 06:15 #

    네, 위 글을 정리하면서 저도 참고한 글인데, 이슈로 떠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 필자도 관련자 증언과 사전 수록 내용을 검토해 본 뒤, 이 말의 어원은 정확히 밝힐 수 없다고 안타까워하죠. 제게 인상적인 것은 다음과 같은 부분이었습니다:

    "나는 여기서 (이 말의 어원과 관련한) 여러가지 가능성을 소개하였지만, 합리적인 의심을 넘어서는 확신을 가질 수는 없었다. 이 미스터리의 중심 인물은 빌 카르도소다. 그가 이 말이 (프랑스계 캐나다 속어라는) 'gonzeaux'에서 나왔다고 한 근거는 무엇인가? 이 단어에 엮여 있는 프로 농담꾼들의 말은 대체 어디까지가 장난인가? 그런 점이 정말 중요한가?

    나에게는 그렇다. 곤조와 뉴 저널리즘의 역사는 지금도 계속하여 쓰이고 있다. 톰슨과 울프를 비롯하여 그 세대의 많은 작가는 아직도 글을 쓴다. 젊은 세대 기자들은 사상 처음으로 이런 (뉴 저널리즘의) 역사에 직면하여 있다. 헌터 톰슨이 저널리즘에 끼친 영향의 영광과 엄중함이 이 짧은 단어 하나에 응축되어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말이 어디에서 왔는지조차 모른다. 이것은 20세기 문학과 저널리즘 역사에 존재하는 끈질긴 퍼즐 중 하나다."

    이 논문이 쓰인 것은 2004년으로 톰슨이 죽기 1년 전이고, 제가 본문에서 인용한 브링클리의 증언이 담긴 톰슨의 구술 전기 <곤조>가 나온 것은 3년 뒤인 2007년입니다. 필자가 새로운 증언과 자료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궁금합니다. 기회가 되면 한번 물어봐야겠네요. 여하튼 이 논문의 압권은 뭐니뭐니해도 결론의 '(다큐멘터리 제작자) 마이클 무어는 외모조차 곤조스럽다"라고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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